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예술이었지만 코스는 지옥이었던 대구국제마라톤.


첫 10K마라톤 도전. 컷오프시간 턱걸이로 완주했다. 처음부터 완주가 목표여서 숨이 차도록 달리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병목현상과 엄청난 오르막길 때문에 잠깐씩 걸어야 하긴 했지만, 날씨도 너무 좋고 매일 혼자 뛰다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달리니까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달렸다. 다음주 일요일 구미박정희마라톤 하프에 참가할 예정인데 아직까지 한번도 하프거리를 달려본 적이 없다, 최장이 18키로 인데 컷오프내에 완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도전. 


어제는 대구에 폭설이 왔고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별다를건 없었다. 퇴근하고 헬스장에 사람 없겠다 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왠걸 나같이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사람이 생각 보다 많아서 놀랐다. 하체 보강 운동하고, 회복 러닝 30분 하고 집에 와서 단백질 파우더, 고구마 먹고 정신과 약 먹고 잤다. 보통의 날과 똑같이... 새로운 하루를 감사하게 마무리 했다.


현재까지 체지방 11키로 근육 2키로 빠져서 몸 상태는 정확하게 딱 평균인 상태다. 아직 마운자로를 맞고는 있는데 10일 간격으로 늘린 후 식욕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뭘 막 먹거나 하진 않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연휴에도 닭가슴살에 흰밥 식단 그대로 지켰다. 혼자 살고, 주변에 지인도 없이 살다 보니 가능하지 싶다. 아직 목표 체중까지 좀 더 빼야 해서 식단은 계속 할 예정이고 마운자로는 남은 것만 맞고 그만 맞을 예정이다. 정신과에서 마운자로를 식욕억제와 함께 술 충동 억제 역할도 함께 해준다고 처방을 해주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늘로 130일째 단주 상태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술을 전혀 마시지도 않고, 아예 마실 생각 조차도 안나는 상태로 살아 본 것도 처음 인 듯 싶다. 


마라톤도 처음이고 술에 취하지 않고 사는 것도 처음 그리고 또 처음인 것이 생겼는데, 나이 50에 연예인 덕질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게 된 한 가수의 공연 영상에 완전히 꽂혀서 지난 10년간의 모든 영상을 거의 다 찾아 보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앨범,옷,모자,이어폰도 사고 매일 매일 신나게 덕질 중이다. 몰랐는데 중독을 극복하는데 덕질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 글을 봤다. 그런 이유도 좋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 둘씩 늘어 나는 것이 좋다. 나는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딱히 좋은게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죽지 않으려고 술을 마셨고, 살려고 책을 읽던 사람이 그냥 좋아서..그냥 좋아하는 마음 만으로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것 너무 감사하다. 다음달에는 서울에도 가볼 생각이다. 이 가수의 솔로 앨범 1주년 기념 팝업 행사를 보러 갈 예정이다. 나처럼 움직이기 싫어 하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 뒤늦은 덕질의 힘이라니.

아...그리고 처음으로 문신도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시간 정도 달리고 출근한다. 퇴근하고 짐에 가서 웨이트를 하고 집에 와서 고양이들 살피고 약 먹고 잔다. 이러다 보니 책을 회사에서 잠깐씩 읽다가 보니 이 얇은 책을 한달 동안은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의 중요성을 안긴 하는데 막상 하려니 막막한가요?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음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새로운 경험은 책을 읽어서 얻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강의나 강연을 듣거나 매체를 통해 할 수도 있고 방법은 쉬운 것부터 다양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기 뇌가 경험한 새로운 것을 이후에 여러 가지 유사한 상황에서 꺼내서 응용해 보는 적응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새롭게 경험한 그 소중한 무언가는 뇌에 더 이상 남지 낳고 공기 중에 노출된 휘발유처럼 모두 증발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군가와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 자신이 본 영화나 콘서트에 간해 이야기해 보고, 자신이 경험한 에피소드를 디테일하게 설명해 보고, 비슷한 상황을 보며 자신의 경험을 다시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세요. p 23


아마 이곳 알라딘 서재가 내게는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설명하고, 기억해내는 공간인듯 싶다. 최근 '점점 더 멍청해 지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내 몸이 아직 달릴 수 있듯이 나의 뇌도 아직 달릴 수 있다고 하니 이 책을 읽어 볼 수 밖에. 


뇌가 이렇게 억지스러울 정도로 지각적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으며 내가 학습한 것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각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다면 우리 뇌는 물체가 조금만 움직여도 다른 물체라고 생각하고 그 물체를 배우기 위해 새로운 학습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나 가족의 헤어스타일이 조금만 바뀌어도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자신을 소개하게 되겠죠.(...)내가 무언가를 새로 배워서 할 줄 모르던 것을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세상이 10초에 한번씩 바뀌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내가 학습한 것이 10초가 지나면 쓸모가 없어진다면 어떨까요? 뇌는 아마도 학습을 포기하거나 10초 짜리 학습만을 하는 매우 단순한 기관으로 전락할 겁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리면 안타깝게도 우리 뇌는 점점 이런 뇌로 변해갑니다. p55


 내 생각에 진짜 문제는 세상이 정말 10초만에 변화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변화가 너무 빨라서 따라 잡을 수가 없다고 느껴지면 변화에 적응 하기를 포기하게 된다. 어차피 또 변할 텐데, 또 늦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거다. 그래서 그 짧은 쇼츠에만 열광하게 되고.....아마도 지금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절망이 여기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러닝 열풍이 한편으로 너무나도 다행스럽다. 뛰어 본 사람들은 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내가 내 몸으로 뛰어온 정직한 그 시간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걸. 이렇게 세상에 변하지 않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게 되는 일은 생을 버텨 내는데에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다. 


