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알리미 등록을 해둔 저자는 딱 둘뿐이다.

양자오와 정희진.

양자오의 책은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쉽다.

어려운 고전을 이렇게 까지 쉽게 풀어 쓸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그만큼 그 고전에 대해 자기것으로 온전히 습득한 후

책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발간된 <논어를 읽다>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까칠하고, 명쾌하고, 섹시한 책에

별점 테러를 하겠다.

별점 한개!

 

 

 

 

 

 

 

 

 

 

 

 

 

 

 

 

☆☆☆☆★

 

짧다. 너무 짧다. ㅜ..ㅜ

책장이 넘어 가는것이 아까워서

한숨이 날 정도로 짧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이 줄어드는 것에 화가 나는것처럼 말이다.

 

물론 논어라는 텍스트의 해석을 주로 한다기 보다는

이 책의 부제와 같이

'공자와 그의 말을 공부하는 법'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라는걸 알면서도

아쉬움은 어쩔수가 없다.

 

결론:지금 공자를 읽는 의미

 

「선진」편을 중심으로 일부 다른 편의 내용을 곁들여 『논어』를 골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읽기를 통해 어떤 가치를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논어』를 추상적인 이치로 받아들여 암송하기보다는『논어』 를 통해 춘추 시대의 특수한 상황, 공자라는 훌륭한 인물 그리고 그가 시대의 격변 앞에서 내놓은 갖가지 주장과 함께, 그 주장들에 통합된 근본 신념들을 살피는 편이 낫다는 사실입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논어』를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흥분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공자 같은 인물과 그런 개성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또 그는 어떻게 그런 안목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고 지혜가 가득한 언어를 토해 낼 수 있었는지 경탄을 금치 못할 겁니다. 공자는 우리보다 강력하고 지혜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강력함과 지혜에 감화되어야지, 단지 그의 생각과 말을 흉내 내어 우리 시대에 대응하고 우리의 현실 문제를 처리하려고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먼저 이 고전들은 오늘날의 우리를 우해 쓰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태어난 시대에 우리와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이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자만심을 버리고, 잠들어 있는 보편된 인성을 일깨우며 다른 삶의 조건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남긴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서야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현실적 고려에 의해 역사를 단편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버리고, 역사를 관통하는 인류 보편의 조건과 역사와 보편 사이의 접점을 발견하며,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p17-18

 

공자는 주공을 우상으로 삼고 주공이 건립한 예악禮樂의 질서로 돌아가기를 꿈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말로 그 꿈이 실현되어 주나라 초기의 봉건 체계로 돌아갔다면 거기에 공자같은 인물이 설 자리는 없었을 겁니다. 역사적으로 공자는 대단히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행한 일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의 봉건 문화를 망가뜨리고 훼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동경한 것은 옛 봉건 체제, 다시 말해 그 자신과 같은 '스승'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공자가 생전에 크게 유명해진 첫 번째 원인은 많은 제자에게 획기적으로 귀족 교육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원인은 이보다 더 중요한데, 바로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진정으로 '쓸모가 있어서'춘추 시대라는 시국의 수요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자는 어쩌면 최초의 뛰어난 인력 자원 전문가였습니다. 당시 인력 자원의 수요를 꿰뚫어 보고 과감히 틀에서 벗어나 적절한 인력 자원을 제공할 방법을 찾았던 겁니다. p44-45

 

다음은 「선진」편의 넷째 장입니다.

 

"회는 나를 돕는 사람이 아니니, 내 말에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는 진심으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하는 교학상장 敎學相長을 중요하게 생각한 인물이었습니다. 『논어』를 보면 수많은 제자의 '질문'이 실려 있고 그중에서 어떤 질문은 제자가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을 반복해서 캐물어 더 완전하고 자세한 답을 요구합니다.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스승의 설명도 더 완전해지고 자제해지기 마련입니다. 아울러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은 스승의 말과 행동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특히 자로는 걸핏하면 스승에게 대들 듯이 묻곤 했습니다. "말씀이 왜 그렇게 진부합니까?","처신이 원칙에 어긋나는것 아닙니까?"라고 말이지요, 이런 질문은 공자로 하여금 자신의 언행이 일치하는지 혹은 앞뒤가 맞는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이야말로 공자가 생각한 '나를 돕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p64-65

 

공자가 생각하기에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마땅히 봉건 질서를 회복해야 했고, 또한 봉건 질서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륜의 관계의 각 주체들이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애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식 된 자는 '효'에, 신하 된 자는 '충'에 힘쓰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공자는 결코 자식과 신하에게만 편파적으로 역할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동시에 아비된 자도, 군왕인 자도 각기 아비답고 군왕다워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관계는 상대적이므로 행위에 대한 요구도 필연적으로 상대적이어야 했습니다. p79

