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금숙 만화
김금숙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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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이라는 것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형태를 취하는 작품을 말한다고 한다.

미국의 슈퍼맨의 DC와 아이언맨의 마블 만화들을 보면 이런 경향이 많은데, 일본식 만화책에 익숙한 나에겐 약간은 생소했다. 코믹 장르보다는 조금 진지한 작품이 이런 형식을 보인다고 한다.

 

이 작품은 한국 그래픽 노블의 선구자라고 하는 김금숙의 작품인데, 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작품을 그려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는 실제 작가가 강아지 세마리를 키우게 되는 과정과, 견주의 시각으로 본 세상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도 견주이다. 원래 개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가족이 원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갑지 않아서 귀찮은 입장이었고 별로 정도 안갔었다. 좋던 싫던 생명이기에 해야할 일만 하는 정도였다. 뒷바라지를 다 하겠다던 가족은 점점 나에게 하나씩 일을 맡기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참 귀찮았다. 하지만 5년 넘게 키우면서 이제 정도 많이 들고 많이 바뀐것 같다.

 

반려견 인구 1500만 시대라고 한다.

어딜 가나 개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개똥을 치우지 않는 견주가 많아서 산책시 괜히 나까지 눈치가 보인다.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견주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젊은 여성이었는데 한 마디 하려다가 겨우 참은적이 있다. 견주를 일반화 시켜서 생각할까봐 일부러 똥 봉투를 한 손에 보이게 들고 다닌다. 사람이 보나 안보나 내 자리는 정리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개똥이든 쓰레기든 길에 버리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견주가 아니예요 라고 써붙이고 다닐수도 없기 때문에 꼭 보이게 하고 다니면, 가끔 아주머니 들이 '저렇게 개똥을 치우면 얼마나 좋아' 라고 한탄을 하면서 지나간다. 내강아지는 내 책임이기 때문에 개가 싼 똥은 내가 싼 똥이나 마찬가지다. 자기가 싼 똥도 치우지 않는 사람은 나이를 떠나서 미숙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하는 일도 책임을 못지는 사람인 거다. 개를 버리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책을 읽으니 더욱 개를 키울때 신중하게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는 내가 원해서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받아들였으니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은 있었다. 소중한 생명이니까. 지금은 정이 많이 들어서 즐겁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이웃에서 개가 짖고 시끄러우면 짜증이 많이 났었다. 지금도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개의 잘못은 아니다. 주인의 잘못인 것이다. 자기가 키우는 개 똥도 치우지 않는 사람이 어찌 개를 키우려 할까? 나도 첨엔 개똥을 치울 때 손에 묻는 것이 되게 찝찝했으나 하다보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어선 안되겠다.

 

(지금부터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그림체가 왠지 고전 만화 같으면서도 세련미가 있어 보였다. 특히 강아지 표정의 특징을 잘 잡아낸듯 하다.

주인공의 남편이 웰시코기 한 마리를 입양하고, '당근'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된다. 불안과 강박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집앞에 버리고 간 '감자'도 맡아 키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골 생활을 하게 되는데, 시골 사람들이 반려견에 대해서 생각하는 관점과 주인공의 관점이 많이 달라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극중 시골 사람들의 행동거지가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더 몰입이 되었달까? 개장수가 다니는 모습, 개를 때리거나 방치하는 모습, 보신탕이나 개소주로 먹는 모습 등은 실제 시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시골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주인공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평소에는 주인공 부부에게 참 친절하고 먹을 것도 갖다 주던 마을 사람들이 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주인공은 그들이 괴물로 느껴진다고 까지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것은 좀 과격한 관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고 받아들이다가 갑자기 반려동물에 대한 존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특정 종교를 어릴때부터 당연시 하고 자란 사람이 갑자기 자신들의 종교와는 다른 관점을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겐 온 지구가 당연히 그들의 신 아래에 있지만, 나 같이 신이 없다고 굳게 믿는 무신론자에게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 자기 관점을 서로 주장하려다가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인식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 갑자기 한 쪽에서 바꾸려고 하면 충돌이 일어나고 더욱 악화될 뿐이다.

 

사회적으로 그것을 알리는 것들이 더 필요한 것이지 무턱대고 그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인식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좋은 효과도 거두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반감을 살 수가 있다. 내가 인식하는 것을 남에게 왜 인식 못하냐고 답답해 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마음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납득할 수 있도록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에서 해야할 문제지 개인이 따졌다가는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주인공 부부도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하게 되었다.

인권에도 순서가 있을 것이다. 문화적 후진국에는 아직도 여성과 아이가 차별을 받는다. 선진국가일수록 약자의 인권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인종 차별 문제, 여성인권, 아동인권, 그 다음에 동물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닭이나 소도 죽을 때 아프다. 사람과 친하다고 해서 이 생명은 함부로 다루어도 되고, 가깝지 않다고 해서 막 해도 될 권리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것이야 말로 인간 중심의 사고 방식이 아닌가? 라는 의문도 든다. 깊게 생각해볼 문제다.

마지막 반려견 초코를 입양하게 되는 과정은 조마조마하게 느껴졌다. 경계심이 많은 초코를 우리에서 나오게 할때까지 천천히 기다린 주인공의 인내심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은 주인공이 세 녀석을 키우게 되는 이야기, 동네에서 마주치게 된 개들의 이야기 까지 담아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개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생명의 중요성, 개를 대하는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관점,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실 개나 고양이를 그렇게 길들여 놓은 것은 결국 우리 선조들이다. 개인이 한 일도 아니고,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 모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인류가 해놓은 일이다. 약자이자 소중한 생명인 그들도 생각할줄 아는 것도 진화된 인간으로서의 능력이라 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고, 이 책을 읽을 사람이라면 그정도는 다 안다는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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