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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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끌며 헤어지는 것은 독약이다. 단칼에 자르고 인간 본연의 상태대로 외로움 속에 홀로 남는 것이 차라리 낫다. 하지만 그날 새벽 빗속에서 나는 친구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불행히도 아주 늦게야 그 까닭을 깨달았다.) 나는 그와 함께 배에 올라 그의 선실로 가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방들 사이에 앉았다. 나는 그가 딴 곳을 보는 동안 마치 그의 특징을 하나하나 모두 확인하려는 듯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와, 둥글고 젊은 그의 얼굴과 자신감에 넘치는 고매한 표정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족적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고집스럽게 찬찬히 뜯어보았다.


한순간 친구는 자신을 빨아들이듯 훑어보는 내 눈길을 의식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감정을 감출 때 흔히 하듯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내게 몸을 돌렸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고 나서 친구는 금방 눈치를 채고는 이별의 슬픔을 떨쳐내기 위해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야?"

"언제까지라니?”

"언제까지 종이에 파묻혀 잉크를 뒤집어쓰고 지낼 참이냐고? 나와 함께 떠나자. 캅카스'에는 수많은 우리 동포가 위험에 처해 있어. 같이 가서 그들을 구하자."


그는 자신의 드높은 이상을 비웃으려는 듯이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구할 수 없을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가 구원받을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않나? 나의 선생이시여, 그건 선생의 주장 아니었던가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투쟁하는 거'라고. 자, 그런 걸 가르치셨으니, 선생, 같이 갑시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성스러운 곳, 신을 낳은 동쪽의 높은 산들, 바위에 못 박힌 프로메테우스의 외침..그 시절 몇 년 동안이나 같은 바위에 못 박힌 동포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민족이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자신의 아들 한 명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고통이 꿈이라는 듯이, 그리고 삶이란 현존하는 비극이라는 듯이, 그리고 망루에서 뛰어내려 무대 위로 오르는 것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지극히 촌스럽고 순진한 것이라는 듯이 꼼짝도 않고 듣기만 했다.

친구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일어섰다. 배는 벌써 세 번째 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잘 있어, 이 책 벌레야"

그가 감정을 숨기기 위해 빈정거리며 말했다.



별 뚜렷한 이유 없이, 책꽂이에서 근 십년은 케케묵고 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조르바, 조르바, 조르바...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던 그 추상적 인격에 드디어 '물성'이 더해지려는 순간이다.
귀동냥으론 뭐가 엄청나게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던데...

반 정도 읽은 지금, 나는 처음부터 '바실'에 끌렸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위대함'을 알아본 닉 캐러웨이처럼,
바실은 첫눈에 조르바의 위대함을 알아본다.

조르바를 한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도자기 만들려다 손가락이 걸리적거린다고 그걸 잘라 버리는 노인네에게서
순수와 열정과 자유를 끌어다 담은 '위버멘시'함을 알아볼 이가 흔할까 말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35세의, 돈 좀 있는 '먹물'이다.
책으로만 머리를 키운 이론형 지식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 '먹물형 인간'이 '초인형 인간'을 만나서 일정 기간 동행하는
로드 픽션이다. 

바실은 있던 곳을 떠난다.
모든 '발견'과 '성장'은 이 '떠남'에서 비롯된다.
하긴, 어딘가로 떠나지 않는 소설 속 인물이 어딨던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못 잡다가 85일째 다른 바다로 나간다.
같은 멕시코 만류지만, '좀 더 멀리' 나간다. 그것도 역시, 새로운 '떠남'이다.

어린왕자는 화산을 청소하고 자신의 별을 떠난다.
'남아 있는 나날'의 집사 스티븐스는 주인이 바뀌면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저택을 나와 주인이 빌려준 포드 차에 오른다.

많이들 떠난다. 소설 속 인물은. 
하다못해, 한 뼘 고시원 방 안에서도 '떠남'은 이루어진다.
정적인 떠남도 있는 법이다.

동포를 구한다는 소명을 스스로 뒤집어 쓰고 바실의 친구는 떠난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바실은 선 곳에 그대로 철벽같이 발 고이고 서 있다.
35년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바실은 그러다 급기야 '떠남'을 단행한다.
그날, 친구가 한  이 말 때문이다. 

"잘 있어, 이 책벌레야."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긴 파행적 서브텍스트.

"언제까지 그렇게 '있기'만 할래. 이 머리만 자라는 안타까운 먹물아."

이건, 호명이다. 숙명적 에피파니를 담보한, 호명.

