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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 낭만주의 시대를 물들인 프리마돈나의 사랑
빌헬미네 슈뢰더 데브리엔트 지음,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2021년 5월
평점 :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카사노바'는 바람둥이를 뜻하는 명사로서 자리 잡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행각이 알려진 것은 회고록을 통해서 인데,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어디선가 읽은 바로는, 여성 최초의 유혹자는 세이렌이라고 한다.
상반신은 여자이지만 하반신의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바다의 요정이며 감미로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했다고 전해지는 동화속 주인공인데, 유혹에 능했던 여성들을 세이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가히 세이렌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클레오 파트라, 롤라 몬테즈, 바이올렛 고든 우드하우스 등 유명 세이렌 대열에 낄 수 있을거 같다.
200년 전에 태어난 빌헬미네 슈뢰더 데브리엔트 - 일명 폴린은 프리마돈나로서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이라고 한다.
이 책도 프리마돈나의 회고록 형식이다. 사후 2년 후에 출간된 책은 본인이 직접 썼느냐 아니냐의 진위 여부로 논란이 있었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맞다는 것이 중론이고, 19세기에 당시 여성으로서 굉장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십대의 어린나이에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 주인공. 세상을 보는 눈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정도로 강렬하게 호기심을 자극했고, 사촌 오빠를 목격한 일, 사촌이자 가정교사인 마르그리트양과의 경험 등을 통해서 극대화된다.
첫 연인이라 할 수 있는 마르그리트 양은 폴린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자신의 과거 경험까지도.

보수적인 시대에도 사람의 감정과 욕구는 지금과 다를바 없는 것 같다. 폴린 뿐만 아니라 마르그리트의 연인이었던 남작 부인, 루돌핀 등 회고록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겉으로는 당시 사회가 강요하던 모습을 따르는 듯 하지만, 욕망은 그렇지 못했고, 그 은밀한 욕망은 밀회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은밀한 욕구를 해소시키지 않았나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책 내내 솔직하고 자세한 성애 묘사가 가득하다. 회고록이지만 19금 소설을 보는 듯이 흥미롭게 술술읽히면서 자극적이다. 사실 번역을 하면서 서간체였던 문장을 일기형식으로 조금 수정했다고 한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내용도 문체가 너무 옛스럽고 딱딱하면 흥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너무 어린나이에 세상의 한 가지 비밀을 알아버린 폴린.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가수가 되기위해 유학을 할 때도 많은 청년들의 유혹이 있었지만, 이미 단계를 넘어 조숙해져버린 폴린은 가수로 성공하고나서 얼마든지 그것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넘어가지 않았다.
극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만난 루돌핀과 왕자를 마르그리트가 남작부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모르게 주도권을 쥐고 있다. 순진한 총각이었던 아파르트 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이 유혹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폴린이 많은 후보들 중에서 선택했고, 자신을 유혹하도록 만들었던, 고단수의 유혹을 보여준다.
폴린이 사교계에 진출하고 만난 로즈와 페리는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억압된 시대의 욕망은 은밀한 곳에서 현시대 이상의 폭발력을 지닌 것 같다.

폴린은 그 시대로선 개방적인 인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에 순응한 사고방식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욕구와 마음을 감추었던 것은 당시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략이자 방어였을 것이다.
그렇게 감춰오던 마음을 - 전부인지는 알길이 없지만-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줬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린의 그 용기가 19세기와 그 시대의 여성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어느정도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히면서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