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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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는 구암이라는 작은 항구마을을 배경으로 갖은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건달들의 이야기이다. 구암은 김언수 작가가 만든 부산 소재의 가상동네이다. 그러니 책을 보는 내내 구글 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도 부산의 '구암'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희수'라는 건달을 통해 의리,사랑,우정,은혜 등 '관계'를 통해 생기는 '감정'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언제봐도 그렇지만 의리있고 선배에게 깍뜻하고 후배들 잘 챙기고, 깨질 줄 알지만 불의한 자에게는 허리를 굽히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지만 정의를 따르는 건달은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남자들의 로망인 '싸움'까지 잘한다. 이러니 건달영화가 흥행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런 롤모델적 역할을 하는 사람의 직업이 어째서 항상 '건달'이냐 말이다. '멋진 건달'이 아니라 '멋진 검사'나 '멋진 시장', '멋진 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나 책이 없을까.

'세상에 좋은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힘이 없는데 애기들은 계속 앵앵거리거든, 아버지는 좆도 힘이 하나도 없는데'

배신의 배신을 거듭해서 여지껏 살아남았는데 결국 배신이 들켜서 죽음의 순간에 처했을 때 '철진'이 중얼거린 자조적인 대답이다.

저자의 의도에서는 벗어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더이상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 슬퍼하지 않으련다.TV드라마에 꽂혀서 하루종일 드라마를 보고 있는 딸을 보고 이러려고 열심히 독서토론을 가르쳤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지도 않으련다. 자식의 마음을 100% 만족시켜주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건 자식의 문제도 아니고 아버지의 문제도 아니라 '인간'이란 애초에 '만족'의 상한선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저 자식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해주련다.

소설 '뜨거운 피'를 통해 나는 여러 다양한 경험을 했다. 고향인 부산의 여러 지명들을 여행했고 4~50년전 시골 건달생활을 엿볼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사실들을 배워갔고 잊었던 지식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던 것이 이른바 독서의 효용일텐데 뜨거운 피에서 새로이 알게된 '멍텅구리배'의 실체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이 소설에서 생기는 모든 은원관계의 청산이 이루어지는 해결장소인 '멍텅구리배'는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이 목조배로 엔진도, 노도, 돛도, 방향타도 없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아무런 동력이 없어서 예인선이 끌어줘야만 움직였고 닻을 한번 내리면 그자리에서 붙박이처럼 살아야 했다. 서해안이나 남해안에서 이 무동력선으로 주로 새우를 잡았다는 인권착취 현장의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 멍텅구리배였던 것이다. 예인선없이 그 심해 위에서 힘겨운 노동을 강요당했을 사람들이 생각나고 게다가 그사람과 내가 치환이 되면 더욱 고통스럽고 외롭고 절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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