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부 - 돈 너머 진정한 부에 이르는 5가지 절대 조건
제임스 아서 레이 지음, 홍석윤 옮김 / 라이온북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제임스 아서레이는 그 유명한 시크릿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06년 시크릿 열풍이 불면서 이 다큐영화에 등장한 인물들도 같이 주목받았는데, 제임스 아서레이도 동기부여 강사로서 주목을 받았는데, 09년에 그가 주최한 캠프에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제임스 아서 레이 : 구루의 탄생과 몰락" 이라는 다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동기 부여 강사들은 강연을 하고 책을 쓰고 수련회를 조직하곤 하는데, 미국은 그 규모가 더 크다. 수련회 프로그램을 조직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강사의 명성을 믿고 참여하며 강사도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제임스 아서 레이도 그런 수련회를 기획하고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 한다. 숯불위 걷기라는, 다른 동기부여 작가들도 많이 하는 훈련등을 하는데, 어떤 한계를 시험하는 프로그램에서 세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일로 저자는 2년의 실형을 살았다고 한다 .


 

이 책은 영적인 면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개신교 목사를 아버지로 둔 저자지만 개신교와는 다른 영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부처, 예수, 알라 등등 종교의 신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존재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불편할 수도, 깨달음을 얻은것처럼 환해질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독실한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재미있는 관점으로 보았다.

삶의 의미를 개신교에서 찾지 못한 그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불교와 무당, 도사 등 그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이나 지들이나 똑같은 이단 삼단일 뿐이지만 -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영적 세계관을 구축했을 것이다. 

 

이 책의 메세지를 대략 요약해보자면, 정신적 측면, 관계적 측면, 재정적 측면, 육체적 측면, 영적 측면의 다섯 기둥을 조화를 시키는 것이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다.

뭐 아주 틀린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은유적 표현들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느껴지게 할 수 도 있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합리화하자면 끝도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종교가 이런 관점이 많은데 그저 하나의 틀처럼 모슨 현상을 그 틀에 끼워 맞춰 합리화하는 식이다. 예언이나 토정비결 등도 이런 끼워 맞추기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세상이 명확하게 어떻다고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으로 명확하게 증명된 것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명확하게 증명 되지 않음을 마음대로 그렇다고 이야기 하기도 뭣하다. 그래서 모호하게 표현하면 그게 맞아 보이기도 하고 틀려 보이기도 하는데, 모호한 현상에 대해서는 뭐 모호하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이 책의 영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볼 때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종교적인 이야기라기 보다 인간들이 믿고 있는 신과 종교등 영적인 측면의 것들을 아우르면서 조화를 이루는 관점은 신선하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세계에서는 다양한 종교들이 있고 인간은 다양한 영적인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다들 했으니까 그런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는데 설마 그게 엉터리겠어? 라고 말이다.

뭐 밝혀지기 전까지는 진실로 믿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사람들 그 누구도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들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밝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명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부정할 뿐이다.

 

개별적으로 접근하면 나름 다 그럴듯 하다. 우리나라의 토속신앙도 점이니 무당이니 하는 것들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하고 있고 그럴듯하게 이야기 하는, 신빙성이 있는 것 같은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것들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 이단이지만 교인들조차도 그것들을 아예 무시하지는 못한다. 내 주변에도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내세우는 사람도 점을 보러 간 사람이 상당히 있기도 하다.

 

그저 무엇인가에 의지를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일 진데, 그것을 우주의 기운, 영적인 하나의 존재라고 이야기 하는 식이다. 그 하나가 하나님의 하나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개념이다. 저자는 그저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고ㅡ 부처님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부르든, 지니라고 부르든 상관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의 하나는 신이라는 하나의 물리적 존재라는 느낌이 있는데 우주의 존재는 우주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일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신의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를 지칭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지칭하는 명칭일 뿐 존재가 명확하지 않기도 하다. 그저 우주라는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처럼. 우주는 지구 밖의 거대한 공간을 생각하기 쉽지만 지구도 우주에 포함되어 있듯이 여기서 말하는 영적 존재도 거시적인 표현수단일 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저자도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모호하게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의심스럽기도 하다. 종교에서는 신의 존재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신화에서 비롯된 황당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영적 측면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면 덜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빼면 다른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습관, 건강, 열정, 마음가짐. 어디에서나 하는 이야기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잖아?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행하지 못하는데 행할 필요성을 느끼면 행할때까지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영적인 이야기는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영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적당히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책이 있는가 하면 그저 취할것을 취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의 이야기들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받아들여서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좋은 이야기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취하면 되는 것이다.

단 맹신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이용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신앙처럼 따르는 것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영적인 존재를 믿는 사람이나 믿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책일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걸러내면 된다. 둘 중에 하나에 해당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을 것이고 접할것이기도 할거다.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책을 제공받은 뒤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