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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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만큼 잔혹한 방법으로 엄청난 인명을 학살하고, 학대하고, 억압한 대가로 핵심 세력들이 전쟁에 패한 후에도, 그 땐 그것이 선의였다고 천황을 위해 확장하고 뻗어나가 세계를 재패하게 될 천황과 제국을 위해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여전히 믿으며, 편안한 일상 속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 이웃에 봉사하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사과도 없이, 전범 재판조차도 없이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그 전범집단을 단죄하지 않고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단죄되지 못한 역사, 뉘우치지 못한 역사,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역사는 그 역사의 고통과 책임을 여전히 피해자와 역시 피해자에 불과했던 권위에 복종했던 약자의 말단에게 전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비현실적인 치명적 사랑과 비현실적인 포로 수용소의 강제 노역. 가슴 밑바닥 그 섬세한 잔뿌리까지 치밀한 언어로 직조한 위험한 사랑과,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의 극한을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선명한 UHD 화질로 나노 마이크로 단위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내보내는 다큐같은 포로 생활. 이 절대로 타협 불가능한 두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 과거 속의 미래, 과거 속의 과거, 많은 등장 인물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쏟아낸다. 

개인의 생각과 의지가 모두 박탈된 채로 전체 속 이름없는 부품이 되어 바닥까지 드러난 에너지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는 혹독한 노동의 끝에 비참한 죽음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했을까. 일본이 한 짓은 평범한 우리와 다름없는 유전자의 조합을 가진 인간이 한 짓이지 동물이나 외계인이 한 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토록 충실히,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잔혹한 만행을 우주적 선의로 믿으며 전장 속을 누비고 전후에는 자상한 부모 봉사하는 시민으로서의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는 나카무라의 계속되는 삶과 사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단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폐허를 일구며 후대와 섟일때 스며드는 가치관을 주목한다. 반성하지 않은 전범들의 계속되는 삶을 끄트머리까지 집요하게 쫒아가 꾸역꾸역 마지막 조명을 비춘다. 

작가가 원한건 그 끔찍했던 기억의 리얼리티 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계속 그러니까 역사이기 때문이다. 버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 이야기로 끝맺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전쟁이 처리되는 침략국과 자본주의의 밀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국으로 포장된 전체주의와 왜곡된 역사책을 통해 후대에 그들만의 선의가 차곡차곡 계승되고 있음을. 그리하여 기억해야한다.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기에 진정으로 단죄받지 않았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그들을 대신하여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렇게 죽는 이유를 오로지 그나마 받지도 못한 50엔 말고는 떠올릴 수 없었던 조선인 경비병들의 외로운 죽음을.

도리고는 죽음이 일상화된 곳에서 만연된 죽음을 유예시키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매일매일 영양 실조와 콜레라와 구타와 강제노역으로 죽어가는 포로들을 목격하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애쓴다. 어차피 몇일 후면 죽을 사람들 한 둘이 더 먼저 죽거나 더 나중에 죽거나 큰 차이가 있을것 같지 않지만 그렇게 버티고 버텨 살아난 사람들이 전쟁의 끝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뒤돌아보면 ‘장하다 살아남아줘서’지만 당시 전세는 기울었을 테고 연합군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을테니 혹독한 노동과 짐승보다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할 희망을 붙드는 이유가 찾아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유보다 더 많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어긋나서 비껴간 사랑이 있다. 전쟁이 가져다 주었고 전쟁이 갈라 놓은 사랑. 헤어지지 않고 이어졌더라면 일상과 권태와 자잘한 의견 충돌로 얼만큼은 희석되고 또 얼만큼은 분해되고 증발해가고 말았을지도 모를 그 알 수 없는 감정 사랑이 그토록 평생을 잊지못하고 그리워만 하면서 실체없이 마음을 차지했던 이유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이 비껴가면 그 비껴간 간극의 아슬아슬함 만큼이나 남은 평생동안 부풀어간다. 환상으로 물을주고 안타까움과 그리움으로 영양을 공급하여 크고 든든한 나무로 가슴속에 뿌리박은 그 비껴간 사랑은 다른 이에 대한 또 다른 맹세와 약속을 배신하고 속임으로서 잉태된 것이기에 독자들에게조차 온전하게 지지받을 수 없는 불길한 사랑이다. 하지만 응어리의 씨앗 배속에서 칼날이 휘젓고 찌르는 느낌의 실체를 알고 났을 때 그리고 남편과의 한세대가 넘는 나이차를 알게 되었을 때에야 에이미의 간통 역시 단순한 욕망과 육욕에의 갈증 만이 아닌 폭력적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가늠하고 마음 아팠다. 

