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지능이다 - 신경과학이 밝힌 더 나은 삶을 사는 기술
자밀 자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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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트콤 빅뱅이론을 보면 천재 물리학자인 '쉘든'이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준다. 머리는 좋으나 공감지능은 보통사람 이하여서, 이기적이고 괴팍하다.

쉘든 정도는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이런 사람 한 둘쯤은 보았을 것이다.

아니, 그게 자신일지 모른다. 누가 나에 대해서 그런 말이나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공감은 지능이다' 는 공감 능력이 인간의 두뇌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연구를 모은 이야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들을 보면 타고났고, 과학도인 쉘든도 마찬가지다. 그런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라는 신조를 확인이라도 하듯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 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저자는 공감능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과학적 실험이나 근거들을 내세우면서 주장한다. 내 개인 경험상으로도 이것에 동의한다. 한 때는 남의 마음에 크게 관심도 없었고 공감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것도 하려는 의지가 있으니 많이 나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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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능력을 굳이 성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사는데 크게 불편한 것 없을것 같기도 하다.

남의 처지를 너무 공감을 해주다가 그게 거짓말이어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오지랖만 넓어져 손해만 보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저자에 의하면 공감능력은 꼭 필요한 것이고, 공감을 키울수록 대인 관계 및 직업, 행복지수가 좋아진다고 한다.

많은 실험들로 그것을 증명해놓았고, 책의 부록 부분에는 챕터에서 이야기 했던 주장들의 신뢰성에 점수도 매겨 놓았다. 5점이면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거의 확실시 되는 근거와 검증이 된 것이고, 점수가 낮을 수록 다각도로 검증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1,2 점이라고 해서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검증이 많이 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읽어보기에도 점수가 낮은 것들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공감에는 남의 감정을 느끼는 인지적 공감, 감정을 함께 나누는 정서적 공감, 그것을 해소해주려고 하는 공감적 배려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들만의 전유물 같지만, 동물들도 공감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결과가 많다.

공감은 진화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필수적으로 협력을 해야 하고, 다른 개체의 위험이 자신의 위험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절과 협력과 배려는 종 전체의 생존에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도 있지만, 상황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그 중요성을 인지할 능력이 있다.

쥐 한마리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면, 고통받는 쥐를 보고 동요하는 다른 쥐들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달려들어 한마리를 잡으면, 나머지는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나는 강아지 두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 강아지들도 공감능력을 보이곤 했다. 한마리를 목욕을 시키고 몸을 말리고 있으면, 다른 한 마리가 그 앞을 떠나지 않고 안절부절 못한다거나, 한마리가 기쁘게 장난을 치면 다른 한마리도 기분이 좋아진다.

지능지수 또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래전 학자들은 지능지수가 한 번 정해지면 평생 변하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퇴화된다고 굳게 믿어왔고 그렇게 공표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고정주의자라 하고, 반대는 유동주의자이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들은 전혀 다르게 나온다. 지능지수가 높아진 사례는 수도 없이 많아서 따로 검증이 필요없을 정도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지능지수가 환경이 좋은 곳에 입양되고 교육을 받으면 크게 올라간 결과를 보인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수십년 전에 그 이론은 잘못 되었음이 판명이 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고정주의자에 비해 유동주의자의 공감능력이나 지능지수가 유동주의자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진실은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지만, 효과는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현명하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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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과한 것은 좋지 않다. 저자는 지나친 공감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공감도 너무 과하면 피로와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우울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지나치게 공감하면 같이 수렁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서비스나 전화 상담원들의 감정 노동에 대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공감능력을 진화시켰지만, 최근에는 공감능력이 퇴화되었다고 한다. 80년대와 지금의 조사는 그것을 입증한다. 굳이 자료 없어도 갈수록 삭막해져간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듣곤 한다. 특히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일 수록 그것이 심하다. 그러나 배려와 공감은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다. 물론 저자가 지적했듯이 지나치면 그렇지 않지만.

책이 참 좋다고 느껴졌다. 주장에 근거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고 설득력이 있다. 어때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지만 와닿는다. 그리고 삶에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공감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좀 달라질 것 같다. 공감능력의 '쓸모' 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는 왠만하면 책을 지인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쉽고 재밌다는 이유로는 더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자유롭게 느낀 마음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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