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패션 아이콘
제르다 북스바움 외 26인 지음, 금기숙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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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질 샌더, 주름잡힌 라일락 색드레스(부분), 광고 캠페인>

 

20세기의 패션 아이콘.  내게는 멀게 느껴졌던 세계 1차 전쟁과 2차 전쟁을 거치면서도 패션의 흐름은 주춤하는 기색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전쟁중에 먹고사는 것이 문제인데 패션이 무슨 상관일까 싶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3요소 <의, 식, 주>중에서 ’의’ 는 단연코 중요한 문제인데 말이다. 사회경제에 따라서 패션의 흐름이 달라지고 변화한다. 시대별로 다양한 패션의 흐름을 읽으면서 현재에도 쟁쟁한 디자이너들의 명성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들, 패션과 디자인은 오랜세월을 따라 흘러 왔으며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의 삶과 공존할 것이다. 여성이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초기에는 답답했던 코르셋과 드레스로 무장해야 했고, 전쟁중에 남편들이 전장터로 떠났을때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패션의 흐름은 변화한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패션은 우리의 생활속으로 찾아든다. 건축의 양식이 변화듯이, 패션의 양식 역시 거추장스러운면들을 거부하기도 하고 다시 장식들의 아름다움을 그리워 하고, 다시 생활속의 편리함으로 들어가 단순함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패션으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고 어른들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거부하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걸까?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좀 더 너그럽게 청소년들을 이해해 줄 수도 있을텐데. 서로가 자신의 입장만 부르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험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의상들도 신선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미니스커트가 도입되었을때,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윤복희씨가 TV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등장했는데 많은 어른들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살을 다 내어놓고 다니다니, 망측스럽다고 말이다. 옛날 TV를 보니 통금시간도 있었고 경찰들이 미니스커트 길이도 단속하는 장면을 보니 불과 몇십년 전인데 다른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패션은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일이였다. 패션도 많은 과도기를 거치며 성장하고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되었다. 경제가 힘들면 미니스커트를 많이 입는다던데 4계절 내내 미니스커트 열풍인지 오래되었다. 

 
재미있고 창의적이고 다소 충격적이며 모던하며 섹시한 그리고 입기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스타일은 멋져보이는 20세기의 패션 아이콘들을 만나 보았다. 패션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혹은 없다해도 읽어보면 재미있는 책이다. 패션의 아이콘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명품이라 불리우며 사랑받고 있는 샤넬, 구찌, 루이뷔통, 디오르, 이브 생 로랑, 베르사체에 대해 관심이 간다면 이 책을 들어 보시길~ 다양한 패션들과 쟁쟁한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만나 볼 수 있다. 그 당시에 디자인들이 크게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지금은 21세기인데도 과거 기본적인 스타일이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모든것이 그러하지만, 패션의 유행 역시 주기를 따라 돌고 돈다. 전에 중성적인 이미지가 사랑받아 한동안 모든 사람들이 중성적인 이미지에 휩싸인적이 있었고 미소년이 유행하던 시절 뒷모습은 여성스러운 분들이 많았었다. 패션은 그 시대의 전반적인 문화를 대변하고 우리를 미치게 만들며 사랑스러운 추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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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철학이다 - 에이나 외버렝겟의 행복론
에이나 외버렝겟 지음, 손화수 옮김 / 꽃삽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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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무엇일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과거의 기억 중에서 행복한 기억들은 많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 행복한 기억보다 아팠던 기억이 더 생생할까? 나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행복한기억은 살아온 동안의 큰 파장을 주지 않았기에 희미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린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 가족들과 즐거웠던 기억들이 지금의 그대로 옮겨 온다해도 그때만큼 행복할 것 같지않다. 행복에 크기를 따질 순 없지만,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행복의 크기와 횟수가 잦아 듬을 느낀다. 어쩌면 세월에 행복이 묻혀 버린건지도 모른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아래 금방이라도 타죽을것처럼, 행복의 오아시스는 해가 갈수록 찾기가 어렵다. 증발해 버렸는지도.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나아가는 것 역시 행복하기 위한 일이다. 우리의 목표치를 이루었을때 과연 행복할까? 행복은 물처럼 잡은것 같지만 빠져나가고 공기처럼 허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의대생도 정작 의사가 된 순간 행복은 찰나, 그때부터 다시 인생은 시작된다. 참 아이러니 하다. 잡은것 같은데 놓친것 같은 기분이라니 말이다. 행복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리 힘들지 않을것이다. 붙잡아서 우리곁에 꽁꽁묶어 두면 될테니 말이다. 사람마다 많이 가졌지만 불행하다고 하고 조금 가졌어도 행복한 사람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지만, 모든것을 다 가진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그건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았을때 많은 부를 누리면 행복할꺼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로또라는 대박행운이 찾아 왔을때 우린 행복할꺼라 생각되지만, 로또 때문에 생기는 불행들 또한 많았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도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릴 더 조롱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도 불행도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니 수행을 하는듯한 기분이 든다.