이처럼 회상을 아주 정확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미래에 벌어질 이을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할 때 비슷한 수준의 정밀도와 풍부함을 갖춘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마의 세포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멍하게 있는 순간이나 잠을 자는 동안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 상상 회로를 돌리는 것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과거 기억의 회상 훈련을 열심히 함으로써 상상의 재료를 계속 공급해 주면 뇌 훈련에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상상의 범위와 품질은 경험의 범위와 품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p71


나는 사실 학창시절의 거억 특히 국민학교 시절까지는 기억이 거의 없고, 중학교 조금 고등학교 조금 대학도 조금뿐이다. 아마도 기억하기 싫어서 기억을 안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큰데, 나에게 과거는 그저 잊고 싶은 것. 일 뿐이다. 그러니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없이, 잘못을 계속 반복하고 살았지 싶다. 나는 오늘 하루를 기억하고,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알라딘에 글도 자주 쓰고, 일기도 매일 쓰고 책도 계속 읽고 더 멍청해지기 전에 해야 한다.


뇌와 관련한 정책을 만들 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무엇이든 규제를 하고 금지를 하는 방법은 미봉책일 뿐이며 오히려 뇌가 그것을 더 갈망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바람직한 대안으로 대체될 수 있어야 합니다. 움직임을 통해 사물과 세상, 그리고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게 해야 하죠, 예를 들어 흔히 취미와 감수성을 길러주기 위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예체능 교육 등을 통해서 말입니다. p80


술 생각하지마! 원숭이를 생각하지마! 이거 안 통한다는거 다들 안다. 생각 해야 하는것,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주위를 집중시키는 스토리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겪은 당사자가 경험한 감정이나 내면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경험이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달라져 가는지 등에 대한 자기 성찰이 결합되면 그 스토리는 더욱 흥미를 끌게 됩니다. 인간의 내면이 변화하는 역동성이 관건이죠. p92


내가 연예인 덕질을 하고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되뇌며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것도, 그 사람의 스토리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하루들이 쌓여 나만의 스토리가 되겠지.


이를 위해서 나는 시행착오 학습을 통해 세상을 더 잘 살아 갈 수 있고 나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다는, 다소 긴 호흡의 뇌인지과학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주입하여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을 통해 나의 뇌 속 인지모델이 어제보다 나은 모델이 되어 다음번에는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작은 성공이 덜 것입니다. 몇 번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나만의 독특한 인지모델이 만들어 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그렇게 다듬어지는 나만의 인지모델이 언젠가부터 새로운 상황에서도 아주 효율적으로 잘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면 ,그때부터는 사실 그런 '공포 주입자'들의 조언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p149


나는 ~을 하기에 너무 늙었어, 나는 ~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 등등 50세가 되고 나서 더 겁이 많아지고 변명 거리가 많아 졌다. 안 그래도 늘 부정적이었던 나는 '나이먹음=이제 기회 없음' 이 되어 버렸었다. 어떤 것도 의미가 없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그러다 어쩌다 달리기 시작했고. 130일 연속 금주, 첫 10K 마라톤 완주, 67.5kg에서 54kg로 감량 성공을 해냈다.


물론 많은 부분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보다 화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끈기는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천천히 오래 달리기. 70세에도 몸과 마음이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20년, 절대로 짧지 않다. 충분하다,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환경과 생각들은 무엇인지, 빨리 내 주의력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부터 되돌려야 하는지 한번 점검해 보세요, 원하던 방향성이 아니어서, 원하던 방식이 아니어서,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등 어떤 원인이 있는 건 아닐까요? 어떤 것을 조정하고 바꾸면 나의 뇌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 될까요? 이런 자기 점검의 시간을 통해 집중력을 변화 시킬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 P46

뇌가 하는 이 ‘맥락적 보정‘작업은 사실 창작 활동에 가깝습니다.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맥락에 맞는 정확한 보정을 해주어야 하고, 그 보정의 범위가 현재 존재하는 물체의 속성에서 많이 벗어나 잇더라도 그에 맞는 순발력과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각적 항상성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물체에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뇌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허구로 만들어 낸다는 것, 즉 ‘장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 P52

해마의 기능은 여기서 멈추지 않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상상, ‘마음 이론‘이라고 부르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대한 추측 인간관계의 시뮬레이션과 계획 등 과거의 경험을 미래로 이어주기 위한 거의 모든 인지적 작용에 해마를 비롯한 뇌의 서술적 학습 시스템을 동원합니다. 흔히들 ‘정신노동‘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하는 일들이죠. 특히 급박한 데드라인에 맞추거나 질적 우수성보다 양적 우수성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해마 시스템을 혹사 시키는 경우 이에 동반되는 스트레스는 쉽게 번아웃을 이어집니다, 해마에는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호르몬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수용체가 다른 외 영역보다 밀집되어 있어 스트레스에 상당히 취약합니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 만성 스트레스는 해마의 기능을 위축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포 자체를 죽일 수도 있어서 위험합니다. - P100

