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 의심 많은 심리학자 최승원의
최승원 지음 / 책사람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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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한 번째 책.

 

★★★☆

 

믿음은 고민을 종결시키고 정신의 평화를 가져온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어떤 법칙이 내 마음에 든다면 오래 간직하며 삶에 적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망각하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믿음이 자칫 우리의 인생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만의 신념이든 대다수의 믿음이든,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창피하고 억울한 일이다. (작가의 말, 217)

 

상술과 마케팅, 어쩌면 미디어의 호들갑에 동원된 심리학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과거 심리학 연구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책이다. 학술적 진실을 증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실시된 여러 심리학 실험들도 다양하게 소개되어 신빙성을 높인다. 심리학자이면서 현역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는 속시원하게 폭로도 하고 차근차근 설명하기도, 오해로 인한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실험의 오류와 결과의 과장으로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모짜르트 효과’, 타인을 판단하고 폭력과 차별의 근거가 되고 만 유사 심리학 ‘MBTI 성격유형’, 복지 국가와 자살률의 상관관계, ‘마시멜로 실험의 오류, 과장된 웃음 치료의 효과 등의 내용이 재미있었다.

 

경제적 약자들이 왜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시스템 정당화 이론을 들어 그 행동을 분석할 땐 소름이 돋았다. 매 선거 때마다 갖곤 했던 불가사의였는데 그 저변의 심리를 명쾌하게 들려준다.

한때 트렌드의 키워드였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아닌 단순한 소비 형태로 어떻게 와전됐는지, 주식이나 도박에서 왜 이익을 얻는 사람들보다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지, 홈쇼핑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호감을 이끌어내기 앞서 자신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해서 친근하면서도 귀기울일 만한 조언들이다.

 

책의 후반부엔 자폐 스펙트럼, ADHD,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의 정신병리학에 관한 세간에 널리 퍼진 오해들을 바로잡는다. 저자는 정신과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15)’를 설명하며 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경계할 것을 촉구한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 균형을 맞춘다는 것(11)’이란 말에서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심리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복한 개인올바른 사회를 지향한다. 주요 골자만 적고 있어 얇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심리학 도서보다 현재의 한국 사회를 진지하게 탐구한 저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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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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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 번째 책.

 

★★★

 

전직 교사인 가 고향인 안힐로 돌아온다. 이유가 있다.

우선 도박 빚. 조가 있는 곳은 채권자에게 금방 발각된다. 조는 이 돈을 동창 스티븐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부자에 깡패, 재수 없는 스티븐을 옭아매고 돈을 우려낼 강력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과거에 여동생 애니에게 일어난 비극. 아마 조가 쥐고 있는 스티븐의 약점이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고향으로 불러들인 문자메시지, 최근 고향에서 일어난 살인+자살 사건도 과거 여동생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모든 의문이 과거, 폐광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동생 애니를 향하고 있다.

 

우선 장점.

이야기는 미스터리+스릴러+호러+하드보일드(hard-boiled) 등의 장르적인 성격을 두루 갖췄다. 그럭저럭 모양새는 잘 갖췄다.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는 별명에 큰 반감은 없다. 여러 요소들이 적절하게 치고 빠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폐쇄된 탄광이란 공간은 호러의 좋은 효과를 낸다. 얼핏 스티븐 킹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연상하게 만들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은 ‘W. W. 제이콥스의 유명한 단편 <원숭이 손>이나 여러 좀비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 범죄와 비밀이라는 미스터리가 추가되는데 크게 어색하지 않다.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주인공, 조는 필립 말로우샘 스페이드의 매력을 답습한다. 주변에 배치된 서로 차별화된 성격의 세 여자들(베스, 글로리아, 마리), 티격태격 유쾌하고 잘 짜인 대화 역시 하드보일드의 유산으로 보인다.

