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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립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평점 :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태초에 인간이, 유인원에 더 가까왔을 인간의 조상이, 컹컹거리던 대신 소리로 생각을 전달했던 그 최초의 순간에, 언어가 없던 안개처럼 희미하고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 막 하나의 단어로 생각의 교환이 이루어졌던 첫번째 순간이 생겨났던 것처럼, 어쩌면 그것이 가능해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아이디어에 계속 매료되었다. 소설에서처럼, 샤이닝이 가능한 사람 비슷한 생명체나 특수한 인간들이 이미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개미들이 인간의 감각과 현재의 기술로는 도저히 한 근접할 수도 없는 페로몬을 통해 정교한 의사소통을 하고, 고래들이 물속에서 노래하여 서로를 찾고 부르고 사랑하는 것처럼. 최초에 유전자에 어떤 변이가 일어나고, 그 사람들끼리 어떤 우연에 의해 생각덩어리들의 일부를, 그 안개 덩어리 같이 희미하고 무게 없고 형체없는 감정과 의지와 욕망 더미들에게 하나하나 소리에 대응하여 사물의 이름과 개념을 형성하고 의사소통을 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빅뱅의 순간처럼 생각이 소리를 통하지 않고 전기처럼, 혹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현재 우리가 전혀 모르는 암흑 물질 같은 걸 통해 생각에서 언어를 제거하고 생각끼리만 소통하는 미래의 인간후손들이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장르 소설 시즌에 처음 만나보는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은 1편과 2편 통틀어 우려했던 것만큼 자극적이지 않았다. 알콜 중독으로 삶을 쓰레기처럼 굴려 마침내 아슬아슬한 벼랑끝에 섰을 때 한 사람의 아주 아주 작은 친절이 인생을 송두리째 구하는 과정, 삶이 아무렇게나 굴러갈 때 행한 죄의식과 마주할 때마다 중독의 유혹에 다시 빨려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순간들, 증조 할머니 모모와 아이의 각별한 관계, 감초처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이런 다분한 요소들이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장르 소설이 가진 속성을 희석시키고 자잘한 감동과 그럴 듯한 개연성을 충분히 부여하였다.
판타지적 요소로만 볼 때에는 한동안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미소년 뱀파이어의 얘기 <트와일라이트>가 생각났다. 트와일라잇 속 뱀파이어들이 다양한 '재능'을 가진 것처럼 닥터 슬립의 트루들과 샤이닝 역시 가진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머리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의 교환을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진다. 1편에 등장했던 앤디는 귓속말로 '잠들어라~'라고 속삭여서 사람을 잠들게 한다. 벙어리 새라는 자기 몸을 반투명 상태로 만들어서 없는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닥터 슬립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편히 가는 것을 돕는다. 1,2권을 통해 인간과 트루들을 모두 합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두번째 주인공 아브라 역시 대결구도에서 기발한 재능들을 보여주었다. 강력한 악과 어리고 강력한 선의 대립적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생각난다. 해리포터처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고, 어린 아브라는 해리포터처럼 때로 무모하지만, 자신의 초인간적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거짓으로 평범한 척 해야 하는 고독한 운명이었을 때, 아저씨 댄이 나타났고, 댄의 어린 자아와 대화를 나눈다.
선과 악의 싸움. 어차피 끝을 아는 내용이라, 디테일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영화화를 의식한듯, 빠른 화면 전환과 함부로 지나칠 수 없는 장치들과 연결되어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들이 액션씬과 마주치면서 마지막 2/3 지점 정도부터 끝까지는 빨려드는 듯한 최고의 긴장감으로 달린다. 소녀 아브라의 캐릭터는 참으로 소녀답고도 매력적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