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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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의 자동화로 노동의 필요가 사라져 가는 세상은 우리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제레미 리프킨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런 과정은 재앙이라고 얘기한다. 생산의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의 대량 추방은 레저 시간의 증가보다는 영속화된 실업을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으며, 이렇게 추방된 노동력은 그가 제3의 부문이라고 부르는, 시장도 국가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영역을 통해 전이되어야 하며, 이때 소요되는 비용은 생산의 자동화가 가져온 이익에 대한 사회적 배분 차원에서 부가가치세 등 소비세로 확보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제기된 노동 시간의 단축만이 현재의 광범위한 실업, 반고용 상태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해내고 소비심리를 진작시켜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항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제3의 부문, 현실적으로는 시민단체 활동을 지칭하는 이 부문에 실업 인력을 고용하고 그 재원을 기업이나 소비자의 세금으로 확보하자는 이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칫 시민단체 활동의 순수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고, 현 활동가의 급여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난망한 담론이 되기 쉽다.

국가 총지출의 상당부분을 경성비용인 국방예산에 투입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자발성에 기반한 시민단체 활동에 별 뜻도 없는 사람이 고용이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 참여하여 어떤 결실을 보기도 힘들 것이다.이 책은 우리 현실에 대한 분석으로도 상당한 현실성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은 담배 한 대 필 시간도 없이 컨베이어벨트상의 단순노동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 해고되어 실업자가 되어버린다. 그는 우연하게 감옥에서 들어가게 되고 교도소장을 구해준 사례로 소장이 그를 내보내려 하자 그는 감옥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얘기한다. 어느 곳에라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그 상태가 인간에게는 죽음만큼 끔찍할 수 있다는 전언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현대사회에서 광범위한 고용을 보장하는 자동차 산업마저도 수십 년이 지나면 노동자의 파업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이,임금을 올려주거나 노동 시간을 단축할 필요도 없는 인공지능 기계의 손에 넘어가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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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
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신행선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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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분량이 어정쩡해서 책으로 출판되기가 힘든 글이 있다. 단행본 분량으로 글을 써내고 고치고 하는 요즘 풍토에서는 그런 어정쩡한 글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편이지만 서양 고전 중에는 한 권으로는 어림도 없이 길거나 짧은 글이 있다. 지적 욕구의 충족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든 글이 독서 대중에게 제공되어야 하겠지만, 300페이지 내외로 틀이 제한된 출판 상황에서는 짧지만 비중 있는 글을 접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책세상'의 문고판은 훌륭한 포맷이라고 생각된다. 분량이 맞지 않으니 출판할 수 없다가 아니라 출판할 수 있도록 포맷을 만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일 듯하다.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글에 해설을 덧붙인 아주 얇은 책이다. 민족담론치고는 고전적인 성격의 글에 속하는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논문)의 핵심은 민족은 인종, 언어, 역사, 지리와 같은 요소가 아니라 함께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지, 희망에 따라 구성된다는 것이다. 인종주의, 반유대주의가 지배적인 정서로 굳어가던 당대의 상황에서는 진보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는데,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오히려 표제로 등장한 글이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이라는 글이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와중에 발표한 이 글은 프랑스 지식인의 독일에 대한 동경,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와 인종주의가 유럽의 장래에 끼칠 영향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후자는 결국 양차 대전과 그 와중의 아우슈비츠 학살로 현실화, 물질화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잠재되어 있을 인종주의적 성향이 다. 내 경우 동남 아시아인들만 보더라도 '열등함'을 무의식중에 떠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인종적인 편견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열등함과 겹쳐지는 편견일 텐데, 비단 나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런 성향이 어떤 현실적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르낭은 반면교사로서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이 문고판 시리즈의 장점은 부록으로 '더 읽어야 할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학술 서적의 참고문헌이 저자의 기계적인 작업임에 반해 '더 읽어야 할 책들'은 독자의 지적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자상한 해설까지 덧붙이는 생동적인 작업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지적 욕구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고본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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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뉴턴
데이비드 클라크.스티븐 클라크 지음, 이면우 옮김 / 몸과마음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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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위대한 과학자로 숭배되는 아이작 뉴턴이 과학적 업적을 쌓기 위해 동료 과학자들에게 행사한 억압과 간계를 폭로하고 있다. 굳이 '폭로'라는 선정적인 어사가 필요할 정도는 아닌 것같지만 가상과 진실을 교묘하게 얽어놓은 이 책은 플램스티드와 그레이라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성취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뉴턴이 못할 짓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하고 있다.

과학에 대한 문외한으로서 흥미로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재자 뉴턴'이라고 제목을 달아야만 할 정도는 그 수준이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독자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그 대상이 위대한 과학자로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 무명을 떠나 순수할 것이 요구되는 학문 세계에서 뉴턴을 둘러싼 일과 유사한 일들은 종종 벌어진다. 제자의 학문적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발표해 물의를 일으킨 최근 어느 대학의 사례를 굳이 밝힐 필요도 없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에서 오히려 흥미로운 부분은 뉴턴의 시기와 박해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염색업자이자 전기화학자 그레이 부분이다. 전기현상의 발견자로 알려진 플랭클린이나 통신의 발명자 벨이 있기 전에 그레이가 전기와 통신을 실험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이 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하면 그레이의 실험과 발견에 지금의 우리가 엄청난 빚을 지고 있음을 평가하고 감사해야 될 것같다.

