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어제는 그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그제 역시 그제와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그리운 이도, 가슴설레는 이도 없다는 자각을 하곤, 좀 놀랐다.

이렇게 생은 하루하루 흘러가고, 문득 .....

속이 메슥거린다. 아침에 누군가 토해 놓은 걸 보았기 때문인지, 불규칙한 식습관 때문인지...아니면...생각은 생각을 타고 멀리까지 간다.

구충제를 먹어야 하나...병원에 가보아야 하나...

밥먹다 누군가 프린아웃해 놓은 신문기사를 읽게 되었다. 박모씨가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두고 금융소득으로만 그럭저럭 잘 지내왔는데, 최근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고 있다는. 이제  는 금융소득만으로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은행에 10억 이상은 있어야 한단다.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 40대 후반이었다. 일을 놓기엔 좀 이르단 생각을 하면서, 결론에 이르러서는 나만의 단상에 빠졌다.

기사의 결론은, 금융자산이 아니라 뭔가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거다. 오피스텔업을 하거나 임대업 등등

왜 이대목에서 국가가 사회보장을 좀더 철저히 해서 은퇴하더라도 집걱정 , 병원비 걱정 안하게 하란 요구는 안나오는 걸까. 왜 그 모든 책임을 오로지 개인이 철저하게 짊어져야 하는 걸까...우리가 사회를 꾸리고 국가를 이룬 이유가 뭔가...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재가 탐욕스러워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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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영 기분이 사납다.

수영장에서 누군가 내 수건을 가져가버렸다.

누군지는 모른다.

이게 뚜렷한 기억으로 보자면, 두 번째다.

툴툴거리며, 그 알지 못하는 수건털이(윽 이건 또 무슨 단어인가)에게 약간의 저주(?)를 퍼부었다(내가 왜 이러나?).

사무실에 도착하고 인터넷뉴스를 보는데, 아, 또 이건 뭐란 말인가?

멘탈 붕괴라는 말은 누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딱 지금의 나에게 맞아떨어지는 표현이다.


내 아침 시작은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까지 더하자면, 어느덧 멘탈붕괴라는 표현은 일상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인간,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으로 살기 참, 어렵다. 힘들다. 자주 내가 타고난 그릇에 비해 세상사가 너무 많고, 너무 감당하기 어렵다(브로덱의 말?)는 생각을 한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소설책이 눈에 띄지 않았고, 읽다 만 책은 영, 마음이 당기지 않았다.

소위 멘붕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소설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고 믿는 나는, 할 수 없지만 소송을 다시 집어들 수밖에.


대학 학부시절 더듬거렸던 기억이 있는데, 줄거리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다 읽었는지, 읽다 말았는지조차 불분명하였다. 누군가가 써 재낀 서평류를 너무 많이 읽어서일까? 어쩌면, 전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읽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 요제프K와 동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은 더욱 꼬였다. 첫장을 다 읽고 나서 내속의 어떤 것은 진정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현실이나 소설이나 왜이리 합리성이라곤 눈닦고 찾아봐도 안보이는지...왜 이토록 오리무중이며, K는 또 왜 이렇게 답답하게 당하고 끌려가기만 하는건지.


이후 한달을 질질 끌었다.밤마다 읽기엔 심리적으로 편치 않는 내용이었기에, 주로 주말동안 읽었다. 줄거리가 남아있지 않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소송은 뚜렷한 사건의 기승전결이 있는 구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첫구절이라면, 그 다음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해서라도 독자들은 책을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 읽고 나면, 이미 이 첫 문단에 소설 전체의 스토리가 들어있다고 해도 될 법하단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주인공 K는 느닷없이 체포되었고, 왜 자신이 체포되었는지 동분서주 알아보러 다니고,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보려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처형된다. 물론 처형되는 것조차 현실에서 실제 일어난 일인지 혹은 꿈인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보기엔.


나는 가끔 우리가 소설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묻곤 한다.

위안일까? 지혜일까?