 

공자는 언제나 배운 다음의 일을 걱정했습니다. 도덕 원칙을 깨달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식을 갖춘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범을 납득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을 점검하고 이해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상 많은 사람이 거기게 머무를 뿐 '그다음'이 없습니다. 특히나 스승은 더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단지 가르칠 목적으로 그때그때 지식을 흡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눈에는 당연히 학문이 깊어 보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사람이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그 배운 것들은 그의 삶에 점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p141

 

 

 

 

 

 

 

 

 

 

 

 

 

 

 

몇해전 읽다가 덮어둔 논어. 다시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자를 모르니 아무래도 제대로 공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또 다시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양자오 선생의 책. 감사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5-08-18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저자를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본론부터 하나씩 읽어봐야겠어요.

아무개 2015-08-18 12:30   좋아요 0 | URL
이분 책들이 정말 초보들을 위한 입문서라서요...
감은빛 님께서 읽으시기엔 그러니까 너무 많이 꽤 상당히 쉬울텐데요 ㅡ..ㅡ
하지만 저같은 `초초보` 들에게는 정말 좋은 책들입니다.
독서열에 기름을 막 쏟아 부어주거든요.

단발머리 2015-08-1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초초보`라 완전 괜찮겠어요.
근데, 인용해주신 것 보니까, 엥? @@
나, 초초초초보인가봐요.

아무개 2015-08-18 15:3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녀요.
제가 부분 발췌한 글을 읽으셔서 그렇지
단발머리님께도 분명히 쉬운 책일껍니다.
*^^*

글샘 2015-08-18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병삼 선생님의 맹자와 논어도 쉬운 책입니다. ^^

아무개 2015-08-18 17:36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알고 시작했었는데
제게는 쉽지만은 않았어요
(づ_ど)

보슬비 2015-08-2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해서 짝꿍괴롭히는 초딩남자아이 같아요. 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8-20 08:51   좋아요 0 | URL
하핫 그런가요?
^^::::::::::::::
 

첫 번째 질문 청년 세대의 고통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결코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지금의 오륙십 대를 중심으로 하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느라 청년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덧씌웠다. 외환 위기 이후 어느덧 20년 가까이 이런 현상이 여러 계기별로 이어진 셈이다.

직장에서 구세대가 정규직 지위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다수의 청년 세대가 비정규적으로 흡수되어 기성세대의 고용 안전판 구실을 해주었다. 정리해고 등으로 직장에서 밀려난 구세대 상당수가 자영업에 뛰어들었을 때 알바 형태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한 것도 청년 세대였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편안하게 잘살고 있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 한국 노인 빈곤율은 50퍼센트에 육박하고 여성 노인 빈곤율은 47.2퍼센트로 OECD 국가 가운데 1위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어렵게 도달한 중산층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을 뿐인데, 그 사이 자식 세대는 의생되고 기성세대는 노후조차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것이다. P40-41

 

두번째 질문 외환 위기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을 기반으로 1992년 대선에 승리해 제 14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떳떳치 못한 배경에서 출범한 김영삼정부로서는 서둘어 이전 군사정권과 뚜렷이 차별화하고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부담이 상당했다. 그 같은 조급증이 파국의 근원이 될 조치를 잇달아 취하도록 내몰았다. 우선, 관치 금융을 해소한다는 취지를 내세워 정부가 쥐고 있던 금융기관을 서둘러 민영화했다. 금융시장 자유화를 추진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이를 민주화의 화룡점정으로 생각했다. 더불어,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는 상직적 조치로서 OECD 가입을 서둘렀다. 그런데 가입의 전제조건이 다름 아닌 금융시장 개방이었다.

마침 미국은 한국 정부에 금융시장 개방 압력을 집중적으로 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자진해 OECD 가입을 서두르는 김영삼 정부의 태도는 미국 입장을 매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후의 역사가 입증하듯, 금융시장 개방은 미국이 신자유쥬의세계화 전략을 관철시키는 첫 번째 수순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금융시장 개방이 불러올 파장을 면밀하게 검토한 시간도 능력도 부족했다. P49-50

 

월가 금융 세력과 이를 대변하는 미국정부가 한국을 외환 위기로 몰아간 것은 여러 증거를 통해 확인되는 객관적 사실이다. 미국은 왜 한국이 곤경에 빠지기를 원했을까?