호기심은 우리 뇌의 ‘보상회로‘를 작동 시킴으로써 특정 대상을 깊이 있게 탐구하게 하고 그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 자체를 보상으로 느끼게 합니다, 보상회로가 작동하는 것이므로 마치 누가 내게 시킨 일을 한 뒤에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호기심이 가는 대상을 학습하여 무언가를 알게 되면 이것은 내적 보상이 이루어졋다고 하고, 내적 보상은 돈이나 다른 사람의 칭찬과 같은 외적 보상보다 더 오래 효과를 발휘하며 더 직접적인 보상 효과가 있습니다. - P119

일단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적 학습을 통해 뇌에 탑재해 놓은 갖가지 모델들이 잘 설명하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변화된 환경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것을 자주 보고,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기호를 만들고, 새롭게 나온 물건을 자주 써봐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른바 자신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조금씩 벗어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되는 자연스럽게 호기심 수준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자꾸만 새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오니까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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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하고 지적이며 유쾌하다. 이러한 이유로 2025년 최고의 책이다.

이런 부모를 가진 행운이 부러웠고, 그러한 행운에 감사할 줄 아는 다정한 어른인 것도 부러웠다, 그동안 무신론자로서 무언가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종교와 과학에 관한 답답함을 과학적이면서도 경험적으로 이야기해준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앙을 갖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삶.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신앙인의 삶이기에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아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자신과 타인에게 다정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 보다 타인을 위해 희생 할 수 있어야 하며, 줄곧 옳다고 믿었던 사실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도 힘들지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신앙인이라 생각한다. 

 과학적인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어른이 된다는 말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틀린 것을 인지하고 바꿀 수 있는 사람. 

이렇게 글로 쓰기는 쉽지만 사실 쉽지 않다, 그렇기에 보고 배울 어른 보다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싶은 어른이 주위에 더 많은 이유이다, 

50세, 나도 이미 주위에 본보기가 되어야 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감히 저렇게 살아야지 라는 본보기는 될 수는 없어도, 저러지 말아야지 싶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읽고 쓰고 배우고 행하고, 고치는 일을 놓지 말아야지. 하고 새해를 맞아 새롭게 다짐해 본다,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성경이 더 궁금해졌지만, 성경 자체를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아서, 만화책으로 읽어보았다, 만화로 된 신약을 읽고 내가 느낀 바는, 예수님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서 천국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을테니.








그리고 역시 가장 궁금해진 책은 코스모스다, 당연히 구입했고 또한 당연하게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싶었으나 한국에서는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여하튼 2026년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코스모스 완독이다,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끝까지 읽어 볼 것. 매일 느리지만 조금씩 달라고 있는 것처럼. 


남들에게는 슬로우 조깅인 속도지만, 나에겐 꽤나 애쓰고 있는 러닝 속도다, 10K 마라톤 컷오프가 1시간 30분. 지금보다는 좀 더 빨라야 한다. 대구 마라톤 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다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애써보자,

잘하면 즐겁고 즐거우면 더 잘하고 싶어진다. 대게 모든 배움이 그렇게 학습된다. 즐겁게 하고 싶어서 좀 더 잘하고 싶다.


술, 밀가루 다 끊고 계란 ,닭가슴살 소량의 흰밥만 먹었다. 식욕억제하는 마운자로 주사도 맞았고.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중간에 정체기 때는 40시간 정도 단식도 했었다.  단주한지는 75일차 이다, 3개월동안 9키로정도 감량했다, 아직도 체지방을 3키로는 더 빼야 건강 몸무게이다, 지금 처럼 거의 매일 뛰고 근력운동 주 2~3회 하고 식단하면 언젠가는 이 지방들도 내 몸에서 좀 사라지겠지. 



100세 시대를 이야기들 하지만, 그때까지 살기도 싫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80후반쯤이지 싶은데, 대략 30년 정도 남았나...어떤 새로운 도전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살아온 날들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30년, 절대적으로 짧지는 않은 시간들. 점점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체육관으로 간다. 


이 신들이 고대인들이 소망과 불안을 헤쳐나가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불경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리스 신화를 역사가 아니라 문학으로 읽었다, 내가 <하가다>를 대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건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것이라고, 여기에 지혜, 통찰, 시가 담겨 있지만, 이걸 진짜라고 믿지는 않는다. 84


부모님은 낮에 일하는 도중에 대두된 논쟁을 저녁 식사 때 까지도 이어가곤 했는데 이런 일들이 내 사고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부모님은 아주 복잡한 개념까지도 나에게 설명해주려고 애썼고 그것도 절대로 무시하는 태도 없이 지적이고 다정한 존중심을 보여주며 그렇게 했다, 나를 마치 작은 아이의 몸안에 갇힌 교수처럼 대했다, 부모님이 이러한 태도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자가 아닌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99


과학과 기술을 통해 서로의 삶을 보고 서로의 언어를 말하고 서로의 관습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광대한 우주 속 우리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다정함을 키워야 한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내버려두라, 수천억 개의 은하 가운데서도 또다른 사람 하나를 찾을 수가 없을 테니까." 나는 우리의 원죄는 성이나 지식욕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잔인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죄해야 하는 건 그것이다, 큰 잔인함뿐 아니라 작은 것이더라도. 106


오류 수정이야말로 과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은 틀리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 오류를 범했다, 과학과 종교의 결정적 차이는, 나보다 앞에 왔던 사람들, 내가 그 어깨를 디디고 서는 선각자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 사람(교사, 영웅, 멘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면 좋은 과학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과학자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좋은 목사, 랍비, 성직자, 수도사는 반대로 전통을 고수하는 이다,

