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미지는 잘 보셨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것이 과학의 데이터나
뜻 모를 세상의 조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세운 상상의 목표라고 믿는다면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나 
소르본 대학의 철학 교수가 된 후
20세기의 코페르니쿠스란 평가를 받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를 만나보세요.

글을 쓰는 것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 같습니다. 
상상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상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만나고 싶다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을 추천합니다.

*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생 이야기 읽기
http://goo.gl/NJPFMU

*
저서 《촛불의 미학》 소개 읽기
http://goo.gl/dUHy09

*
저서 《물과 꿈》 소개 읽기
http://goo.gl/lnGaXR

*
책 속의 한 줄

몽상가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채 다른 쪽으로 꿈꾸기 위해 떠나간다. 크게, 너무나 크게 꿈꾸면서, 세계에 대하여 꿈꾸면서.
- p. 26, 《촛불의 미학》

그는 시인인 것이다. 세계를 , 세계의 운명을 확대시키고, 불꽃의 운명에 대하여 명상함으로써 몽상가는 언어를 확대시킨다.
- p. 26, 《촛불의 미학》

사람은 자기 속을 명석하게 들여다보지만 그래도 꿈을 꾼다. 사람은 자기의 모든 빛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 p. 32~33, 《촛불의 미학》

은유란 무엇인가? 불꽃이 현자들을 사색하게 했던 먼 지식의 시대에 은유란 곧 사유였다.
- p. 42, 《촛불의 미학》

낡은 책 속의 지식은 죽었어도 몽상에 대한 흥미는 남아 있다. 
- p. 42, 《촛불의 미학》

잘 타는 것은 높이 탄다. 자신의 일을 끝낸 뒤에 단호하게 위를 향하고 자기의 본래 거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p. 51~52, 《촛불의 미학》

상상한다면 세계는 빠르게 흘러간다. 그리하여 철학자가, 세계에 대해 꿈꿀 때 모든 것을, 폭력이나 평화까지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 p. 56, 《촛불의 미학》

자살은 긴 내면적 운명으로서 준비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적으로 말하면 가장 준비가 잘 되어 행해진 완전한 죽음인 것이다.
- p. 153, 《물과 꿈》

불과 장난하는 자는 스스로를 불태우며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또 타인을 불태워버리기를 바란다. 신용할 수 없는 물과 장난하는 자는 물에 빠지거나 또 물에 빠져 죽기를 바란다.
- p. 156, 《물과 꿈》

상상력이란 순수하게 ‘물질적 상상력’인 것이다. 그가 꿈꾸는 것은 물질에 대해서이며,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의 열기이다. 부드럽고 따듯한, 훈훈하고 축축한 이와 같은 물질적 이미지들은 우리를 치료한다.
- p. 241, 《물과 꿈》

우화적인 것은, 먼 곳의 공상적인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꿈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먹는 것을 이야기로 꾸며낸다.
- p. 288, 《물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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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aal 2015-08-2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통 바슐라르? 자기 자신이 세운 상상 속의 목표...한 마디 한 마디 소개 말이 궁금증과 매력을 갖게 하는데요~~~

문예출판사 2015-08-25 09:19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바슐라르의 책들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뭐랄까요. 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그런 느낌이 있는 책인 것 같아요.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책들이 많아서 문학이론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 저술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글을 쓰고자 하시는 분이라면 꼭 만나야 할 작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 가득한 하루 보내시구요.~

책이좋아 2015-08-2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통 할배의 잠언이로군요. 전 뉴스로 접하는 가쓰통 할배들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옹은 좀 다른 듯 합니다. 저는 지식이 짧아서 에릭호퍼 옹만 알고 있었는데, 가스통 옹도 알게 되어 기쁘네요. ^^

문예출판사 2015-08-25 09:23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에릭 호퍼는 모르고 있었네요. ㅜㅜ 가스통 할배님의 책은 잠언집이라기 보다 문학 평론집에 더 가깝습니다. 문학 혹은 상상에서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을 찾아가는 내용들이 많아요. 상상을 통해 어떻게 삶을 묘사하는가 이런 것들을 알고 싶을 때 꼭 만날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 혹, 잠언과 같은 내용을 좋아하신다면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을 꼭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 유머도 있고 성찰도 있고 인간적인 요소도 많아요.^^ 강추하는 작가입니다.~

책이좋아 2015-08-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스통 옹의 책은 잠언집이 아니라 문학 평론집이로군요. 그리고 미셸 투르니에라는 분도 처음 알았네요. 덕분에 몰랐던 분들을 알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
 



EBS 낭독a에서 가수 김형중 님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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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 명작 중의 명작 셀린져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최고의 낭독으로 만나실 기회가 아닐까요?