 

만일 인간으로서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상적인 것이 가끔은 절망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것은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실감의 부재가 그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절망감과 실망감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쉽게 포기하도록 만든다.

 

결국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다. 바로 내 안에 행복이 있는데도 다른 것을 쫓느라 바빠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동안 생각해 본다. 부처님의 중간토막쯤으로 태어나지 않고서야 무수한 조건들에 대해서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무소유의 의미는 알겠지만, 실천할 자신은 없다. 아직도 모자라는 것이 많은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욕심은 더한 욕심을 부린다. 한단계 올라가면 두단계 올라가고 싶고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우린 행복이라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디까지 목표치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는 노력여부에 달려있겠지만, 계속해서 마음의 도둑이 들어서 자꾸 가지못한 길에 대해서 심려하고 걱정하게 된다.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를 소신있기 지키는 일은 쉽지 않지만 한 인간으로서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뚜렷한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나의 삶에 의미를 두고,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복은 결국 나의 내면의 진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할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자뻑에 걸린다 해도, 약간은 미쳐 보인다 해도, 어떠리 나 자신이 이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이니까. 어차피 타인은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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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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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평범한 티베트인들의 삶을 일 년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된다. 거기에서 티베트의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는데 다른 나라의 전통을 이해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무당 체텐과 그의 두형들, 그들 삼형제의 아내 양드론, 그들의 아버지 밀라, 그들의 네 자녀 릭진씨네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 역시 어린시절엔 마오쩌둥이 신이고 철저하게 공산주의자로써 교육받아 왔기에 할머니의 종교나 삶에 대해서 무시했었다.

더 넓은 세계를 돌아보고 난 후에 그녀는 다른 사상이나 문화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지만, 불교에서 환생이라는 의미는 아직도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교를 받아들이고 불교가 역사속에서 숨쉬고 있기에 환생이라는 의미가 새로울것도 이해하지 못할것도 없었다. 체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티베트에선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잘라 맹금류에게 보시하는 조장을 한다고 한다. 그녀는 조장을 촬영하길 원했지만, 선뜻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장례비용을 대주고 다른 이의 조장을 촬영하게 된다. 조장사들은 도끼로 죽은이를 크게 나눈 후 으깨는 부분에서 엄청난 이질감과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독수리들을 불러서 살점들을 던져 주었다. 그순간 무섭기도 했지만, 뭔지 알수없는 엄숙함이 밀려온다. 티베트에서는 전역을 통들어 경작할 수 있는 땅은 1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매장은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생각지도 못할일이였다. 그들은 살면서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시를 몸소 실행하고 떠나간다. 티베트의 조장은 자칫 죽은이의 가족들을 빛더미에 내몰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램프 수백개를 49일 동안 밥낮으로 피워야 하고 영혼은 죽음을 7번 경험하기에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7일마다 의식이 반복된다고 한다.

