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그건 꿈이라고 발화되었던 적은 없었다. 허나, 꿈이라는 것이 막연히 언젠가 되고 싶은 어떤 상태,조건이라고 정의한다면, 나에겐 꿈임에 틀림없었다.
대학을 들어갔다. 아버지는 여성의 직업으로 교사만큼 좋은 게 없다며, 교사의 길을 권하셨지만, 나는 반항아였고, 단독자였으며 안하무인이었다.
문학을 하겠다며 깝죽대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4년 내내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당시 온 사회를 달구었던 학생운동에도 경계인으로만 서성였다.하지만, 늘상 내가 문학을 동경하고 문학을 하면서 살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추호도 그길에서 벗어나리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부를 안했으니,학점도 나쁘고, 교수들에게 심어준 선입견도 또한 나빴으리라. 문학을 평생으로 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나는 판에 박힌 그 길밖엔 몰랐다. 학교에 남거나, 등단하거나.
첫번째 시도, 학교에 남기 위해선 대학원을 가야 했고, 대학원을 가기 위해선 외국문학을 전공한(?) 만큼 외국에 나가야 겠다고 생각.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국내 대학원을 갈 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고, 학점이 나빴던 탓에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일단 전공외국어를 잘해야 자신이 생길 듯해서,유학을 가기로 정했던 거다. 사실, 이 역시 우연적인 한마디 때문에 결정하긴 했었다. 당시 내가 마음을 주고 친했던 과친구(여자)가 어느날 도서관에서 나랑 OO에 안갈래? 하였을 뿐 아니라, 걔 어머니가 너와 함께 간다면 안심하고 보내겠다 뭐 그런 격려에 마음이 동했던 바가 크다.
언어만 좀 배우고 자신감이 붙으면 돌아와야지 한 것이, 3년을 있었다. 나름 학위도 땄다. 지금생각하니 당시 그 나라는 너무 어지러운 정치상황으로 학위 관리도 그닥 믿을 만 한 게 못되었던 듯 싶다. 3년 동안의 갖은 고생! 정말이지 온갖 고생을 다 한 끝에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모교의 전임강사가 되었다.
고 한다면, 얼마나 인생이 쉬울까마는.
3년 이상 그 나라에 있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욕이었고, 공부에도 그닥 재미를 못느꼈으며 심지어 생각만큼 언어도 늘지 않았으니.
나의 인생을 바꿀 핑계가 되었다.
허약하고 나약한 나는, 결국 그 나라에서 산 3년간의 기간을 없었던 듯, 돌아왔고 마치 복수하듯, 전공과는 무관하게 내가 그 곳에서 딴 학위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겠다고 설쳤다.
복수마냥...!
하지만, 자신에게 복수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불행한 방식은 없을 것이다.
두번째 방법, 등단을 시도했던가?
했긴 했다....
올바른 문장을 쓰고, 보는 사람들에게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는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문장력이 있다는 말과,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았을지 모르나, 나는 노력하지 않았고, 노력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한겨레21 지난 호를 들춰보다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 소설을 썼다는 어느 문학상 수상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보았다. 아마도 그것 때문인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읽으면서 , 그 오래된 기억과 내 생애를 돌아보았다. 나에게 남은 것이 이제 무엇인가하고 생각해보았다. 그 꿈은 진짜 나의 꿈이었던가?
그것은 꿈이 아니라 동경이었던가?
존 치버의 소설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보다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예외로 한다)
물론 전작을 읽어보지 않고 이런 결론을 내린 다는 것은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허나 나는 전문적인 평론가가 아니고, 책임을 질 것은 나자신밖에 없는 일개 독자일 뿐이다.
치버의 소설의 미덕이라면, 보편성이 주는 위안과 동질성일 것이다. 지구위에 70억 인구가 있고,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지만, 삶의 본질은 같다는 것 말이다.
또한 아이러니를 뺄 수 없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빚는 어떤 모순된 상황이나 감정!
내친 김에 치버의 또다른 단편집 '기괴한 라디오"를 다시 펼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