지난 8월 9일부터 EBS 낭독 a에서 가수 김형중 님이 문예출판사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랑 다시듣기하고 있어요."라며 가수 김형중 님의 목소리를 칭찬한 청취자 김*영 님의 댓글이 기억에 남네요.^^ 주인공 콜필드의 거친 입담이 어떻게 표현되었기에 어머니와 같이 듣기 좋은 낭독이 되었을까요?

궁금하시다면 EBS 낭독a 홈페이지에서 다시듣기를 클릭해보세요.^^

김형중 가수님의 목소리가 궁금하시다면 대표곡 '좋은 사람', '그랬나봐'나 MBC 드라마 위대한 조강지처 OST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낭독 콘텐츠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EBS 낭독a 홈페이지 가기
http://goo.gl/yzAyG6

*
<호밀밭의 파수꾼> 서점가기

알라딘 http://goo.gl/OZX4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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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북섹션에서 지난 70년 간 가장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를 정리했네요.
지난 70년… 우리는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1945년부터 2014년까지 대중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줬던 70권의 베스트셀러로 시대의 흐름을 만나보세요.
^^

70권의 베스트셀러는 첨부한 이미지나 아래 기사 전문읽기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 전문 읽기
http://goo.gl/ZCtWwf
 

*

덧붙이는 글

위 <조선일보> 기사에는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현대한국출판사》의 자료가 일부 인용되었습니다. 1945년~2010년까지의 출판 역사를 담은 《현대한국출판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여 주세요.
http://goo.gl/Qzue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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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건독서 2015-08-17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자기계발서들이.많이.읽히는.군요

문예출판사 2015-08-18 10:08   좋아요 0 | URL
2015에 가까워질수록 자기계발서나 그와 비슷한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가능하면 많이 읽히는 책들이 `경쟁`이나 `이기심`보다 개인과 사회에게 유익한 가치관을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다가오는 광복70주년이 오기까지, 광복기(1945~1949)의 대표 출판인을 소개하는 연재의 3화 주인공은 삼중당을 설립한 서재수 대표님입니다. 4, 50대 분들이 《삼중당문고》를 통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혹 옛날 생각이 나신다면 《삼중당문고》를 펴낸 출판사 삼중당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

한국 출판의 개척자, 광복기(1945~1959)의 출판인들

 

3화

대중출판의 대표주자 서재수(《삼중당문고》)

