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천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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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선배들이 추천하는 소설 중 하나가 이창동의 소설이었다. 그의 첫 소설집 <소지>보다는 그 당시 나온 <녹천에는 똥이 많다>라는 소설 제목 치고는 밋밋하고 거친 제목의 소설집이 추천 상위에 올랐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기억만 있고 스토리조차 가물가물한 채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그의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영화판으로 뛰어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90년대 초반 신세대 논쟁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면서, 그리고 기술 혁신과 경제적 풍요가 결합되면서 영화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적인 젊은이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80년대 독보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소설계에서도 이전처럼 역사, 진실, 가치와 같은 카테고리를 안고 뒹구는 소설보다는 감각, 쾌락, 욕망을 코드로 내세운 영화 같은 소설이 가장 좋은 소설 비슷하게 대우받던 시절이었다.

군부 개발 독재에 삶을 차압당하며 고통받는 사람들, 이에 저항하면서도 나약한 일면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소시민적 안락과 평화를 구하지만 삶의 균열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는 가득하다.

가장 80년대적인 소설을 써온 이창동의 변신을 나는 호기심 반 근심 반 섞으며 지켜보았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판에 뛰어들기가 어디 쉬운가. 그것도 노가다에 가까운 영화판이니 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오아시스> 이전에 그가 내놓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2편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세계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이 두 편의 주인공은 모두 삶의 변두리로 밀려난 인생의 패배자인데, 그 인생의 패배에 직면한 주인공들은 잃어버린 가족과 사랑이라는 기억의 원점으로의 회귀를 열망한다. 삶에서 더 이상 뿌리내릴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질 때 시간은 거꾸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주인공들의 경우처럼 폭력적인 국가 권력이거나 냉혹한 자본주의와 같은 거대한 기구이다.

이창동의 영화와 소설이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테마의 변주처럼 느껴지는 것은 운명처럼 거대한 세계에 맞서 때로는 저항하며 결국에는 산산이 부서지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교차점에 놓이는 것이 <녹천에는 똥이 많다>라는 소설집이다. 이창동은 작가 후기를 통해 그동안 써온 것과는 다른 글을 쓰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피력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그 자신도 미쳐 감을 잡지 못했겠지만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멋진 변신에 성공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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