썩은 세력가의 전형인 스티븐 역시 잘 만든 악역이다. 지역 공동체의 정계, 재계, 학계 등을 손아귀에 쥐고 제멋대로 놀린다. 이 사람의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절대 선하지 않다. 여기에 주인공과는 여자 문제도 얽힌다.

 

무대와 인물 셋팅. 소설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한 듯 싶다. 이럼 된 건가?

이야기는 결말을 향하면서 정연함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장 큰 단점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야기에 푹 빠지는 데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겹겹의 압박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대개 일치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짝 어긋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동력은 애니라는 인물에게서 나오는데, 그에 관해 주인공이 하려는 일이 대체로 모호하다. 작가는 애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여주길 거의 최후까지 미룬다. 그 덕에 주인공의 모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그저 방관하게 된다. 잘 만든 음식 모형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위해, 무엇보다 독자의 호기심을 붙들기 위해, 특히 미스터리 장르라면 작가는 숨기는 것에 능해야 하지만 그것에도 완급은 필요하다. 미스터리 장르는 지문을 확대한 사진만으로 인체를 알아맞히는 게임과 비슷하다. 당근 냄새도 못 맡은 말이 달릴 이유가 없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사실을 거의 막판에서야 보여준다. 지반이 약한 땅에 지은 사상누각처럼 보인다. 조가 원하는 게 복수인지 비밀을 풀기인지 저주를 막는 것인지 모호하다. 결국 셋 다인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뭔가 강력한 깃발이 있어야 한다. 나머지는 부수적이 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뭔가를 열심히 하기만 한다. 그러다 결말에 가서야 사실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그리고 허겁지겁 엔딩. 감정이 요동치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다가 서서히 가라앉는 정서적 묘미가 생길 여유가 없다. 그냥 폭주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작가가 결말에 터뜨리는 사실들이 모두 중요한 것도 아니다. 독자들이 몰라도 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에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트리비아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대단한 비밀인 양 폭로한다. 도대체 팻맨의 정체를 궁금해 했던 독자가 과연 있을까.

 

감히 넘겨짚는 말이지만, 작가가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데 아직 완성된 재능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얼개는 엉성해 보인다. 후반으로 갈수록 말이 안 되는 설정들이 눈에 띈다. 속도감이 갑자기 떨어지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중반까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더랬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심이 모자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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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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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6년 쉰아홉 번째 책.

 

★★★

 

여섯 살 딸, ‘제니가 사라졌다. 유괴로 짐작된다.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지만 어느새 미제 사건이 된다. 그리고 12년 후. 딸이 돌아온다. 그런데 열여덟의 제니는 어딘가 수상쩍다.

 

이야기의 초반은 돌아온 제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야기는 그런대로 잘 흘러가지만 열여덟의 제니의 정체는 짐작이 가능하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돌아온 제니의 정체가 까발려지고 국면이 전환된다. 제니에게 맞춰져 있던 포커스가 주변으로 확장된다. 제니는 음흉한 음모자에서 추적자의 입장이 된다. 과거의 제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노림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지나면서 흥미가 뚝 떨어진다.

 

결말을 예측 가능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사실 그것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뻔한 결말이라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 주인공의 활약과 통찰을 바라보는 재미도 무시할 순 없다. 제니의 부모인 로리제이크는 뭔가를 숨기고 있고, 까칠한 오빠 이나 과거의 제니를 기억하는 이웃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이런저런 단서를 흘리고 미심쩍은 사건들을 전시하는데 그게 좀 빤하다. 발견한 사실들을 토대로 과거를 재조립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야 할 부분인데, 작가가 썩 잘 한 것 같지 않다.

