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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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태초에 인간이, 유인원에 더 가까왔을 인간의 조상이, 컹컹거리던 대신 소리로 생각을 전달했던 그 최초의 순간에, 언어가 없던 안개처럼 희미하고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 막 하나의 단어로 생각의 교환이 이루어졌던 첫번째 순간이 생겨났던 것처럼, 어쩌면 그것이 가능해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아이디어에 계속 매료되었다. 소설에서처럼, 샤이닝이 가능한 사람 비슷한 생명체나 특수한 인간들이 이미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개미들이 인간의 감각과 현재의 기술로는 도저히 한 근접할 수도 없는 페로몬을 통해 정교한 의사소통을 하고, 고래들이 물속에서 노래하여 서로를 찾고 부르고 사랑하는 것처럼. 최초에 유전자에 어떤 변이가 일어나고, 그 사람들끼리 어떤 우연에 의해 생각덩어리들의 일부를, 그 안개 덩어리 같이 희미하고 무게 없고 형체없는 감정과 의지와 욕망 더미들에게 하나하나 소리에 대응하여 사물의 이름과 개념을 형성하고 의사소통을 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빅뱅의 순간처럼 생각이 소리를 통하지 않고 전기처럼, 혹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현재 우리가 전혀 모르는 암흑 물질 같은 걸 통해 생각에서 언어를 제거하고 생각끼리만 소통하는 미래의 인간후손들이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장르 소설 시즌에 처음 만나보는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은 1편과 2편 통틀어 우려했던 것만큼 자극적이지 않았다. 알콜 중독으로 삶을 쓰레기처럼 굴려 마침내 아슬아슬한 벼랑끝에 섰을 때 한 사람의 아주 아주 작은 친절이 인생을 송두리째 구하는 과정, 삶이 아무렇게나 굴러갈 때 행한 죄의식과 마주할 때마다 중독의 유혹에 다시 빨려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순간들, 증조 할머니 모모와 아이의 각별한 관계, 감초처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이런 다분한 요소들이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장르 소설이 가진 속성을 희석시키고 자잘한 감동과 그럴 듯한 개연성을 충분히 부여하였다. 


판타지적 요소로만 볼 때에는 한동안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미소년 뱀파이어의 얘기 <트와일라이트>가 생각났다. 트와일라잇 속 뱀파이어들이 다양한 '재능'을 가진 것처럼 닥터 슬립의 트루들과 샤이닝 역시 가진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머리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의 교환을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진다. 1편에 등장했던 앤디는 귓속말로 '잠들어라~'라고 속삭여서 사람을 잠들게 한다. 벙어리 새라는 자기 몸을 반투명 상태로 만들어서 없는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닥터 슬립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편히 가는 것을 돕는다. 1,2권을 통해 인간과 트루들을 모두 합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두번째 주인공 아브라 역시 대결구도에서 기발한 재능들을 보여주었다. 강력한 악과 어리고 강력한 선의 대립적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생각난다. 해리포터처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고, 어린 아브라는 해리포터처럼 때로 무모하지만, 자신의 초인간적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거짓으로 평범한 척 해야 하는 고독한 운명이었을 때, 아저씨 댄이 나타났고, 댄의 어린 자아와 대화를 나눈다. 


