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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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일린은 잘 만들어진 캐릭터다. 소설 작법 책의 캐릭터 챕터에서 다룰 만한 인물이다.

동정도 가고 연민도 간다. 동시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선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나 당장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빨리 벗어나라고, 혹은 당장 그만두고 네 인생을 살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이 작품은 캐릭터 소설이면서 (약간 다른 의미의) 성장 소설로 읽힌다.

 

아일린은 시한폭탄 같은 인물이다. 이 소설이 갖는 재미와 매력의 80퍼센트는 모두 이 인물에게서 비롯된다. 작가는 아일린이란 인물을 도구로 독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데, 이 인물을 무척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인물에게서 비롯된 긴장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반이 지나도록 작품의 긴장은 유지된다. 중반을 지나며 매력적인 리베카란 인물이 등장하고 아일린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이는 게 다일 것 같지 않은 리베카는 어느새 아일린의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존재로 부각하고 이야기 저변에 흐르던 서스펜스가 서서히 증폭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 거다. 그러다 거의 막바지에 어떤 사건이 빵! 터지는데 그 충격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리베카의 무분별한 행동은 충격적이나 딱히 마땅한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래야 했을까. 별다른 이유 없이 작가는 중요한 패를 리베카에게 넘김으로써 아일린을 한낱 꼭두각시 조연으로 추락시킨다. 이어지는 결말은 맥이 빠진다. 가능한 결말 같지도 않고 다소 억지스럽다.

 

아일린이 이런 인물이었나 의심이 든다. 리베카의 영향력 아래에서도 아일린은 주체적인 인물이었다. 아일린이 맞는 결말은 그 자체로서는 괜찮다. 하지만 그런 결말에 이르게 되는 과정엔 동의할 수 없다. 아일린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지킬 능력이 있는 인물이어 왔다.

 

클라이맥스가 좀 과하단 생각이 든다. 아일린은 어쨌든 추락할 운명이었다. 그 과정을 유려하게 그리며 인간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리베카가 주도한 사건이 지나치게 튄다. 대상보다 배경이 두드러지는 그림 같다. 배경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정작 그림의 주인공은 배경에 스며들고 만다. 이는 구조의 문제처럼 보인다. 강약 조절에 실패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독특한 인물을 창조하고 성격을 서서히 드러내며 오직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긴장을 부여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리고 작품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 하나. 삶이 올바른, 적어도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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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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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그다지 보수적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고, 스스로도 사랑에 개방적인 터라 어떤 연애 도, 그것이 제 아무리 파격적이라고 해도 긍정하고 인정할 수 있다고 자부하지만, 유독 반감이 드는 형태가 있는데, 그건 바로 불륜’, 혼외의 사랑이다.

 

이 짧은 소설은 재훈과 유부녀 매기의 사랑을 그린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연인이었지만 그 사랑은 콜라 김 빠지듯 싱겁게 끝났다. 그리고 한참 후에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매기는 여자의 본명이 아니다. 재훈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본명은 숨겨지지만 정체까지 미궁인 건 아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직 독신인 재훈과 어엿한 남편을 둔 매기의 사랑 역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재훈은 이야기 초반에 둘의 관계가 무해하다고 선을 긋는다. 무해하다고? 정말로 그럴까.

 

좀 더 나가보자. 두 사람의 문제는 사랑을 하네, 마네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가장 선두에 있는 문제는 두 사람에게 서로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이다.

사랑할 자격이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할 수도 있겠으나, 매기에게는 엄연히 남편이 있다. 작가는 작품 내내 매기의 남편을 소외시킨다. 나오기는커녕 언급도 별로 없다. 맨 마지막에 가서야 잠깐 모습을 보이는데 큰 의미가 있는 등장은 아니다.

소설 속 당사자인 두 사람은 물론이고 작가 역시 그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을 외면한다. 피를 흘리는 피해자가 있는데 그저 이대로 괜찮은 건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라면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건 그렇고. 두 사람은 정말 사랑한 걸까.