'오스트레일리아판 전쟁과 평화'라는 한 미국 유명인의 인용이 뒷표지에서 눈에 띈다.각기 다른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 세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꼬이고 얽히는 대신 사랑 파트는 도리고와 에이미의 불륜에 따르는 치명적 감각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피와 살이 튀고 사지가 절단되고 창자와 장기들이 널부러져 나오는 전쟁 대신 전쟁 파트는 전쟁만큼이나 끔직한 수용소 실상을 묘사한다. 그토록 무고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 몬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때도 찾지 못했고 지금도 찾지 못했다. 프랑스도 일본도 나폴레옹도 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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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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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배경은 공항 대기실 인물은 딱 두 명이다. 장면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가고 있는 소설은 2인극을 위한 희곡을 연상시키는데, 적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이 낯설다. 





우리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잡티와 주름을 얼굴을 잘 포장해서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다.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서도 하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서도 한다. 누구더라, 레이먼드 카바였나, 작가 중 누군가는 작업실로 쓰는 방에 가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다고 하던데, 화장이던 옷이던 단정하게 입는 이유 중 하나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것들을 덮고 추구하는 현재에 몰두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양복을 차려 입고 컴퓨터에 앉으면 게임을 하거나 악플 같은 걸 달러 찌질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대신 작업 리스트를 열어 할일을 체크하고 해야 할 일에, 추구하는 일에 매달릴 거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 잘 차려입은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때로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핫도그를 길거리에서 게걸스레 먹으며, 예쁜 여자들을 따라다니며 성폭행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내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데, 자신은 잊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오래 전 추악하고 폭력적인 욕망을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배출한 사람들은 갑자기 까발려진 자신의 정체가 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강간과 추행을 행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당신은 바로 눈앞, 입이 닿을 만한 거리에 깨끗해 뵈는 시원한 물을 놓고도 그걸 마실 권리가 없어 목이 타들어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방금 사막을 건너온 당신을,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물 스스로가 거부한다 이겁니다. 마치 물이라는 물질 자체가 당신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 것처럼 말이죠! “





짧은 치마를 입고 요란한 화장을 했다고 해서 누구나 그걸 성적 암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주,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피해를 공개적으로 호소할 때마다 ‘행실’ 프레임이 가장 먼저 2차 폭격을 가한다. 너님을 위해 예쁜 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동의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 어떤 성적 행위도 폭력이 개입된다. 언제 하위 권력이 상위 권력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던가. 





공항 대기실처럼 따분한 곳도 없다. 탑승 시간이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미국 사람들은 그런 일에 익숙해졌는지 언젠가 미국에서 국내선을 탈 때 3~4시간 이상 아무 설명도 탑승 수속이 안되고 기다리는 일이 있었는데, 애가 타고 짜증이 나서 데스크를 몇번이나 왔다갔다 했지만, 미국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책들을 읽고 있던데, 우리의 주인공 제롬 앙귀스트는 책읽기에 방해를 받는다. 





텍셀 텍스토르라는 자가 나타나 무례하게 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무에게나 자기 얘기 늘어놓기 하기 좋아하는 그냥 짜증나는 인간인 줄 알며 무시하려 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점점 오싹해진다. 반전의 반전이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다가 맞이하는 결말은 쿵 하는 충격적이다. 




아멜리 노통브가 천재라 불리는 데에는 이런 이야기 구조의 긴장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의 소설에서는 묘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작가는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스스로 묘사에 대한 작가로서의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특히 진부한 묘사의 하나로 자주 나오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콕 찝어 겨냥한다. 





