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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역사 - 비너스, 미와 사랑 그리고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다
베터니 휴즈 지음, 성소희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8월
평점 :
서구권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와 크리스찬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심에는 로마가 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역사가 아니더라도 심리학, 문학 과학 등에도 자주 인용되기 때문에 대략이라도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여신의 활약이 돋보인다. 남성 중심의 신화나 역사에서 벗어나 여신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같은 역사라도 색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아프로디테라고도 부르는 비너스는 여신의 대표주자이자 상징과도 같다. 실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클레오파트라도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며 자신을 아프로디테처럼 꾸미기도 했다. 여신을 이용한 이미지 마케팅으로 국민들을 통치할 수 있는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할 수 있겠다.
원래 여신 이시스를 숭상하던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향으로 점점 아프로디테를 닮아갔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한 집안에는 딸을 시집보낼때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지참금에 포함시킬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아프로디테라는 존재의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가 여신의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여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약 5천년 전에 발견된 '렘바의 여인상' 이라고 한다. 그것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너스가 탄생을 했을텐데, 시대에 따라 신화는 변형이 되었고 그 상징도 조금씩 변한 것 같다. 여성과 남성의 상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전쟁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물리적 전쟁의 영향으로 남성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여신의 역할도 테스토스테론을 잃어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고, 인간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과 국가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보면 조상인 쿤타킨테 부족은 알라신을 믿는다.
더 오래전에 중동에서 아프리카 지역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인데, 본래의 이슬람과는 아주 다른, 토테미즘이 혼합된 알라신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알라신과 원류가 같은 유대교나 기독교와도 아주 다르다. 또한 국내에 들어와있는 예수교단과 미국이나 유럽의 교단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이슬람과 유대교, 크리스찬(천주교와 기독교)의 일신교도들은 서로 자신들의 신만 인정을 하는데, 원류는 같다. 한국에서야 하나님으로 번역되었지만 고조선의 하느님을 조금 변형한 역어에 불과하고 영어로는 그저 GOD 라 부른다. 알라신이라는 뜻도 번역을 하면 그냥 '신' 이다. 그저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시대와 국가와 교단과 분파에 따라서 다르다. 똑같은 원류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다 다르며 각자 서로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신과 종교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변화되는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여신도 마찬가지로 역사속에서 변화되어왔는데 그 과정을 이 책에서 상세하게 잘 담고 있다.

여신의 모습은 때로는 창녀로 변모하기까지 한다. 아프로디테신전 부근에서는 마치 현대의 워킹스트리트 처럼 매춘부들이 몸을 파늕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로마 초기의 문인 엔니우스의 글에 따르면 원래 매춘을 처음 고안해낸 여성이 비너스였으나 나중에 여신으로 숭배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매춘부들은 비너스를 숭상하며 조각상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비너스의 이미지는 억압받는 여성들의 희망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전쟁의 여신이었다가 창녀였다가 사랑의 상징이었다가 여성미라는 고정적인 관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현대에서는 전능한 신에서 흥행보증수표로 전락했다. 남성의 시선을 자극하는데 이용되거나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한 식민지배를 조장하는 대상으로 이용당하기도 했고, 그저 장식모양의 하나로 활용되기도 하며 여성의 권력과 지위의 상징에서 압제와 억압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여신의 역사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역사속 여성의 인권이기도 하다. 비교적 평등한 사회가 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의 인권은 특히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열악하기 그지 없다. 한국에서도 부분적으로 여성의 힘이 더 크고 남성은 위축되었다는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 데이트 비용을 전부 부담하고 결혼할 때 집을 마련해야 하고 군대에 가서 지켜야 하는 것은 남성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부분에서 여성의 인권이 박약하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성의 권리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닌 평등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때로는 이기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여성의 인권이 올라간다고 남성이 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가 되어서도 더더욱 안된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 싸워야 더 설득력도 있고 현실에서 변화된 인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린이의 인권이라는게 없다. 아동은 그저 어리고 어른의 말대로 따라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어른들도 어린이었다. 올챙이 시절을 벗어나자 마자 올챙이를 경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린이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과 보호를 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 날에는 당연히 여성의 인권도 존중될 것이다. 인권이란 여성이라는 특정 대상을 위한게 아니라 가장 약한자의 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