당시의 문헌 자료에 근거했다고는 하지만 가상의 픽션을 방불케 하는 서술 방식은 독자의 신뢰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소설을 읽는 듯한 생동감을 염두에 둔 탓일 텐데 저자들의 픽션적 화법은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듯하다. 어정쩡한 픽션 형식에다가 번역마저 깔끔하게 떨어지지 못해 적은 분량인데도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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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정치의 악몽 - 국가폭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1
조현연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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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석 쇠러 가는 기차 간에서 서서 읽었다. 추석 분위기에 맞지 않는 내용이긴 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독서체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올해 들어 유난히 내 관심을 사로잡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올 초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최종길 교수 의문사, 주한미군 탱크에 깔려 죽은 여중생들, 허원근 일병 의문사. 이것들은 하나같은 국가권력을 매개로 한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의 오점들이다.

최교수의 선홍색 피를 흘리며 엎드려 있는 사진, 복숭아 뼈가 선명히 드러난 부검 사진, 탱크에 압사한 채 널브러진 주검, 구식 카키색 군복을 입은 총상 선명한 주검들을 주기적으로 마주 하며 너무도 잔혹한 세월을 넘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지나가는 장갑차의 캐터필러 소리만으로도 가슴을 떨었던 기억에 그 여중생들에게 닥친 압사의 고통이 몸서리치도록 생생하게 다가온다.

폭력과 살인을 통하지 않고는 권력 유지가 불가능했던 부도덕하고 불의한 권력의 한 쪽에 등 기대고 버틴 이 땅에서의 삶을 마주하며 칠레 같은 중남미 국가를 어줍잖게 동정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개입하여 휘두르는 것만 폭력이고 살인일까. 노점상 단속 때문에 분신 자살한 박봉규 씨를 보며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국가권력이 힘없는 서민의 생존권을 차압하고 국민을 내동댕이친 것도 엄연한 간접 살인이다.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그냥 과거지사라고 가볍게 넘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건들 중에 기억의 저편으로 넘겨버릴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사실이 오히려 두렵다.

요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이다. '긴또깡'으로 알려진 정치깡패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사람의 인생에 극적인 모멘트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김두한으로 대표되는 한국현대사의 얼룩을 밀가루로 덮어버리는 영웅적 미화일 뿐이다.

이 책을 대하는 지금 난 마치 대학 신입생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같은 느낌이다. 무수한 죽음들과 마주치며 두려워했고, 하루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 시절.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지금이 2002년이라는 사실이고, 두려운 것은 삶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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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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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선배들이 추천하는 소설 중 하나가 이창동의 소설이었다. 그의 첫 소설집 <소지>보다는 그 당시 나온 <녹천에는 똥이 많다>라는 소설 제목 치고는 밋밋하고 거친 제목의 소설집이 추천 상위에 올랐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기억만 있고 스토리조차 가물가물한 채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영화판으로 뛰어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90년대 초반 신세대 논쟁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면서, 그리고 기술 혁신과 경제적 풍요가 결합되면서 영화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적인 젊은이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80년대 독보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소설계에서도 이전처럼 역사, 진실, 가치와 같은 카테고리를 안고 뒹구는 소설보다는 감각, 쾌락, 욕망을 코드로 내세운 영화 같은 소설이 가장 좋은 소설 비슷하게 대우받던 시절이었다.

군부 개발 독재에 삶을 차압당하며 고통받는 사람들, 이에 저항하면서도 나약한 일면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소시민적 안락과 평화를 구하지만 삶의 균열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는 가득하다.

가장 80년대적인 소설을 써온 이창동의 변신을 나는 호기심 반 근심 반 섞으며 지켜보았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판에 뛰어들기가 어디 쉬운가. 그것도 노가다에 가까운 영화판이니 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오아시스> 이전에 그가 내놓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2편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세계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이 두 편의 주인공은 모두 삶의 변두리로 밀려난 인생의 패배자인데, 그 인생의 패배에 직면한 주인공들은 잃어버린 가족과 사랑이라는 기억의 원점으로의 회귀를 열망한다. 삶에서 더 이상 뿌리내릴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질 때 시간은 거꾸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주인공들의 경우처럼 폭력적인 국가 권력이거나 냉혹한 자본주의와 같은 거대한 기구이다.

이창동의 영화와 소설이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테마의 변주처럼 느껴지는 것은 운명처럼 거대한 세계에 맞서 때로는 저항하며 결국에는 산산이 부서지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교차점에 놓이는 것이 <녹천에는 똥이 많다>라는 소설집이다. 이창동은 작가 후기를 통해 그동안 써온 것과는 다른 글을 쓰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피력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그 자신도 미쳐 감을 잡지 못했겠지만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멋진 변신에 성공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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