선과 악의 싸움. 어차피 끝을 아는 내용이라, 디테일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영화화를 의식한듯, 빠른 화면 전환과 함부로 지나칠 수 없는 장치들과 연결되어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들이 액션씬과 마주치면서 마지막 2/3 지점 정도부터 끝까지는 빨려드는 듯한 최고의 긴장감으로 달린다. 소녀 아브라의 캐릭터는 참으로 소녀답고도 매력적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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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을 많이 안읽는 편인데, 올 여름 내내 추리 소설에 빠져 사는 것 같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알렉스>는 2012년도에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이번 달에 관련 시리즈 2권과 로지와 존 등 세권이 연속 출간되었다. 알렉스가 처음 나왔기에, 그게 처음 시리즈인줄 알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이렌>이 첫번째라고 한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어제 배송이 왔는데, 다른 책을 읽던 중이어서 잠깐 맛만 보려고 펴들었다가 도무지 접을 수가 없어서 1장 150여쪽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550쪽  정도로 매우 두껍다. 카미유는 형사이고 이렌은 카미유의 아내인데 시리즈의 첫 편에서 죽은 걸로 나온다. 아마 그 죽은 이야기가 <이렌>의 내용일 듯하다. 3편 카미유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탐정 소설의 주인공은 신체적인 약점을 가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카미유는 난장이에 가까운 단신이라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작년에 크리스마스쯤? 해서 선물로 받은 엘로리퀸의 비극 시리즈 중 <Y의 비극>에 나오는 드루리 레인은 청각 장애인이다. 대신 완벽하게 입술을 읽는다. 현실에서도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내친 김에 신간 하나 더.. 영미권 소설 신간 중 올여름 가장 핫 한 탐정소설은 이것일까? 탐정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이달 중으로 읽을 계획.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 숫자가 하루키 팬을 능가한다고 하던가. 워낙 다작을 한 작가인데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적으로 인기가 시작되어, 사방 팔방에서 번역본을 내느라 난리다. 몽환화가 최근작인줄 알았더니 그 이후 하나 더 나왔구나. 여기서 몽환화만 읽었다. 질풍론도는 아직 책탑 속에 있다. 여름 가기 전에 읽어야지












예판 중인 책이 있어 보니, 미야베 미유키이다. 화차의 원저자였구나. 솔로몬의 위증을 작년부터 읽고 싶었는데 못읽었다. 



































앗 요뇌스베를 잊었구나...책도 구경을 못했다. 박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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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돌이 2014-08-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쥐,스노우맨,네메시스 순서로 읽어야 해요^^

CREBBP 2014-08-0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팬이시군요. 감사합니다 네메시스 리뷰가 많아서.그것부터 읽을 뻔했네요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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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 그런 물음은 어리석다. 네 마음에 있다.  진부하고 공허한 답변이 삶과 앎의 배경음악처럼 늘 울리지만 구체적인 행복은 좀처럼 손 안에 쥐어지지 않는다. 행복에 대한 담론 쯤이라고 해두자. 그게 더 맞다. 답이 없다.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답을 구하지도, 주지도 않았다.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쉽게 이게 행복이다 저기에 행복이 있다 라고 말하면 사기가 되는 것. 그게 행복이다. 대신 상처와 치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상처와 치유를 떠나지 않고는 행복이란 단어가 있을 수 없는 걸까?


존 부룩만의 에지 재단에서는 전세계 여러 분야의 많은 대표 석학들에게 한 가지 주제 하나의 문장으로 된 질문을 주고 글짓기 숙제를 내준다. 그걸 다 모아다가 책을 낸다. 그렇게 각 분야에서 가장 선두에 선 석학들이 내놓은 대답을 따라가면 그 답들의 교집합이 진리를 향해 뻗어간다고 존 부룩만은 믿는 듯하다. 그러나, 각 분야의 가장 뛰어난 석학들이 자신이 가진 최고 지식을 반영해 내놓은 대답은 모두 제각각이고 하나로 수렴되지 못한다. 그 제각각의 답들 중 무엇을 얼만큼 취해 어떤 방식으로 조함할 지는 독자의 몫이다. 이 책 역시  '17명의 대표인문학자가 꾸려낸 삶의 프레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에지 재단의 책처럼 그들에게 '행복'이라는 주제의 에세이를 걷어들여 묶은 것일 거라 생각했다. 그 경우 모 아니면 도다. 숙제하듯 마지못해 쓴 글들이 있을 수 있고 세계 최고 석학 최고의 글들도 만날 수 있다. 오판이었다. 저자가 직접 쓴 책이었다.  


언론인 백성호님은 행복이라는 화두를 들고 직접 한국의 대표 인문학자  17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서로 이질적인 17인들의 생각들을 자신의 언어로  모아, 독자 사이에 푹신한 쿠션을 만들었다.학자들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작가가 리드하고 독자와 함께 걷는다.  그들은 음악, 미술, 심리, 철학, 미학, 동양신학, 뇌과학, 건축, 천문학, 시인, 등 온갖 종류의 필드에서 대표적인 전문가들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인문학자들이 그들의 학문 경계 내에서 통용되는 조금 일반적이지 않은 단어를 쓰면, 독자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그 경계를 허물어 내고 전문적인 말의 개념과 뜻을 쉽게 풀이했고, 그들의 생각에 자신의 해석을 보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듬었다. 이해해야 하는 개념을 공감할 수 있는 문장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과학도, 신학도, 철학도, 종교도, 심리학도 저자를 통해 산문이 되었다.  그는 서문에 '각 분야에서 자기 나무 한구르를 꿰뚫은 그들은 그 나무를 통해 전공 분야를 넘어 더 큰 세상을 조망하고 있었으며 이 책은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을 이어붙인 삶의 지도'라고 썼다.


