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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 알베르 까뮈, 책세상,15쪽)


오래 전 마음에 담아 두었던 문장이다. 

실은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런 저런 잡념에만 잠겨 있을 때, 그러다가 그 잡념하기가 지겨울 때 혹은 두려울 때, 소설책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었다. 언니가 샀거나 아니면 당시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던 사촌 오빠가 준 것이었거나 둘 중 하나일 성 싶은,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만났다.


제목은 그럴듯한데, 내용은 소설이 아니었다. 생소하고 곰팡내 날 것 같은 철학이라니.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안 읽는 장르인 에세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그 시지프의 신화에서 까뮈가 무얼 말하는지 당시에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 근사하고 있어보이는 주제임에는 틀림없고 그것을 내가 읽고 있다는 정도의, 젠체 하는 마음 정도 가 전부였을 것이다(고백하자면 지금도 내가 읽는 책의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첫 번째 문단의 그 강렬하고 무시무시했던 인상은, 지금도 남아있다. 자살이라니. 자살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문제야 말로 가장 근본적 철학문제라니. 갓 스무살이 된 나에게, 이 얼마나 생소하고도 비장한 말인가.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더러 있다.

자신이 없을 때, 이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달려들 때,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라도 이 인생을 오래 끌고 가야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곤 한다.

이것이 철학적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생존의 문제가 아닐까. 동의반복어 같긴 하지만 말이다.


어제 나는 그런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동료가 한 한마디와, 아아 세상에 역시 나 혼자밖에 없구나 하는. 깨달음.


생존의 욕구와 죽음의 현실은 물리적 존재로서 인간의 원초적 딜레마라고 하지. 두개의 대립되는 욕구가 인간 존재의 본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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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다. 

꽤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꽃이다. 물론 핑계는 있다. 하지만, 꽃이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꽃은 나에게 별로 흥미롭지 않다.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감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감각의 희열, 그런 것을 맛본 지 너무 오래된 것인가? 나의 신경계는 이미 너무 높은 역치를 요구하는 것일까?

내가 대학교 들어가고 첫 봄이었다. 제법 날이 쌀쌀했던 것으로 보아, 초봄이었던 모양이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과선배와 함께 무작정 289 버스를 탔다. 나의 손에는 장미 한다발이 들려 있었을 것이다.


선배는 강남의 어느 동의 주택을 돌며 나의 꽃다발 배달을 해야 했다.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우리는 그 동네 어귀를 몇 바퀴 돌았다. 결국, 동네 복덕방 아저씨에게 물어 꽃다발이 배달되어야 할 곳을 찾았다.


중년의 부인이 건네받은 그 꽃다발이, 과연 나의 당시 남자친구에게 도달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확인을 안 해 보았던 것 같다. 

이후로 나는  남자친구와는 만나지 못했다. 그는 나와 다른 대학을 갔고, 이후 소원해 졌다. 여자 없이는 못사는 성격인지라,아마도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것이다,  가끔 전화가 오긴 했다. 유학을 떠나서 방학 중 잠시 서울에 왔을라치면, 엄마는 걔한테 전화왔다는 소식을, 가끔, 아주 가끔 전해주곤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남자들은 참 이상하구나. 뭐 제대로 설명도 없이, 떠나거나 버려놓고선, 잊을만 하면,들쑤셔 놓는구나하고. 왜 떠났는지, 한번도 설명따윈 없었다. 이후 다른 남자를 만났지만, 그도 그랬다.  그 꽃다발을 보냈던 그 남자를, 실은 만나긴 했었다, 딱 한번. 잠시 직장생활을 할 때, 나의 남자관계가 안풀렸던 탓이 그 남자 와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옛남자친구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우리는 동물원에 갔고, 리프트를 탔고, 함께 저수지의 개들을 보았다, 하필 저수지의 개들이라니... 


이제 그 남자친구는 깡그리 잊었다. 뭐 두 아이의 아빠라고 하던데,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나보단 잘 살면, 쫌 약이 오를 법하지만. 

이후 꽃을 받고 싶은 남자가 생겼는데, 그 남자는 결코 꽃다발을 주진 않았다. 


아무튼, 꽃다발을 보니 오래전 남자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로서는  꽃보다는 남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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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2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꽃보다는 남자가 좋아요.

테레사 2012-02-28 17:38   좋아요 0 | URL
ㅋㅋ^^
 

그 시계를 버리기로 하였다.

어쩐 일인지 시계는 10시 20분에 멈춰 있었다.


프랑스 샤모니 근처에서 산 것이라고, 그는 부끄러워 하며 말했다.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남자 넷이 프랑스 지방을 정처없이 떠돌수 있었던, 흔치 않던 호사를 자랑하던 그 8월의 여행.

정확하게 기억한다. 나는 그때 "팔월의 일요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팔월의 일요일들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분간하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미스 해비셤을 생각한다.

결혼식을 20분 앞둔 아홉시 이십 분 전, 공기의 순환도 시계의 초침도 화려한 순백의 웨딩드레스의 떨림도 그리고 여인의 생기 넘치던 심장 박동도, 바로 그 순간 멈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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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1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유산]을 영화로만 아주 오래전에 봤더랬어요. 이 글을 읽고 미스 해비셤이 누구일까 싶어서 구글했어요.

테레사 2012-02-17 15:45   좋아요 0 | URL
저는 위대한 유산 참 좋아요. 그리고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도. 이건 미완의 유작인데요.....특이한 분위기, 흥미진지한 이야기 전개, 약간의 비극적 낭만성.
 