서재수(1907~1978)는 도서출판과 잡지, 서적 도매상과 소매업에서 선두를 개척한 출판인이다. 그는 1931년 3월에 관훈동에 있던 지신당이란 고서점을 인수하면서 출판계에 '정식'으로 투족했다. 그의 나의 스물다섯이 되던 해다. '정식'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비록 잠깐씩이지만 그 이전에 근화당 서점과 동양서원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고, 책을 자전거에 싣고 행상도 하면서 출판업의 요령을 익힌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신당은 크기 4평이 될까 말까 한 아주 작은 규모였다. '딱지본' 판매로는 성이 차지 않은 구암(서재수의 호)은 지신당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난 5월 1일, '삼중당(三中堂)'이란 이름으로 《하얼빈 역두의 총성》을 처녀출판한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 일본 잡지 《중앙공론》에 희곡작품으로 게재된 것을 번역한 것인데, 2,000부를 찍었다. 이 책을 첫 출판물로 삼은 것을 보면 서재수의 출판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시국은 푹풍전야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을 때였다.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기 불과 반 년 전의 일이다. 다시 말하면 일제가 전시체제에 돌입해 더욱 폭압적인 식민통치를 강화하려는 때였기에, 이 책을 출판하고는 한참 동안 경찰서에 끌려다니며 혹독한 시달림을 당하게 되고 끝내 '활자 방해'란 모호한 이유로 발행금지 처분을 받아야만 했다. 출발부터 갖은 고통과 핍박의 출판역사를 이어간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저자 겸 발행인으로 서재수가 아닌 이태호로 표시되어 있고, 삼중당은 발행소 및 총판매소로만 판권에 표기(삼중당이란 이름을 표시하지 않고 회사 주소와 판매처만 표시)하고 있어서 그 배​경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태호는 행림서원을 경영하면서 한의학 서적을 주로 출판하면서 구암(서재수)의 출판사 창업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자금은 전액 구암(서재수)이 출자해 출판했다. 그런데도 발행인의 이름을 그렇게 밝힌 이유가 분명치 않다. 앞으로 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 이 책의 총판매소로는 삼중당과 함께 자서당 서점과 문산당 서점이 나란히 기재되어 있고, 책 뒷면에는 발매소로 경문서점에서부터 활문사까지 서울의 20개 서점의 주소, 대체구좌 번호가 가나다순으로 실려 있어 이들 명단을 통해 당시 경성의 유수한 서점들의 실태와 거래방식의 일단을 살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삼중당은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이광수의 《춘원서간문범》, 육당(최남선)의 《조선역사》​와 《고사통》, 김동환의 《조선명작집》과 기행문집 《반도산하》, 노춘성의 《나의 화환》, 《흑장미 필 때》, 이기영의 《처녀지》 등 히트작을 연달아 펴낸다. 이 책들은 출판되자마자 선풍을 일으키고 전국서점에서는 연일 주문이 빗발쳤다. 1939년경에는 종로 2가 화신백화점 건너편에 지점도 개설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삼중당은 40년대 초,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출판활동을 중단당하고 한동한 침잠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춘원서간문범》(좌) 《안중근사기》(우)

8·15광복은 그에게 다시 한번 출판인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대업을 이룩하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해방과 더불어 대중출판을 지표로 새롭게 출발한 삼중당은 첫 작품으로 김춘광의 희곡집 《안중근사기》를 이듬해 1월에 출판한다. 그는 출판의 시기를 살필 줄 아는 출판기획자였다. 수십년 전 발행금지 당했던 육당(최남선)의 《조선역사》에다 긴습히 '해방독립운동의 유래' 1장을 추가하고 서문을 새로 붙여 《신판 조선역사》를 꾸며내는 기민함을 발휘한다. 초판 10만부가 몇 달 만에 매진될 정도로 잘 팔려나갔다. 용지 구하기가 말할 수 없이 힘든 때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중판을 거듭했으니, 육당의 아들이 경영하던 동명사는 거액의 인세수입으로 재기 제1호 출판물인 《조선독립운동사》의 실패로 생긴 차용금을 갚고 다음 출판물인 《조선상식문답》의 출판비용으로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최한웅은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술회한 바 있다.

1946년 6월에는 주식회사 체제로 개편하고 일제강점기에 공전의 인기를 불러일으켰던 책들을 고쳐서 다시 출판할 뿐만 아니라 《현대교육학》(권혁풍), 《논리학》(김기석) 등 학술서적에서부터 문학, 역사, 경찰실무에 이르는 일반도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등 조선역사》, 《초등 모범전과》 같은 교과서 및 학습참고서부터 《삼중당 대중문고》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정열적으로 출판을 이어간다. 그리하여 광복기 5년 동안 대단히 많은 출판 실적을 쌓았다.

그 기간에 발행된 출판종수를 집계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현재까지 실물을 통해 확인 가능한 목록만도 60종에 이르고 있다. 전란을 격는 동안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휴전 이후에는 《이광수전집》(전 20권, 1963년 완간) 등 우리 출판사에 기록될 대표적인 출판물들을 연달아 출판, 더욱 승승장구했다. 《이광수전집》은 개인전집 간행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최요한의 KBS 라디오 방송원고를 묶은 세계의 명언집 《마음의 샘터》(1964)는 출판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월간 《수험연구》(1953년 창간)를 시작으로, 온 국민의 오락잡지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월간 《아리랑》(1955년 창간)의 여세를 몰아 《소설계》(1958), 《주간춘추》(1959), 《지성》(1962), 《문학춘추》(1964) 등을 잇달아 창간해 한때는 한국 잡지계의 왕자로 군림한다. 특히 시인 김규동 주간, 임진수 편집장의 이름으로 발행된 《아리랑》은 건전한 대중문화 향상과 전쟁으로 상처입은 독자들을 위로하는 데 크게 기여한 건국 후 최초의 대중오락지란 평가를 받았다.