“도대체 그 어떤 색깔도 허용되지 않는 소설 속인데도, 마치 그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는 것처럼, 여주인공을 세세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것보다 더 짜증나는 일이 있을까요 실제로 여자가 금발에다 밤색 눈동자를 가졌기로서니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십년 전 강간했던 강간범이 눈앞에 나타나, 자신을 죽일 기회를 주러 왔다고 칼을 손에 쥐어준다면 어떻게 할까. 혹,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죽일 기회를 주겠노라고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면? 강간을 당한 여성도, 아내를 잃은 남성도 범인을 직접 죽일 수는 없다. 법은 피해자에게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법제도만이 가해자를 벌할 수 있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여기부터 강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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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앙귀스트가 처한 선택은 보다 어렵다.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분열된 자아가 화장을 지운 자기 자신임을 믿을 수 없기에 아니 선택의 여지는 점점 없어지고,  스스로가 죽던가, 살인자가 되던가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내재되어 있는 추한 자아가 물리적으로 실체화되어 있다면, 추한 자아와 함께 화장한 자신도 함께 죽을 테지만, 그가 믿는 것처럼 그런 추한 자아는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통쾌하게 아내에게 복수하고 살인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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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리뷰를 쓸 때 썰전 연상작용으로 노회찬 의원이 생각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관련없는 일들이 서로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 받으며 흘러가는 것. 우아하게 미끄러지듯 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백조나 오리가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끊임없이 발차기를 하고 있음을 종종 간과하듯 역사서에 등장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그 사건을 그러니까 역사를 가능하게 했던 보이지 않는 발차기는 자주 생략된다. 


기무사 문건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지금은 추억처럼 회상할 수 있게 촛불 정국 중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우리를 뒤로 회전하는 역사의 바퀴 위에 태워 놓을 수도 있었을 흉괴와 반역의 음모가 숨어 있었을 수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리 춥지 않던 12월 첫째 주 주말 혜화에서 광화문을 향하던 느슨한 대열과 간간히 외치던 구호 틈새에 한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묻던 질문이 기억난다. ‘엄마 그럼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거야?’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 개개인들의 하나 같은 바람이 한 장소에서 우리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던 순간은 분명 역사의 흐름에서 물결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했고, 그 작디 작은 아이의 소망까지도 민주주의를 지키며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던 역사 속 발차기의 일부였음을 우리는 안다.  















역사는 무엇일까. 영웅과 왕들 혹은 정권의 핵심에 섰던 인물들이 만들어낸 굵직굵직한 변화를 적은 사실들이 바로 역사 라고 말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바로 이 말을 하고자 저자 유시민은 2천5백년 전 헤로도토스부터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둔 할븐, 랑케, 마르크스,신채호,백남운,김부식,에드워드 카, 슈팽글러,토인비,헌팅턴, 다이아몬드와 하라리까지 인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와 역사 학자들을 소환하고 그들이 남긴 역사를 살펴본다.



이 중, 서양서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이 낯선데, 원전은 규모면에서도 방대해서,  <성찰의 책>이라 불리는 7권짜리 31부작 역사서다. 국내에는 영어으로 된 영역 축약본<역사서설>과 원전 번역의 무깟디야 1, 2권(소명출판) 두 권이 나와있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중반에서야 알려진 이 책은 14세기에 집필된 책이다.  어떤 분야의 역사를 접해도 서양사에서는 중세의 약 1천여년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뭉텅이로 빠져있는데, 14세기라는 캄캄한 암흑만 연상되는 시대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경외감도 생긴다. 여기서 저자는 14세기 이슬람 문명은 중국 문명과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윤리 규범을 만들어 냈음을 주목한다. 