누룽지 먹고 체했다. 

계속 마른 하품에 속이 부글거리고, 졸립기까지 하다.

그리고 만사가 귀찮다.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것도, 나자신의 서재를 가꾸는 일도, 글고 무엇보다 해야 하는 전화질까지도.

엄마는 왜 날 이렇게 낳은 건지....난 왜 이토록 게으르고, 멍청한지. 30%는 부모탓이다.라고 핑계를 대어도, 후련하지가 않다.


언니에게 부칠 시집들과 지젝의 책 그리고 레온 드 빈터의 소설이 도착했다. 주문을 한지 5일 만에 온듯.

배송정책이 들쭉날쭉인건지...당일 배송 아니었나?

쫌 뾰루퉁해서 시집들을 들춰본다.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은 나도 안 읽었다. 읽고 나서 부쳐야겠다.

뭔가 근사할 것 같은.


이웃서재에게 자문을 구해 결정한 시집인데, 그동안 시집들에게 매번 실망만 해 온 나로서는, 이번엔 어떨까 하는 기대반 걱정반.

지젝의 책 역시 로자가 추천해 준 것. 작년 말, 페이스북 친구가 번역해 올린 영국 런던에서 학생들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즉석으로 행한 연설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책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가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그런 저런 인상들 때문에 이 책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로자까지 이 책으로 시작해 보란다.


남이 권해서 읽은 책은, 상대적으로 기대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매번 실망을 했던 경험이다. 이번 책들은 또 어떨까.


비밀을 버리고 나서인지, 삶이 너무 가볃다는 느낌이,오늘은 든다.

로라와 아녜스 자매.

나는 아마도 로라에 더 가까운 듯하다. 마음은 아녜스를 지향하는데, 삶은 로라라니...

레온 드 빈터의 바스티유 광장은 그동안 번역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주 드물게 레온 드 빈터의 책이 번역되었나 살펴보곤 하였는데,나의 거물망에 안 걸렸던 것. 호프만의 허기에서 보았던 철학적이고 진지한 문제의식, 그러면서도 재미를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으려나. 

기대가 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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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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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노트란 곳에 올린 단상.


해야 할일이 산더미 같은데, 손을 어디다 먼저 대야할 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이 딱, 그런 때다. 그런데 이건 뭔가. 노트라니...

 

아무튼, 페이스북이 일종의 공개된 일기장이라는 데 동감이다. 제일 처음  페이스북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생각외로 사적인 그러나 또 친구들과 그런 정도의 이야기는 나눌 수 있는 뭐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음...난 일기 따위를 쓰진 않을테다. 했는데, 역시나 나도 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기 시작했으니.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3주 동안 줄곳 잠만 잤다. 그야말로 잠만 잤다. 식사도 입에 점만 찍듯이 하는 듯 마는 듯, 그리곤 곧바로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가 잠만 잤다. 

렉싱턴의 유령이다. 다시 그 대목을 읽는다. 여전히 어떤 지점에서는 선뜻,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다.

누워서 우연히 책장을 보다가 모로 누워 도무지 제목을 짐작할 수 없는 책들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그 중 한 권이었다. 다시 펼쳐 보았다. 여전히 렉싱턴의 유령은 기묘하다. 오컬트적이라는 해석이 붙긴 하지만, 예전에 지금 유행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미드 중 하나였던 환상특급 같은. 취향으로 보자면 환타지나 호러나 미스터리 같은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난 SF는 좋아한다- 그리고 토니 다키타니도 여전히, 좋다. 이건 뭐랄까...한겨울 아이스크림 같은, 차가움과 달달함을 한꺼번에 맛보는 느낌이랄까.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며 대면하게 되는, 담담한 듯하면서도 울리는 자기만의 비밀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비밀은 누구나 변주된 모양으로 하나씩은 있을 법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작가였다.

좀 솔직하게 말하면, 그 시절 좀 젠체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너도 나도 하루끼였고, 대형서점에는 아예 한코너를 따로 둘 정도였으니까.  해서 일부러 피하거나 무시했던 거다. 상실의 시대 이후 내가 하루키를 읽은 적은 없다. 이 책 역시, 토니 다키타니 때문에 손에 넣은 책이었다. 기대를 별로 안하고 펼쳤는데, 의외로 각각의 단편들이 산뜻했다. 

다양한 글쓰기의 시도가 엿보이기도 하고, 각각의 단편들이 저마다 색채가 달랐으니까.

 

피츠제랄드의 단편집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하루끼가 리츠제랄드의 작품들을 많이 번역했다고는 한다...흠..어쨌든...

 

노트에 이런 것들을 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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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게 되고 또 다른 하루키의 작품을 찾아 읽게 만들었던 작품이 바로 이 [렉싱턴의 유령]이었어요. 이거 읽고, 이 속의 단편 [일곱번째 남자] 읽고(제목이 이게 맞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아아 이건 뭐지, 하루키 이 사람 뭐야, 싶어서 그때부터 하루키를 마구 읽었죠. 이십대 초반이었어요. 하핫.

그런데 언급하신 [렉싱턴의 유령]은 내용이 기억나질 않네요.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아, 테레사님 저랑 다른게, 저는 SF를 좋아하지 않아요. 후훗

테레사 2012-02-09 11:40   좋아요 0 | URL
렉싱턴의 유령은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다지 인상이 없었어요. 뭐 이런 환상특급?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좀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글고 모든 sf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ㅎㅎ 간혹 멋진 에스에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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