 

비겁하고 기만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작가의 매혹적인 문장들에도 섣불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재훈은 자신들의 관계와 감정을 내내 미화하고 합리화 한다. 재훈의 시점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다. 외부의 시선이라면, 전혀 상관없는 화자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작품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렇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쳐도,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말은 필연적이다. 그런 끝 외에 어떤 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설픈 사랑은 막 나가지도 않고 불륜의 경계 안에 안전히 머문다. 실패는 이미 잠정되어 있다. 끝이 뻔한 이야기엔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은 설득하느라 바쁘다. 초반에 마음에 이미 철벽을 친 나 같은 독자는 마음의 빗장을 풀지 못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독자로서 고민하게 된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작가는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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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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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커다란 모자이크 화() 같다. 영화로 말하자면 몽타주(montage)로만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몇 명의 중심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주변에 많은 인물들이 등퇴장을 반복한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하는데 그걸로 서사화 시키지 않는다. 단발성 에피소드로 끝나는가 싶지만 그건 또 아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든다. 지류들이 모여 강을 이루는 식이다. 그래서 줄거리를 소개하는 게 쉽지 않다.

 

일반의 소설 독자들에게 익숙한 소설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한 명, 혹은 다수의 주인공이 나와 그, 혹은 그들이 겪는 문제를 제시하고 사건을 진행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결말을 맺는, 그런 소설의 모양새에 편안함과 재미를 느끼는 나 같은 독자에겐 다소 괴상하고 어렵고 지루해 보인다.

 

물론 기---, 혹은 시작-중간-끝이라는 구조가 보이기는 하다. 독재 치하의 정치적 혼란과 위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것이 무너지고 공포가 일단락되면서 끝을 맺는다. 그 끝이 진정한 끝인지, 아니면 새로운 혼란과 공포를 위한 휴지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문장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사실적인 설명과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문장을 남발한다. 전위적이다. 작품 전체가 시 같다.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작품이 주는 이미지는 다다이즘(dadaism),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 같다. 화가들이 참혹한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무의식과 꿈을 화폭에 그려낸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현실을 뒤틀고 환상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묘사함으로서 부조리와 공포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작가는 루마니아 계로 독일의 소수민족 출신이다. 독일의 패전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들이 겪었을 폭압이 끝나는가 싶지만, 새로이 들어선 독재 정권으로 고난은 이어진다. 이런 역사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 자국과 민족의 역사에 천착해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한 작품들을 주로 써온 작가는 200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내가 읽은 작가의 첫 작품이고 읽는 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학을 뗄정도는 아니었으니, 다른 작품을 읽으라면 당장 내키지는 않겠지만, 몇 개월 후쯤엔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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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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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가족 내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작별 선물>은 임팩트가 꽤 세다. 딜레마에 빠진 피해자와 가해자, 동조자, 방관자 모두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배치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당신으로 지칭함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녀 자신이 되어 보라 종용하며, 이런 고통을 당신이라면 견딜 수 있는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묻는다. 호소력이 상당하다. 단순한 장면이면서도 모호하게 처리한 결말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듯 보인다.

 

<푸른 들판을 걷다>의 주인공인 사제도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사제인 동시에 보통의 욕구를 지닌 남자다. 그는 둘 다다. 둘 중 하나만일 수는 없는(38)’ 인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얼룩이 묻기 쉬운 흰 옷(45)’을 입은 사제로 본다. 사제의 사생활을 목격했으면서도 그 일을 일절 화제 삼지 않는 브린 양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제에 대한 작가의 대접은 앞에 실린 작별 인사의 주인공보다 박하다. 신비로운 중국인으로부터 치유를 받지만 그와의 소통은 불가하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라틴어를 판독하는(64) 게 고작이다. 하느님은 자연(64)이므로 사제는 그냥 남기로 한다.

 

<물가 가까이>의 주인공도 사제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몸 상태(출생 이전, 삶의 시작)에서 내린 그의 선택은 회상으로 잠깐 나오는 할머니의 삶과 대구를 이룬다. 할머니가 앎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가부장의 지붕 아래로 돌아갔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관습을 따른다. 주인공은 위험과 불확실함뿐인 물 너머보다 비교적 탄탄한 현실이 약속된 물 가까이머무르기로 결정한다.

 

<삼림 관리인의 딸>은 중편 길이의 분량에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 크고 작은 사건들, 복선과 그의 회수, 서사의 진행에 따른 고조되는 감정 등, 비교적 완벽한 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반면 의미를 알 없는 엔딩은 다소 안일해 보이고, ‘디건을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엔딩의 화재장면은 클리셰 같아 좋게 보이질 않는다. <어셔 가의 몰락>이나 레베카, 제인 에어등의 엔딩은 이라는 배경이 인물 못지않은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이 있었으므로 저택이 불 타는 장면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지만, 이 작품의 엔딩은 과연 필요했을까생각하게 된다.

