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질 권리 - 나약한 삶에서 단단한 삶으로
김민후 지음 / 프롬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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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학설이 있고 저마다 그럴듯한 주장이 있다. 저마다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에 그럴 때는 그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된다. 기존의 학설을 뒤집기 위해서는 근거와 입증이 필요한데,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새로운 가설이 증명이 되어 바뀌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보가 넘쳐나는 최근에는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주 중요한 관건이 되겠다.

 

최근 자존감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나 또한 자존감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고 이것에 대한 책도 찾아보고 자존감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저자는 이 자존감이라는 용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심리학은 주로 서구권에서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은 번역어인 경우가 많은데, '자존감'이라는 언어는 자아 존중감의 약어로, 영어의 self-esteem 을 번역한 용어라는 것이다. '존중'이라는 단어는 최근 힙합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인 Respect 라고 볼 수 있고 esteem 은 어떤 분야의 성취나 능력, 자질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아닌 '자기 평가감', '자평감'이라고 불러야 옳다. 잘못된 번역인 것이다.

 

자기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다. 그거에 상관하지 않고 계속 그럴 수는 있겠지만 남들에게 인정받기는 어렵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아예 신경쓰지 않고 살수는 없다. 자기 만의 도취에 빠져서 살며 남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척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방식만 다르게 아주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자존감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자기에 대한 평가가 너무 낮으면 문제가 된다. 할 수 있는 일도 자기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좌절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자기평가를 높임으로서 여기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적당히 해야 한다. 늘 극단적인 것이 문제다. 자기 평가가 너무 높으면 남들을 무시하거나 오만해지거나 자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면죄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등 어이없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저자의 뜻도 이것을 경계하라는 것일 것이다.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조건으로 남도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함께 사는 사회에 남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문제 너무 신경써도 문제이다. 항상 적당히가 중요한 것인데, 이분법에 길들여진 우리는 항상 극단적이기 쉽다.

 

또한 저자의 말처럼 반작용에 주의 해야 한다. 자존감이라는 것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자존감을 갖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좌절할 수도 있다. 자존감에 신경쓰다가 작은 자극에도 내 자존감이 무너질까봐 전전긍긍하다 보면 그게 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자기애에 대한 것도 나약하고 게으른 내 모습 그대를 사랑하다가 더욱 빠져들 수 있다. 하고 싶은 게임을 정말 마음껏 하다가 폐인이 된것도 모잘라 목숨까지 잃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태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어느 정도 이상적인 나를 사랑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이지 못한 이상을 세우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나를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자기 유리하고 하고 싶은 쪽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인지, 맹점은 없는지를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남에게 과시하거나 드러내는 것은 항상 남들에게 꼴불견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돈이 많다고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실 과시를 하고 싶으면 큰 댓가를 지불하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과시를 해대는 것은 범죄와 다름 없다. 댓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그러면 안되는 것인데.... 돈도 안주면서 무료로 과시를 하는 것은 꼴불견인 민폐이고, 댓가 없이 기분을 공짜로 사려는 도둑질일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돈받고 당신의 과시를 참아내겠소라고 허락한 사람들에게만 해야 옳은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큰 돈을 지불해야 하지 않을가? 나라면 시간당 몇백만원은 받아야 당해줄것 같다. 난 사실 남이 돈이 많던 말던 내가 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이 돈이 많다고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나보다 돈 많은 사람은 빌게이츠 워렌버핏 부터 시작해서 세상천지에 널렸다. 그 사람들을 다 배아퍼하다간 죽을때까지 배만 아플 것이다.

