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그리스 군주의 거울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전인 1994년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이듬해인 1995년도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낸 예견된 인재(人災)들이었다. 2004년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4년도에는 멀쩡히 가던 배가 침몰했다. 레이더에 의지하여 항해를 해야 할 극악의 환경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 말이다.부푼 꿈을 안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을 포함하여 304명이 배에 갖힌 채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갔다.2015년도에는 메르스로 인해 덧없이 무고한 생명들을 앗아갔다. 리더쉽의 총체적인 부재와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암울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아포리아'라고 한다. '아포리아'란 어떻게 해볼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 길없음의 상태, 출구 없음의 상태를 말하는 그리스어이다.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과거에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아포리아를 맞이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문화와 신화의 나라 , 고대 그리스국가였다.고대 그리스가 어떤 아포리아를 맞이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살펴보자.

군주의 거울이란 기원후 8세기경, 중세 시대에 미래의 군주를 양성하는 인문학 교육 과정을 말하는데 왕자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거울과도 같은 탁월한 리더의 모델이다.그래서 이런 책들을 군주의 거울이라 불렀다고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군주의 거울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역사서를 집필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고대 그리스의 첫번째 아포리아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말한다.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5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향했을 때이다.기껏해야 인구수 30여만의 그리스에게는 문자 그대로 어찌할 방법이 없는 아포리아를 맞이 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스타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그의 병사300명이 용감히 맞서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가 영화 '300'으로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아시다시피 이 테르모필레 전투는 페르시아의 승리지만 풍전등화속의 그리스였지만 이후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아테네의 걸출한 영웅이 살라미스해전으로 승리로 페르시아를 격퇴한다. 하지만 반전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중성이다. 결국 전례없는 탐욕과 권력욕으로 이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에서 쫓겨나 스파르타로, 다시 페르시아로 건너가서 쓸쓸히 죽는다.

군주의 거울 중에 하나인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와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영웅을 두고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헤로도토스의 결론은 "자격없는 자가 리더가 되어서는 안된다"  즉, 두 영웅의 공통점인 '히브리스(오만)'를 경계해야 한다면서 <역사>를 마무리 합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전쟁사>
그리스가 맞이한 두번째 아포리아입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승리 후 아테네의 황금기가 도래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심각한 위기 뒤에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여왔듯이 아테네가 그러했다. 맹주의 자리에 오른 아테네의 제국의 논리로 인해 결국 스파르타와 격돌하게 되어 그리스는 내전인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휩싸이고 만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장군으로 실제로 펠레폰네소스에 참전했었고 이 책은 "왜 아테네가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는가?" 를 알아보기 위해 쓴 책이기도 하다.펠레폰네소스전쟁사에는 두명의 아테네 영웅이 나온다. 페리클레스와 알키비아데스.

먼저 강력한 군사국가인 스파르타와의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아테네를 지탱한 영웅이 바로 페리클레스이다.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 자신감으로 아테네인의 결속을 강화해서 전쟁을 이겨나가던 중 돌연 발진 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으로 페리클레스를 잃게 된 아테네는 알키비아데스가 리더가 되고 마는데,  어떤 나라나 조직이던 흥망하는 이유는 '사람'때문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패배하고 만다. 알키비아데스는 명문귀족가문출신으로 금발의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이며 그 스승이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능력과 가문 또한 뛰어났으나 페리클레스와는 달리 사리사욕만 챙기는 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누가 페리클레스인지, 알키비아데스인지 구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플라톤의 <국가>
그리스의 세번째 아포리아는 공권력에 의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아테네의 현자로 존경받으며 동시대 청년들을 탁월함의 시계로 인도하던 큰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아테네 사람들은 한 시대의 종말을 직감했다.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그리스의 3번째 아포리아를 극복하고자 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그리스 최고의 군주의 거울은 플라톤과 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교육>이다. 키루스는 페르시아를 건국한 대왕이며, 고대 근동(Ancient Near East)의 문헌에 '왕 중의 왕'으로 표기된 인물이며, 심지어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인 유대인들조차 키루스 대왕을 '기름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로 불렸다. <키루스의 교육>은 그 키루스 대왕의 12가지 신념을 이야기 한다.그 중 나는 마지막 신념인 '제국은 사람이다'가 가슴에 가장 와닿는다. 


키루스대왕의 인재등용방식에 대한 설명인데, 키루스대왕은 "제국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러니 그에 인재의 등용방식에 얼마나 신경을 썼겠는가. 키루스의 인재등용방식 첫번째 기준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중에서 인재를 찾는 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절제심이 강하고 도덕적 기준이 높다고 본것이다. 두번째 기준은 '자제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사려깊은 사람보다는 자제심이 강한 사람을 택하는 이유는 사려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 뛸 떄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지만, 자제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도 그런짓을 삼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준은 '탁월함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역사,펠레폰네소스전쟁사,국가,키루스의 교육에 등장하는 '시대상'과 '영웅'들의 삶을 보고 이시대의 아포리아를 견뎌낼 토대를 만들어 가야겠다. 함께 이 아포리아를 극복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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