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한줄 리뷰 -
결혼이 막막한 이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되어 주길 바란 한 남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

100명의 화가가 100가지의 서로 다른 그림을 그려 내듯이 100명의 작가는 100가지의 서로 다른 문체로 글을 쓸 것이다. 독자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나뉘어 지겠지만 나는 김훈 작가의 문체를 좋아한다.

김훈 작가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표현들을 이번 신간인 ‘공터에서‘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의 펜 끝에서 춤을 추는 표현들이 처음에는 낯선 탓에 오히려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김훈 작가의 앞선 작품인 ‘칼의 노래‘와 ‘라면을 끓이며‘에서 충분히 단련된 탓에 이번 신간은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리고 깊게 몰입되었었다.

내가 김훈 작가의 어떤 표현을 독특하고 매력적이라 생각하는지 몇가지 문장으로 말해 보겠다.

˝죽은 자의 얼굴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자의 대책없는 무책임 속에서 편안해 보였다.˝

˝그 울음은 남편과 사별하는 울음이 아니라, 울음으로써 전 생애를 지워버리려는 울음이었으나 울음에 실려서 오히려 생애는 드러나고 있었다.˝

말장난 같으면서도 천박하거나 저속하지 않고 오히려 묵직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물론 강요는 아니고 내가 김훈 작가에서 매력을 느끼는 지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살아 온 평범한 대다수의 아버지,어머니, 장남,차남의 일생을 묵묵히 이야기해 나간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난 아버지,어머니가 그 지옥같은 한국전쟁에서 용케 살아 남았고 전란 후에 그 아들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남편은 11개월째 구직 중, 아내는 아파트 앞 미술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부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깊이를 알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 자존심과 그 모습에 환멸을 느낀 자괴감끼리의 부딪힘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담겨있는 묵직한 대화를 가난한 신혼부부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김훈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세상을 멀리 돌아서 다가오는 사랑˝이 아련히 느껴진달까. 한번 보자.

˝당신 형님이 돈 좀 보내줬으면 좋겠다. 우리 지금 어려우니까 말야˝
˝아마 보내줄거야˝

˝그래도 먼저 달라고 하진 말아˝
˝그래 알았어˝

˝내가 돈 얘기해서 불편해?˝
˝아니. 필요한 얘기지˝

˝술 줄까? 돈 얘기했으니까 술 먹는게 좋겠지.˝
˝그래. 술먹자˝

˝술 맛 좋구나
˝앞으로 더 좋을거야.˝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그 속에서도 새로운 삶과 죽음은 서로를 배웅하고 환송하며 계속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치 ‘공터‘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며 놀란다.

˝무섭지만 달아날 곳이 없는 세상이다˝

#공터에서 #김훈 #독서 #책읽기 #도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