 

《이광수 전집》

 

월간 《아리랑》​ 창간호

1973년 1월, 삼중당은 2대 사장으로 서건석(1934~1985)이 취임해 제2의 도약을 이룩한다. 서건석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자 1957년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그의 옆에는 항상 고교동창이자 대학동창인 노양환이 편집책임자로 콤비를 이루며 대형 전집물과 염가판 도서를 골고루 펴내어 출판계를 평정하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서건석은 "정의롭고 통찰력이 남달랐을 뿐 아니라 현실감각도 뛰어난 이"로 "틀도 통도 큰 데다 성품이 소탈하고 출판자로서 갖춰야 할 자질이 빼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출판한 많은 출판물들 가운데서도 《삼중당문고》(1975년 2월에 100권을 한꺼번에 출간하고 매달 10권씩 1990년까지 500종 간행) 발간에 특히 힘을 쏟았다. 문고출판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시도되었다. 그러나 오래 지속해서 출판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불모지나 다름없었는데 유독 이 문고만은 지금 40~50대 사람들 중에서 중고교생 시절에 애독자가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삼중당 대중문고》(좌)《삼중당문고》(우)

그는 출판계 전체를 위한 일에도 발 벗고 뛰어다녔다. 그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 어엿한 출판문화회관(대한출판문화협회)을 마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출협의 총무상무이사를 맡고 있던 그는 자신이 제일 먼저 5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건립기금으로 쾌척해 주의를 놀라게 했다. 500만원이면 당시 대지 90㎡짜리 주택 한 채 값이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모금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던 일은 아름다운 미담으로 지금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한창 일할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고 만다. 52세 되던 1985년의 일이다. 삼중당은 창업자 구암(서재수)이 향년 73세로 별세한 지 겨우 7년 만에 2대 사장까지 잃은 것이다. 서건석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자 60년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온 삼중당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경영난으로 결국 1990년 말에 인쇄업자의 손에 넘어가면서 사실상 막을 내리고 만다.

 

그렇지만 삼중당의 진면목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삼중당은 광복이 되던 해 11월 서적도매상을 시작했다. 현대 출판의 역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도매상이었다. 각종 팸플릿들은 대부분 가두판매로 ​이루어졌지만, 다소 무게 있는 서적들은 서점을 통해야 했는데 마땅한 공급기구가 없을 때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서적 공동판매기구 설립을 제창해 업계여론을 창도한다.

 

1973년에는 일본에 '한국서적센터'라는 이름의 도쿄 지사를 설치해 국내도서의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것도 획기적인 역사적 업적에 속한다. 우리 출판사상 정식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해외에 지사를 설치한 것은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일이다.

 

삼중당이란 상호는 구암이 평소에 생각해온 신념의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첫째는 그에게 맞아야 하고, 둘째는 우리 민족에게 맞아야 하며, 셋째는 온 인류에게 맞아야 한다는 출판철학을 지향했다. 또한 중용의 동양철학에도 심지를 두었다. 삼중당이 6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펴낸 수많은 책들이 이러한 그의 출판철학과 꿈을 얼마나 달성했는가는 새삼 따질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서재수는 1968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감회 어린 말을 남겼다.

 

"1931년 삼중당 간판을 내 손으로 걸고, 일제의 핍박과 고초를 겪으면서 출판할 때의 장쾌함이 이제는 모두가 추억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해방 후 20년도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월간 잡지에서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형태를 가리지 않고 활자로 성책될 수 있는 책이란 책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중략) 출판은 자전거처럼 멈추면 쓰러지는 곡예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출판은 국민계몽과 민족문화 향상에 보탬이 되고, 내 나라 내 민족에 이바지함이 없이는 책을 펴내는 큰 뜻이 없는 것입니다. 이 길에 들어서 벌써 40년 세월은 흘러 사람도 낯설어지고, 저마다 출판의 걸어가는 길목도 펄이나 달라지고 있습니다. (중략) 이제 우리 출판계도 여명기를 지나 점차 자리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확실히 기틀이 잡혀가는 진통의 소리가 귀에 들립니다. 기업으로서의 출판의 터전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도 험난한 길을 헤매다 보니 얻은 것은 나이뿐이요, 지나온 길은 아득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소회를 한 편의 시로 읊은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60 평생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

출판보국(出版報國) 어려워라

가시덤불 헤매다가​

서산낙일(西山落日) 저물었네.

