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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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할만큼 잔혹한 방법으로 엄청난 인명을 학살하고, 학대하고, 억압한 대가로 핵심 세력들이 전쟁에 패한 후에도, 그 땐 그것이 선의였다고 천황을 위해 확장하고 뻗어나가 세계를 재패하게 될 천황과 제국을 위해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여전히 믿으며, 편안한 일상 속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 이웃에 봉사하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사과도 없이, 전범 재판조차도 없이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그 전범집단을 단죄하지 않고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단죄되지 못한 역사, 뉘우치지 못한 역사,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역사는 그 역사의 고통과 책임을 여전히 피해자와 역시 피해자에 불과했던 권위에 복종했던 약자의 말단에게 전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비현실적인 치명적 사랑과 비현실적인 포로 수용소의 강제 노역. 가슴 밑바닥 그 섬세한 잔뿌리까지 치밀한 언어로 직조한 위험한 사랑과,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의 극한을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선명한 UHD 화질로 나노 마이크로 단위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내보내는 다큐같은 포로 생활. 이 절대로 타협 불가능한 두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 과거 속의 미래, 과거 속의 과거, 많은 등장 인물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쏟아낸다. 

개인의 생각과 의지가 모두 박탈된 채로 전체 속 이름없는 부품이 되어 바닥까지 드러난 에너지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는 혹독한 노동의 끝에 비참한 죽음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했을까. 일본이 한 짓은 평범한 우리와 다름없는 유전자의 조합을 가진 인간이 한 짓이지 동물이나 외계인이 한 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토록 충실히,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잔혹한 만행을 우주적 선의로 믿으며 전장 속을 누비고 전후에는 자상한 부모 봉사하는 시민으로서의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는 나카무라의 계속되는 삶과 사고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단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폐허를 일구며 후대와 섟일때 스며드는 가치관을 주목한다. 반성하지 않은 전범들의 계속되는 삶을 끄트머리까지 집요하게 쫒아가 꾸역꾸역 마지막 조명을 비춘다. 

작가가 원한건 그 끔찍했던 기억의 리얼리티 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계속 그러니까 역사이기 때문이다. 버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 이야기로 끝맺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전쟁이 처리되는 침략국과 자본주의의 밀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국으로 포장된 전체주의와 왜곡된 역사책을 통해 후대에 그들만의 선의가 차곡차곡 계승되고 있음을. 그리하여 기억해야한다.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기에 진정으로 단죄받지 않았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그들을 대신하여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렇게 죽는 이유를 오로지 그나마 받지도 못한 50엔 말고는 떠올릴 수 없었던 조선인 경비병들의 외로운 죽음을.

도리고는 죽음이 일상화된 곳에서 만연된 죽음을 유예시키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매일매일 영양 실조와 콜레라와 구타와 강제노역으로 죽어가는 포로들을 목격하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까지 살리려고 애쓴다. 어차피 몇일 후면 죽을 사람들 한 둘이 더 먼저 죽거나 더 나중에 죽거나 큰 차이가 있을것 같지 않지만 그렇게 버티고 버텨 살아난 사람들이 전쟁의 끝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뒤돌아보면 ‘장하다 살아남아줘서’지만 당시 전세는 기울었을 테고 연합군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을테니 혹독한 노동과 짐승보다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할 희망을 붙드는 이유가 찾아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유보다 더 많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어긋나서 비껴간 사랑이 있다. 전쟁이 가져다 주었고 전쟁이 갈라 놓은 사랑. 헤어지지 않고 이어졌더라면 일상과 권태와 자잘한 의견 충돌로 얼만큼은 희석되고 또 얼만큼은 분해되고 증발해가고 말았을지도 모를 그 알 수 없는 감정 사랑이 그토록 평생을 잊지못하고 그리워만 하면서 실체없이 마음을 차지했던 이유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이 비껴가면 그 비껴간 간극의 아슬아슬함 만큼이나 남은 평생동안 부풀어간다. 환상으로 물을주고 안타까움과 그리움으로 영양을 공급하여 크고 든든한 나무로 가슴속에 뿌리박은 그 비껴간 사랑은 다른 이에 대한 또 다른 맹세와 약속을 배신하고 속임으로서 잉태된 것이기에 독자들에게조차 온전하게 지지받을 수 없는 불길한 사랑이다. 하지만 응어리의 씨앗 배속에서 칼날이 휘젓고 찌르는 느낌의 실체를 알고 났을 때 그리고 남편과의 한세대가 넘는 나이차를 알게 되었을 때에야 에이미의 간통 역시 단순한 욕망과 육욕에의 갈증 만이 아닌 폭력적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가늠하고 마음 아팠다. 

'오스트레일리아판 전쟁과 평화'라는 한 미국 유명인의 인용이 뒷표지에서 눈에 띈다.각기 다른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 세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꼬이고 얽히는 대신 사랑 파트는 도리고와 에이미의 불륜에 따르는 치명적 감각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피와 살이 튀고 사지가 절단되고 창자와 장기들이 널부러져 나오는 전쟁 대신 전쟁 파트는 전쟁만큼이나 끔직한 수용소 실상을 묘사한다. 그토록 무고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 몬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때도 찾지 못했고 지금도 찾지 못했다. 프랑스도 일본도 나폴레옹도 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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