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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와는 무관하게 살았던 내가, 그날 굳이 그곳으로 나갔던 건 아마도 식코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촛불시위 행사장에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고 어린 사람들이었다. 아마 내가 평균연령보다 위쪽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_- '당연히' 흥분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던 건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흥분을 다소 '즐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 가슴속의 분노를 발산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러 온 건 부디 아니길. 그럼에도 그 어린 친구들을 보는 마음 한켠이 뜨끈했음은 어쩔 수 없다. '난 그냥 이제 소고기 안먹으려고' 라고 말하는 어른들보다는, 인터넷 비속어 섞어가면서 욕설을 내뱉고, 바뀔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행동하는 그들이 결국은 뭐든 움직일 수 있을 확률이 높을테니까. 부디 세상을 향해 표현된 그들의 '첫 분노'가 힘없이 꺾이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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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또 불라에서 밤을 새버렸구나. 아무래도 거기는 요상한 마력이 있다니까. 자의가 타의가 되고, 또 타의가 자의가 돼버렸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밤새 차를 마셨다. 세상에, 밤새 차를 마셨다니 엄마가 안믿어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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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시간 자고, 다시 아동부 어린이들과 함께 수영장으로 직행! 이쯤되면 '님체력 좀짱인듯'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나이는 많지만, 그래도 가장 젊은데다가 만만한 여선생님이라는 점은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할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추게 해 주는데, 덕분에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시달렸다. 으윽 ㅜㅜ 유수풀에서 튜브에 누워서 애들이랑 둥둥 떠다닐 때가 제일 행복했어 정말이지 ㅜㅜ 파도풀에서 아그들과 얼음땡까지 하고나서는 거의 기절상태였다. 니들은 '얼음!' 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계속 술래였잖아. 그런데 이것도 내가 제일 먼저 하자고 한 사실 -_- 할 줄 아는 놀이가 80년대식이라 얼음땡밖에 없다는 거지. 그런데 요즘 얼음땡 이상하다. 자폭으로 쨍그랑! 하기도 하고, 무슨 이상한 주문도 건다. 도통 무슨 말인지... 얼음땡을 마치고 넉다운되어 의자에 누워서 쉬는데 또 꼬마녀석 하나가 손을 붙잡고 풀에 들어가서 놀잔다. 으으 선생님 딱 스물까지 셀 때까지만 쉬자, 하고 같이 스물 세고 ;;; 다시 풀장으로 뛰어들어가고. (그런데 솔직히 좀 신나기도 했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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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이를 먹으니 겁만 는다. 세상에, 슬라이드를 타러 올라가서는 겁없이 (경사가 급한) 노란 슬라이드 타실 분! 이라는 말에 저요, 라고 손들고 올라갔다가 비굴하게 '죄송합니다 (완만한) 주황색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내려오고, 다시 내 차례가 되어 주황색 슬라이드를 타러 가서는 그 캄캄한 입구를 보고 '죄송합니다, 전 안타게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후다닥 내려오는 굴욕을 보이다니! 아 예전에는 더 무서운 것도 겁없이 탔는데. 늘 강조하지만, 정신력은 버틸 수 있지만, 나는 그저 심장의 기능이 걱정될 뿐이라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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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영복 입은 태를 보니, 아무래도 2주간 급다이어트가 필요할 것 같다. 2주동안 5kg을 뺐다는 W에게 비결을 물어보니 아침밥 + 점심 일본 다이어트 쿠키 + 저녁 생식을 2주간 했다기에 불끈! 하고 있었는데 그 뒤에 오는 말이 "근데 저 그러고 나서 쓰러졌잖아요"이다. 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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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4개월하고 한달 가까이 더 먼저 태어난 M의 생일. 유난히 커피값을 아까워하는 M과 2시간동안 수다를 떨었던 곳은 백화점 엘레베이터 앞 소파였다. 가구매장 있던 층이어서 엄청 편했다는 ㅋㅋ 작년부터 여행가자며 같이 넣고 있는 펀드도 그렇고, 같이 여행가자면 열심히 모으는 중인 아시아나 마일리지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 같이 여행을 좀 가긴 가야 할 것 같다.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참 신나는데, 여기서 끝내지는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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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뒤에 있던 내연산이 유명하다는 거 알았어?"
"내연산? 그게 어디야?"
"보경사 있던 데 있잖아. 가을로에 나오는데, 그게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하는 얘기거든. 학교 뒤로 있던 도로가 7번 국도로 연결됐던 건 알지?"
"아니 -_- 그게 뭐야?"
"뭐야,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7번국도 뒤에서 학교를 4년이나 다니고도 모른단 말야?"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제대로 주변 지역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나는 학교 뒤쪽 내연산에 자주 엠티를 갔으면서도 귀찮다며 한번도 등산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게 유명한 산이라는 걸 가을로를 보면서 알고는 땅을 쳤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우리 답사 갔던 데 중에서 나는 화엄사가 제일 좋았어"
"화엄사? 그게 어디야?"
"우리 동백꽃 봤던 데 있잖아, 고즈넉한..."
"동백꽃? 그런 것도 봤었나?"
"이봐이봐 -_-"
솔직히 살면서, 나는 M보다 똘똘한 친구를 본 적이 별로 없다. 가끔 녀석의 시간은 36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 영화, 만화책, 드라마(국적불문)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놀라운 상식의 그녀. 그런데, 이녀석의 똘똘함은 꼭 엉뚱한 곳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단 말이지. 하하하. 심지어 얼마 전에는 '사표를 낸다'더니 정말 사전에 아무 언질 없이 사표부터 '띡' 하고 내밀어 모든 사람을 경악하게 했었단다. 악감정이 있거나, 복수심에 불타지 않고서야 ;;; -_- 사표는 절차상의 단계 중 하나고 '사표를 낸다'는 말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한 인지가 없었다는 것.
"나는 그냥 사표를 내면 되는 건 줄 알았지" 라며...
덕분에 M은 그 수습을 하느라, 여전히 회사에 매여있다는 슬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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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라니, 감사하다.
이 영광을 어린이들에게 ^_^
갑자기 알라딘의 어린이들은 무슨 선물을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온다
오늘 어린이주일 기념 목사님의 말씀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그들의 미래를 위한 양보라는 것.
아이들이 조금 더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조금 덜 누리는 것.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지금.
공감이 가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