아버지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과학자는 종종 '그거 아주 좋은 논증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습니다' 라고 말하고 자기 생각을 수정하고 다시는 이전 생각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과학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사실 이런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도 인간이라 변화를 겪어내기가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맞는 말이다, 내가 틀렸어, 내가 실수했어, 내가 잘못했어, 이기적이었어, 치사했어, 어리석었어, 생각이 없었어, 미안해, 이런 말을 하기가 왜 그리 어려울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인데도? 121


그때는 너무나 평범하게 보였던 것이 이제는 성스러울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같이한 모든 시간, 사소한 일들, 대화, 우리끼리만 아는 농담, 조용한 순간들을 더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그러나 죽음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언가의 부재를 겪지 않고는 그것의 진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헛발질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속죄하지 낳고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없듯이.126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지구상에서의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나 자신에게 계속 각인했다, 그리고 만약 삶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삶이 더는 소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언젠가는 틀림없이 죽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 있고 그게 매우 운 좋은 일임을 되새겼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은 여행을 떠나기 저보다 더 행복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 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 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성장의 정의에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가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을 해방하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처럼 심상한 일이라도 그렇다. 142


생명활동이 극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화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수는 이렇게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사악한 일로 생각했다, 사실은 통제할 수 없으므로 더욱 신비롭고 놀라운 것인데 아우구스티누수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초월적 경험에서도 그러하듯 섹스는 자연에 굴복하기 때문에 신성한 경험이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 일몰과 일출, 사랑에 빠지는 경험 등 우리 삶에 가장 큰 전율을 안겨주는 일들 앞에서 무력하다, 이런 일들을 통해 살아 있다는 사실의 막대함을 맛보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다, 이를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가 있나? 219


 나는 달이 월경주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을 왜 들어본 적 없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둘 다 한달을 주기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당연히 상관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딸에게 이런 아름답고도 시적인 이야기를 해준다면 정말 특별한 일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머지않아 네 몸이 38만 5000킬로미터 높이에서 우리 주위를 도는 거대한 바윗덩이와 연결되고 너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될거야, 신화 못지않게 멋진 이야기인데 애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249


 나는 내가 엄청난 특권을 갖고 태어났다는 걸 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세계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또 부모님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셨기 때문에 마루하가 우리집에서 같이 살면서 내 삶을 더 큰 사랑과 자식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었다, 이모든 것을 누렸던 건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어떤 노력을 해서도 아니다, 그저 엄청나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순전한 운, 복권을 사지도 않았는데 당첨된 것과 비슷하다. 264


 우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든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통을 느낄 것이고 거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경험할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각각의 삶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힐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거대함의 일부였다, 살아 있음의 모든 위대함과 끔찍함, 숭고한 아름다움과 충격적 비통함, 단조로움, 내면의 생각, 함께 나누는 고통과 기쁨, 모든 게 정말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 광대함 속에서 노란 별 주위를 도는 우리 작은 세상 위에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하하고도 나을 이유가 된다, 343






봄과 관련된 전설들은 하나같이 수난의 시간이 끝나고 가슴 벅찬 기쁨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모든 게 사라진 듯 보일 때 비밀, 감춰진 기적, 희망을 다시 찾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봄이란 그런 것이다, 재생, 재탄생, 부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이라는 주제에서는 종교적 이상이 자연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식물의 생태로부터 영감을 받아 종교의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 P85

나는 ‘3월‘이라고 하면 행진하다라는 동사가 생각나고 4일이라고 하면 앞으로 라는 부사가 떠오른다, 사실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어느 날짜를 택하든 상관없다, 어쨌든 3월4일은 회개하기에 다른 어떤날 못지않게 좋은 날이다, 회개의 날이 인간적인 결함을 자책하는 날일 필요는 없고, 옳지 않은 것을 떨쳐버리고 개인적, 철학적 미지의 영역으로 과감하게 나아가는 날이면 좋을 것이다, - P124

성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하는 성인식은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시실 성인식으로 기념하는 변화의 공통적 본질은 뇌하수체에서 생식샘 자극 호르몬이 분비되고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고 섹스, 임신, 출산, 책무 등의 가능성이 새로 열렸다는 것이다, 킨세아네라, 바르 미츠바, 가톨릭 견진성사, 사교계 데뷔 무도회 , 스위트 식스틴 파티 등을 축하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파티는 생명 활동, 성적 성숙, 종의 보존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이 죽은 뒤에도 DNA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공동체의 소망을 표현한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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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로써 41일 연속 단주상태이다. 트레이드밀에서 30분 정도씩 달리기 시작한건 8월 중순부터 였는데 딱히 큰 재미를 느껴서 했던 것은 아니고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다이어트때문에 거의 매일 달리기는 했다. 문제는 술도 매일 마셨다는 것. 당연히 몸무게는 전혀 빠지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늘어서 인생 최대 몸무게까지 도달해 버렸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마운자로 주사를 한 달 동안 맞았더니, 정말 입맛도 없고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서 뭐든 먹고 싶지가 않았다. 심지어 '술'마저도 마시고 싶은 생각 들지 않을 정도로 주사제의 효과는 강력했다. 정신과 의사도 충분히 그런 효과가 생길 수 있다며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엄격한 단백질 위주의 식단과 매일 공복 달리기를 한 덕에 체중은 한 달 반 만에 8kg이 빠졌다. 물론 술을 끊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사실 내년 대구 마라톤 대회에 10km 참가 신청을 어렵게 성공한 상태이다. 트레이드밀에서만 뛰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야외러닝을 시작 한지는 이제 4주차이다. 생각지도 못했다. 둘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 줄은...야외에서 뛰는 것이 거의 5배 이상은 더 힘들었다. 하지만, 10배 이상 더 즐거우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0~60분 사이로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슬로우 조깅을 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6~7분 페이스가 느린 조깅이라고 해서 그렇게 달렸는데, 달릴 때도 힘들고 하루 종일 너무나 피곤해서 정말 죽을 것 같이 힘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페이스를 점점 더 느리게 했더니 달릴 때 기분 좋고 하루가 상쾌해지는 나만의 슬로우 조깅 페이스를 찾았다.




