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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들 - 살면서 꼭 한 번은 만난다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이지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8월
평점 :
학창시절 부터 직장 및 사회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살다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깊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오래전 친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에 다닐때는 친구가 참 많았다. 친구들과의 우정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느껴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러나 크고 작은 트러블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돈을 자꾸 빌려달라는 친구, 쉽게 화나 짜증을 내는 친구, 이것저것 해달라며 부탁하는 친구, 사람이 좋아서 그걸 받아주다 보면 자꾸 추가적인 부탁을 받게 된다.
돈을 크게 떼인 적도 있고 사회에서 알게된 사람으로 부터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 부려먹는 상사나 무능하기 그지 없는 부하직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다. 나에 대한 악의적인 이야기나 험담을 늘어 놓거나 무안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오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도 적당이 했어야 했다.
이렇게 사람들에 이리 저리 치이다 보면 사람 자체가 싫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겉으로는 예의가 발라지지만 속으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이면 피하면 되지만 피하기 힘든 사람은 어찌할까? 그게 내 가족과 연관되거나 가족이거나 직장에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거나 내 거래처나 고객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전에 겪었던 스트레스에 더해 스트레스를 자꾸 폭발시키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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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런 피곤한 사람들의 10가지 유형을 이야기 하고 그런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여러 유형들을 읽다보면 답답한 인연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시원하게 그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서 내가 혹시 잘못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 축적해온 스트레스의 잔존물들이 약간은 제거되지 않았나 싶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나도 남에게 피곤한 사람은 아니었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의 심리를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이런 책의 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은 내 스스로가 이유를 알기 때문에(스스로도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타인에게 그것을 설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설명하자고 해도 애매하다. 설명을 해도 상대방이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이해력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의 종교를 가진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비종교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인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관점에서 사고를 하며 나를 이해시키고 선교하려 한다. 그 자체가 민폐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화를 낸다.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해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나도 화가 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지왜곡 때문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니키와 케네스의 사회정보처리 모델 중에 단서의 해석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때로는 사람들을 적당히 대할 필요도 있다.
서로 적당한 선을 지키고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그 선을 지키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도 거리를 둔다면 외로울 것이기에 문제를 극단적으로 다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소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른 대응을 하는 것도 좋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는 나에게 피곤함을 더하게 만들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학습된 것이기도 한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좋지만 분별력 있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 경계가 참 쉽지 않은데, 내가 피해를 입게 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거절을 할줄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을 보면 참 친절하고 좋아보이는데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다. 웃으면서 부드럽게 거절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거절이 어렵더라도 자꾸 하는 버릇을 들여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노력을 해서 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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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은 때로는 내가 엮이면 피곤한 사람이 되어야 할때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남들에게 내 욕을 할 자유를 주었다. 흔히들 뒤에서 욕하면 더 화가 난다고 하는데 완벽히 뒤에서 말하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날 수 없다. 화가 나는 것은 나에게 들리거나 욕을 하지 않을까 의심과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가 내 이야기를 하든 말든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했다. 다만 내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면 제제를 한다. 나 자신은 타인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할 수 없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변하지 않는다. 누구에겐 좋은 사람이고 누구에겐 치사하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나 하나를 두고도 사람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럴때마다 내가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버릴 것이다. 나를 완성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다. 남의 생각에 너무 신경쓰지 말자. 남에게 나를 욕할 자유를 주자. 나도 누군가를 분명히 욕하지 않는가? 다만 앞에서는 하지 말자. 적당한 욕은 뒤에서 하는게 서로에게 좋다.
다만 욕을 해도 적당히 선을 지켜서 하자. 사람들에게 모두 잘보이기란 불가능하고 내가 모두를 좋아하기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