(...) 실제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1970년대 이후 유래없는 장기 불황에 시달렸다.  오랜 암중모색을 거펴 1980년대 초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새로운 탈출구를 제시했다. (..)요지는 '경제 환경을 (금융)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송두리째 바꾸자.'였다 (..)그동안 여러 해석이 존재했지만, 결국 신자유주의란 금융자본이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머지는 모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 낸 논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노동시장 '유연화',공기업 '임영화', 정부 규제를 철폐하는 '자유화', 경제에서 국경선을 지워 버리는 '개방화'등도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이다. P54-55

 

이 모든 과정을 압축하면 이렇다. 기업 가치는 하락을 거듭하는데도 주가는 199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기업 가치와 주가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진다. 그렇다면 기업 가치와 주가 사이의 간극을 무엇이 메웠나? 바로 인위적으로 형성되 '거품'이다. 그리고 거품은 떄가 되면 반드시 꺼진다. (...)신경제와 신자유주의의 실상이 이런것이었지만 승승장구하던 금융자본과 미국 정부, 그리고 국제 금융기구들은 이 같은 메커니즘을 전세계로 이식시켰다. 한국은 가장 대표적인 타킷이었던 것이다. P58-59

 

나는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한 중심 논리를 다음 세가지로 정리해 본다. '돈 중심', '엘리트 지배','승자독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곧 신자유주의 사회 문화의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이들 논리가 관철되면서 한국 사회는 극도로 뒤틀렸다.

P66

 

세상이 돈 중심으로 돌아가면 나머지는 쉽사리 하찮아진다. 심지어 인간의 존엄과 생명마저도 돈보다 순위에서 밀린다. 돈이 가치 사다리의 꼭대기에 선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지경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가 아닐까.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줄줄이 폭로되는 부정한 유착 고리들에 분노했지만, 그 비정상이 사실상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음을 뼈아프게 자각했다. 그렇게 돈 중심의 사회가 꽃다운 학생 수백 명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월가 금융자본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고도의 사기극일 뿐이었다. 이 사기극이 원만하게 성사되려면 다수 대중을 현혹할수 있어야 한다. 누가 그 일을 맡는가? 엘리트들이다. 여론 형성의 '1:9:90 법칙'은 여기서 나온다. (...)소수 엘리트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강할수록 사회 전체의 창조적 발전은 억눌릴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엘리트주의는 저소득층과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을 약화시킨다.(...)누군가 승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사회적 경제적 결실을 독식하는 현상에 대해 비찬하고 경계하는 것이아니라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부러워하고 숭상했다. 자연히 부조리한 현실에 대중이 함께 힘을 모아 저항라려는 의지도 후퇴했다. 욕망의 포로가 되는 순간, 타인은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 상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스템이 한번 사회에 정착하면 여간해서는 고쳐 내기가 어렵다. (..)하물려=며 신자유쥬의는 시민들의 비판적 사고 자체를 퇴색시켜 사회 변화에 대한 의지를 잠재운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지점일 것이다. P66-73

 

세 번째 질문 진보개혁 세력은 왜 추락했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주축은 과거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사람들이었다(...)그러나 두 정부는 시종 투자자의 세계관을 견지하고 자유쥬의 세상으로 내달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크게 봐서 두 가지 요인이 당시 핵심 정책 입안자들의 판단을 흐렸다. 그 하나가 냉전 체제 해체 이후 형성된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이다.(..)미국식 자본주의는 선택 가능한 유일한 답으로 부상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가 승자 프리미엄을 마음껏 누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식 가치와 시스템을 내장한 신자유쥬의가 우일한 선택지처럼 보이는 국제 정세였다.

신자유주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쉽게 먹혀든 또 하나의 요인은 시장만능주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 다수는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경험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정권의 탄압을 받고 국가가 동원한 물리적 폭력과 싸우는 동안 그들은 국가의 억압과 간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내면화했다. 자연히 국가의 개입을 줄어들수록

국민의 권리가 신장되고 민주주의가 성숙할 것이라는 생각도 강했다. (..)마지못해 수용했다기보다 적극적 대안으로 간주한 측면이 상당했다.P82-73

 

외환 위기를 계기로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이 대규모로 양산된 상태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지속적인 부작용을 낳을 것이 뻔한 노동 유연화 정책에 합의해 준 것은 분명 심각하한 문제였다. 적어도 관련 입법을 몇 년 이내의 한시법으로 정하고 그 사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함께 마련할 것을 요구했어야 했다.(..)노동자들이 노조를 무기로 제 살길 찾기에 몰두하자 사용자들은 이들의 요구를 적정선에서 수용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신규 채용 인원을 줄이고 그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뽑는 방식으로 자연적 구조조정을 도모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급증했다.P88-89

 

기득권 세력이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평화 대 냉전 구도를 꺠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양자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그들은 절치부심했다. 그 핵심에는 당시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한 박근혜가 있다. P93

 

여기서 두 두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는 노동자의 참여를 통해서만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둘째, 노동자는 언제나 사람 중심가치를 확고하게 견지해야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최장집 교수가 제기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함의도 이과 관련있지 않을까.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진보개혁 세력 전반은 너무도 쉽게 노동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발전 과제를 놓아 버렸다. 노동자 자신들도 전체 노동자, 즉 사람의 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노동운동의 길에서 멀어져 갔다.P101

 

네 번째 질문 민족 분단은 피할 수 없었던 일인가?