다른 젊은 작가 들이 쓴 책 보다 이 책이(50이후 시작하는 러닝의 모든 것) 내게는 정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얼마전 풋살을 하다가 엄청 심하게 엉덩방아를 찢은 후에 정형외과를 가서 검사를 했는데, 허리는 통증이 없는게 이상할 정도로 디스크가 붙어 있고, 뼈 나이는 내 실제 나이보다 5살이나 많았으며, 비타민 D의 수치는 정상의 절반의 절반도 안되는 상태였다. 내 몸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늙고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몸 상태로 매일 술을 마시며, 젊은 사람들처럼 달렸으니 죽을 만큼 피곤 할 수 밖에...



 야외 러닝한지 딱 4주차인 오늘, 그동안은 5~6키로씩 밖에 달리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10km를 달렸다. 페이스가 거의 남들 걷는 속도이긴 하지만, 나는 이 속도로 달릴 때 행복하다. 매일 집 주변 도로만 달리다가 오늘은 신천강변로까지 달려가서 강변로의 초겨울 경치를 즐기고 산책 나온 멍뭉이들과 인사하고 수많은 젊은 러너들이 나를 앞서가게 하며 나만의 '펀런'을 했다. 


 매일 아침 눈뜰때마다 아...어제는 왜 또 쳐 마셨나, 오늘은 정말 마시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으로 시작했지만, 퇴근 할 때면 어김없이 배민으로 안주를 고르고 술을 마셨던 날들이 고작 41일 전인데 한참 전의 일 처럼 느껴진다. 요새는 오늘은 얼마나 달릴까, 어디로 달려 볼까 하는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내일 뛰려면 일찍 자야지 하고 정말 일찍, 9시 이전에 잔다. 아직 달리기 중독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중독은 중독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말 조금은 이해가 간다. 


 대회에 10km 기준시간이 1시간 30분이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기준 내에는 들어 올 수 있겠지. 욕심 내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말고 하루하루 달릴 수 있는 시간, 조건, 날씨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천천히 내 속도로 가야지. 느려도 내가 즐거우니까 그거면 된거다. 노화를 받아 들이지 못해서 한동안 마음이 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달리기로 배우고 있다. 달리기를 유행시켜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그저 순수하게 달린다는 행위만으로 금세 기분이 상쾌해지고 충만해진다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달려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23


 그런데 유산소 운동을 하면 뇌 유래 신경 영양 인자의 분비 활동이 촉진되어 해마의 부피가 해마다 2%씩 커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러닝으로 해마의 크기를 키우면 건망증도 막고 감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죠. 또 러닝으로 화나거나 불쾌한 일을 잊을 수 있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달릴 때 적당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힘들거나 괴롭다고 여겼던 일을 잊게 되는 것이죠. 저도 달리다 보면 업무 고민이나 과제가 그다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51


 지나치게 많이 달리면 신체적인 부상을 입을 뿐만 아니라 다른 탈도 생깁니다. 지금보다 약간 높게 목표를 잡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이를 먹었는데도 같은 목표를 달성하려 하면 '실패경험'을 거듭해 자신감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의욕이 꺾여버리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적절한 거리를 설정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낮출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월간 200km는 위험 지대, 80~100km를 지향하자. 112


 해결방안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라는 기준으로 목표를 잡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선에 50% 정도를 더한다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5km는 매일 달릴 수 있어.10km는 분발하면 할 수 있을 듯한데, 매일 한다면 괜찮을까?'하고 헷갈릴 때는 7km에서 8km를 목표로 삼아보세요, 일주일간 계속해서 해냈다면 그 목표는 애초에 50%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는 목표를 올립니다. 실제로 해보니 일주일에 절반도 채 다릴지 못한 경우도 50%가 아니었다는 듯이니 목표표를 낮추어야 합니다. 

1이나 100이 아니라 이와 같은 반복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것도 현실적입니다. '목표를 정했으니 하고 말 테야' 라며 강산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훌륭하지만 50대에서 시니어로 향하는 나이가 될수록 목표는 몸에 귀를 기울이며 세워야 합니다. 고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의 '50'를 찾기 위해 일주일 단위로 목표를 유연하게 세우면 어떨까요? 132


 얼마큼의 거리와 속도가 마땅하냐고 자주 질문 받곤 하는데, 어디서 부터가 L이고 어느 정도의 속도가 S이며 얼마만큼 오래 달려야 D인지 명확하게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천천히 길게 달리는 것이 거리로 이어지므로 부담이 되지 않는 속도와 소요 시간으로 무리 없는 거리를 기분 좋게 달리면 됩니다. 134