이후란 물결 따라​

분수(分數)대로 늙으리라.

1화. 정음사 최영해 : http://goo.gl/YL2oCW

2화. 을유문화사 정진숙  : http://goo.gl/Ot4QgH

3화. 삼중당 서재수  : http://goo.gl/jeccyF

 

​3화 끝.



*
자료 출처 《현대한국출판사》서점가기

알라딘 : http://goo.gl/676N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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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5-08-1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시절, 삼중당 문고를 읽고 성장한 <삼중당 문고 키드>입니다.
서점에 가면 더욱 심해지는 정신적 허기를
삼중당 문고를 한권 한권 사서 읽으며 채우곤 했지요.
문고판으로 나오던 철학자 김형석씨의 수필집을 포함한 10권짜리 전집을
큰맘먹고 사들이던 날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생애 최초로 소장한 전집이었으니까요.

그 시절, 미국으로 이민가는 여자친구에게 선물한 것도
옛 서울공대 캠퍼스에서 주워 책갈피로 넣은 은행잎과 함께한 삼중당 문고 책이었구요.
삼중당, 잊지 못할 내 마음의 출판사입니다.

yamoo 2015-08-1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까지 삼중당 문고본 30여권 갖고 있어요...ㅎ
 

다가오는 광복70주년이 오기까지, 광복기(1945~1949)의 대표 출판인을 소개하는 연재 2화 주인공은 을유문화사의 정진숙 대표님입니다.

을유문화사를 좋아하시는 분들 정말 많이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정진숙 대표님께서 독서신문과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출판저널을 창립하셨다는 건 문예남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요.

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 을유문화사를 좋아하시는 분, 덤으로 문예출판사에 호감이 있으신 분은 읽어보세요.^^

 

 

*

한국 출판의 개척자, 광복기(1945~1959)의 출판인들

 

2화

한국출판 발전을 이끈 출판계 대부 을유문화사 정진숙 


을유문화사는 1945년 12월 1일, 30대 초반의 혈기방장한 젊은이 4명이 주역이 되어 설립했다. 훗날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민병도(사장, 1916~2006)가 사업자금을 책임지고, 은행원 출신인 정진숙(전무,1912~2008)이 살림과 자재보급을 도맡아 재정을 관리했다. 문인이자 편집경험이 풍부했던 윤석중(편집상무, 1911~2003)과 조풍연(주간, 1914~1991)은 출판기획 및 편집을 공동으로 책임졌다.

민병도가 전무로 천거해 창립동인으로 참여하게 된 정진숙은 생소한 분야라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출판사 창업에 동참한 데에는 국학의 태두인 위당 정인보(1893~1950)가 "출판이야말로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 역사와 문화, 그리고 말과 글을 소생시키는 일종의 건국사업"이라며 적극 권유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출판사 창립에 뜻을 모은 네 사람은 최종적으로 1945년 11월 30일 경운동 민병도의 집에서 창립발기인 모임을 갖고, 이튿날인 12월 1일 을유문화사를 정식으로 발족했다. 사무실은 종로 2가 82번지 영보빌딩에 두고 도서출판을 중심으로 도서의 판매 및 수출입은 물론 대대적인 문화운동을 전개하기로 다짐했다.

창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1. 원고를 엄선해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자,

2. 교정을 엄밀히 해 오식(틀린 글자를 인쇄함)이 없도록 하자,

3. 제품을 지성(정성)으로 해 독자의 애호(사랑)를 받자,

4. 가격을 저렴하게 매겨 독자에게 봉사하자

고 출판에 임하는 네 가지 기본수칙을 '을유의 지향'으로 내세운 것은 이러한 을유의 출판 정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을유가 처음부터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출판을 시작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초창기 을유문화사의 출판활동은 이렇게 해서 학술 및 성인용 교양도서는 을유문화사에서, 아동도서 발행은 조선아동문화협회(약칭 '아협')를 통해서라는 이원적인 방향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두 금융인과 편집에 일가견을 가졌던 두 문인의 절묘한 결합은 자금력이 뒷받침된 무서운 추진력이 더해지면서 단숨에 굴지의 출판사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본격적인 출판활동은 창립 이듬해인 1946년 들어서 시작되었다. 2월, 한글을 익히기 위한 글씨본인 이각경의 《가정글씨체첩》을 처음으로 내놓은 을유문화사는 그해 무려 35종의 책을 펴내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같은 해 전국에서 발생된 출판종수가 1천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글씨체첩》
 