누구야.

누가 누구를 부르는 호명 행위. 
우리는 호명 속에서, 호명하는 이에 의해, 자의적으로 정의된 개념에다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맞추게 마련이다.

엄마, 아빠,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00아, 아저씨, 아줌마, 
언니, 오빠, 형, 매형, 자형, 매부, 처제, 처형,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사장님, 부장님, 대리님...

하다못해, 저기요...
누가 나를 '저기요'라고 부르면 나는 '저기요'가 된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그렇다.

호명된 이름은 그래서 '굴레'다. 
자유롭게 광활한 대지를 활보하던 우리 영혼은 호명이 일어나는 찰나적 순간,
대번에 사지를 붙들리고 결박당한다.

굴레를 끊어낼 방법은, 다행히, 있다.
호명되는 순간, 딱 한 사람 들어가 찰 만한 그 공간 속에 누각되는
콘텍스트와 서브텍스트를 잘 읽어내면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바실처럼.

"잘 있어, 이 책벌레야."

이걸 이렇게 읽어내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기'만 할래. 이 머리만 자라는 안타까운 먹물아."

그래서 우리를 호명하는 이는 우리에게 누구든 스승이다.
우리를 호명하는 사람과 그 소리를 홀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아직, 끝까지 완독하지 않았지만 아마 바실은 이루어낼 거다.
적어도, 카잔차키스가 그리도 천착했다는 니체의 '위버멘시' 인간이 되는, 
시작은 해 낼 거다. 

조르바는 바실에게 스승이 아니다. 
스승은 한 과목 전담이다.
조르바는 전 과목에 능숙하다.
그래서, 그는 학교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래서, 교과서다.

왜 전 국민이 다 읽는 줄 알겠다.
왜 그리도 조르바, 조르바 하는 지 알 것 같다.
명실공히, 명문학교다.

제1교시/순수를 지키는 법
제2교시/내 의지로 선택하는 법
제3교시/자유인이 되는 법
제4교시/열심과 열정을 구분하는 법

크레타 섬 한 귀퉁이에서 점심

제5교시/지중해 바다에서 헤엄치며 체육
제6교시/몸을 정신 아래에 둘지 않는 법
제6교시/선악을 구별해 둘 다 끌어안는 법
제7교시/천국에 집착하지 않고 구원 받는 법
제8교시/성교육 특강(부제:뜨겁고 자유롭되 그것의 노예는 되지 않는 성)

과목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야간학습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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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1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을 때, 조르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내용도, 조르바라는 사람도요.
지금보다 훨씬 맘이 경직되어 있은 듯 해요.
요즘 재독하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난 지금 어디쯤 있는가를 알고 싶은 맘 때문예요^^

젤소민아 2024-10-17 00:31   좋아요 1 | URL
완전 공감요, 페넬로페님! 소설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뭐든...예술은 ‘재체험‘같아요. 예술작품을 처음 대할 때는 그야말로 첫대면인데...껍질만 본 거 아닐까 싶어요. 재독, 삼독, 사독할 때마다 떠오르는 새로운 발견~~.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작가는 그렇게, 독자의 ‘재독‘에도 그런 발견의 기쁨을 줄기차게 줄 수 있는 작가죠~~. 그게 ‘난해함‘과 ‘복잡함‘과는 분명 다른 개념이겠지만요.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짧고 여백적인데도 재독이 말할 수 없이 즐겁거든요.

저도 난 페넬로페님처럼 재독하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요.
다음에 읽을 땐 지금의 내 자리를 기억할 수 있길~그러려면 독서로그나 녹음이라도 남겨놓을까봐요~ㅎㅎ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10-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부터 내 반드시 <조르바>를
완독하리라 생각하고 이 책 저 책
잇달아 읽다말다를 거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열린책들 번역은 조금 거시기하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르바 아재랑
화자가 불가에 앉아서 밤을 구워 먹
었나 하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아마 틀릴 수도 있구요...

아마 영화에서는 앤소니 퀸이 조르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하구요.

젤소민아 2024-10-18 21:58   좋아요 1 | URL
‘열린책들‘은 이윤기님이 하셨죠. 영어중역본으로 알아요. 유재원님 번역을 일부러 고른 건 그리스어 원전 최초 번역이라! 지금 두 권 다 갖고 있고 완독했기에 처음부터 번역을 비교하며 보고 있어요. 열린책들 버전은 바실(나)이 소설 속에서 조르바의 회고담을 ‘쓰는‘ 동기를 밝힌 ‘프롤로그‘가 아예 빠져있어요. 이건 너무나 큰 손실이죠!