백성호가 만난 사람들

이들은 한국 대표 인문학자지만,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재다능한 미학자 진중권,역사연구가 이덕일, 통섭을 추구하는 동물학자 최재천, 가야금 명인 황병기, 기생충 학자 서민, 과학철학자 장하석 정도다. 진중권과의 대화는, 그의 다른 책이나 에세이에서도 했던 말의 반복이지만, 언제나 명쾌하고 쾌활했다. 힐링 이데올로기에는 상처와 근원을 외면하려는 얄팍함이 숨어있음과 함께 예술이 감동과 함께 힐링에만 의존하게 될 경우 상처를 부르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게 되고, 모든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귀결시키면서 패비주의로 전락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예술의 시각에서 행복에 대한 담론애 접근해가는 과정에 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다. 


여성의 정치 참여? 100여넌 전만 해도 어림없었어요. 중략. 예술은 이처럼 주류 사회와는 다른 소수자의 시각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낯선 충격을 가져다주죠. 동성애자의 시각, 여성의 시각,... 그런 아웃사이더들의 세계가 나중에는 주류 사회에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의 몰이해로 상처받던 이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는 거죠.

그렇다. 그는 행복을 말하는 여정에 소수자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 안에서 예술의 역할을 역설했다. 또한 삶이 게임이 될 때, 우리는 상처와 고통 속으로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며, 영화를 보면서 빠져드는 고통과 상처에 허구라는 울타리가 지켜주듯,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적절한 가벼움과 적절한 즐거움을 비벼가면서 삶을 놀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변씨와의 언어 유희,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라는 폭력적 인터넷 답글에 맞서는 소신있는 자세를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남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 있으며 살다가 삶이 자기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에는 삶의 노선을 수정할 것을 권유한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바라보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통찰이 인상 깊었다. 그는 내가 스스로 만든 불일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다. 대뇌피질이 자신의 예측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상처를 받으며  내가 어떤 일에 대해 특정한 기대나 바람을 가질 때, 그게 어긋나면 고통이 시작되는데,  가끔 신체 기관들이 전해 준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바뀐 것을 잘못 해석해 뇌가 속임수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므로, 진짜로 아픈 건지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가 김개천은 자신의 작품 <한칸집>을 소개하며, 자기 것이 많으면 지키려 하고, 지키려다 보면 바깥을 향해 닫히기 일쑤라는 말과 함께, 비어있는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자연이 흐르고 생명이 흐른다고 답하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는 불행 없이 행복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 안의 행복과 불행을 잘 볼 수 있느냐를 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와 치유에 대해서는,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라고 했다. 


나는 <온도계의 철학> 캠브리지대의 석좌 교수 장하석의 말이 가장 좋았다. 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를 쓴 토머스 쿤의 말을 빌어, 과학은 빅뱅 이전의 문제와 같은 심오하고 답이 안나오는 뿌리 깊은 문제들을 접어 놓고 나서야 비로서 접근할 수 있다며 한 후, 과학과 철학, 혹은 과학과 종교 그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건 결국 인간이라며, 당대 과학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틀 '파라다임'이라는 용어를 되짚었다.  그 파러다임의 틀 안에서 어떤 현상이 설명될 수 있으면 과학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학 밖의 영역이 된다. 그래서 과학이란 전쟁과 함께 국경이 바뀌듯 그 경계가 계속 바뀌는 것이며, 절대적인 철학, 절대적인 과학 이란 것은 없다, 아 이렇게 하면 풀리겠네 하고 과학적으로 방법을 찾으면 신의 영역이었던 부분이 그 때부터 과학으로 바뀐다, 그러니 우리가 과학으로 알고 있는 것들도 언젠가는 선조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믿음처럼 한순간 허물어질 지 모르는 것이다.  그의 요지는 이 점이다. 인간의 삶에도 패러다임이 있다. 그것은 각자가 세상을 보는 틀에서 만들어진다. 세상은 우리가 만든 틀 안에서 벗어나기 일쑤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불행해진다고 했다. 