 

해방 정국에서 미국과 이승만, 친일파가 한반도 전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길은 딱 한가지뿐이었다. 먼저 분단 장벽을 굳힘으로써 남북의 좌익을 확실히 분리시킨다. 그리고 38선 이남의 좌익과 임정 세력의 상호 대립을 유도함으로써 서로가 서루의 힘을 약화시키도록 한 뒤 각개격파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텨 비로소 남한 지역의 헤게모니를 차지한다. 이러서 무력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38선 이북을 제압해 한반도 전체를 손에 넣는다. 이것이 미국과 이승만, 친일파가 선택한 노선이었다. '분열에 기초한 분단의 길'이라 하겠다.P111

 

과연 분단은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었을까?(..)국민들은 혼란스러운 정국에서도 매 순간 정세 흐름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정치 세력들이 이 중요한 기회를 놓치거나 국민의 선택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렸다.

대중과 유리된 모험적인 엘리트주의는 역사 진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국민의 힘을 굳게 믿고 통일 세력을 최대한 끌어 모아 분단 세력에 대응하는 정치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승자독식이 아닌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면, 우리 현대사는 출발부터 크게 달랐을 것이다.P126

 

다섯 번째 질문 한국전쟁이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미국이 전쟁을 원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배경은 미국의 군수산업 상황이었따. 미국 정부는 군수산업체들로부터 국지전 수준이라도 전쟁을 재개하라는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2차 세계대전이 2년이나 빨리 끝나 버리면서 미국 군수산업에는 미처 소화하지 못한 전쟁 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가 자칫 공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탈출구는 군수품 재고를 쏟아 부을 전쟁뿐이었다.P136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북 모두 철저하게 외세에 의존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에 의존해 무력 통일을 준비했고, 중국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남한은 모든 것을 미국에 내맡기다시피 했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자주'의 원칙이다. 한국전쟁은 통일이라는 목적이 결코 전쟁이라는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음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 민족의 대원칙이 '평화'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또 한국전쟁은 진영논리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상생의 관점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민족 대단결'의 원칙이다. P152

 

여섯 번째 질문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은 누구인가?

 

한국이 단기간에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은 평등주의지향을 품은 국민들의 열정과 헌신이었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저축률, 여전히 세계 수위를 차지하는 교육열은 성장 엔진에 끊임없이 기름을 부었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기업 창업과 투자 열기, 모험을 감수한 경영자들의 열정도 경제 도약의 중요한 견인차였다. 만약 이러한 요소가 없었따면 어느 누가 지휘봉을 잡더라도 한국의 산업화는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진짜 주역은 단연 국민들 자신이었다.P174

 

일곱 번째 질문 엄혹한 그 시절 민주화는 어떻게 가능했나?

 

그렇게 광주민중항쟁은 계엄군에 의해 난자당한 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시작이었을 뿐이다.(...)만일 21일 전남 도청 앞에서의 집단 발포 이후 시민군이 등장하지 않고 시위대가 모두 해산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후 광주항쟁은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아마도 군부에 무모하게 저항하다 극심한 피해만 입은 사건 정도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한 패배감 무력감, 군부의 물리력에 대한 공포심은 국민들 가슴에 남아 5·16쿠데타나 서울역 5·15회군 때처럼 민주주의가 무력으로 위협 당할 때마다 겁먹고 뒤로 물러서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군의 등장과 도청 사수 투쟁은 군사독재에 대한 굴종과 타협, 회피와 방관 심리를 일거에 날려 버렸다. 광주 시민의 희생과 결연한 투쟁 의지는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자극했고, 홀로 섬처럼 고립되어 진압당한 광주항쟁에 대한 부채 의식과 연대 의식이 각계각층으로 번졌다. 이는 1980년대 내내 계층과 부문을 초월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불씨로 작용했다.P198-199

 

여덟 번째 질문 글로벌 금융 위기는 신자유쥬의 몰락의 신호탄인가?

 

종합적으로 불 때 한국 경제는 과잉 팽창한 가계 부채와 과잉 축적된 뭉칫돈이라는 두 개의 과잉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위기를 키우고 있다. 과잉 축적한 뭉칫돈 때문에 돈을 풀어도돌지 않으면서 경제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욱 커지면서 가계 부채는 점점 팽창하는 것이다. 신자유쥬의에서 비롯한 한국 경제의 위기가 점차 심각해지는 과정에서 경제 운용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이들 보수 정부에서 제반 경제 지표는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P238-239

 

아홉 번째 질문 촛불 시위는 왜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인가?