14세기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언어 문화 종교 정치 체계가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도 국가권력의 존재 의미 군주와 백성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거의 동일한 윤리 규범을 만들어냈다. (p113)


작가 유시민이 소개하는 역사서들은 여기 저기서 이름을 많이 들어본,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언젠가는 한 번쯤 원전을 읽어보고자 하는 소망을 품어볼 듯한 아주 유명한 역사서들이다. 어떤 건 2500년 되었고, 그에 비해 어떤 건 갓 출간된 신간에 해당하는 2~3년 전 혜성같이 나타난 책이다. 인류 문명은 시간과 공간의 어디쯤에서 한번씩 역사가의 시선에 잡혀 텍스트로 변환되었고, 우리는 살아남은 역사가의 눈을 통해 역사를 본다. 이 들 중 어떤 역사가(랑케)는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의 일이라고 한다. 유시민이 랑케를 이 책에 소개한 것은 랑케의 주장과는 달리 역사가의 일은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며, 역사가의 시각을 남기는 것이라는 걸 반면교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팩트를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기록하였다고 한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망각의 철칙이 지배하는 시간의 왕국에서 팩트는 상상의 영역에 조금씩 먹혀버린다. 어떤 기록이라 하더라도 그 기록 속의 팩트와 팩트 속에서는 시대와 공간이 부여하는, 당연해서 기록에 빠진, 생략된 디테일이 있기 마련이다. 넘쳐나는 팩트들과 조화롭게 하나되어 온 배경과 디테일은 시간과 공간 이동을 하면서 다른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 역사가는 이것들을 당대의 독자가 이해하는 시점에서 현대의 가치관과 배경 속에 배열하여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많은 역사책을 다 읽으면 좋겠으나 역사가와 역사학자이거나 역사에 푹 빠진 독자가 아닌 맥락 파악이 어려운 고전 역사서들을 두루두루 섭렵하기란 쉽지 않다. 시간도 이해 능력도 좋은 역사서를 고르고 읽고 해석하는 안목도 모든 것에서 부족함을 느끼는데, 유시민의 이 책은 나같은 비전공자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일반인이 그 대상이다.  이 책을 통해 유시민은 역사가의 역할을 탐구한다. ‘역사는 사실 넘어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가의 해석이 결합된 컨텐츠’라고 하는 것이 여러 역사서들을 탐구하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 contemporary history 라고 선언한 크로체를 인용하며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대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 (역사란 무엇인가 36쪽 이 책 232 재인용) 에서 더욱 뚜렷이 역사란 현재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동의하게 된다.











역사가는 과거 사실의 일부만 알 뿐이며, 기록한 사람이 알았고 중요하다고 여긴 일부 사실만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은 평가와 해석이라는 주관적 요소의 세례를 받고서야 무언가 말할 수 있다 (p231 요약)


망각의 철칙이 지배하는 시간을 왕국에서 장수의 축복을 누리는 쪽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였다 불공평 하지만 어쩔 수 없다 219


역사가도 사회적 현상이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대변한다. 역사가는 이런 자격으로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연구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57


그러니 역사를 연구하려면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그 역사가 살았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살펴보라 역사란 무엇인가 71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역사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 역사의 과정에서 생겨난다. 나는 인간이 완전하다거나 지상천국이 오리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도전하고 성취해 냄으로써 만 그 정체를 밝히고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진보,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상상할 필요가 있는 한계에 굴복하지 않는 진보일 가능성에 나는 찬성한다. 그러한 진보의 개념이 없이 어떻게 사회가 생존할 수 있겠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179쪽


 이중 주차의 안쪽에 유배되어 있는 오래된 토인비에 대한 내용을 보니 반가왔다. 한발 더 나아가 ‘사실을 토대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배하는 일반 법칙을 찾아 흥미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으로 문맥의 역사를 서술했다(p257)’고 한다.  그는 역사를 하나의 창작의 영역으로 보았다.










사실의 선택 배열 표현 그 자체가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작업이다. (역사의 연구 토인비 70~71쪽, 재인용).


내가 살아간 시대의 무엇이 역사에 남을까. 촛불을 들던 아이는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 개인의 이름과 사진 아무 기록도 남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을 들던 작디 작은 마음들은 합쳐져서 힘이 되고 역사 속에 스몄다. 역사를 움직였음을 동력, 아이가 커서 훗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은 역사속에 나오지 않지만, 후퇴하고 있던 민주주의가 방향을 틀던 작은 순간 속에 자신이 있었던 기억을 간직할 것이다. 


