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오는 광복70주년이 오기까지, 광복기(1945~1949)의 대표 출판인을 소개하는 연재 2화 주인공은 을유문화사의 정진숙 대표님입니다.
을유문화사를 좋아하시는 분들 정말 많이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정진숙 대표님께서 독서신문과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출판저널을 창립하셨다는 건 문예남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요.
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 을유문화사를 좋아하시는 분, 덤으로 문예출판사에 호감이 있으신 분은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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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의 개척자, 광복기(1945~1959)의 출판인들
2화
한국출판 발전을 이끈 출판계 대부
을유문화사 정진숙

을유문화사는
1945년 12월 1일, 30대 초반의 혈기방장한 젊은이 4명이 주역이 되어 설립했다. 훗날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민병도(사장, 1916~2006)가 사업자금을 책임지고, 은행원 출신인 정진숙(전무,1912~2008)이 살림과 자재보급을 도맡아 재정을 관리했다. 문인이자 편집경험이 풍부했던 윤석중(편집상무, 1911~2003)과 조풍연(주간, 1914~1991)은 출판기획 및 편집을 공동으로 책임졌다.
민병도가 전무로 천거해
창립동인으로 참여하게 된 정진숙은 생소한 분야라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출판사 창업에 동참한 데에는 국학의 태두인 위당
정인보(1893~1950)가 "출판이야말로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 역사와 문화, 그리고 말과 글을 소생시키는 일종의 건국사업"이라며 적극 권유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출판사 창립에 뜻을 모은
네 사람은 최종적으로 1945년 11월 30일 경운동 민병도의 집에서 창립발기인 모임을 갖고, 이튿날인 12월 1일 을유문화사를 정식으로
발족했다. 사무실은 종로 2가 82번지 영보빌딩에 두고 도서출판을 중심으로 도서의 판매 및 수출입은 물론 대대적인 문화운동을 전개하기로
다짐했다.
창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1. 원고를
엄선해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자,
2. 교정을
엄밀히 해 오식(틀린 글자를 인쇄함)이 없도록 하자,
3. 제품을
지성(정성)으로 해 독자의 애호(사랑)를 받자,
4. 가격을
저렴하게 매겨 독자에게 봉사하자
고 출판에 임하는 네 가지
기본수칙을 '을유의 지향'으로 내세운 것은 이러한 을유의 출판 정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을유가 처음부터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출판을 시작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초창기 을유문화사의
출판활동은 이렇게 해서 학술 및 성인용 교양도서는 을유문화사에서, 아동도서 발행은 조선아동문화협회(약칭 '아협')를 통해서라는 이원적인 방향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두 금융인과 편집에 일가견을 가졌던 두 문인의 절묘한 결합은 자금력이 뒷받침된 무서운 추진력이 더해지면서 단숨에
굴지의 출판사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본격적인 출판활동은 창립
이듬해인 1946년 들어서 시작되었다. 2월, 한글을 익히기 위한 글씨본인 이각경의 《가정글씨체첩》을 처음으로 내놓은 을유문화사는 그해 무려
35종의 책을 펴내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같은 해 전국에서 발생된 출판종수가 1천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글씨체첩》
1947년에 33종,
48년 62종, 49년 46종, 50년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18종 등 194종의 목록을 갖게 되는데 이 가운데는 1947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조선말큰사전》(전6권) 첫째 권을 펴냄으로써 한국출판사에 큰 획을 긋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나온
책으로는 《청록집》, 《조선문화총서》, 《을유문고》 등 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주옥같은 목록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단순히 좋은 책을 펴내는 데만 그치지 않고
펴낸 책을 원할하게 보급하기 위해 1947년 3월에는 판매부 성격의 서점 '문장각'을 개설한다. 문장각은 판매체계가 정비되지 못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을유문화사 책만 아니라 국내도서의 도·소매를 겸한다.

왼쪽부터
《청록집》, 《주간소학생》
을유문화사는 창업과 함께
아동문화의 선독적 창달에도 힘을 기울이기로 함의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아협도 개설하고 윤석중을 표면상 대표로 정했다. 아협의 이름으로 《주간 소학생》(뒤에 월간으로 변경)과 아동도서 출판도 겸했다. 그러나 6·25전쟁 중에 사옥이 불타면서
사세가 위축되자 설립동인들도 차례로 손을 놓고 떠나가는 시련을 겪었다. 이때부터 세계적인 출판사로 성장해간 을유문화사의 화려한 역사는 정진숙
혼자의 힘으로 쓰여갔다. 정진숙 회장 단독 경영체제로 전환된 '을유'는 재건작업에 박차를 가해 1954년에는 진단학회와 함께 최초의 한국통사인
《한국사》를 기획, 65년가지 전7권을 완간했다.
이어
1960~1970년대에는 《세계교양사상전집》(전39권), 《한국학백과사전》(전3권), 《세계문학전집》(전100권) 등 굵직한 기획물들을 내놓으며
가장 우수한 도서를 출판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사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을유의 성장세는 80년대 들어가면서 대내외적인 환경변화가
찾아오고 정진숙이 대외활동에 진력하는 동안 다소 주춤해졌지만 2000년부터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특유의 사업수완과 넓은 인맥을 활용해 국내
굴지의 출판사로서의 입지르 굳히는 한편, 12년간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30년간 한국출판금고 이사장을 지내는 동안 《독서신문》과 《출판저널》의 창간을 비롯해
대형서점의 원조 격인 '중앙도서전시관'을 만드는 등 우리나라 출판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일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무리를 하지 않는 원만주의자란 평을 받아왔다. 이처럼 오랫동안 출판단체의 책임을 맡을 수 있었던 힘은 여기에 있다. 정·관계와
금용계 광범위한 분야의 고위인사들과 각별한 교분이 있는 것도 이익단체로서 출협 들의 활동을 통한 출판발전을 이룩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우수한 도서를 다수 출판해 국내외에서 한국출판의 품경을 높인 업적과 역사를 남겼고, 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던 위대한 출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도
'출판계의 대부'로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 고희를 기념해 출협이 《출판인 정진숙》(1982)을 펴냈고, 2007년에도 똑같은 이름의 평전을 을유문화사에서 펴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구술 채록집 《정진숙》을 남겼으며 《을유문화사 50년사》와 함게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그동한 출간한 5,000여 종 가운데 주요 도서를 한데
모아 업적을 되돌아보는 전시회 《을유문화사 출판 60년》을 개최하는 등 을유문화사와 정진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는 비교적 충분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1화. 정음사 최영해 :
http://goo.gl/YL2oCW
2화. 을유문화사 정진숙
: http://goo.gl/Ot4QgH
3화. 삼중당 서재수 : http://goo.gl/jeccyF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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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현대한국출판사》서점가기
알라딘 : http://goo.gl/676N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