 

촛불 시위는 주류 사회의 작동 방식은 물론이고 진보 운동의 전통적 집회 시위 양식과도 확연히 차별화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특성은 개방성, 수평성, 다양성 세 가지로 집약된다. 탈산업 사회가 필요로하는 사회적 환경과 춧불 시위의 패턴은 놀랍도록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2008년 춧불 시위는 향후 한국 사회의 환경과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수십만의 청년들이 나서서 몸으로 보여 준 거대한 행위예술이다. 또한 청년 세대가 그 내부에 미래를 이끌 새로운 요소를 담지하고 의연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선포한 사건이기도 하다. P249

 

열 번째 질문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현재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약이 절실한 상황이며 산업 경제에서 벗어나 창조 경제 중심으로 재편되려는 초기 국면에 놓여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고 경제 민주화를 진전시키고 분배의 형평성을 더 늘려야하는 등 우리 앞에는 기존에 제기된 여러 경제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연장선에서만 사고해서는 근본적 전환은 어렵다. 돈 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아울러 대기업 위주에서 탈패해 중소기업·벤처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전환하고 창업하기좋은 나라를 만들어 창조 경제 시대에 맞는 체질로 전환해야 한다. P274-275

 

열 한번째 질문 어떻게 해야 통일을 믈루오션으로 만들 수 있나?

 

서둘러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키고 애초의 계획에 맞게 키워 나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불어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합작 공단을 지속적으로 늘려 가야 한다. 그럴 때 통일 여건이 비약적으로 성숙될 수 있다.

남북 합작 공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정치적 협력이 증진되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도 함께 발전할 것이다. 더불어 군사적 긴장도 완화될 수밖에 없다. 함작 공단이 늘어나면서 통일을 주도할 역량 또한 그만큼 커진다. 합작 공단을 매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협력도 한층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어느 모로 보나 개성공단의 정상화와 연속적 확산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사실상 유일한 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분단을 거쳐 통일을 실현한 다른 나라들보다 조금 늦은 대신 그들보다 훨씬 진일보한 통일을 이룰 가능성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다.(...) 그러자면 민족 상생의 관점에서 통일을 사건이 아닌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 과정의 핵심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확산시켜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 통일은 우리 시대 최고의 블루오션으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P303-304

 

 

 

 

앞서 읽은 최장집 교수의 책과 이어지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민주화의 주요 동력을 보는 관점이 다른것 같다.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최장집 교수의 의견에 한표.

 

용산과 쌍용 사태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세훨호에 대해서는 저자가 아직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서문에 밝히기는 했지만....

 

두권의 책을 읽고나니, 역시나 통일이 되기전에 우리 나라의 민주화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실이 든다. 그런데 지금 남북 기득권 세력들과 미국·중국·일본·소련 같은 강대국들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게 과연 당위적인 바램 만으로 가능한 일이긴 할까...북한이 붕괴되면 아마도 중국으로 흡수될 것이고, 미국은 일본에 더 강력한 군사력을 지원해 주겠지. 아베가 지 혼자 저러는게 아니라는..... 

 

통일이 대박이라면 뭔가 좀 해보지 그래. 그런데 뭔가 하고 있긴 한건가 당신?

 

 

 

 

 

벨기에 54년

프랑스 무려 97년

이탈리아 33년

독일 48년

영국 10년

스위스 헐 123년

뉴질랜드14년

미국 60년

 

서구에서 남자가 한 사람의 주체로써 투표권을 가지게 된후 여자가 투표권을 가지게 되기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여년이 걸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해방이후 미국과 독일 법을 따라 하다보니 자연스레 같은 해에 남여 보통 선거권이 주어진듯한데,

만약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거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선거권을 갖기까지 얼마쯤이나 걸렸을까...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나온 표를 찍어 두었던것인데 이제야 생각나서 여기에 첨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5-08-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세길이라는 저자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네요.
이 책은 완전 도전해보고 싶어요. 웬지 팍팍 읽힐 것 같은 그런 예감 같은 예감이....

아무개 2015-08-18 15:36   좋아요 1 | URL
박세길씨의 대표작 <다시쓰는 한국 현대사>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이 책<민주화와 경제성장은...>은
쉽게 쉽게 읽히고 내용도 전반적으로 수긍이 갑니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 체제, 사실상 보수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 체제에 있다고 본다. 내용적으로 보수 편향의 정치 구조는 민주화 이후에 변화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한 사회가 이념적으로 자유롭지 못할 때, 냉전 반공주의가 여전히 지배적인 정치 언어로 기능하고 있을 때, 민주주의는 그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합의 형성의 기제가 되기는커녕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사회의 기득 구조와 특권 체제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기제에 머루르게 된다.