 

티베트에선 학교 다니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국비인 중고등학교가 있는데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티베트인임을 잊고 중국인이 된다. 티베트어는 일주일에 1시간정도 배우고 집에도 못가게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티베트어를 잊고 그들이 살아온 고향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중국의 탁월한 언어말살정책이 잘 먹히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뛰어난 티베트의 아이들 뽑아다가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티베트의 지배계층이 되는것이다. 체텐의 큰형네 막내딸 체양이 제일 머리가 좋은데 국립학교에 들어가고도 남지만, 그 아이는 현명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있었다. 티베트인들의 문제였지만,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재는 모국어가 영어로 바뀌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까지 든다.  영어를 위해서 조기 유학을 가고 한글은 몰라도 되지만, 영어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체텐은 무당으로써 마을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병을 돌보고, 우박이 내리지 않게 우박 방지사로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의 짝을 찾아준다. 우박 방지사로 하는일을 촬영하는 내내 알수없는 주문들을 외우는 체텐이였다. 정말로 한번도 우박이 내리지 않았냐고 묻자, 없었다고 한다. 티베트의 문명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다른 마을에서는 고사포를 사용해서 우박을 방지 한다고 한다. 시범을 보여준다던 두 사람은 포를 잘 쏘지 못해서 어쩔줄 몰라 자꾸만 말이 길어지기만 한다. 말이 길어지니 변명처럼 들려서 웃음이 나왔다.

 

티베트의 결혼은 체텐의 말에 의해 두 남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된다. 두 사람의 사주가 좋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고 만남이나 사랑보다는 체텐의 말에 의해서 맺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저자는 체텐의 말 한마디에 결혼이 성사된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말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체텐(무당)의 말이 신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티베트는 일처 다부제로써 체텐의 삼형제는 한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때면 경이롭다. 그들역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얼마나 낯설고 이상해 보일까? 중요한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발을 딪고있는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그들의 배가 세상풍파를 만나 난파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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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기가 막혀 - 순진한 개를 미치게 하는 50가지 고민
스티브 더노 지음, 정숙영 옮김, 박대곤 감수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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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개를 미치게 하는 50가지 고민 <강아지가 기가막혀!>

개가 자신의 고민을 편지로 쓰면 친절한 개비가 상담을 해주는 내용이다. 책 표지도 재미있고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사람이 이 책을 썼기에, 그가 저명한 애완동물 행동전문가라고 해도 어찌 개에 대해서 다 알 수 있는가? 라고 반박하게 된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도 의사소통의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나가기가 힘들다. 저자의 전공이 그 분야이지만, 개의 마음을 더 이해해줄 수는 없는거냐고 묻고 싶다.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녀석은 개 감옥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집안을 청소하러 온 사람들에게 "으르릉" 거리고 정원사들 중 한명이 도망가기에 엉덩이를 물어 주었다고 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개는 자신을 두려워 하거나 무서워서 도망치면 순한녀석이라도 쫓아가서 응징을 해준다. 그러기에 개를 무서워하시는 분들은 개 앞에서 도망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주인은 위험한 일이 생기는 상황을 위해서 개를 묶어 두거나 다른 공간에 두었어야 했다. 당연히 사람을 문것은 잘못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녀석의 주인은 중성화수술을 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개의 지배 성향이나 공격성을 최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7-8개월때에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거란다. 중성화 수술이란 개의 생식기관을 들어내는 끔찍한 수술이였다. 중성화 수술에는 다음의 장점들이 있지라고 말하는 순간 난 화가났다. 주인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개를 사랑하는 사람일꺼라고, 이 책에서의 느낌 역시 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섭게만 느껴졌다. 개를 사랑하게 되면 많은 말들보다는 눈빛이나 행동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픈지, 즐거운지 알 수 있다.

 