 

공감에 대한 이야기도 저자의 말에 참 공감이 갔다. 엉뚱한데서 뺨맞고 와서 나에게 공감을 빚쟁이처럼 받아내려고 드는 사람들은 그저 진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공감을 쉽게 해주는 것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대충 별 생각없이 받아들일 때 자주 쓰이기도 한다. 무슨 일에 대해 속은 그렇지 않지만 좋게 생각하는 척 좋게 평가하는 척 아부를 해야 하는 직장상사에게나, 안 친한 사이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 겉치례의 형식적인 말을 던질 때 주로 쓰는데, 이것을 안해준다고 가까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못할 짓이다. 적당히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고객센터의 상담원과 나 처럼 친하지 않은 사이에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또 안해주면 안될것이다. 뭐든 '적당히'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일단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감정을 풀어주고, 또 너무 심하게 감정이 폭발할 때는 적당한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달콤한 사탕은 적당히 먹어야 하는 것처럼 적당히 해주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동물에 가까운 단순한 본능적 욕구의 해소일 뿐인지, 진화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것 등인지를 따져봐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나는 애착이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가 현재 어른이 된 나에게 악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맞다고 본다. 부모의 무심코 한 행동이 그럴 수 있고, 학교 선생이나 다른 어른, 혹은 또래 친구가 원인일 수 있다. 근데 이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인지함으로서 원망을 하자는 것이 이 이론의 취지가 아니고 원인을 파악하고 극복하기 위함인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인지를 해야 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원망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차피 평범한 사람이라면 과학자도 아닌데 그런 이해관계를 어찌 배우지도 않았는데 터득하고 자녀에게 적용하겠는가? 심한 물리적 성적 학대가 있었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른이 다 되서도 부모탓을 어른이 되서도 어린아이처럼 징징 대면서 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그러라고 이 이론을 연구한 것이 아니다. 꼭 앞뒤 다 짤라내고 필요한 것만 편향적으로 보는 시선이 문제다. 그런 사람들은 책 한권 읽지도 않았으면서 단지 한 줄의 결과만 답인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바보일 뿐이다. 답에 길들여져있는 우리지만 인생은 더이상 어린시절의 시험문제가 아니다. 답보다는 그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과정이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제목대로 의존하지 않고 강한 의지를 키워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즉, '어른이면 어른 답게 행동하라' 라는 메세지라도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일까? 아니다. 그저 늙은 것일 뿐이다. 사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 천지에 널려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절대 인정하지도 않으려 들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대우만 받으려 들고 어른 다운 행동은 전혀 하지 않고 늙은 가죽을 뒤집어쓴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는 것만큼 꼴불견인 것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이런 책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 한 사람만이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책을 읽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좋은 신호라 하겠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봐야 한다. 전체적인 맥락을 반드시 이해하고 과하게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절대 아큐정전에 나오는 아Q의 '정신승리법' 처럼 현실을 왜곡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5장 '무엇이 정신을 강하게 하는가' 에서는 자유의지를 통한 자기극복을 강조한다.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다. 신체를 단련하는 것은 정신단련에도 도움이 되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사람의 인생을 반영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항상 위기에 처한다. 위기에 처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을 것이고 있다해도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 다 극복하지 못했다 해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소설이다. 사람의 인생도 우여곡절이 있다. 힘든 것을 참아내야만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넷플릭스의 미드 '굿플레이스' 에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주인공들이 영원히 좋은 일만 있는 천국같은 장소, 굿플레이스에 마침내 도달한다. 그러나 굿플레이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주인공들은 너무도 허무해지고, 영원한 소멸을 택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난다. 참 인상 깊은 결말이었다. 나 같으면 안그럴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책의 조언들은 따끔한 주사와도 같다. 주사는 아프지만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을 해주기도 한다. 단지 부작용에 주의 해야 하니 적절히 잘 들을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극단적이면서 감정적인 성향을 잘 아는 저자는 따끔한 주사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절하게 저자의 조언을 잘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겉핥기 식의 인터넷에 떠도는 앞뒤 자른 조언보다는 저자의 조언이 피가 되고 살이 될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동안 안일하게 생각하거나 나태해졌던 나 자신에 대한 좋은 채찍질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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