 

일단 너무 쉽다. 그리고 우연이 너무 많다. 주인공이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벤의 입원, 치료 기록을 찾아가는 부분에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책장을 뒤지다 보니 아주 중요한 서류가 나오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니 사이트가 열린다. 해킹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정신분석이나 꿈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 정도면 귀신이 사또를 찾아와 저를 죽인 범인은하고 알려주는 장화홍련전이나 다름없다. 무의식 같은 소재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수단, 암시 정도로 그쳐야 하는데 너무 결정적이다. 시점을 다른 인물에게 나눠주는 것도 작가의 편리를 위해서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독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주도적인 감정이란 게 있는데, 이 작품엔 그게 모호하다. 어느 인물과 감정을 함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에서 가장 힘을 받는 인물은 어린 제니이다. 이 인물은 이야기 곳곳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일찌감치 무대에서 퇴장한) 인물로서, 이 사람에게 건질 건 과거의 사실과 추측뿐이다. 과거의 사실은 박제된 동물과 다름없다. 아무리 험한 일을 겪었어도 생동감이 없어 독자의 감정도 그 밖에 머문다. ‘돌아온 제니는 중반 이후의 역할이 너무 기계적이고 전형적이다. 처절한 서사를 갖는다고 캐릭터 성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 기능에 치우친 캐릭터의 얄팍함은 꼭꼭 숨어 있다가 엔딩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나타내는 메인 빌런에게도 있다. 완전한 감정 이입이 어려운 독자의 눈에 들어오는 건 결국 사건뿐이다. 인물들은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신경이 쓰이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바로 로리’. 그렇지만 누구 못지않은 악몽을 겪고 불행을 떠안은 이들은 그냥 방치된다.

 

아주 나쁜 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썩 좋았다고 하기엔 퍽 부족하다. 장르 소설 특유의 쾌감, 칼에 베이는 듯한 날카로움 같은 게 없다. 충분히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감흥이나 페이소스가 없어, ‘그랬다더라하는 사실만 남는다. 클리셰 범벅에 여기저기서 좋은 것들만 주워다 엉성하게 엮은 공산품의 느낌,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헌 것의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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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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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쉰여덟 번째 책.

 

★★★☆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에게 도벽이 있다면? 작은 의심은 도화선이 되어 과거의 불행까지 소환해 미스 나이팅게일의 마음을 소란스러운 지옥으로 만들지만, 제자의 완벽한 연주는 그것으로 충분(17)’하게 만든다. 현실이 주는 작은 위안에 안주하고 삶과 타협하는 결말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까. 현재의 만족은 인생의 부정적인 요소들에 맞서게 해주는 치료제일까, 아니면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 마약 같은 것일까.

 

<장애인>; 타인의 삶에 거리를 두려는 것은 비겁한 외면일까, 사생활의 존중일까. 영어가 서툰 폴란드 형제는 장애인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이런 무지와 굳이 파고들려 하지 않는 태도는, 제자에게 도난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캐지 않으려는 (위 작품의) 미스 나이팅게일과 닮았다. 이 작품집 안에 타인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 중, 가장 강력한 여운을 남긴다.

 

<다리아 카페에서>; 남편과 절친의 불륜으로 이중의 배반을 경험하고 이중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오다가 남편을 빼앗은 친구 역시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불행했음을 알게 된 애니타는 과연 클레어에게 용서(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 암시로 가득한 결말이 인상적이다.

 

<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 범죄를 목적으로 접근했던 자산가에게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머뭇거리게 되는 로잰의 이야기. 타인을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는 이야기들과는 달리, 타인을 좀 더 알게 됨으로서 스스로의 행동에 변화(혹은 발전)를 경험하는 주인공으로, 위의 <다리아 카페에서>와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읽힌다.

 

<크레스소프 부인>; ‘추근거림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자에 대한 에서리지의 거부감은 미지(未知)는 곧 두려움임을 상징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야기는 크레스소프 부인의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비교적 드러내는데, 에서리지는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끝까지 모른다. 엔딩에 이르러 주인공이 갖는 감정은 연민보다 동정에 가까워 보인다.