냉전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보수 편향의 정치적 대표 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결과는 무수히 많다. 직접적으로 그것은 서민과 노동계급의이익 및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지속 시킨다. 좀 더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그것은 노동을 천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일에 대한 헌신이 갖는 사회적 가치를 경시하며, 따라서 부동산 투기나 재체크, 펀드 관리와 같이 생산적 노동을 당본하지 않는 그야말로 돈벌이 그 자체에 구이 사회가 열병처럼 휘말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p23

 

중요한 것은 지역감정의 정치가 서울로의 초집중화 및 그에 따른 지방의 배제라는 갈등 구조에 기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정치적 분획선은 중앙 대 지방의 차원에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 대 지방의 대립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초집중화의 문제를 지역 간 갈등으로 환치시킨 힘은 다시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성에 있다. 정치적 대표제체의 이념적 협애성, 계층적·이념적 기반을 갖지 않는 정당 조직, 보수편향적 엘리트 과두 체제, 냉전 기득 세력의 강한 헤게모니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조건에서 정치 경쟁은 국가권력의 소유권을 둘러싼 단차원적 갈등으로 표츌될 수밖에 없다. 이때 경쟁의 편을 가르는 구분선은 지연, 학연과 같은 일차적 특성에 따른 것이 되기 마련이다. 사실 지역감정의 대립은 중앙 엘리트 사이의 권력을 둘러싼 경쟁의 산물일 뿐, 그것이 영남과 호남의 지역민이 갖는 문화적 특성이나 어떤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p.32-33

 

 

결국 한국의 정당 체제는 분단국가를 만들었던 두 중신 세력인 이승만 그룹과 한민당(뒤에 민국당, 민주당으로 변화)이 공화국 수립 이후 서로 대립적인 경쟁자가 되는, 즉 정치적 노동 분업을 통해 경쟁 관계로 들어가는 것에 그 기원을 갖는다.(...)그리고 이 두 그룹만이 정당 체제를 주조하게 됨으로써 한국의 정당 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 첫째, 여야당은 이념적으로 동일한 지평 위에서 경쟁한다. 둘째, 양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중심적 성격이 강하다. 셋째, 사회의 계층적·작능족˙직업적 이익들은 그들 스스로의 조직화를 통한 방식으로는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 넷째, 그러면서 여야당을 막론하고 사회 전체, 국가 전체, 민족 전체의 대의와 이익을 내세움으로써 포괄 정당적 성격을 갖는다. p63-64

 

다른 한편 야당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제약과 조직 구조의 전근대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지지를 동원하고자 하는 의지도 능력도 인센티브도 갖지 않았다. 이미 분단국가의 건설자들은 스스로 정치적 경쟁의 틀을 협애한 이념적 공간 내에 가두었고, 갈등과 균열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 언어와 담론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했다. 좌우의 극한적 이데올로기 갈들이 가라앉았을 때, 당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인민'이라든가, '계급'이나 '노동자'라는 말은 공산주의자들의 언어인 것처럼 인식됨으로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정당이 사회갈들을 표출하고 대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결국, 야당은 오로지 권력 독점을 비판하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를 강조하면서 민주주의 세력임을 자임하는 것으로 임무와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130-131

 

나는 일찍이 한국의 지역문제는 지역 대 지역, 예컨대 전라도 대 경상도 하는 식의 지역간의 감정적 대립을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닌, '호남 문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지역 문제를 지경 간 감정의 대립으로 인식하는 것은 허위의식, 곧 이데올로기라고 강조해 왔다. 지역 문제의 본질인 호남 문제는 그 원인을 이루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갖는다.

하나는 유신체제에서 국가와 민간 부문의 엘리트 충원에 있어서의 호남 배제, 둘째는 지역 소외를 해소해 줄 지도자로서의 김대중씨와 호남민 사이의 강한 정서적 유대의 형성, 셋쌔는 광주민주항쟁으로 인한 억압의 집닺적 경험이 그것이다. 선거에서 지역 간 경쟁의 구도는, 1987년 민주와와 더불어 선거 공간이 개방되었을때 야당과 민주화 운동이 단일 전선으로 통합되는 것을 제어하고 분열시키기 위한 권위주의 세력의 사회적 동원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p132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한국의 지역 정당 체제는 민주적 개방과 더불어 대중 동원이 필요했을 때, 다른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것처럼 정치 갈등의 영역을 전국적으로 최대화하는 계층적·직능적·기능적 이익과 균열을 따라 대중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 구정당 체제의 틀 속에서 지역을 수직적으로 분획함으로써 국지화된 갈등 축을 따라 대중을 동원한 결과인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정당 체제가 지역 정당 체제라는 특성을 갖데 된 까닭이다. 이런 정당 체제는 샤츠수나이더가 말한 대로 일반 대중의 이익보다는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크게 유리한 '편향성의 동원'을 제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p133

