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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ㅣ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평점 :
나는 개인적으로 스티븐 핑커의 책을 좋아한다. 심리학, 과학과 철학, 생물학 진화 심리학을 아우르는 그의 통찰력 깊은 글들은 섬세하고 폭넓고 꼼꼼하며 친절하다(부분적으로).
나의 역사나 과학 등의 배경지식이 그다지 폭넓지 못해 그의 책을 읽어나가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자신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자세히 설명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그래서 그의 저서들이 하나같이 두꺼운지도) 읽다보면 의외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몇몇 저서는 전자책으로 소장을 하고 있다. 전자책 단말기로 독서를 겸하는 사람들 중에는 똑같은 책을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각각 소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어서 2권은 전자책으로, 나머지는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있다. 구할 수 있는 그의 단독 저서는 다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신간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계몽주의에 대한 무지한 나의 인식은 교훈적인 근대 문학의 이미지뿐이었다.
유럽에서는 17~18세기에 계몽운동이 일어났는데, 한국은 개항이후 일제 강점 초기에 민족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계몽운동이 일어났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대한매일신보에 이순신전을 연재 하는 등 계몽 소설도 많이 쓰였는데, 유명한 심훈의 상록수도 농촌계몽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훌륭한 운동이었지만 현대에서 계몽운동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교훈을 주려는 문학등은 현대에서는 유치한 것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나의 무지함으로 인한 인식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미 우리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의 삶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착각이라고 근거를 들어 이야기 했던 그였는데 이 책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말한다. 생각해보면 사극만 봐도 종일 열심히 일해도 밥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이 일부 귀족을 제외한 보통사람의 삶이었다. 근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각종 탄압과 군부독재, 언론 조작 등으로 힘든 삶을 사는게 사람들이다.
허나 몇몇 사람들이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 나만해도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죄자라도 된것 처럼 교사들에게 매일 두들겨 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즘은 폭력배도 그렇게 맞지는 않을 것이다. 강아지로 매로 다스리면 말을 잘 듣기는 커녕 배뇨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고 그립다고 느껴지기는 한다. 그것은 아마 그 시절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때의 젊음이 좋은 것일 거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지 않나 싶다. 생각해보면 휴대폰도 없고 집전화 혹은 공중전화에 줄을 서서 연락을 해야 하던 시대로 돌아간다면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닐텐데.

그렇다면 계몽 주의란 무엇일까?
장폴 샤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문학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른다고 말한다. 철학서적등에서도 철학이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는 철학자는 아무도 없다.
어떤 학문의 대가일수록 그 학문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내린다 해도 학자마다 그 정의는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다양한 요소들이 내재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뭐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이면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스티븐 핑커도 마찬가지로 계몽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추구하는 바는 이야기 하고 있는데, 바로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 이다.
계몽주의는 인류의 생존과 진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런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엘리트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문화속에 자리한 오랜 계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기독교의 '원죄' 론은 태초의 한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연좌제를 적용시킨다.
나는 맛보지도 못한 그깟 열매 한 개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죄인이 되어 회개를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한국의 기독교에서는 그걸 이용해 교회에 안다니면 큰 죄를 짓고 있는지도 확인시켜주지 못할 지옥에 떨어진다며 협박을 한다. 마치 자신들이 신의 권한을 가져서 그렇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존재처럼 말이다.