 

<모르는 여자>;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죽음 앞의 무력함과 더불어 타인이라는 영역은 우리에게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한 아이가 두려움 때문에 도망쳤다. 아버지가 약속했다. 순종적인 어머니도 약속했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을 숨기는 데서 힘을 찾기 위해 도망쳤고,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으며,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다. (127)

 

본문 안에서 의미 파악이 어려웠던 위의 문장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타인의 진실에 대한 경구처럼 읽힌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어긋나고 되돌아오지 않는 감정은 상처가 될까. 오늘날 스토킹 범죄의 요소가 보이는 이야기로, 이 역시 타인의 진심을 모름으로 생긴 공백을 제멋대로 해석해 채운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소동을 다소 코믹하게 풀어낸다. 현재와 과거를 병치시켜 단순한 친절을 거듭된 오해로 문제를 키우고 긴장을 쌓아가는 구성이 돋보인다.

 

<조토의 천사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도둑질을 한 인물이 판화 작품 속 천사의 모습에 각성 받아 훔친 돈을 되돌려주려 하지만 생각에 그친다. 옳은 일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잘 드러난다.

 

<겨울의 목가>; 절절한 사랑 이야기. 그런데 불륜이다. 결말은 당연하고 인물들의 죄책감 역시 마땅하다. 감정의 흐름과 서술, 배경 묘사가 아름답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서 성인이 된 시기를 짧은 분량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점잖게 사라지지 않고 악마들을 풀어놓는다. (202)

 

위 문장에서 불륜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 메리 벨라의 죄책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자들>; 출생의 비밀이 소재이지만 그 여자가 네 엄마라는 결말은 없다. 비밀의 열쇠를 쥔 인물의 말은 모호하고 의심을 하는 인물은 함구한다. 인물들을 오리무중 속에 남겨두어 독자들 역시 갈피를 못 잡게 만드는 결말은 <장애인>의 엔딩과 비슷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 간의 거리, 타인이어서 어쩔 수 없는 무지(無知)를 독자들 역시 똑같이 경험한다. 엔딩까지 유지되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매우 좋다.

 

명성은 익히 들어 책 몇 권을 무작정 사놓은 게 오래전인데, 막상 읽은 건 최근이다. 작가 사후 출판된 유고 소설집이라고 하니, 가장 마지막의 작품으로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더 읽고 싶어졌다.

작가가 관찰자를 고집했던 만큼 그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설명하기보다 보여주기. 결말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여러 갈래의 생각에 단초를 제공하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질문하게 된다. 이거일까, 저거일까. 이야기가 끝나도 그 세계 안에 좀 더 머물게 된다. ‘여운이라고 해도 좋고 독자를 작품 안에 끌어들이고 경험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별명은 얼핏 레이먼드 카버를 연상케 하지만 두 작가의 개성이 좀 달라 보인다. 이렇게 말하려니 좀 우스운 게, 카버는 두 권, 트레버는 겨우 한 권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카버의 소설들보다는 읽기 편하다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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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에 태워줘
애덤 마스-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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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쉰일곱 번째 책.

 

★★★☆

 

조그맣고 뚱뚱해서, 왕따 당하는 게 지겨워서(45)’ 학교를 그만둔 콜린은 우연히 만난 레이에게 한눈에 반한다. ‘레이야 말로 킹카 중의 킹카. 바이크 족들의 비공식적인 리더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로 여러모로 비밀에 싸인 인물이다.

바야흐로 부모님 곁을 떠나 레이와 동거를 시작하는 콜린. 동시에 그의 게이 라이프도 문이 열린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을까.

 

시종일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콜린은 비교적 투명하다. 콜린의 진짜 삶이 레이를 만남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레이와 함께 하는 색다른경험들도 전혀 이질적인 게 아니다. 바이커 그룹 안에서의 주종관계는 콜린의 성적 판타지(‘나를 무시하는 남자만이 진짜 남자인 것처럼, 129’)에 적잖이 부합한다.

