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왜 화가 날까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인간의 대표적인 능력 중에 하나는 '예측'입니다. 2만여전 인류는 사바나에서 포식자들을 피해 사냥하면서 내 앞에 있는 저 동물(사자)은 나에게 유해한가? 무해한가?를 예측해야 했습니다. 또는 내 앞에 나타난 저 사람은 나에게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를 예측해야만 했던 거지요. 예측의 성공유무에 따라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기때문에 우리는 예측이 빗나가면 화가 나도록 진화되었습니다. 

출,퇴근시 사무실에서 A와 인사를 하면서 저는 예측을 합니다. 인사를 서로 나누며 얼굴을 쳐다보며 여운을 느끼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A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고개를 '홱' 돌려버리며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모니터를 응시합니다. 예측이 빗나가는군요. 

물어볼 것이 있어서 옆으로 가서 불러봅니다. "B씨"라고 부르면 "네" 라고 대답하고서는 하던 일을 마저 하며 몇 초의 간격을 두고 그제서야 고개를 돌립니다. 대답과 함께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갑니다. 

전주시의 한 버스기사 허혁은 버스기사 초년생일때 매일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예측을 합니다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예를 들면 버스에서 전화하는 승객이 너무 신경쓰여서 운전에 집중이 되질 않는거죠. 고민끝에 선배에게 의논하면 '자네가 너무 예민한 편이고먼' 이라며 오히려 나무란다고 합니다.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버스에 태우고 다니는 7여년의 버스기사 생활을 보내며 허혁 작가는 깨닫습니다. 삶이 징그럽고 고독하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할 뿐' 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질곡으로 가득찬 버스기사의 이야기는 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들었던 궁금증을 해소해줍니다. 늘 승객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다가 기사의 관점을 들여다보니 그들 나름의 이유가 납득이 되는거지요. 

그리고 이 책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보며 '예측의 범위를 넓혀 화가 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라'라는인사이트도 느낍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에필로그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그가 쓴 에필로그를 보면 글쓰기가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걸 느낍니다. 

#허혁 #수오서재 #버스기사 #김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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