첫페이지에 열린책들은 바실이 ‘샐비어 술‘을 마신다고 되어 있고, 유재원님 번역서에는 ‘세이지 차‘를 마신다고 되어 있어요.

첫 대목에 등장하는 ‘장소‘도 ‘카페‘예요. 두 버전 모두. 그럼 ‘선술집‘이 아니라 ‘카페‘인 모양인데..때는 동트기 직전. 그런데 느닷없이 ‘샐비어 술‘이라뇨..?
카페에서 술을 팔지도 않을 뿐더라 동트기 직전에 웬 술..

뿐만 아니라 ‘세이지 차‘는 이 엄청난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를 절묘하게 담아낸 메타포거든요. 화자인 바실의 ‘행동이 결여된 지적 한계‘에 조르바를 통한 ‘행동‘과 ‘열정‘이 더해지는 ‘영혼일지‘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서두에 바실이 세이지 차를 마시는 장면은 아주 중요하죠.
세이지 차는 ‘바실의 그런 한계점을 드러내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니까요.
‘술‘을 마신다면 그런 이미지를 돋우기 어렵고요.
술이야말로 ‘열정‘ 아닌가요? ㅎㅎ

아무튼 ‘조르바‘를 완독한 지금, 솔직히 제 영혼이 1cm는 채워진 느낌이 듭니다.
왜 명작인지 알겠어요. 마지막 장에서 눈물 났어요. 조르바가 죽어서(앗, 스포?) 슬퍼서가 아니라 뭔가 ‘완성‘된 느낌에요~. 그렇게 늙는 거, 죽는 거 싫어하던 조르바가 급기야 다 이루어 낸 것 같아 좋아요~완독 리뷰 곧 쓸게요~

전야제 2024-11-07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젤소민아님도 넘넘 축하드립니다! 이번 기회에 이렇게 글 잘 쓰시는 분을 알게 되서 넘 기뻐요ㅎㅎ 그리스인 조르바 안 읽었는데 반드시 읽어야겠어요. 서평을 생생하고 유쾌하게 쓰셔서 저는 책보다 이 글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 좋은 글 읽으러 자주 방문할게요!!

젤소민아 2024-11-07 02:31   좋아요 1 | URL
과찬이십니다~. 저도 전야제님 서재에 ‘단골‘할게요~~. 전야제님도 이달의당선작, 축하드려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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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를 이제 와 읽는 것은 전적으로 내 손해가 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것은 제게도 큰 영광입니다. 한국문학을 우리 스스로 다시 보게 해주셔서, 그게 제일 고맙습니다. 아, 노벨문학상을 원서로 읽을 수 있게 해주신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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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0-17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집을 원서로 읽으려고 구매하려 합니다. 영어의 번역본 읽을 때 문맥이 맞지 않을 때면 오역인가 싶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원서로 읽는 게 어찌나 부러웠던지요... 이제 우리가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 감사!, 감사한 일이지요.

젤소민아 2024-10-17 21:0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늘 궁금한 건, 한글로 옮겨지면 텍스트 분량이 1.5배는 늘어나는 듯해요. 원서가 턱없이 얄팍한데 놀라곤 합니다. 한글의 영어본을 읽을 때 우리가 좀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고요. 한강처럼 유려한 문장과 단어 사용이 자유로운 작가의 글이 그 본질 그대로 옮겨지기보다 ‘의미전달‘에 무게 중심이 실릴 때가 많거든요. 데보라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영어본만 하더라도 뭐, 그건 여실히 증명되고요. 그러니 한강 작가의 작품을 원서로...더구나 시! 감사한 일입니다!
 
비곗덩어리 클래식 라이브러리 13
기 드 모파상 지음, 임희근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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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예쁜 거, 얇은 거, 있는 거 말고, 체호프의 중단편을 한군데 모아달란 말입니다~~. 체호프는 꼭 읽어야 하는데 낱권으로 사모으다 날 새고 돈 새고. 여기 있는 작품, 저기에도 있고. 부디, 누가, 좀, 체호프 중단편 좀 싹 모아주세요! 절할게요! 참고로 체호프 단편은 약 5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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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꽃 2024-10-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해요. 예전에 열린책들 판본으로 하나 갖고 있는데 요즘 많이나오는 것들은 책들끼리 중복되는 게 너무 많아요. 희곡은 전작 모음이 언젠가 출판된 적 있는데 소설은 방대한 양에, 전집 형태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어렵겠죠.