 

그런 이유로 레이에 대한 콜린의 감정이 거짓이나 자기기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대의 외모와 행위가 주는 자극에 콜린이 반응한 거라면,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스스로 깨닫듯이(혹은 고백하듯이) 콜린은 레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 ‘전혀 모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레이는? 레이는 철벽에 철벽을 두른 모습으로만 묘사된다. 그 묘사조차 콜린의 눈과 의식을 거친다. 그 모습만으로 레이라는 인물을 독자들이 파악하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

콜린을 가까이 두고 섹스라는 친밀한 행동을 하고 친구들과 더불어 어울리지만, 일반적인 연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다. 가끔 보이는 친절과 배려 역시 사랑이라고 단언하기엔 부족하다.

이 두 사람의 진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인다. 이 사람은 안개 속에, 불명확한 모습으로, 이런저런 암시만 흘릴 뿐인 미스터리로 존재했어야 했다’. 실제로 우리는 잘 모르는 상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기술적으로, 이 작품은 일반적인 퀴어 로맨스서사의 영역 밖에 있다. 이게 바로 사랑이야, 혹은 이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하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겹겹의 층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도록 독자들을 유도한다.

작가는 아름다운러브스토리라기보다 진실한러브스토리를 쓰고 싶었다고 하는데,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릴 때 상대의 무엇이 우리를 자극하는가. 가장 원초적인 어떤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드물지 않게 보이는 성행위 장면이 거슬리지 않는 건 작가가 그 행동을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 정도가 레이가 퇴장한 후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부분을 콜린의 애도로 채운다. 콜린에게 애도란 기억하기다. 그런데 레이에 대해서 기억할 것이 별로 없다. 뒤늦게 찾아오는 호기심에 후회가 들지만 레이와 함께 한 육 년이란 세월동안 콜린은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애써 잠재웠다. ?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인 약속, 혹은 동의 때문이었다. 레이의 곁에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콜린은 최선을 다했다. 콜린은 레이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모호한 감정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건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을 향한 무엇으로 보인다. 그 무엇이 무엇일지는 독자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게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아무래도 좋지만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 사이에 버티고 있는 적나라한 계급의식이, 가스라이팅과 착취, 학대를 전제로 했다며 이들의 관계가 불편한 독자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그리고 그 감정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말에 터무니없다고 분명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BDSM(Bondage/Discipline, Dominance/Submission, Sadism/Masochism)’이라는 소재는 인물들의 관계와 소통의 방식일 뿐 이야기를 이끄는 주동적인 장치도 아닐뿐더러 두 사람의 관계 안에 혐오의 시선과 의견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영화와 비교하게 된다. 원작을 읽으며 영화를 위한 각색 작업이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기본 설정은 그대로인데 디테일에 변화가 있다. 유머와 드라마가 첨가되었고 레이라는 인물이 (설명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비교적 드러난다.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과 추측으로나마 채울 수 있는 틈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감정 읽기가 다소 쉽다. 영화가 로맨스+드라마의 외형을 갖췄다면, 소설은 콜린의 자신감 회복과 내적 성장을 그린 드라마, 인간의 본능에 천착한 심리드라마로 읽혔다. 작품 어딘가에 언급되듯, ‘푸른 수염에게 잠긴 방문들이 없었다면 여자들이 끔찍한 살인자에게 매혹되었을까.

 

작품을 돌이켜보면, 가장 두드러졌던 감정은 로맨틱함이나 에로틱함보다 긴장감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하면서도 끊임없는 긴장감은 주로 콜린이 주도하지만 그 역시 베일에 싸인레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문체가 의외로 수다스럽다. 삼천포로 빠지는 문장들이 더러 있는데 곤란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나 잘 그려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기는 했다. 영국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문해력 문제일 수도, 혹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소설 원제는 뒷자리에 태워줘도 아니고 영화의 원제인 ‘Pillion’도 아닌, Box Hill; a Story of Low Self-Esteem이다. box hill회양목(boxtree) 언덕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두 인물의 운명적인 첫 조우가 이뤄진 장소이다. 이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어리광 가득한 번역 제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트콤에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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