나에게 결론은, 문장 또는 단어이다.나의 몸짓과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문장이나 단어를 찾기위해서 나는 소설을 책을 읽는 것이다. 너무 심플한가...? 이건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내린 결론이다. 어쩌면 앞으로 다른 이유들을 다시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가령 내가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처지가 혹은 어떤 역할이 좀 버겁다고 치자. 그런데 그 버거움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새로 만들어내기가 난감할 때 이런 문장을 만났다고 해 보라.


나는 내 인생에 걸맞은 재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무슨 뜻 이냐 하면, 그릇에 비해 삶이 너무 커서 사방으로 넘쳐 나고  나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게 재단된 삶이라서 그 안에 너무 많은 것, 너무 많은 사건, 너무 많은 역경, 너무 많은 균열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말이다. (브로덱의 보고서, 51쪽)


누군가의 이별을 절절히 애통해 한다고 치자. 아니 애통이란 표현이 따라잡지 못하는 어떤 감정, 상실감...기존의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못하는 그 어떤 상태에 대해, " 3주일 동안, 줄곧 잠만 잤어. 문자 그대로 줄곳 잠만 잤어...라는 표현만큼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3주일 동안, 아버지는 줄곧 잠만 주무셨어, 과장해서하는 말이 아니야, 문자 그대로 줄곧 주무셨어, 어쩌다 생각난 듯이 침대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입에다 살짝 점 하나를 찍는 것처럼 음식을 조금만 드셨어. 몽유병자나 유령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 동안이고, 바로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무셨던 거야, 덧창까지 완전히 닫은, 혼탁한 공기가 꽉찬 캄캄한 방 안에서, 마치 주술에 걸린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깊이 잠들어 계셨어. 꿈쩍도 하지 않으셨던 거야, 뒤척이는 건 고사하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이야.(렉싱턴의 유령)


내게 소설은 그렇다.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 처지, 감정....등등에 적확한 말들을 찾아 주는 것, 문장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 표현들을 만나게 해 주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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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1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도 소설이 그래요, 테레사님. 저한테도 그걸 해줘요, 소설이.

테레사 2012-06-11 16:1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3년 전 오늘, 토요일이었고, 나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아마도 가수면과 수면 사이를 교묘히 오가고 있었을 게다. 나의 토요일은,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잠 속의 나와 잠 밖의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아마, 그 무엇때문이리라.

세상에는 이유를 안다는 것이 문제의 해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노 전대통령이란 호칭에 이어지는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노태우 전대통령을 지칭한다고 생각했다. 뭐 병원에 호송, 어쩌고 하는, 다시 깨어나, 사태를 파악한 것은 저녁 늦게였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나의 입밖에 나온 말은 이 말들이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허락하지 않아 시청 광장에 빈소가 설치되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례식과 노제때 시청광장은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도 그 속 한 점이 되어 앉아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나의 오른팔이 익어 거의 2도 화상에 가까운 물집이 잡혀 꽤나 오래 고생했다. 사람들은 많이 울었다. 내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그리고 나 자신도.


왜 울었냐고 누군가 마이크를 들이댔다면, 아마 나는 잘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과 이성이 늘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니까..그저 울었다.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살았을 때, 딱히 오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대통령이었던 한 사람,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지으며 살던 한 자연인....그가 그저 흔한 농부는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전직 대통령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가 오래오래 고향땅에서 농사지으며 잘 살길 바랐던 것 같다. 그가 지방에서 정치 비슷한 걸 하건 말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짓는 대통령을 우리도 한 명쯤은 가질 법하지 않은가.


그를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아프다. 

운명이다.하고 마지막 남겨놓았던 문장들 때문에.


세상을 버린 바로 그날이었던 오늘,

노무현, 정치적으로 항상 올바랐다고 말할 수 없지만,내가 그의 어떤 정책들에 반대했다고 하더라도, 왠지 그의 그 겸연쩍은 미소는, 촌스러운 말투는, 꾸미지 않은 그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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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주말동안 두권의 소설책을 읽었다.

브로덱의 보고서와 남자의 자리.