2024-10-11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라마 - 그럼에도 친구가 되는 여자들
서한나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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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숨어서, 이 사람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야지, 하고 맘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들 알아서 살 것 같은 책 말고. 내겐 그 사람이 서한나, 이다. 그(녀)에 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누가 지적하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하는 애들]이란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건 안다. 서한나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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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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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포스팅에서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드물다'의 번역 오류를

몇 개 짚었다.


원서와 번역서를 같이 놓고 읽기로 했다.


오늘 발견한 오류는 좀 심각한 수준이다.

'서사'를 건드리는 정도라서.


June Star said play something she could tap to so the children’s mother put in another dime and played a fast number and June Star stepped out onto the dance floor and did her tap routine. “Ain’t she cute?” Red Sam’s wife said, leaning over the counter. “Would you like to come be my little girl?” “No I certainly wouldn’t,” June Star said. “I wouldn’t live in a broken-down place like this for a minion bucks!” and she ran back to the table. “Ain’t she cute?” the woman repeated, stretching her mouth politely. “Arn’t you ashamed?” hissed the grandmother.


출판사 번역문/

준 스타가 탭댄스를 출 수 있는 음악을 틀어 달라고 하자, 아이들 엄마는 다시 동전을 넣어 빠른 곳을 틀었고, 준 스타는 댄스 플로어로 나가서 탭댄스를 추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내 딸 안 할래?" 레드 새미의 아내가 카운터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절대 안 돼요," 준 스타가 말했다.

"백만 달러를 줘도 이렇게 낡은 집에서는 안 살아요!" 그리고 아이는 다시 테이블로 뛰어갔다.

"정말 귀여워," 여자가 예의 바르게 입을 잡아 늘이며 다시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할머니가 나직하게 화를 냈다.

(169p)


번역의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것이다.


1. 번역자가 단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2. 번역자가 맥락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떄


이 번역의 오류는 2번이다.


원문에서 어려운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류가 났다.

번역자가 'context'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맥락은 이해하지 못하기가 힘들다.

단순히, 맥락을 따져보면 될 일이었다.


레드 새미의 아내는 뭘 잘못한 게 없다.

춤추는 아이더러 귀엽다고 한 것밖에.

하도 귀여워 "내 딸 안 할래?"하고 물은 거 밖에.


그런데 할머니가 "부끄러운 아세요."하는 역정을 듣는....다?


이걸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은 독자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번역을 믿고, 출판사(굴지의 출판사니까)를 믿고 넘어갔을 것이다.

설마...


대개, 이런 큰 출판사는 외서 담당자가 있어서 번역문을 오는대로 

출간하지 않는다. 꼼꼼한 감수를 거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평이한 문장의 이런 심각한 오류를 그냥 넘겼고,

이제까지 이에 대한 클레임이나 지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 독자들은 플래너리 오코너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데..


뭐,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어 놓은 건 아니다.

한 장면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단편에서 이 정도는 큰 비중 아닐지...


어떻게 오류가 난 건지 보자.


 “I wouldn’t live in a broken-down place like this for a minion bucks!” and she ran back to the table. “Ain’t she cute?” the woman repeated, stretching her mouth politely. “Arn’t you ashamed?” hissed the grandmother.


바로, 이 부분이다.


아이가 귀여워 딸 삼고 싶다는 식당 주인 아내에게

아이가 이런 낡은 집에서는 안 산다고 버릇없이 구는 장면이다.


식당 여자는 아이의 버르장머리 없는 반응에도

'예의바르게' 억지 미소를 짓는다(stretching her mouth politely)


그러자 할머니가 아이를 나무란다.

"(버릇없이 굴다니) 부끄럽지도 않니?"


그런데 출판사 번역은?


"백만 달러를 줘도 이렇게 낡은 집에서는 안 살아요!" 

그리고 아이는 다시 테이블로 뛰어갔다.

"정말 귀여워," 여자가 예의 바르게 입을 잡아 늘이며 다시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할머니가 나직하게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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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예의 바르게 입을 잡아 늘이며

(아이의 입을 늘이는 것으로 오독 가능성...대체 예 의바르게 남의 집 아이 입을 잡아 늘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할머니가 나직하게 화를 냈다.

(졸지에 할머니가 식당 여자에게 화내고 있음)


지금 원서와 같이 읽고 있으니,

오역이 보이는 대로 여기다 정리할 참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를 제대로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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