명복을 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던 이미지가 그토록 비극적인 마감으로 충격을 던질 줄 누가 알았을까. 나라를 거덜내고 양민을 학살했던 인간들은 대대손손 천수를 누릴 듯이 당당한데..훗날 역사는 무엇을 말할까. 다만 그가 추구했던 정의의 가치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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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 두 번 읽었네요 전 CREBBP님이 역사전공자인줄 알았습니다 ㅎ

CREBBP 2018-07-28 16:46   좋아요 1 | URL
과찬이시지만 날아갈듯 기쁩니다. 댓글 정말 감사드려요.
 
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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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출산우대정책으로 세자녀 출산을 조건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12세대 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은오와 요진은 먼저 입주한 세 가정에서 마련한 조촐한 환영식에 초대된다. 사람들이 처음 만날때 으례 묻고 답하는 질문, 은오와 요진은 이 질문이 편치 않다. 먼저 선수를 쳐 자신이 집안 일을 하고 아내가 돈벌러 나간다는 말에 앞으로 서로 도우며 한가족처럼 살아가게 될 이웃들은 아 그렇구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간만의 차이로 미리 입주하여 이미 누군가의 주도로 형성된 친목과 분위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교활한 방법으로 남의 아픔을 집요하게 캔다. 첫만남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는 거고 ‘제가 능력이 안되다 보니 아내가 출근을 합니다’ 라고까지 했으면 더는 캐지 않는 게 예의지 이런 거 물어도 되나 모르겠네 라고 하면서도 어디 다니냐고 묻고는 결국 약국에서 카운터보는 일로 세 식구 먹고 살아야 하는 누추한 속살을 캐내고야 마는데, 그 와중에서도 이웃의 직업적 품평회는 그치지 않는다.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의 그룹에는 좋게 말해 리더, 일반적으로는 자기 주장이 강한 한두 사람이 전체를 자기 편한대로 주무르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여기서 홍단희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무례하게 사생활을 캐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의 주장으로 몇 안되는 세대가 만든 그 규칙이란 걸 앞세워 사사건건 자기 뜻대로 공동체를 이끄는데, 이 인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현실에서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전형적 인간 군상이어서 답답했다. 입주 환영이랍시고 조리돌리듯 새 입주민의 사적인 질문을 퍼붓는 자리에 상낙의 아내 효내가 불참했다고 아이 혼자 데리고 나타난 그 집 남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시어멈들처럼 잘도 지껄이는 인간도 홍단희다. 젖먹이 다림이를 키우며 집에서 아기를 키우며 프리랜서라는 허울좋은 커리어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불참자 효내의 사정은 문자 그대로 눈물겹지만 경력을 지키고 싶은, 대한민국 모든 기혼모 여성의 이야기지만, 차라리 한 편의 서늘한 잔혹극에 더 가깝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 그렇다고 보수가 제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집안을 돼지 소굴처럼 내팽겨치고 밤을 새며 그려도 마감을 맞출 가능성도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효내는 시도 때도 없이 홍단희의 침입을 받는다. 이번엔 다 같이 하기로 한 재활용품 수거에 불참했다는 거.

