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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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출산우대정책으로 세자녀 출산을 조건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12세대 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은오와 요진은 먼저 입주한 세 가정에서 마련한 조촐한 환영식에 초대된다. 사람들이 처음 만날때 으례 묻고 답하는 질문, 은오와 요진은 이 질문이 편치 않다. 먼저 선수를 쳐 자신이 집안 일을 하고 아내가 돈벌러 나간다는 말에 앞으로 서로 도우며 한가족처럼 살아가게 될 이웃들은 아 그렇구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간만의 차이로 미리 입주하여 이미 누군가의 주도로 형성된 친목과 분위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교활한 방법으로 남의 아픔을 집요하게 캔다. 첫만남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는 거고 ‘제가 능력이 안되다 보니 아내가 출근을 합니다’ 라고까지 했으면 더는 캐지 않는 게 예의지 이런 거 물어도 되나 모르겠네 라고 하면서도 어디 다니냐고 묻고는 결국 약국에서 카운터보는 일로 세 식구 먹고 살아야 하는 누추한 속살을 캐내고야 마는데, 그 와중에서도 이웃의 직업적 품평회는 그치지 않는다.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의 그룹에는 좋게 말해 리더, 일반적으로는 자기 주장이 강한 한두 사람이 전체를 자기 편한대로 주무르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여기서 홍단희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무례하게 사생활을 캐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의 주장으로 몇 안되는 세대가 만든 그 규칙이란 걸 앞세워 사사건건 자기 뜻대로 공동체를 이끄는데, 이 인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현실에서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전형적 인간 군상이어서 답답했다. 입주 환영이랍시고 조리돌리듯 새 입주민의 사적인 질문을 퍼붓는 자리에 상낙의 아내 효내가 불참했다고 아이 혼자 데리고 나타난 그 집 남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시어멈들처럼 잘도 지껄이는 인간도 홍단희다. 젖먹이 다림이를 키우며 집에서 아기를 키우며 프리랜서라는 허울좋은 커리어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불참자 효내의 사정은 문자 그대로 눈물겹지만 경력을 지키고 싶은, 대한민국 모든 기혼모 여성의 이야기지만, 차라리 한 편의 서늘한 잔혹극에 더 가깝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 그렇다고 보수가 제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집안을 돼지 소굴처럼 내팽겨치고 밤을 새며 그려도 마감을 맞출 가능성도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효내는 시도 때도 없이 홍단희의 침입을 받는다. 이번엔 다 같이 하기로 한 재활용품 수거에 불참했다는 거.

이 입주민들은 역시 홍단희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집 대용의 공동양육 프로그램을 짜고 네 가정의 집사람들 함께 식사 및 여러 프로그램을 담당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일화가 생기지만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은 각 가정의 이해득실을 계산해보았다. 신재강ㅡ홍단희의 아이들은 남자아이 둘로 3살 5살, 고여산ㅡ강교원의 아들 4살 젖먹이 세아 외에 새 입주민 요진과 은오의 딸 시율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에는 나이가 많은 6살 그리고 효내는 아직 젖먹이이다. 결국 서너살 남자 아들 사이에서 시율이는 정당한 케어를 받기는 커녕 어른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고 시간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효내는 아기가 잠든 새 짬을 내 일하는 시간마저도 박탈당한다. 결국 제일 부산하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두 사내 아이를 가진 홍단희네가 이 공동 양육 시스템에서 가장 큰 파이를 가져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

홍단희의 남편 신재강은 그 중 제일 번듯한 직장을 가진 듯한데 마침 차가 고장나자 당사자인 요진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남편 은오가 선심쓰듯 카풀을 제안하고 거절할 틈도 없이 얼씨구나 얍싸빠르게 기름 넣어주라고 홍단희가 거들어 카풀을 하는데 조수석에 외간 남자를 태운 요진은 영 불편하고 어색한데 재강이 자연스레 대화를 잘 트는 듯하더니만 무슨 자동차 수리를 몇날 몇일씩 하는지 일부러 그러는지 카풀을 하는 기간은 길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신재강의 태도는 딱잘라 작업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낌새의 불편한 작업성 멘토가 시작되고 이것은 점점 더 노골적이면서 집요하게 변해간다. 그러나 이를 문제 삼기에는 신재강이 너무 고단수이며 아무 뜻 없이 선의로 혹은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면 자기만 예민하거나 정신병자 취급받을 행동에서 멈추는 것이다. 급기야는 약국까지 찾아오고 홍단희가 없는 틈을 타서 저녁 약속까지 혼자 잡아놓고 집요하게 문자를 보내는 그를 더는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말하려 집으로 들어갔는데 홍단희네가 짜진 틈을 타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피자며 햄버거 같은 걸 사주고 키즈 카페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돈을 자기 카드로 긁어 생생을 내고는 아이들은 돌조지고 않은 채 강교원과 미장센이 어쩌고 하며 영화 얘기에 빠져 낄낄거리고 있다. 급하게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니 사내 애들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겪던 시율이가 엄마를 보자 울며 달려 들어 자기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한다.아이가 그동안 어떤 환경에 내몰렸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애초 외벌이에 세자녀 출산이 이런 출산장려용 공동주택의 저럼한 임대와 같은 방법으로 가능한 거였다면 우리나라 출산률이 1.1프로를 기록하고 있진 않을 거였다.여러 버전의 <72년생 김지영>의 사연을 보다 생생하게 내 일 내 이웃의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묘사한 이 소설은 구병모 특유의 판타지를 기대했던 내게 처음 부분은 실망스러웠다. 이건 소설이 아니야 오늘이라도 당장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건네는 이웃의 똑같은 현실의 일부야 싶어 읽어나가기 싫어졌었다. 하지만 곧 구병모의 치열한 언어로 직조된 다양한 삶 속에서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조용한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공동체라는 허상을 보여주는 것 만은 아니다.각기 다른 곳을 보면서 쫓기듯 내몰린 개개인의 삶이 무심코 휘두른 작은 권력에 얼마나 폭력적으로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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