과연 내가 만든 틀은 행복을 부르는 걸까. 행복을 방해하는 걸까. 우리는 그 틀을 세워야 하는 걸까. 아니면 무너뜨려야 하는 걸까.

역사학자 이덕일은 시간은 직선이 아닌 순환의 고리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미래에 대한 선택은 현실이 되고, 다시 과거가 된다. 과거는 또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우리 시대의 삶이 100년 전, 200년 전, 500년 전의 역사가 됐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거울로 기억될까. 라고 물으며 인간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하다는 답을 전한다. 


동양철학과 고전에 능통한 한형조는  유교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신에 대한 비난이 정당하면 자기 발전의 밑걸음으로 삼고 부당하면 무시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유교는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다. 라는 말로  행복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이야기 한다. 그 역시 우리사회가 위로라는 설탕을 과잉 투여해서 당뇨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하며 힐링 산업의 얄팍한 속성을 주지시킨다. 주어지는 운명에 순응하되 그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성도 지니라고 말한다. 어설픈 위로에 대한 기대를 접는 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길,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유교적 방식의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다.


저자가 만난 거의 모든 학자들이 상처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를 경험을 늘어 놓는다.  상처를 말할 때 자신의 경험 없이는 이야기가 안되는 것처럼. 내놓으라 하는 학자들도 상처를 이야기하는 도중 본인을 객관화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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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10여명 남짓, 어쩌다 hot 에 올라가 메인에 떴을 때에도 수십명이 고작인 내 블로그에 오늘 아침 현재 방문자 수가 136명이다. 어디 메인에 떴나, 샅샅이 뒤져봐도 없다. 무슨 일일까. 어제 올린 리뷰는 투명인간 하나인데, 공감수로 보면 그 글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어떤 글을 읽으셨나요. 궁금하다.


그냥 나가기 허전해서 읽고 싶은 신간 몇 권 추천. 존사쿠의 만화책은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마침 어딘가에서 할인행사중이다. 
























수학이 즐거운 세계를 꿈꿔본다. 수학이 즐겁지는 않지만, 사물을 설명할 때 이해할 때 명확하고 편리하다. 사고하는 것들을 수학적인 언어로 쓰는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가? 전에, 심심하면 내 고민을 C++ 언어로 만들어보기도 했었는데... 결국 C 언어란 게 일반언어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므로.. 그닥 기발하지는 않다.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 생각도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수학이 즐거운 세계를 꿈꿔봤는데. 수학을 즐겁게 글로 쓴 책이라면 어떨까. 읽어보고 싶어서.












과학 한 잔 하실래요? 의 강석기님의 신간이 나왔다. 한국의 스티브 제이 굴드라고 불린다고 하는 분의 책.

















<만조의 바다 위에서> 제목마저 근사하다. 이창래. 이 분의 책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구간 부터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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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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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세밀한 풍경화 같다. 가끔은 서정적고도 정겨운 산문 같다. 빛바랜 신문의 사회면 기사 같은 곳을 만나기도 한다. 갑자기 시골 소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문체가 나타난다. 우민에게 보내는 혁명가의 선동 메시지 같을 때도 있다. 다중 인격의 작가가 쓴 짧은 단편집 모음 같기도 하다. 인간 시대 같은 타이틀을 가진 프로그램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긋 나긋 편지쓰듯 쓴 것도 보인다.  산더미 같은 이야기와 셀 수 없는 아픔과 수많은 시대적 풍경을 3대에 걸친 많은 화자들의 입을 통해 재현한다. 김만수와 인연으로 깃을 스친 사람들이 살아온 길에는 긴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 태풍의 눈이 있었다. 그것을 피할 길 없이 온몸으로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김만수를 보았다. 누구는 조금 멀리서 스치듯 보았고, 또다른 누구는 가까이서 피를 나눴다.  