읽고 나서, 너무 가슴이 아려, 울었다, 아주 조금. 나란 사람은, 이제 깊이 울지는 못한다. 눈물은 어느덧 다른 사람의 것에 불과한 그 무엇이 되었다,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닌데.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보다,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찬찬히 바람이 불어왔다. 해가 진 것 같은데 여전히 햇빛이 길게 비추인다, 나를  너를, 그리고 그들을. 


좁은 산책로를 따라 좀 걸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가다,그 광경들과 마주쳤다. 3년 전 이 세상을 버린 한 사람, 그에 대한 추모전이 열리는 곳.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미공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단상이 있고, 또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누군가 추모사를 한다. 힘있고 조리있다. 나는, 만약 누군가 요청한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여기 모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인가...


그런 것일까?

평화시에 우리는 모두에게 친구가 될 수 있다. 허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너편과 우리편으로 나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천성이다.두려움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브로덱은 깨닫지. 두려움 앞에서, 내가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런 두려움앞에서 오히려 죽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 없진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도록 하자. 다만, 내가 그런 위기의 순간과 맞닥뜨리지 않도록, 인간이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그 무엇으로 상정해 놓은 어떤 것을,잃을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하자.하지만 이 생각을 하는 바로 이 순간,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을까하는.


나는 내가 여러 해 전부터 알던 그 모든 사람들이 방금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농부이고 장인이며 소작농, 산림감독, 하급공무원들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책 23쪽)


나, 자신이 없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생과 사가 한마디 말 혹은 하나의 몸짓,한순간의 선택에 의해, 결판나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과연,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그 무엇으로 상정해 놓은 그것을, 부여잡고 최후로도 놓지 않을, 자신이 사실은 없다.

에멜리아, 푸세트와 페도린 이 세여인들을 안고, 수레를 끌며 다시 먼길을 떠난 브로덱, 그가 과연 정착한 곳은 어디일까?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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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2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클로델 참 좋죠, 테레사님?
:)

테레사 2012-05-21 13:3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은 글이었어요. 회색영혼과 브로덱의 보고서 두개만 읽었지만. 다락방님 덕에 읽었어요^^. 고마워요.진심으로.
 

주말 동안 너무 피곤했다.

해서 좀 자려고 했는데 밤에 전화가 울린다. 미치겠다. 돌아누워 전화기를 던져버렸다.

엄마였다. 엄마가 세번, 세번짼 받았는데, 화가 났다.

아침부처 저녁까지 먼길 출퇴근에 피곤한 딸이 주말에 좀 자려는데 왠 전화질인지.하는 마음이 들었다(아, 난 막장녀인가?)

정말이지...딸의 입장은 눈꼽만큼도 생각안하는구나 싶어서, 혼자 있는 방에서 혼자 힘차게 욕을 했댔다(이상하게도 요 몇 년 사이 나는 혼자 욕하는 버릇이 들었다. 물론 대상자들이 절대 듣지 못하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욕들을 하는 것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미쳤나 싶었다. 나자신에게 화들짝 놀라기까지 했다. 내가 이런 상스런 욕을? 배운 내가? 이토록 예쁜(으히히히) 내가 이토록 무자비한 말을?무릇 모든 것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일단 물꼬를 트면,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께 욕을 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정말이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패륜이구나..패륜! 내가 왜이러지, 정말이지 미쳤나? 죽어야 할 때인가 하는...


하지만, 가끔 가끔은, 속에서 분출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인후 너머로 튀어 나와야 할 정도인 때가 있다. 핑계일 수 있으나, 나는 그렇게라도 해야, 감정이 정화되는 듯하다. 안그러면, 미칠 것 같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자식 부모 형제간에라도 되도록 나쁜 말은 직접 하지 않는게 좋다는, 뭐 사실 깨달음이랄 것도 없지만,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바 있다. 가족이니까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말은, 허구다. 누구든 뼈아픈 진실에는 상처를 받는다. 특히 자존심이 세거나, 고집이 센 사람은 더욱. 우리집 식구들의 특징은,  다혈질덩어리, 엄마와 아버지 유전자에 다혈질유전자가 왕창 새겨져 있다는 것.


어쨌거나, 타인앞에서는 최대한 예의바르고, 고상하고, 어여쁜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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