그렇게 구축한 시스템으로 그들이 얻는 것은 충성과 지지세력과 돈이다. 그것은 진정 신에 대한 것일까 교단에 대한 것일까? 그들의 신은 누구도 신의 권세를 누리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토테미즘적 신앙과 유교사상을 섞어 신대신 목사를 큰 어른으로 섬기며, 목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누린다. 그저 신의 말을 전달하는 라디오 내지는 뻐꾸기가 되어야 할 목사가 신대신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바트 어만이 지적한 대로 오류 투성이인 성경을 두고 자기들한테 불리한 것은 은유고 유리한 것은 직유로 해석한다. 과학은 이미 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지 오래지만 종교의 이권을 포기 못하는 세력들은 신의 멱살을 잡고 현대까지 질질 끌고 내려왔다. 그리고 이제 성경에 과학을 이식하려고 한다. 진화론은 틀렸다고 말하며 그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은 진화론이 진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 과학은 고집쟁이가 아니다. 그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하는 과정이 과학인 것이다. 과학은 그저 세상을 탐구하고 호기심을 탐구한다. 확증 편향적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고 입증하는 것이 과학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가설을 연구하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입증을 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만약 진화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있다면 과학자들은 그것을 발표했을 것이다. 이처럼 종교적 신앙은 반 계몽주의 이념에 해당한다.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자신이 속한 공통체와 협동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지만 그것이 다른 세력을 해하거나 불평등과 차별을 불러오면 안된다. 한국도 굉장히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 으로 인해 인종차별(특히 동남아권)이 심하고 폐쇄적이다.
종교나 민족주의 외에도 중국의 중화사상등 자신들만이 진리고 참이라고 주장하는 집단들의 번영은 다른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종교인들은 부정하겠지만 역사적으로 종교가 행해온 수 많은 전쟁과 학살과 테러 등을 보면 답이 보인다. 유일신이라는 이념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신만이 진리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유일신은 유일하지 않다. 서로 자신들의 신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적그리스도며 악마라고 말한다.
중화사상도 마찬가지로 중국인이 세상의 중심이고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다른 국가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각종 민폐를 끼쳐도 괜찮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우생학과 별로 다를게 없는 생각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개개인에게나 집단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혼란스러운 전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 계몽주의라고 생각된다.
각종 비관론은 현재의 시대가 암울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지만 현대야 말로 평화의 시대다. 지구 역사상 가장 전쟁이 없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없는 시대이다.
다만 갖가지 색다른 현대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라가 곧 망할것 같고 세상이 곧 무너질것 같은 불안마저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이런 답답함과 불안함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도록 시각과 관점을 바로 잡고 탐구를 해야할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 이라는 목적을 가진 이들의 선동과 조작, 종교가 주입하고 있는 죄의식, 그들만의 해결방법인 회개, 등 수 많은 가짜 정보와 선동들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본주의는 상대적 박탈감과 정신적인 고통을 생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가 많을 수록 사람들은 원래 알고 있던 것들을 고집한다고 한다. 선택지가 많을 수록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뭐가 옳은지 판단하기 쉽지가 않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될거라는 걱정과 로봇이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거라는 불안 또한 영화에서만 보는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점차 퍼져나가고 있는 고민거리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 또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지만 이것을 걱정만 하기 보다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항상 낫다.
이성과 과학, 휴머니즘과 진보는 이런 수 많은 불안덩어리들을 없애진 못하겠지만 보다 올바르게 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계몽주의도 물론 완벽한 사상은 아니다.
유토피아가 그저 이상에 머물 수 밖에 없듯이 완벽한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코로나를 아무리 예방한다고 해도 어디선가는 새어나가듯 퍼져나가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증명하는 것이다.
바로 과학자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온갖 가짜정보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증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추종자들을 모아 집단의 힘을 발휘하려고 애쓴다.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 믿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믿음은 진리 자체가 아니다. 데이터와 증거 논리 등의 이성으로 온갖 미신적인 믿음을 물리치고 절대 진리가 아닌 입증된 사실을 추구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점을 추구하되 공통의 이익또한 생각하는 것이 길게 보면 내 자녀와 내 후손을 위한 길이 된다.

스티븐 핑커는 좌도 우도 아니고 자유주의자이다. 나의 성향도 그와 비슷하며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나에게는 와닿았고, 지침이 되고 가르침이 될 수 있었다.
[이 글은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요약보다는 감상위주로 서술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