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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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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 걸 의미하고, 지금의 나는 도저히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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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협찬받아 읽어보게 된 도서 <파국> 강렬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와 빠르게 손에 집어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페이지가 얇은 것도 유혹적으로 다가왔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독서평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솔직히 중간까지는 도무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건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는데, 후반부터 결말에 다다르면서 작가의 의도가 한 번에 느껴지면서 전율이 흘렀다.
-주인공 요스케는 신체와 정신을 올바르게 다지면서 매일 같은 루트를 벗어나지 않고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심지어 자위 행위 까지도. 그런 그에게는 숨겨진 욕망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데, 어느날 친구의 마지막 개그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가 만난 아카리라는 여자와 사랑이 싹트면서 오랜기간 연애한 여자친구 마이코와 헤어지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일상이 흐트러지게 된 그는 욕망으로 인한 파국의 길로 스스로 접어들게 된다.
-솔직한 이야기 부터 하자면,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문체는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의 글이 맞아?’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아예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딱딱하며 한 번도 글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하루를 기록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도무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전개는 도대체 어떻게 해나가려는건지 중반부에 다다를 때 까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아서 얼굴 가득 물음표를 담고 읽어야 했다. 호불호가 갈릴 도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할 즈음 이 책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달려갈 수록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그것을 위해 조성되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파격적이면서 색다른 전개 방식, 소설의 분위기 속에 독자를 가둬버리는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언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조바심과 뭔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찝찝함이 <파국>을 읽는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유지되는 이 분위기 덕분에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에도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딘가 쫒기는 듯한 느낌은 작품이 클라이맥스로 향하면서 고요히 폭팔하며 독자를 전율에 빠져들게 만든다.
-욕망을 가진 자가 그 욕망을 숨기려하면 겉으로는 완벽하게 가려진 혹은 없는 것 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조용이 증폭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올곧은 사람’이 되고자 갈망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욕망이 속에서 자라나게 된다. 올바른 사람, 좋은 사람을 갈망하는 것은 욕망을 누르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만, 그 갈망이 순간적으로 망각 되었을 때, 욕망은 미친듯한 크기로 분출 되고 만다. 저자는 우리 시대에 ‘좋은 사람’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들의 억눌린 욕망의 위험성을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억눌린 것은 언젠가 화산처럼 폭발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분위기와 욕망의 폭발이 어우러지면서 조용하면서도 파격적인 장면이 연출 된다.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묘한 익숙함과 동질감이 느껴지는 주인공을 바라보면 우리 시대 군상의 치명적인 결함을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짧고 무뚝뚝한 글로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쉬운 점은 호불호가 갈리는 문체 때문에 좋은 내용이 전혀 부각 되지 않고 가려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