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러가지 병 중에 가장 고질적인 게, 심각병이다.
나는 대체로 심각하다.
심각하니 무겁고, 무거우니 가라앉고, 가라앉아 있으니 허우적댄다.
일찍이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쿤데라의 해석에 동한 적도 있으나, 대충 무거운 것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그래 인생을 즐길 수가 없었던 거다.
이 말은 곧 인생이 즐길 만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인가?
뭐 그런 자문도 따라오지만, 어쨌건 이상하게도 나는 즐거운 사람은 아니었다. 즐겁게 사는 사람, 즐겁게 먹는 사람, 즐겁게 친교하는 사람, 즐겁게 글을 쓰는 사람, 이 내게는 참 이상하게도 거리가 느껴졌다.
본성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겠지만,
나도 가끔 인생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서 언제든 기회가 오면, 즐기고 싶다???
고 해놓고 보니, 뭔가 부도덕의 냄새, 방탕의 냄새가 풍긴다.하핫.
이게 나의 한계인가?
에리카 종을 읽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비행공포를 읽고 있다. 제목의 비행이 플라잉이 아니라 미스컨덕트인줄 알았다.
이 책은 수십년 전에 씌어졌지만, 현재성을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갖는다. 나는 주인공의 갈망이 시대를 초월한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사도라 처럼 살진 못할 것 같다. 나 역시 이곳을 떠나 멀리 비행하는 것이 두렵다.
이 비린내 나는 현실에 추호의 애정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걸 던져버리고 자유로워질 용기는, 슬프게도 없다. 해서 오늘, 나는 우울하다. 바람이 너무 지나치게 불어서 우울하고, 해가 비치지 않아서도 우울하고(이건 생물학적으로도 자명한 사실), 빨래가 간밤에 어딘가로 다 날라가버려 우울하고, 점심 직후인데도 자제하지 못하고 닭강정을 1인분 이상 먹어버린 것도 우울하고, 저녁에 야근해야 하는 것도 우울하고 듣고 싶은 강의를 못들어서도 우울하다. 두달 넘게 다니는 병원의 치료가 여전히 효과가 안보여서도 우울하고,
대체로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