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먹고 체했다. 

계속 마른 하품에 속이 부글거리고, 졸립기까지 하다.

그리고 만사가 귀찮다.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것도, 나자신의 서재를 가꾸는 일도, 글고 무엇보다 해야 하는 전화질까지도.

엄마는 왜 날 이렇게 낳은 건지....난 왜 이토록 게으르고, 멍청한지. 30%는 부모탓이다.라고 핑계를 대어도, 후련하지가 않다.


언니에게 부칠 시집들과 지젝의 책 그리고 레온 드 빈터의 소설이 도착했다. 주문을 한지 5일 만에 온듯.

배송정책이 들쭉날쭉인건지...당일 배송 아니었나?

쫌 뾰루퉁해서 시집들을 들춰본다.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은 나도 안 읽었다. 읽고 나서 부쳐야겠다.

뭔가 근사할 것 같은.


이웃서재에게 자문을 구해 결정한 시집인데, 그동안 시집들에게 매번 실망만 해 온 나로서는, 이번엔 어떨까 하는 기대반 걱정반.

지젝의 책 역시 로자가 추천해 준 것. 작년 말, 페이스북 친구가 번역해 올린 영국 런던에서 학생들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즉석으로 행한 연설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책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가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그런 저런 인상들 때문에 이 책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로자까지 이 책으로 시작해 보란다.


남이 권해서 읽은 책은, 상대적으로 기대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매번 실망을 했던 경험이다. 이번 책들은 또 어떨까.


비밀을 버리고 나서인지, 삶이 너무 가볃다는 느낌이,오늘은 든다.

로라와 아녜스 자매.

나는 아마도 로라에 더 가까운 듯하다. 마음은 아녜스를 지향하는데, 삶은 로라라니...

레온 드 빈터의 바스티유 광장은 그동안 번역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주 드물게 레온 드 빈터의 책이 번역되었나 살펴보곤 하였는데,나의 거물망에 안 걸렸던 것. 호프만의 허기에서 보았던 철학적이고 진지한 문제의식, 그러면서도 재미를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으려나. 

기대가 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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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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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노트란 곳에 올린 단상.


해야 할일이 산더미 같은데, 손을 어디다 먼저 대야할 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이 딱, 그런 때다. 그런데 이건 뭔가. 노트라니...

 

아무튼, 페이스북이 일종의 공개된 일기장이라는 데 동감이다. 제일 처음  페이스북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생각외로 사적인 그러나 또 친구들과 그런 정도의 이야기는 나눌 수 있는 뭐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음...난 일기 따위를 쓰진 않을테다. 했는데, 역시나 나도 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기 시작했으니.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3주 동안 줄곳 잠만 잤다. 그야말로 잠만 잤다. 식사도 입에 점만 찍듯이 하는 듯 마는 듯, 그리곤 곧바로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가 잠만 잤다. 

렉싱턴의 유령이다. 다시 그 대목을 읽는다. 여전히 어떤 지점에서는 선뜻,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다.

누워서 우연히 책장을 보다가 모로 누워 도무지 제목을 짐작할 수 없는 책들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그 중 한 권이었다. 다시 펼쳐 보았다. 여전히 렉싱턴의 유령은 기묘하다. 오컬트적이라는 해석이 붙긴 하지만, 예전에 지금 유행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미드 중 하나였던 환상특급 같은. 취향으로 보자면 환타지나 호러나 미스터리 같은 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난 SF는 좋아한다- 그리고 토니 다키타니도 여전히, 좋다. 이건 뭐랄까...한겨울 아이스크림 같은, 차가움과 달달함을 한꺼번에 맛보는 느낌이랄까.

 

한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며 대면하게 되는, 담담한 듯하면서도 울리는 자기만의 비밀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 비밀은 누구나 변주된 모양으로 하나씩은 있을 법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작가였다.

좀 솔직하게 말하면, 그 시절 좀 젠체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너도 나도 하루끼였고, 대형서점에는 아예 한코너를 따로 둘 정도였으니까.  해서 일부러 피하거나 무시했던 거다. 상실의 시대 이후 내가 하루키를 읽은 적은 없다. 이 책 역시, 토니 다키타니 때문에 손에 넣은 책이었다. 기대를 별로 안하고 펼쳤는데, 의외로 각각의 단편들이 산뜻했다. 