 

보통 많은 사람들은 평민당·민주당·국민회의·새펀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을 개혁적인 정당으로,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보수적인 정당으로 통일민주당-김영삼의 민주계를 그 중간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이념적 스펙트럼 위에서 보수· 새력으로 가름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협애한 이념적 대표 체계에서 한결같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정당 간 이념적 차이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막연한 당엘리트의 과거 경력과 지지 기반의 성격 그리고 운동권의 누가, 어느 정도로 참여하고 있느냐 하는 정도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고, 따라서 그것은 다람 추론이나 추정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p135

 

민주 정부의 실패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기득 이익의 강력함, 여소 야대, 지역 기반의 소수자적 협애성 등과 같은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민주적 리더십의 약함과 정부 운영 능력의 약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 정부의 실패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 관료적 경영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민주적 국정 수행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조직적 기반과 리더십을 끊임없이 민주화하는 것만이 집권 민주 정부가 유능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기등스가 강조하듯이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귾임없이 인주화하는 것이다.

p151

 

즉 민주주의가 약한 것은 서구 민주주의의 정당의 제도화와는 달리 정당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했디 때문이다. 사회의 균열에 뿌리를 두지 않기 때문에 선거 경쟁에서 장당 간의 차이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장당과 사회 균열 사이의 연계가 약하기 때문에 선출된 공직자는 투표자에 대해 책임성을 갖지 않는다. 책임성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의 말은 유건자와의 약속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수사와 공약을 수 없이 토해내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도록 사회와 투표자에 의해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의 엘리트 이익과 사인적 보스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이런 상황은 곧 기득 이익의 헤게모니를 보장해주는 상황으로 귀결괼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냉전 반공주의와 접맥되어 있는 낡은 정당 체제를 해체하는 것, 다시 말해 정당의 가반과 구조 자체를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사회 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갈등 구조에 뿌리내리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186

 

IMF 금융 위기 이후 세계화라는 균열이 한국 사회를 그야말로 강타하면서 사회 갈들의 구조를 과거와는 크게 다른 것으로 변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균열의 축과 동맹의 양태가 왜 더욱 분열적이고 혼란스럽게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사회적 갈등이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대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IMF 금융 위기와 세계화로 인해 균열 구조가 변화되고 다양한 집단적 요구들이 제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당도 이를 댚하거나 여러 갈들의 요소들을 통합해 실현 가능한 정치적 대안으로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회 세력과 집단들의 요구를 실천 가능한 정책 대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마저 갖지 못한 채 한국 사회는 전보다 더 분열되고 말았다. p211

 

우리는 김영상·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채의 틈새로 효율성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향수, 물량적 발전 모델을 성공적으로 창출한 박정희 정부에 대한 향수가 세 정부의 개혁 담론을 비웃으며 더 확대 되었음을 보게 된다. 정치를 폄하하고 조롱하며 정부의 기능을 부정적으로 보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경제적 가치에 종속시키는 담론의 위력 앞에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의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운동이 현실적인 이념이나 목표를 갖고 우리 사회의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노동운동 내부의 연대적 기반은 약화되고 있는반면, 노동운동의 리더십은 아직까지도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급진주의에 의해 자신의 잠재력을 소진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급진적 이념을 상당 정도 선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규율할 능력을 갖지못하며, 우리 사회이 소외 집단과 세계화의 충격을 픕인한 광범위한 사회계층을 대변하지도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도 변해야 한다. p216-217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일 수 밖에 없다면,

다른 밥그릇을 찾는 수 밖에..,,

녹색당에 가입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8-15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5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이인분...
아.닙.니.다.
(≥∀≤)/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단발머리 2015-07-3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돈까스 메밀정식이죠~~ 1인분*^^*

아무개 2015-07-31 15:41   좋아요 0 | URL
배불러서 저녁은 패쓰~

스윗듀 2015-07-3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악 봐도 일인분인데요 뭐ㅋㅋㅋㅋㅋㅋㅋ 맛있게 드세요 아무개님😋

아무개 2015-07-31 16:25   좋아요 0 | URL
엄청 맛나게 싹싹 다먹었어요
lovelydew님도 맛난 점심하셨나요?^^

스윗듀 2015-07-31 18:27   좋아요 0 | URL
히힛 넵 전 오므라이스랑 미니돈까스ㅋㅋ저도 2인분같은 1인분v

다락방 2015-07-3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 1인분이죠!

아무개 2015-07-31 15:42   좋아요 0 | URL
ㅋㅋ 넵!