 80세나 90세에 10km를 달린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심지어 어쩌다 있는 일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값진 일입니다. 10km를 달리면 고칼로리 음식도 소비할 수 있고 여행을 가서도 내 발로 가뿐히 걸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생의 즐거움이 이어지는 겁니다.  10km를 유지해도 나이를 감안하면 성장.160



근육량이 느는 속도는 그리 급격히 떨어지지 않지만, 주관적인 피로도뿐 아니라 피 검사로 근육이 얼마나 상했는지 확인하는 크레아틴포스포키나아제를 보더라도 50대의 피로 해소 정도는 40대와 확연히 달라집니다. 또 몸을 움직이면 혈중 철분을 많이 쓰기 때문에 빈혈 정도도 높아집니다. 더 나아가 60대가 되면 피로 해소 속도가 더 느려지는 데다 몸이 잘 변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체지방률을 줄이고 싶다‘는 숙제와 씨름하며 열심히 달려도 수치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죠. 바꾸어 말하면 신진대사가 퇴행되기 때문인데 60대는 50대보다 몸이 변화하는 속도가 도드라지게 느려지는 겁니다. - P30


‘무리하지 않기‘라는 전제가 깔린 나이라는 것도 잘 알고요, 다만 괜한 심술인지 힘을 빼도 된다는 말을 듣는 것도 달갑지 않더군요. 마치 ‘너는 끝난 사람‘이라고 하는 거 같아서요. 80대 라면 몰라도 60대에 그러면 좀....

- P38

"뇌가 지쳤다" 라고 표현하는 운동선수도 있는데, 뇌의 피로가 고스란히 몸의 피로로 이어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피로를 발생기키지않으려면 생활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겁니다. 일반인분들도 마찬가지라서 생활 속 요소를 되도록 제시간에 행하고 걸리는 시간도 일정하게 하는 일이 뇌 건강에 중요합니다. - P47

심리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말하면 러닝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1‘이나 ‘0‘이라는 선택지뿐 아니라 ‘0.5‘,‘0.3‘이라는 선택지도 마련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 말자‘를 선택하는 것이 ‘0‘이지만 그러면 ‘달리지 못했어‘라는 실패 경험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1시간 이내로 돌아올 수 있는 코스 등 여러모로 준비되어 있다면 ‘0.5‘라는 대안을 고를 수 있습니다. - P118

수수께끼 같은 소리지만, 오래 달리려면 ‘달리지 않기‘도 포인트가 됩니다. 휴식의 필요성 외에 그 까닭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 종목을 지속하는 것은 정신적인 안정이나 자신감을 가져다주는 뜻 깊은 일이기는 합니다. 다만 전신의 건강 유지를 생각할 때, 특정한 운동만 계속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걷기나 러닝은 친근한 유산소 운동의 대명사지만, 전신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력 운동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크로스 트레이닝‘을 장려하곤 합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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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살이 되었기 때문에 깨닫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이 나이에 이런 성향이 발현된 것일까.

새롭고 모르고 어려운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어떠한 궁금증이나 도전 의식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바로 도망치거나 회피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술'이라는 강력한 마취제이며 진통제였다.

내가 더 이상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는 것도 공부할 수록 너무 새롭고 어렵고 슬프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학문이 그러하겠지만, 여성학은 나에게 슬픔을 준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런데 참....여성학이라는 것이 그저 학문만은 아닌지라, 일상생활에서 계속 밟힌다.

완벽하게 도망 칠 수가 없다.

 이 책은 여성학 책은 아니지만, 정희진 선생의 글을 읽으면 여성학 학자의 고충이 느껴진다. 다른 작가들의 글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책의 모든 밑줄은 정희진 선생의 글들에만 있다.

 노년과 가난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엄청나게 크다. 걱정한다고 달라지지 않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놈의 생존모드가 생활모드로 전환이 안된다. 계속 삐삐삐 비상사태다.



나이 들수록 유연해지고 지혜롭고 몸과 마음이 여유가 있는 상태가 되리라 생각 했던 것 같은데

점점 더 바라던 거의 모든 면에서 그와 반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상사태다.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판단이 안된다. 바로 도망칠 준비만 한다. 술로.



그래도 아직 다 포기하지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해서 이곳에 또 이렇게 끄적인다.

단주 그리고 여성학. 

도나 해러웨이식으로 표현하지면 나는 ‘겸손한 목격자‘로 부분적(맥락적)이면서도 당파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현실에 개입하는,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한 자가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 운동가, 당사자(피해자)의 구분과 위계에 대해서도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일(공부) 중독자가 되었다.그래서 여행이나 인간관계 등 공부 외의 것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특히 여행지에 가서도 서야 할 것에 대한 생각과 떠오르는 아이디어들 때문에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내다 몰랐다는 이유로 잘못된 판단을 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어서 편안한 삶도 아니다.
나는 늘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노심초사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 P147

정확히 말하면, 쓰는 과정이 공부다.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식이 변화하는 것, 그것이 몸으로 글쓰기요,생산력있는 공부다. 공부는 쓰기이며 그 과정에서 글자 그대로 환골탈태, 몸이 변화하는 변태가 일어나야 한다. 글을 쓰기 전후가 다른 사람이어야 하고, 그런 글쓰기 과정만이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방법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열락을 느껴 본 사람은 공부를 즐기게 된다. 이런 공부에 중독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P153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수학처럼 좋은 사례도 없을 것이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가 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때가 있는데,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다.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쓰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 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잇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 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문제 지적 자체가 틀렸거나... - P157