다양한 글쓰기의 시도가 엿보이기도 하고, 각각의 단편들이 저마다 색채가 달랐으니까.

 

피츠제랄드의 단편집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하루끼가 리츠제랄드의 작품들을 많이 번역했다고는 한다...흠..어쨌든...

 

노트에 이런 것들을 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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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게 되고 또 다른 하루키의 작품을 찾아 읽게 만들었던 작품이 바로 이 [렉싱턴의 유령]이었어요. 이거 읽고, 이 속의 단편 [일곱번째 남자] 읽고(제목이 이게 맞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아아 이건 뭐지, 하루키 이 사람 뭐야, 싶어서 그때부터 하루키를 마구 읽었죠. 이십대 초반이었어요. 하핫.

그런데 언급하신 [렉싱턴의 유령]은 내용이 기억나질 않네요.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아, 테레사님 저랑 다른게, 저는 SF를 좋아하지 않아요. 후훗

테레사 2012-02-09 11:40   좋아요 0 | URL
렉싱턴의 유령은 저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다지 인상이 없었어요. 뭐 이런 환상특급?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좀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글고 모든 sf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ㅎㅎ 간혹 멋진 에스에프가 있어요...
 
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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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생활의 가장 강력한 힘 -마음의 열정, 정신의 사유, 감각의 즐거움


사람들은 행위하고 말하는 것 안에서 자신이 누군인가를 내보이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드러내며 인간 세계에 현상한다.

어떤 슬픔이라도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아이작 데네센의 아웃오브 아프리카


일때문에 읽은 자료에 나온 문장들이다. 마음의 열정이 무언지, 잠시 생각해 본다. 정신의 사유란 또 무언가? 그래도 감각의 즐거움은 좀 느낌이 온다.


마음은 생각의 기원을 좇는다고 했지...그게 본능이라고. 이 생각의 기원은 어디 있는 걸까? 머리를 잘랐는데, 완전 몽실이다.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동생은 이런 나를 "머리는 곧 자라잖아" 하면서 위로했다.

생각해 보니,머리칼은 다시 자라는 게 확실히 맞다. 그렇다면, 자라지 않는 것, 혹은 복원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깨어진 도자기! 나는 자주 깨어진 도자기를 생각해 왔다. 그리고 우리 우주의 초기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제법 그럴듯하면서도 학문적인 것도 함께 떠올린다. 그리곤....사랑이라는 것, 깨어진 사랑도.

곧 장영희 교수의 어떤 말이 뒤따라 온다. 사랑은 단 몇 초만에도 시작될 수 있지만 한 사람을 잊는 데는 전 생애가 걸린다고...


회색영혼은, 어쩌면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친밀한 삶의 가장 강력한 힘이었던 마음의 열정은 죽음에 의해 파괴되었고, 감각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이후 한 남자는 자연사하였으나, 한 남자는 자살한다. 물론 자연사한 남자 역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


(이어서 쓴다)



마지막으로,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정말 정말 검사가 소녀를 죽였나 하는 사실과 관련된 것이다. 정말 죽였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이다. 너무너무 궁금하다. 또한 그 탈영병이 범인일까 싶기도 하다가, 또 아니면?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책 속에서 헤메고, 책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야기 세계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 기막힌 사실!에 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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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낸시 휴스턴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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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핑거는 빈서판에서 우리 인간은 30% 정도의 유전과 30% 정도의 공유환경, 그리고 놀랍게도 나머지30%정도는 우연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여기 등장하는 4명의 6살 박이들은,닮았으되 다르며, 다르지만 공통된 역사의 유전자가 관통하고 있다.


사실 나치가 인류에 남긴 상처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많은 변주들이 있다.내가 전에 읽은 사랑의 역사도   소재는 비슷하다. 그 소설을 담박에 읽고 나서 그냥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음...울음말이다. 그건 공감일 수도 있고, 뭐랄까 서러움일 수도 있었다. 허나 확실한 건, 주인공들의 삶에 일치하는 공감이라고 하기엔,뭔가 어색하고 진실은, 그 사랑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죽도록 외로운,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사랑만 평생 품고서도, 한 인간이 늙어갈 수 있다는 것, 오로지 평생을 그렇게 그리고, 기다리고 추억하면서 살 수도 있다는게, 서럽고 서럽고 또 서러웠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그럴 수도 있는 존재이다.


