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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2008년 5월에 타계한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시입니다.

 

 

 

 

-----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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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건 시인의 ‘개망초꽃’ 동시지만, 느낌이 참 좋다.^^

이 책에는 자연을 벗 삼은 멋진 시들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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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물


                                    - 천 상 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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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발랄♥ 2007-04-3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시가..ㅋㅋ

뽀송이 2007-04-3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네~~ 그는 지금 없지만... 그의 시는 이렇게 남아 있지요.
 

            귀  천


                       -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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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

             

                  - 함 민 복


시 한편에 삼 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따뜻한 밤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 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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