훌륭한 저작을 남긴 지식인이나 작가의 오만을 사랑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쓰기를 반복하는 일은 좌절의 연속이다. 그러니 무조건 계속 쓸 수도 없다. 길을 잃는 공포가 엄습한다. 사유보다 힘든 일이 쓰기다 .그래서 우울은 공부의 벗이다.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한다. 계속 자기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계속 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 P159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적 약자가 가장 가질 수 없는 자원은 폭력이다." 이와 달리, 국가, 자본, 권력층은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구조적으로 폭력의 총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의 무기는 언어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의 경험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한 이들의 글은 독창적일 가능성이 많다.
‘다른 이야기‘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 창의적인 이야기는 쓰기의 계속적인 실패를 통한 모색에서만 가능하다. 공부는 하는 것이 아니다. ‘노가다‘,工夫가 되는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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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 자기치유와 자기돌봄을 위한 자기관계 심리학
문요한 지음 / 해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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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해법은 자기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삶의 동반자로서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돌봄'이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나약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마치 아이들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평생 동안 돌봄을 필요로 한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는 취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체적 돌봄과 함께 정서적 돌봄도 필요하다. 나아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도록 관계를 돌보는 것도 필요하고, 활력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영혼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돌봄은 전인적이고 총체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돌봄이란 한마디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9


당신은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자존감도 높아지고 성격도 좋아지고 친구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자기 부족함 때문에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자아상 때문에 자기 부족함에 집착하는 것이다. 내면화된 못마땅한 시선'을 거두어내지 않는 한 내적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인 결과가 자신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뜨렸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삽질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 질문을 맞닥뜨릴 것이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러한 고질적인 자기비난의 습성을 약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진실뿐이다. 자기비난은 문제나 결점을 실제보다 확대 시키고, 미래로 확장 시키고, 문제를 존재와 일치 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비난이 들리면 우리는 무엇보다 진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말 그런가?'를 물어야 한다. '내가 정말 실패자인가?''정말 해도 안 되는 것인가?''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는가?''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가?'라고 말이다,

자신에 대한 느낌과 생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은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리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제 이 질문을 당신에게 드리고자 한다.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이 질문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57



게다가 실제 부모들이 자기 고통과 불행을 자녀들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너 대문에 내가 못살겠다''넌 왜 사람을 힘들게 하니!''넌 매사 거짓말이야''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는데''도대체 넌 누구 닮아서 그 모양이야' 하는 말들은 고스란히 아이의 마음속으로 내면화 된다. 이는 신경학적 손상을 초래한다. 각성조절, 감정조절, 충동조절의 창이 협소해질 뿐더러, 면역력, 수명, 인지기능 전반을 떨어뜨린다. 특히 자율신경계의 조절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가장 원시적인 자기보호시스템인 '부동화'를 자꾸 초래하게 된다. 작은 위협만 가해져도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패턴은 고정화되어 이후 비슷한 자극에도 쉽게 얼어붙어 버리게 된다. 74


원초적 수치심, 신경증적 죄책감, 근본적 무력감은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을 겪은 사람들의 핵심 감정이 된다. 일반적인 감정은 어떤 자극과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비해 핵심 감정은 자극과 상황에 상관없이 마음의 바탕을 이룬다. 핵심 감정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올라온다.

그러므로 이들은 핵심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모든 게 나 때문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어떤 경우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술이나 게임 같은 중독으로 빠져들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역으로 타인을 깍아 내리고 자기가 우월하다는 나르시시즘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79


많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타인으로부터 학인 받으려는 인정 강박을 지니게 된다. 이를 위해서 '나는 ~해야 한다''혹은 '나는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높은 기준과 지나친 당위를 만들어 낸다. 당위란' 당연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일수록 당위적 사고가 많다. 즉,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거나 도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이는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향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강한 사람, 똑똑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독립적인 사람 등 자기 실재 보다 과장된 이상적인 자아상을 좇는다. 이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래야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0


내적 안전기지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마음이 허하고 자꾸 흔들린다. 밖으로도 안으로도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애착 손상이다 고통 속에 혼자 방치되었거나,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돌봄을 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때 이르게 누군가를 돌봐야 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그 공허감 때문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거나 다른 사람을 잘 챙기거나 많은 성취를 이루려고 애를 쓴다. 133


그러나 의지력 훈련에 있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의지력을 길러내는 정말 중요한 기회이다 의지력 훈련이란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행동으로 돌아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즉 꾸준히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재시도 능력'을 높이는 것에 목표를 둔다.  187


그것이 꼭 칼로 자해하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자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은밀한 자해를 동반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움직이다 잔 부상을 입고, 이를 거칠게 닦고, 안 좋은 자세로 계속 생활하고, 아무 음식이나 먹고,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안 자려고 애를 쓰고, 아파도 병원을 안 가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이루어 진다. 