1947년에 33종, 48년 62종, 49년 46종, 50년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18종 등 194종의 목록을 갖게 되는데 이 가운데는 1947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조선말큰사전》(전6권) 첫째 권을 펴냄으로써 한국출판사에 큰 획을 긋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나온 책으로는 《청록집》, 《조선문화총서》, 《을유문고》 등 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주옥같은 목록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단순히 좋은 책을 펴내는 데만 그치지 않고 펴낸 책을 원할하게 보급하기 위해 1947년 3월에는 판매부 성격의 서점 '문장각'을 개설한다. 문장각은 판매체계가 정비되지 못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을유문화사 책만 아니라 국내도서의 도·소매를 겸한다.

​왼쪽부터 《청록집》, 《주간소학생》

을유문화사는 창업과 함께 아동문화의 선독적 창달에도 힘을 기울이기로 함의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아협도 개설하고 윤석중을 표면상 대표로 정했다. 아협의 이름으로 《주간 소학생》(뒤에 월간으로 변경)과 아동도서 출판도 겸했다. 그러나 6·25전쟁 중에 사옥이 불타면서 사세가 위축되자 설립동인들도 차례로 손을 놓고 떠나가는 시련을 겪었다. 이때부터 세계적인 출판사로 성장해간 을유문화사의 화려한 역사는 정진숙 혼자의 힘으로 쓰여갔다. 정진숙 회장 단독 경영체제로 전환된 '을유'는 재건작업에 박차를 가해 1954년에는 진단학회와 함께 최초의 한국통사인 《한국사》를 기획, 65년가지 전7권을 완간했다.

​이어 1960~1970년대에는 《세계교양사상전집》(전39권), 《한국학백과사전》(전3권), 《세계문학전집》(전100권) 등 굵직한 기획물들을 내놓으며 가장 우수한 도서를 출판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사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을유의 성장세는 80년대 들어가면서 대내외적인 환경변화가 찾아오고 정진숙이 대외활동에 진력하는 동안 다소 주춤해졌지만 2000년부터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특유의 사업수완과 넓은 인맥을 활용해 국내 굴지의 출판사로서의 입지르 굳히는 한편, 12년간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30년간 한국출판금고 이사장을 지내는 동안 《독서신문》《출판저널》의 창간을 비롯해 대형서점의 원조 격인 '중앙도서전시관'을 만드는 등 우리나라 출판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일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무리를 하지 않는 원만주의자란 평을 받아왔다. 이처럼 오랫동안 출판단체의 책임을 맡을 수 있었던 힘은 여기에 있다. 정·관계와 금용계 광범위한 분야의 고위인사들과 각별한 교분이 있는 것도 이익단체로서 출협 들의 활동을 통한 출판발전을 이룩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우수한 도서를 다수 출판해 국내외에서 한국출판의 품경을 높인 업적과 역사를 남겼고, 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던 위대한 출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도 '출판계의 대부'로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 고희를 기념해 출협이 《출판인 정진숙》​(1982)을 펴냈고, 2007년에도 똑같은 이름의 평전을 을유문화사에서 펴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구술 채록집 《정진숙》을 남겼으며 《을유문화사 50년사》와 함게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그동한 출간한 5,000여 종 가운데 주요 도서를 한데 모아 업적을 되돌아보는 전시회 《을유문화사 출판 60년》을 개최하는 등 을유문화사와 정진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는 비교적 충분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1화. 정음사 최영해 : http://goo.gl/YL2oCW

2화. 을유문화사 정진숙  : http://goo.gl/Ot4QgH

3화. 삼중당 서재수  : http://goo.gl/jeccyF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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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현대한국출판사》서점가기

알라딘 : http://goo.gl/676N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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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5-08-1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바름을 이해하게 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