소설을 구성하는 다중화자들은 서너명이 아니다.  한 때 삶 언저리에 김만수가 있었던 모든 등장인물들은 모두 소설의 화자가 되어 김만수의 일생 중 일부를 공유했고 기억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김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김만수를 증언했다. 그러나 김만수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말하는 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기억될 뿐이었다. 천근 같은 가족과 형제들의 생계와 학비를 떠맡고, 오로지 자기 희생을 통한 가족애가 전부고 종교고 신이었던 그를 역사의 수레바퀴가 벌레밟듯 짖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래서. 투명인간이 되었다.  투명인간이 메타포냐 판타지 소설 속 진짜 투명인간이냐고 빨간책방을 진행하는 이동진이 성석재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작가는 그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겠죠.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그들 가족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소외된 자, 그들이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버림받은 자, 그들이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 외마디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잊혀질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되었을까. 그들은 모두 모든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착하면 착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현대사의 흐름 속에 철저히 소외된 채, 소비되고,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김만수의 추측은 가족과 관계있지만 유전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선택한 그의 아내도 투명인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투명인간 1호 김만수는 기업과 공장이 노사갈등의 열병으로 들끓을 때조차 민중의 편에서 장렬하게 희생되는 대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엉뚱한 대가를 치렀다. 이기심으로 무장하고 개인의 성공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석수는 시대를 비껴가지 못하고 컴컴한 고문실에서 폭력으로 파괴된 자아를 끌어안고 투명인간이 되었다. 가족의 희생을 발판으로 모든 가족의 기대와 희망를 한 몸에 짊어지고 대학을 들어갔지만 머나먼 땅 베트남에서 몬산토사의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의 희생양임을 모른채 대가 없이 병사한 백수 역시 어디에선가 투명한 몸을 옷으로 감싼 채 자전거를 탔을 지 모를 일이다. 


엄마 아빠에게 애초에 버림받아 결핍과 소외에 차고 날카롭고 비수로 방어했던 천재 소년 태석의 독백에서 이 모든 투명인간들의 변신 과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 


오 제발 이럴 바에는 나를 죽여주소서, 내 생명을 거두소서, 태우고 잿가루로 만들어 공중에 뿌리소서, 강물에 흘러가게 하소서, 저 광활한 우주의 한낱 티끌이 되게 하소서, 생각하지 않고 제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원소로 만드소서, 절망 속에서 울부짖을 때에 그게 됐다. 또. 중략. 그게 된다. 가끔 그래서 나는 살 수 있다.


친부는 자신의 존재도 모른다. 친모는 자신을 버렸다. 자신을 키우는 여자는 자신을 두려워한다. 학교에선 차라리 죽음이 나을 듯한 괴롭힘을 당한다. 의미 없이 딛고 올라서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격을 파괴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투명인간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은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매일 뉴스를 장식한다. 나는 투명인간인가. 나의 부모는 투명인간인가. 나의 친구, 나의 동료, 나의 형제, 나의 부하직원, 나의 상사, 나의 이웃... 그들은 투명인간이 아닌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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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vous 2014-08-1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써주신 분들마다 인용해주신 문장이 달라서 골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 빨간책방, 라디오 책다방 성석제 투명인간 방송 아직 못 들어봤는데 궁금하네요 ㅎㅎ 그런데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그랜드슬램(문학동네, 라디오 책다방, 빨간책방) 들으면서 콘텐츠가 작아지고 다양해져서 좋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쩔 수 없이 주류와 중심이 생기고 여기서 벗어날 만큼 시장이 커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생각하지 않고 제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원소의 존재-삶... 불교 공부를 하면 이것을 '사유'할 수 있을까요? 뜬금포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

CREBBP 2014-08-21 22:43   좋아요 0 | URL
한강의 그랜드 슬램이란 세군데 팟캐스트를 모두 석권했다는 말이군요. 전 아직 하나도 안들어봐서.. 오늘 문학동네 팟 캐스트를 처음 들어봤는데.. 말이 느려서.. 어제 친구가 침이 마르도록 들으라고 들으라고 전화까지 해줬는데 차에서 들어봐야겠네요.. 빨책도 한참 밀렸네요..라디오 책다방이라는 것도 있군요. 전 김영하 톤이 가장 적당한 것 같아요. 너무 늘어지지 않고, 너무 고조되어 있지도 않고 딱 적당..

제 딴에는 저 부분이 하일라이트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봤어요.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저것이 아닐까 라고요. 어제 밤에 투명인간이 되고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