이 입주민들은 역시 홍단희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집 대용의 공동양육 프로그램을 짜고 네 가정의 집사람들 함께 식사 및 여러 프로그램을 담당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일화가 생기지만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은 각 가정의 이해득실을 계산해보았다. 신재강ㅡ홍단희의 아이들은 남자아이 둘로 3살 5살, 고여산ㅡ강교원의 아들 4살 젖먹이 세아 외에 새 입주민 요진과 은오의 딸 시율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에는 나이가 많은 6살 그리고 효내는 아직 젖먹이이다. 결국 서너살 남자 아들 사이에서 시율이는 정당한 케어를 받기는 커녕 어른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고 시간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효내는 아기가 잠든 새 짬을 내 일하는 시간마저도 박탈당한다. 결국 제일 부산하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두 사내 아이를 가진 홍단희네가 이 공동 양육 시스템에서 가장 큰 파이를 가져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홍단희의 남편 신재강은 그 중 제일 번듯한 직장을 가진 듯한데 마침 차가 고장나자 당사자인 요진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남편 은오가 선심쓰듯 카풀을 제안하고 거절할 틈도 없이 얼씨구나 얍싸빠르게 기름 넣어주라고 홍단희가 거들어 카풀을 하는데 조수석에 외간 남자를 태운 요진은 영 불편하고 어색한데 재강이 자연스레 대화를 잘 트는 듯하더니만 무슨 자동차 수리를 몇날 몇일씩 하는지 일부러 그러는지 카풀을 하는 기간은 길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신재강의 태도는 딱잘라 작업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낌새의 불편한 작업성 멘토가 시작되고 이것은 점점 더 노골적이면서 집요하게 변해간다. 그러나 이를 문제 삼기에는 신재강이 너무 고단수이며 아무 뜻 없이 선의로 혹은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면 자기만 예민하거나 정신병자 취급받을 행동에서 멈추는 것이다. 급기야는 약국까지 찾아오고 홍단희가 없는 틈을 타서 저녁 약속까지 혼자 잡아놓고 집요하게 문자를 보내는 그를 더는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말하려 집으로 들어갔는데 홍단희네가 짜진 틈을 타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피자며 햄버거 같은 걸 사주고 키즈 카페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돈을 자기 카드로 긁어 생생을 내고는 아이들은 돌조지고 않은 채 강교원과 미장센이 어쩌고 하며 영화 얘기에 빠져 낄낄거리고 있다. 급하게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니 사내 애들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겪던 시율이가 엄마를 보자 울며 달려 들어 자기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한다.아이가 그동안 어떤 환경에 내몰렸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애초 외벌이에 세자녀 출산이 이런 출산장려용 공동주택의 저럼한 임대와 같은 방법으로 가능한 거였다면 우리나라 출산률이 1.1프로를 기록하고 있진 않을 거였다.여러 버전의 <72년생 김지영>의 사연을 보다 생생하게 내 일 내 이웃의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묘사한 이 소설은 구병모 특유의 판타지를 기대했던 내게 처음 부분은 실망스러웠다. 이건 소설이 아니야 오늘이라도 당장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건네는 이웃의 똑같은 현실의 일부야 싶어 읽어나가기 싫어졌었다. 하지만 곧 구병모의 치열한 언어로 직조된 다양한 삶 속에서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조용한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공동체라는 허상을 보여주는 것 만은 아니다.각기 다른 곳을 보면서 쫓기듯 내몰린 개개인의 삶이 무심코 휘두른 작은 권력에 얼마나 폭력적으로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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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 변화하고 싶다면, 새롭고 싶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김창옥의 인생특강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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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와 어쩌다 어른에서도 본 것 같은데, 미국 사는 친구 하나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열심히 들었다는 강연을 카톡으로 주소를 보내주곤 해서, 일삼아 듣고 있을 시간은 없고 해서, 책으로 읽었다. 물론 책의 내용은 여기 저기서 한 강의 내용을 엮은 것으로, 강연체이고 많지는 않지만 중복적 내용도 눈에 띈다.


저자가 TV에서만 강연을 하는 게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을 누빈다. 스타 강사의 몸값이 엄청 비쌀텐데, 차로 1년에 지구 두바퀴 거리인 7만 킬로를 이동한단다. 이렇게 일하면서도 10년 동안은 모텔에서만 자다가 한 번은 강의했던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호텔에서 자고난 이후로 호텔에서 쾌적하게 잠을 자기 위해 호텔에서 자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연은 남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건데, 그게 전문 지식이면 간단하지만 자기계발적인 텍스트라면 각기 다른 삶을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청중에게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할 거 같다. 김창옥은 그 일을 누구보다도 성공적으로 잘해내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는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보이고 소통하는 게 제일 잘 통한다. 현재 잘 나가는 강사지만, 한 때 좌절했던 순간이 있고, 여러 종류의 힘든 고비가 인생의 마디 마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중혁 작가가 작가들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 뜯어먹어도 언제나 새롭게 푸릇푸릇 다시 자라는 풀밭이라고 했던 것처럼, 힘겹게 지나온 시간들은 직업적 강사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영감을 준다.