비로그인 2015-07-3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서 이틀째 굶는 중인데 먹고 싶어요 ㅠㅠ
매운 돈까스우동도 ㅠㅠ

아무개 2015-07-31 15:43   좋아요 0 | URL
아...과로때문에 병나신거아녀요? T-T

붉은돼지 2015-07-3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 입에 후르룩호르륵 짭짭..... 먹고 싶어요 ^^;;

아무개 2015-07-31 15:44   좋아요 0 | URL
그릇까지 다먹을 기세로 먹었더니 너무 배불러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15-07-3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정도는 먹어야줘 암! 맥주도 한잔 호로록 하면 좋겠어요 ㅎㅎㅎ

마노아 2015-07-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딱 봐도 1인분인 걸요!!

양철나무꾼 2015-07-31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이죠, 애기 주먹만한 돈까스를 가지고 약한 모습이라뇨? 홧팅하시자구요~^^

세실 2015-07-3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밀! 심하게 땡기는 저녁입니다만 극장 로비에서 팝콘 먹고 있어요.

보슬비 2015-08-01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무개님은 소식쟁이인가봅니다.
딱봐도 1인분입니다요. ㅋㅋㅋㅋㅋ

2015-08-02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5-08-02 11:57   좋아요 0 | URL
수술은최후수단이라 미루는데 까지 미뤄보려구요
수술후 예후가 그리좋지도 않다고 해서요
마음 써주셔서 감사해요^^

하양물감 2015-08-0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걸 시켜서 아이와 나눠먹는 엄마들 보면서, 그래가지고 힘이 나나? 했지요.
네네...1인분 맞습니다^^
 

 

 

멘탈이 강하다고 모든 방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보다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어떤 일이 닥쳐도 언젠가는 괜찮아 질것을 안다는 의미다. 멘탈이 강한 사람은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어도, 금전 문제에 시달려도, 가정에 위기가 닥쳐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당당히 현실과 마주할 뿐만 아니라 살면서 어떤 시련을 맞아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간다.

강한 멘탈이 최상의 자아를 만든다. 멘탈이 강해지면 옳은 일을 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아도된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이룰수 있는지 알기에 진정으로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맺음말 중 발췌>

 

 

★☆☆☆☆

 

자타 공인 유리멘탈의 소유자인 나에게는 그다지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일반적인 멘탈의 소유자들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개인은 모든 종류의 지식이 결여되어 있기에 오로지 이 마지막 종류의 정념들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그의 욕망은 자신의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넘어서지 않는다. 먹을 것, 여자, 그리고 휴식은 그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경험하는 행복이다. p51

 

사랑의 감정 속에 있는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육체적인 면은 양성으로 하여금 서로 결합하게 하는 그 보편적인 욕망이다. 정신적인 면은 그 욕망을 야기하여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거나, 적어도 선택된 대상에 대한 욕망에 훨씬 더 강렬한 정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정신적인 면은 인위적인 것으로 사회 관습에서 생겨난 것이며, 여성들이 그들의 지배력을 확립하기 위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복종해야 할 성(남성)을 우위에 서게 하기 위해 아주 교묘하고 주의 깊게 그녀들에 의해 찬양되는 감정이다. 그 감정은 미개인이 지닐 수 없는 어떤 가치나 미에 대한 관념과, 미갱인이 행할 수 없는 비교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그에게는 거의 무가치한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면 미개인의 정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관념들의 적용에서 생겨나는 균형과 조화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처럼 그의 마음은 참미니 사랑이니 하는 감정들 역시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자연으로 부터 맏은 관능적 욕구에 따를 뿐이지 그가 습득하지 못한 취향에 따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는 여성이라면 어떤 여성이든 다 좋다. p70-71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인류학이자 인간학이며 정치 사회 사상사이기도 하다. 루소는 추론적인 방법으로 인류의 역사를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는 일 없이 먹을 것 등 기본적인 필요에 만족하며 자기 보존 외에는 거의 원하는 것 없이 홀로 돌아다니면서살던 시대'의 그 원시적인 자연 상태가 루소에게는 인류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대 였다. 그것은 곧 '낙원'이기도 했다. 루소는 그때의 그런 자연 상태의 인간을 '미개인'으로 칭한다. 

                                                                       <작품 해설 중 발췌>

 

 

프랑스 혁명에 커다란 사상적 기여를 하였고, 현대 사회과학의 창시자라고 칭송받는 루소의 작품에서 나는 이제 이런 글들만 확대되서 보인다. 아무래도 너무 짙은 색안경을 쓰고 있나보다. 미개인(인간)이 필요로 하는 대상일 뿐인 여성은 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이 아니였던건가??? 아담 갈비뼈로 만들어진 순간부터???

 

이책에 대한 리뷰나 밑줄 긋기는 <사회계약론> 까지 읽고 함께 하는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