 

<퀴큰 나무 숲의 밤>은 우리의 선녀와 나뭇꾼설화를 생각나게 한다. 미신적 요소, 신화의 특징을 접목한 신비로운 분위기, 서로 다른 듯, 닮은 마거릿스택의 성격 등으로, 이 책 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두 인물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명징한 편이었다. 마거릿은 안전과 자유를 찾아 떠난다. 스택은 아내의 선택을 존중한다. 홀로 남은 스택의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검은 말><굴복>은 짧은 소품, 내지는 긴 장편의 도입부처럼 읽힌다. 이야기랄 것도 없다. 그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며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설정 자체가 작품인 셈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모양새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성격, 배경, 분위기 등을 경제적으로 묘사하는 솜씨가 무척 좋았다. 진중하면서도 너무 무게를 잡지 않는 톤(tone)이 좋았다. 일상적인, 동시에 적당히 무게감 있는 분위기라고 할까. 그런 균형이 좋았던 것 같다. 질질 끌려다니거나 물고 늘어지는 감정이 없어서 좋았다. 작가와 작품 사이에 충분한 거리가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이야기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작가가 좋았다. 구차하게 설명을 붙이고 덧붙이지 않는 담백함이 돋보였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이야기가 풍부하다고 할 만하다.

 

시골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이 책보다 먼저 소개된 두 작품 맡겨진 소녀이처럼 사소한 것들역시 농촌(혹은 소도시)을 배경으로 했다. 보다 앞서 읽은 에드나 오브라이언시골 소녀들도 그랬는데, 아일랜드 작가들의 특기인가, 싶기도 하다. 편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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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스 지음, 이은선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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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게으른데다 의지도 없는데 눈만 있는 대로 높아진 한량의 범죄 이야기다.

이렇게 적으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 같은데, 주인공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그 양상이 좀 복잡하다.

 

일단 주인공인 딕스는 과거의 참전 용사였다. 군인의 신분으로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군대로부터 방출을 당하자 어쩔 줄 모른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에 적응하기에 실패한다. 우왕좌왕하던 시기에 사랑하던 여자한테서 배반을 당하고 여성 혐오까지 생겼다. 딕스의 장점은 얼굴 반반한 것밖에는 없다. 몸을 움직여 돈을 벌고 싶지는 않고, 부자 삼촌에게 경제력을 의지한다. 부자 행세도 점점 어려워진데다 가난하고 야심이 큰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딕스의 가장 큰 동기는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다.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생활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부자 삼촌도 조카의 거짓을 꿰뚫어보고 돈줄을 틀어쥔다.

더 나쁜 건 이 남자가 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지닌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묻지마 범행식의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딕스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초반에 드러난다. 그래서 범죄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단서를 수집하고 범인을 좇는 일반 미스터리의 플롯 대신 작가는 범죄자의 심리에 집중한다. 살인범이면서도 열렬한 구애자인, 아이러니로 가득한 남자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읽고 있으면 딕스에 대해 연민과 혐오가 동시에 일어난다. 주인공을 미워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감정은 이 작품의 묘미이다.

서스펜스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인상적인데, 살인 장면을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시커멓기 짝이 없는 내면의 심연을 냉정하고 무심한 듯 묘사하는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미국의 하드보일드(Hard-boiled)’ 장르에 여성 작가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도로시 B. 휴즈의 존재는 독보적이라고 한다. 10년가량의 집필 기간 동안 굵직굵직한 걸작들을 많이 써냈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은 이 책이 유일하다).

이 작품이 출판된 시기가 1947년임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얼마나 선구적인 작품이었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딕스란 인물 자체도 그렇지만 특히 그의 범죄는 오늘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혐오 범죄들을 연상시킨다.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악행은 시대를 불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의 피(살인)에 대한 욕구는 근대에 이르러 느닷없이 생긴 게 아니라, 고대인들의 사냥 본능, 자기 보호 본능에서 진화한 것 따름이라는 진화학자, 범죄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신뢰가 간다.

 

앞서 발표된 ‘F. 스캇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살짝 비튼 범죄 버전이랄까. 그리고 이후에 나온 다른 작가의 소설들에 끼친 영향력도 보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딕스 스틸은 죽음 전의 키스(Kiss before Dying, by Ira Levin, 53버드’, <리플리 시리즈, by Patricia Highsmith>톰 리플리’, 끝없는 밤(Endless Night, by Agatha Christie, 67)마이클등의 전신이다.

 

니콜라스 레이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50)도 있는데,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딕스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이 영화 또한 느와르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별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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