딱히 힘겹거나 괴로운 경험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많은 사건에서 강연의 소재와 영감을 찾는다. 대부분의 강연은 저자의 경험이나 누구누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 스치며 지나간 짧은 단상 같은 것들 말이다. 1시간 짜리 강연을 하려면 20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던 친구 말이 생각나는데, 강연을 할 때마다 매번 내용이 다른 강연을 하고, 다른 전문 강사들처럼 자료 준비를 남에게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한단다.



앞서 강의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호텔에서 자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 에피가 재밌다. 호텔에서 자고난 후에는 비치된 샤워젤 같은 물품들을 매번 가져왔었는데, 1~2년이 지난 어느날 자신이 이제 어느정도 부유해졌으니 이런 걸 가져가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고백하기를 자신이 아직 냉장고에 비치된 물과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십만원 하는 호텔비를 결재하면서 왜 몇천원하는 물은 못마시지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아무리 고급 호텔이라도 물은 그냥 주지 않던가? 나는 저 분처럼 부자도 아니지만 여행 중 호텔 가서 1회용 비치품을 챙겨오지는 않는다. 이게 가치관의 차이인데, 예전엔 간혹 예쁜  것들을 기념품 삼아 가져와봤지만 뒹굴리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안가져온다. 하 지만 마찬가지로 냉장고 안의 맥주 같은 걸 마셔 바가지쓰지는 않는다. 들어올 때 편의점 같은 데 들러서 사온다. 그래서 그 강연의 내용은 뭐냐 하면 누구나 자기에게 아낌없이 쓰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는 거다. 당연한 말씀, 외식하거나 술마시는 데는 몇만원 몇십만원도 안아까운 사람이, 화장실 불 켜고 다닌다고 잔소리질 하는 거 보면 그렇다. 옷 사고 명품 가방 들고 좋은 화장품 쓰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꾸미는 데는 재벌딸처럼 쓰다가도 밥한끼 안사는 얌체족도 다 친구가 있는 거 보면 그 친구는 소박하게 꾸미면서 절대로 밥값을 내지 않는 친구와 같이 밥먹고 커피 마시는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 친구가 있기 때문일 거다.


이 분 강연을 들으면 굉장히 재밌고 뭉클한데, 책으로 읽으면 뭔가 강연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안느껴진다. 목소리 톤과 강연 분위기 같은 것이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책 자체가 강연체인 습니다 체로 쓰여있어 가볍게 읽히는 면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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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7-13 20:5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런데 말도 잘하면서 글도 잘 쓰는 사람 막 생각났어요. 유시민이요. ㅋ

양철나무꾼 2018-07-1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강의 몇 개를 다시 듣기로 들었는데,
청중과 대화 형태로 고민 상담하는걸 보고 이 분 강의를 들어봐야겠다 싶었어요.
말을 쉽게 편하게 막 하는 것 같은데,
그 청중이 얘기를 할때 일단 어느 정도 다 들어주더라구요.
듣기를 통해 알아낸 정보를 적용시키는 과정을 보고,
사람들이 김창옥 김창옥 하는 이유를 알겠다 싶었어요.

이제는 강의를 본인이 혼자 준비하지는 않고 준비해주시는 두명의 직원이 있다고 하는 걸 들었어요.
그래도 청중과 고민 상담 하는 건 그때 끄때 이루어지는 듯,
누가 따로 준비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싶었습니다.

또 한가지, 그게 강의이고 강의에서 보여주는 쇼맨쉽이 되겠지만,
좀 과장되다 싶었었습니다, 전.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CREBBP 2018-07-13 20:59   좋아요 1 | URL
저도 강연을 몇개 듣긴 했는데 참 재밌게 하더라구요. 청중들을 까르륵 넘어가도록 웃기고 또 눈시울 붉히게 만들고. 저는 저 책에서 김창옥 어머니가 했었던 말인가가 생각나요. 얼마나 애썼겠냐고 걱정하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