개가 문제를 일으키전에 초기에 확실하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강아지일때 무척이나 귀여워하다가 어른이 되었을때 개들의 덩치가 커져버려 상대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새로운 강아지가 들어온다거나 하면 개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이들 역시 동생이 태어나는 일이 기쁨에도 자신의 자리의 위태로움을 느낀다. 아이들에게도 형이나 언니라는 이유로 니가 참으라고 하면 안된다. 그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개들에게도 골고루 애정을 주어야 한다.  애정이 식어감을 누구보다 개들은 확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애정결핍은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큰 악영향을 미친다. 개들이 하는 행동을 잘 몰라서 서로 오해할 경우도 많다. 개를 사랑한다면 주의 깊게 살펴주고 베려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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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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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작업실 줄라이홀. 이 책을 읽어 보면 커피와 음악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향긋한 커피도 좋고 클래식도 좋았다. 전반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이야기가 나와서 좋았다.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것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마냥 좋을것 같다.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지식적인 수준에서는 거의 문외한인 나였기에 당연히 이 책이 읽기 힘들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때론 한글을 읽고 있어도 외계어처럼 느껴질때가 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거기엔 저자의 삶의 향기가 묻어나서 그렇다. 지독하게도 음악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어서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그의 삶의 이야기 말이다. 내가 아는 몇몇의 음악가를 제외하곤 턴테이블의 낯선 이름들과 곡들을 읽으면서 모르는 음악가들과 음악이 머리속에 둥둥 떠다닌다.  그런 음악을 들으면 왠지 내 마음이 정화가 될 것 같은 느낌. 가슴속에 정체되어 있는 무언가가 꿈틀거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좋은 음악을 듣기위 해서 거장의 음악을 감당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뜻과 상관없이 스피커에 붙어사는 유령들과의 동거가 조금은 부럽게 느껴졌다. 보면 무서워 할꺼면서도 그녀석들이 보고 싶은 이유는 모르겠다.  하긴 물어보고 싶은것이 있긴 하다. 나에게 그녀석들이 시간을 내준다면 말이다.  

 
우리집에 있었던 턴테이블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막내 작은아버지가 망가뜨렸다고 한다. 집에 고이 꽂혀 있던 엘피판들을 멀끔히 쳐다보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 당시에 난 테이프에 심취해 있었다. 라디오에 테이프를 꽂아서 A면 다 돌아가면 철컥 소리를 내던, 다시 B면으로 돌려주어야 했던, 졸다가 철컥 소리에 나를 깨워주었다. 어떤 이들은 미친 사람들에게 "미치려면 곱게 미칠것이지." 라고 말한다. 감히 저자에게 정말 곱게, 멋지게, 따라하고 싶게 미치셨네요." 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의 커피 사랑이야기, 한번 하고자 하면 꼭 하고 마는 성격이신듯 하다. 바리스타처럼 복장을 착용하고 커피를 내리신다는 이야기에, 3번 자지러졌다.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쓰지 않다. 담백하고 중독성에 대한 부작용으로 몸의 떨림이 있다. 커피 볶는 향기가 달콤하게, 저자의 이야기는 맛깔스럽다. 맛있는 커피를 맛보기 위해선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생두를 사서 불순물을 골라내주어야 하고 그다음에 생두를 볶아 주어야 한다.  불순물만 잘 골라주어도 하급생두도 마실만 하다고 한다. 생두를 어떻게 로스팅하는가에 따라서 맛이 크게 달라진다. 강배전으로 볶을수록 파킨슨병에 효과는 크다고 한다. 훗~  커피를 건강을 위해서 마시기 위해 쓰디쓴 맛을 봐야 할까?  인생에서 맛보는 쓴맛으로 대신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커피가 주는 향긋함과 즐거움이야말로 큰 기쁨일테니 말이다. 커피를 내리는것 역시 그냥 내리면 될 것 같지만, 여기에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것은 해보고 또 해보고 연습하는 것일거다. 많이 해본만큼 커피맛도 좋을테니 말이다.

 
중학교때 나만의 화실이 갖고 싶었다. 그때 필수품은 라디오와 미술도구들 맛있는 간식이 필요하다.  몇날이고 밤을 세워서 그리고 또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였다.  더 잘그리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시간이 행복해서 였다. 방학때에는 화실에서 그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기쁜일만은 아니였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니까.  때론 그런시간들이 저주의 시간같기도 했다.  원해서 하고 있었지만, 절망적일때가 더 많았다. 

 
좋아하니까, 그럴수밖에 없다. 시작하지 않는 것 역시 불안하다. 인간은 외로워 하기 위해서 태어난것은 아닐까?  외롭지 않고 "혼자서도 잘 놀아요." 였다면 누군가를 만나거나 사랑하거나 무언가에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강한 자석에 철심이 끌려가듯이 당연한것처럼 보였다.  자연스러움의 미학, 어쩔수 없는 끌림, 그러기에 우리에게 더욱 음악을 향한 욕구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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