이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생활에 질서가 없고 삶을 가구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자신의 안 좋은 생활 습관 때문에 또다시 비난을 하게 되지만 사실은 자기 비난에 걸맞은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왜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갈까? 정말 그렇게 비난할 만큼 잘못이었을까?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정말 친절이나 위로를 받을 만한 자격도 없어서 일까?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처음부터 '나쁜 사람' 혹은 '잘못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기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존재여서가 아니라 자기를 잘못된 존재로 느끼게 된 잘못된 경험 때문이다. 220


아픔은 보편적인 1차적 고통을 말한다면 괴로움은 주관적인 2차적 고통을 말한다. 1차적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거나 비난에 휩싸일수록 2차적 고통은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친절을 통해 1차적 고통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2차적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자기 친절은 힘들었던 수많은 날들을 견뎌온 나에게, 그리고 앞으로도 힘든 삶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응원이자 예의이다. 자기 친절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고통에 힘들어하는 자기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이렇게 자기 친절의 마음이 조금씩 스며들면 '내면의 관찰자'와 함께 '내면의 벗'으로 자리 잡는다.227


이는 모든 변화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뉴욕주립대학교와 피츠버그대학교의 중독 연구자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절주를 하지 못하고 과음을 했을 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했다. 알다시피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은 그다음 날 두통, 구역질, 피로감 등으로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들의 불행은 숙취로 끝나지 않았다. 전날 많은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자책하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일수록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저녁에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일이 벌어졌다. 죄책감이 더 많은 음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236


다시 말해 즐거움은 도파민만 분비되는 것이라면, 기쁨은 도파민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함께 분비되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순수한 쾌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쾌감과 쾌감이 섞여 있거나 혹은 불쾌감을 거치고 난 뒤의 쾌감을 말하는 것이다. 단, 그 불쾌감이란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겪는 불쾌감을 말한다. 272

중독은 기쁨이 결핍되고 즐거움이 과잉된 상태를 말한다. 그렇기에 중독의 회복은 쉽지 않다. 중독의 회복은 단지 중독의 대상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쁨의 회로를 복원 시켜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자기 돌봄은 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기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균형을 맞추는 기술이 바로 자기돌봄이다. 274


이 행복감을 느끼려면 '자기 밑천'을 잘 이해해야 한다. 자기의 강점과 욕구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할 때 기쁨을 느끼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자기를 잘 이해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그 밑천을 가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밑천을 갈고 닦는 것이 일이 될 수도 있고 여가 활동이 될 수도 있다. 277


'괜찮아'라는 위로에서 시작된 자기돌봄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라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다름 사람과 경쟁하거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다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삶이다. 아프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활기 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늘리는 것에 있다. 마음을 배터리라고 비유 한다면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활기를 느끼고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답은 도전이다. 이 도전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우리를 강하게 하는 좋은 스트레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나쁜 스트레스와 좋은 스트레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삶의 활력은 늘 스트레스를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잘 분비되어야 우리는 삶의 활력과 적정 각성 상태를 인지할 수 있다. 아드레날린이 담당할 수 없을 만큼 분비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분비되지 않는 것 또한 문제이다. 그것이 바로 '권태'라는 감정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권태는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만 맹독성의 감정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삶이란 긴장만 하는 삶도 아니고 이완만 하는 삶도 아니다. 긴장과 이완이 잘 순환될 때 삶의 활력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인간은 아무런 노력이나 어려움 없이 쉽게 얻는 쾌락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위해 스트레스와 노력을 통해 얻어내는 기쁨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282










아동기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신경학적 손상을 초래하고 자기조절 기능을 크게 저해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소한 자극에도 강렬한 스트레스 반응이 유발된다. 이는 쉽게 극복 되지 않는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다그칠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기르듯 수많은 기다림과 이해심 그리고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만 분명 아이는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간다. - P31

그 대표적인 자기반성의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과 후회, 자책감이다. 자책감이나 부끄러움은 수치심과 다르다. 자책감과 부끄러움은 자기가 한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자기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렇기에 자책감과 부끄러움을 통해 우리는 자기 행위를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은 자기반성 시스템을 작동 시키는 것이 나라 자기비난 시스템을 작동 시킨다. 개선으로 이어지는 반성이 아니라 문제를 심화시키는 비난으로 치닫는다. 이는 수치심이 맹독성의 감정인 이유다. 수치심은 자기돌봄과 자기친절의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다. 자기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자신을 돌볼 수 있겠는가? - P63

그러나 아이는 이러한 감정을 양육자에게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발달상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도 부족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사랑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상대를 증오하면서 의지할 수 있겠는가! 상대가 밉고 분하고 슬프지만 그 파괴적인 마음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아이는 자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를 거부한 것은 자기 때문이고, 심지어 부모가 싸우는 것 역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P72

중요한 것은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다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치도 분열도 아니다. 통합일 뿐이다. 자기돌봄이란 바로 자기의 모든 부분과 관계를 맺고 연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 P86

진정한 지기친절은 그때 나타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을 때, 갑작스럽게 몸이 아플 때, 예기치 않는 불행이 자기를 덮칠 때 우리는 자기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 P142

누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을 느끼면 연결감이 끊어지고 보편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원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 혼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 혼자뿐이라는 느낌‘을 가장 큰 고통으로 느낄 만큼 뼛속 깊이 사회적인 존재이다. - P148

치유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기 보다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자기 생각이나 관점에 사로잡혀 상황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이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재구성 혹은 재평가라고 한다 이는 부작용 없는 안정제와 같다. - P154

이렇게 관찰의 힘이 커지면 일상에서 나를 관찰할 수 있다, 자기 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틀로 바라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찰의 힘이 길러지면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가까워진다, 덜 흔들리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마음이 길러지면 우리는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 할 수 있다. - P205

물론 이렇게 반성한다고 해서 바로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래된 문제일수록 바로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개선에 대한 관대함이다. 자기에게 불친절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큰 결심을 통해 한꺼번에 바뀌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포기하지 않고, 조바심을 내지 않고,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다.
자기관찰자가 되어 삶을 돌아보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 이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어른들의 존재 방식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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