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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형제들 -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을 넘나드는 근현대 형제 열전
정종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평점 :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북한이 원래는 같은 나라라는 자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남북이 갈라졌다는 그 사실만 알뿐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리울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물론 그런 세대들도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깊이 관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라의 미래와 이득을 위해서 언젠가는 통일을 경제가 성장해있는 남한을 중심으로 서서히 천천히 해야 된다고 보는 쪽이다. 이대로 휴전시대로 살기에는 불안한 안보상태이고, 그렇다고 북한이 무너져서 우리에게 흡수되면 모를까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 땅을 삼키려 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이 될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 감정이나 이념적인 부분은 아니다. 감정의 연결고리도 없고 이념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생각이다.
베트남이나 중국에 갔을때 공산주의가 평등하기는 커녕 새로운 형태의 독재 혹은 1당 체제로 비민주적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고,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베트남에는 한국인이 장사를 하려면 공안에게 무조건 상납을 해야 한다. 그게 무슨 평등인가. 이념을 잘 지킨다고 해도 별로 따르고 싶지 않은데 봉건시대의 다른 이름일 뿐인 1당 독재집단이 현재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현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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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을 겪어본 세대나 가족이나 형제가 갈라진 이산가족에게는 굉장히 큰 아픔일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역사의 형제 · 자매들이 꼭 남북으로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 등을지고 다른 길을 걸어갔다는 것은 동일하다. 친일, 항일,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각자 신념에 따라서 행동했고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다.
애국가로 유명한 안익태의 형 안익조는 모르던 인물이었는데, 일제 치하 만주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이력 때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했으며 도한 인민군에게 집을 제공한것 때문에 부역죄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은 인물이다.
안익태의 바루 위 형으로로 7형제의 둘째인 그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컬럼비아 레코드 문예부장을 지내기도 하고 폐결핵 전문의 의원이기도 했다.
그같은 경우에는 그저 살기위해 권력에 굴복한 평범한 소시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태어났으면 개업의나 연예기획사 대표나 음악인이 되어서 잘 살아갈것인데. (당연히 그가 잘못이 없다는 단순한 해석으로 받아들이지 말길.)
친일을 했다가 인민군에 붙은 것도 현대의 이분법으로 보면 맞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는 마치 친일의 반대가 좌빨이라는 듯이 매도하는 것이 흔하다. 단순하다는 것은 강렬하고 몰아가기 쉬운 법이다. 아무리 누가 떠들어 댄대도 영향을 받지 않는 지혜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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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전쟁이지만 그 잔재와 영향력은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사람들은 매우 강박적으로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사고하고 분류를 한다. 하다 못해 남과 여로 갈라서서 누워서 침을 뱉고 있다.
부모중에 남과 여가 아닌 사람이 입양말고 있을수가 없는데, 그렇게 갈라서 어쩌겠다는 건지. 차별에 항의 하는 것은 옳지만 집단화 해서 기존 세대를 심판하고 집단 이득을 추구하려는 것은 결국 이념으로 갈라지거나 정치로 갈라진 기존 세력들과 다를바 없다. 하물며 리니지 게임에도 바츠 해방 전쟁이라는 혁명이 있은후 권력을 잡은 인물들이 다시 기득권의 이익과 이권을 차지하고 누리려 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사는 것이 중요하지 이념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 보는게 현재의 독자로서 당연하기도 하지만, 너무 그렇게만 본다해도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나도 그때 태어났으면 독립운동에 투척하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실은 구석에 쭈그리고 침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근대민족문학사라는 책을 집필하기도한 김재용 교수는 협력과 저항이라는 책에서 저항의 인물 목록에 침묵을 했던 사람들도 저항으로 보았다. 일제의 잔혹한 폭정아래 협력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항이라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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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와 빨갱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곤한 단어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 정말 그럴만한 인간들도 있지만, 선입견에 의해서 분류된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잘한것은 아니지만(일일히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분법에 의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몰아가기에 언급하기 싫지만 한다).
물론 잘못은 잘못고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 상황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지 않을까.
어차피 죽은 그들을 칭송하거나 혐오한다고 해서 죽어버린 그들이 알지도 못할 뿐더로 아무 소용도 없다. 그 후손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기 때문에 오해가 있어도 죽은 사람이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역사는 기록으로서 판단할 뿐이다. 실제로 역사 인물들이 어땠는지, 오래전 기록에 거짓이나 과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증명된바도 없고 있다쳐도 그들이 생각하는 형태는 아닐것이다. 현재의 기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역사에서 배우고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만 다를 뿐이지 아직도 이념 갈등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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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익숙한 인물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인물들이 더 많았다. 그런 인물들을 통해 근대사를 보는 것이 재미도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런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현재에 아직도 남아있는 갈등과 불평등, 차별과 선입견등을 되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를 다짐하는 것이 이 책의 의의라고 한다. 정말 공감되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