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 협력을 통해 무리에서 사회로 도약한 이야기
윌리엄 폰 히펠 지음, 김정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진화의 역사는 현재의 인류에게 많은 것들을 설명해준다. 사람의 이해못할 행동, 본능적으로 드는 감정의 원인을 살펴볼 수도 있다.

예일대 석사와 미시간대 박사 학위를 받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심리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진화의 역사에서 친화력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하고 이 책에 담아냈다.

 

이 책은 진화론이 옳다는 전제하에 쓰여진 책이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 대부분이 종교인들인데,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믿기 때문이다. 임신초기 동물의 태아 모습과 인간 태아 모습은 비슷하다. 심지어 물고기와도 그렇다.

태아가 성장하면서 형태를 갖추기 되기까지 변화하는 과정이 진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기도 한다.

진화론이 틀렸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있었다면 진화론은 폐기가 됐을 것이나 여러 학자들이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1장에서는 친화력이 인류의 초기에 어떻게 생존과 진화를 하는데 역할을 했는지를 추적한다. 2장은 친화력은 어떻게 진화에 발현되었나는 이야기를 하고 3장에서는 친화력이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수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주장하는 학설이라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책이다.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부분이 참 많다. 또 필연이 아닌 우연이 만들어낸 요소가 많다고 한다. 손가락을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인간 뿐인데, 이런 움직임의 발달이 뇌 발달을 가져올 수 있다는 학설도 있다.

 

어둠은 인간에게 공포를 일으킨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해도 어둠이 드리우면 인간은 공포를 느낀다. 불을 다루는 인간이 불이 없는 어둠속에서는 다른 동물들보다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공격당할 위험이 높아지므로 선조들은 어둠에 불안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에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두려움을 보이기도 하는데 많은 부분이 진화론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친화력을 발휘하여 진화를 거듭했다고 한다. 침팬치도 협력을 하지만 인간과 구분지어 지는 것은 협력자와 방관자를 구별하기 때문이다. 사냥에 참여하지 않은 침팬치도 구분없이 먹이를 먹을 수 있지만 인간은 일을 하지 않은 다른 인간에게 대게 차별을 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산주의라는 것은 인간과 잘 맞지도 않고, 진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아직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도 그 사상은 실제로 1당 독재체제의 명분 혹은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당 간부들은 일반 백성들과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베트남이나 중국에서 머물때도 이걸 뼈져리게 느꼈는데, 공안이면 지위가 낮아도 그 권력을 일반인들에게 행사하면서 사람들에게 깡패처럼 개평을 뜯어낸다. 베트남에서 장사하는 한국인의 100%가 공안에게 상납을 한다고 한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이 실제로는 비민주적인 정치 권력체계일 뿐이고 진정한 평등은 지구상에 이루어진적이 없다는 것은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종교의 생성도 살아남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피가 섞이지 않아도 교류를 할 수 있다. 능력이 발달한 인간의 적은 결국 같은 인간이 되버릴 수가 있고 지금도 그러한데,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제심을 발휘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더이상 이런 종교의 역할이 필요없는 세상이다.

 

친화력은 물론 진화에 도움만 준것은 아니다. 도덕적인 것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질서 체계이지 인간의 본능은 아니다. 법이 없고 누구든 남의 물건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나부터도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뺏으러 갈것 같다.

 

내 생각에(나만의 생각은 물론 아니지만) 창조론과 진화론의 신뢰를 결정짓는 큰 차이 중 하나는 편향이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연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가설을 입증하는 과정을 거친후 그것을 폐기하거나 발표하는 것 뿐이다. 자신의 학설이 맞다는 것도 증명하지만 틀렸다는 것 역시 증명을 한다.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 자체도 과정이요 성과가 된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처음의 가설을 뒤집는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만 연구를 하기 때문에 답을 정해놓고 연구를 하는 확증편향성이 발휘될 수 밖에 없다. 반대의 증거는 묵살당할 수 밖에 없다.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었다면 과학은 이를 연구하고 입증했을 것이다. 신이 있냐 없냐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과연 어느 것이 신빙성이 있을까? 수천년간 이어져온 고집일까, 세상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주장하는 바와 상반된 결과가 나와도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일까?




 

과학자들의 책을 보면 어떤 주장을 열심히 하기보다 주장의 근거를 입증하는데 더 힘을 쏟는다. 이 방식이 대중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쉽게 설명하고 명확한 주장을 하고 뭔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와닿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계발서처럼.

 

하지만 나는 언젠가 부터 이런 과학자들의 책을 신뢰한다. 읽기 편하진 않지만 믿을 수 있고 진실일 가능성이 다른 저자들 보다 많고 논리적이고 편향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학문 전체에도 과학에도 절대 진리는 없고 그건 과학자들이 더 잘알고 있다. 인정되어온 학설이 명확한 근거에 의해 뒤집히기 전까지는 더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지지할 뿐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위대한 사상들이 지금까지도 감탄할만한 요소들도 많지만, 현재로 보면 말도 안되는 헛소리도 있듯이. 그 당시에는 그게 헛소리라는 것을 알길이 없었을 뿐이다.

현재의 가치들도 미래에 그리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어떤 특정 집단이 주장하는 편향적인 - 이를 테면 종교단체들 - 것들은 아닐거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아마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그리 될 것이다. 역사가 그래왔듯이.

 

자기계발서에서 읽은 내용이 과학자들의 책에도 등장하면 그것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국내의 저자들도 그렇고 외국 저자들도 그렇듯이 자신의 주장에 확증편향적인 자료의 부분만을 이용하는 저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달콤한 이야기를 편향적 근거들을 수집해 그럴듯한 헛소리를 하는 책들이 참 많다. 한때 열혈한 독자여서 그의 책을 다 샀던 한국의 인기 작가 이모씨가 대표적이다. 물론 지금은 절대 그 저자의 책을 보지 않고 주위에도 읽지말라고 적극 권하고 있다. 꿈꾸는 것처럼 달콤한 소리에 현혹되기 쉽지만 독서력이 올라가고 한발짝 물러서 바라보니 책팔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네티즌은 그를 '인문학 무당' 이라고 부르는데, 굉장히 동의 하는 바이다.

흔히 의심이 많은 사람은 사기를 당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믿음이 강한사람보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 사기를 당한다고 한다. 사기꾼의 그럴듯한 이야기에 현혹되어 그 의구심이 풀리면 그 사기꾼을 믿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 과학서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이야기 한 내용은 책을 읽고 요약보다는 파생된 생각을 느낀대로 길게 두서없이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계속 나열하다보면 끝도 없이 길어질 것같다. 글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전적으로 내 능력이 부족해서이지 책의 문제가 아니다. 직접 읽어보면 훨씬 더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친화력은 과거의 생존에도 그리고 미래의 생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독자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친화력의 범위가 한정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이 인류 생존의 무기가 되어온 친화력을 앞으로의 삶에 잘 활용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