여섯살 난 소년, 소녀들의 기억 속에서 해체되고 복원되는 것이 어찌 사랑뿐일까, 시간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다. 우리 모두의 여섯 살들이 모여, 어른이 되고 역사가 되고, 또 그것은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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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30프로 정도는 우연에 의해서라는 것이 놀랍지만 사실인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언급하신 [사랑의 역사]는 니콜 크라우스 인가요? 저는 그 소설을 재미없게 읽었거든요. 그런데 울음이란 단어를 거듭 언급하신걸 보니 제가 그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테레사 2012-02-0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이에요^^.
 

현명한 사람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 지 안다. 

나는 그런 축에 들지 못한다.

해서 늘 허둥대거나, 안타까워 하거나, 지치거나 조급하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 대형서점이 들어선지 얼마 안되어서 였나. 구경한답시고 갔다가 카프카의 아포리즘이란 책을 발견했다. 

우리가 천국에서 쫓겨난 것은 너무 성급했기 때문이고, 또 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 조급하기 때문이라고 씌어 있었다. 당시 나는, 희곡을 자주 읽곤 하였다. 아마도 나 역시 멋진 희곡을 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때 읽은 희곡들, 생각이 별로 안난다. 아니다 제목들은 생각이 난다. 다만 어떤 내용이었나가 뚜렷하지 않다. 그땐 달리 뚜렷하게 성공하고 싶단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미했다, 내 인생 전체가.

돈을 밝히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거나 성공한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일부러라도. 

하지만, 얼마나 위선적이었던가.

실은, 멋진 인생이란 말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그 숨길 수 없었던 욕망의 실체라니.

새해엔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를 시도해 보자.

숨긴다고 드러나지 않을 것도 아닌데,



그러게, 연민이라는 감정은 도대체 인간의 생존에 어떤 이로운 점이 있어, 이토록 오랫동안, 인간에게 붙어 있는 것일까. 연민 이후로 전진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이 엉뚱하고 곤혹스런 감정이,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는 소용없는 무언가 같다.

오늘 폐지 줍는 할머니의 90도나 굽은 등을 보았다. 새벽에 버스를 갈아타는 데 문득, 쓰레기가 그득 넘쳐난 휴지통을 보았다, 아저씨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이곳 담당 아저씨가 아픈 건 아닐까, 아프면 누가 대신 나오나? 갑자기 몸이 안좋아 못나올 경우,하루치 임금은 깎이는 걸까? 그러다가 다음 계약에 불이익이라도 당할 지 모르니 아파도 정말, 쓰러져 의식이 없지 않는한 나와야 하겠지? 그제 읽은 황정은의 소설 속 곡씨 같은 곡씨들은 정말 있겠지? 우엑 메스꺼워질 만큼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들을 살아지기 위해 먹어야 하는 그런, 운명들....

점심도시락을 먹으면서, 음식의 맛을 음미하라고 했던 어떤 구절이 생각나 꼭꼭, 씹어 먹어본다. 맛이고 뭐고, 이런 것들을 섭취해야 하는 본능때문에 나는, 이렇게 먹는 것일까? 달걀, 콩자반,김치, 현미밥. 과일...왕오디쨈과 커피한잔.

다시 연민이란 감정으로 간다.이 효용가치로 따지면, 내게 정말 불필요하다싶을 정도로 소용없는 감정,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침통해 진다. 어쩔 수 없이 반복되면서도,딱 거기서 멈추고 마는, 그래서 나를 괴롭히기 가장 좋은 소재가 되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네가 세상을 바꿀거야? 네가 혁명이라도 하겠단 거야? 


마음이 너무 아파, 그냥 아플 뿐이야. 이 세계의 무작위성과 운명의 임의성, 그리고 평균연령의 상승. 자원의 한계. 모든 인간은 존귀하게 태어났다는 말의 공허함.

그렇다면 왜 폐지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있는거야? 왜 곡씨처럼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남의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들이 있는거냐고?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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