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의 향연 - 컬리지언총서 22
마샬 버먼 지음, 문명식 옮김 / 이후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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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은 잊고 살았던 사람들과 책을 불러온다. 정말 의식 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한때는 소중한 사람들이었지만 더이상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진 그 사람들과의 재회는 뭐라 표현할 길 없는 막막한 슬픔을 준다.

맑스주의는 더 이상 거들 떠 볼 가치가 없는 진부한 사상이라고 생각한 탓일까. 한때 내 책꽂이에 빼곡이 차 있던 맑스, 엥겔스, 레닌 등의 책들을 싸그리 치워버린 게 도대체 언제 적 일인가. 그러나 그 중에도 <자본>만은 버릴 수 없었는데, 그 이유를 의식적으로 규정한 적은 없지만 그건 맑스의 <자본>이 내 사유의 원체험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1권 상,하에 불과하지만 <자본>과 <공산당선언>은 그 어떤 문학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열렬한 감성을 자극한 책이다.

버먼같은 이가 여전히 고도자본주의 사회 미국에서 맑스를 읽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사유를 펼치고 있다는 건 믿음직스럽다. 그의 <현대성의 경험>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맑스를 위대한 모더니즘 작가로 보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맑스의 저작은 근대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깊이 본 자가 아니면 펼쳐낼 수 없는 자본주의 성장의 송가이자 자본주의의 결말의 계시록이다. 버먼은 <맑스주의의 향연>을 통해서 우리의 모더니즘 문화론이 여전히 맑스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나는 그의 입론이 우리의 현실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좌파 지식인들이 생활현실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는데 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가슴 아프게 와 닿는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게오르그 루카치의 거대한 뻔뻔스러움'- 아홉번째 향연이다. 20세기 전세계 지식인의 이디엄처럼 되다시피한 사물화, 총체성이라는 개념을 창조한 루카치의 사상적 굴절을 다루고 있는 이 부분은 노 사상가의 시대적 굴절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비통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이론], [영혼과 형식], [역사와 계급의식] 등 그의 초기 저작을 탄생시킨 낭만주의적 혼을 간직한 그에게 사회주의는 세상과의 불화를 겪는 고독한 영혼이 꿈꾼 영원한 합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적 여정은 그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정이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발터 벤야민은 파탄난 세상을 종교 신자적인 내면성을 통해 헤쳐 가려한 자본주의의 순례자인 셈이다.

여하튼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은 그의 전작 <현대성의 경험>과 더불어 모더니즘 작가로서의 맑스의 위상을 확실히 부각시킨 명작이다. 머지 않은 장래에 맑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을 다시 읽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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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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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치즈코의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근래에 읽은 가장 훌륭한 책이다. 이런 최상급의 찬사를 보내는 것 자체는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서 다른 독자들에게도 본인의 판단이 유효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 가치 판단의 척도를 보여줌으로써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가능할 뿐이니 말이다.

근래 들어 가장 문제시되는 논점은 '내셔널리즘'이 아닐까.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드물게는 '국민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온 '국가'라는 자연적인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이 사안은 80년대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건, 즉 그 자체로 영속될 것같은 존재가 사실은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문제시되어 온 것이다.

'내셔널리즘'의 문제와 더불어 '젠더'의 문제 역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가치중립성의 존재로 굳어져 온 국가, 시장, 가족이 기실은 특정 가치 편중적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젠더는 열쇠말 역할을 해왔다.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자연화된 국가를 젠더라는 관점에서 탈자연화하여 바라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젠더의 동시 소멸을 희구하는 열망의 산물이다.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한일 양국 최대의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성적 여성사의 입장에서 지난 역사의 문제들, 넓게는 역사의 의미를 재심문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페미니즘이 제기한 문제들이 심도 있게 다뤄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심도있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치즈코는 개인은 곧바로 국가에 귀속되지 않으며, 그 사이에 매개를 발견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과거 일본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가에 자신을 곧바로 귀속시킬 때, 국가는 괴물처럼 돌변해 파괴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에 따라 국민으로 동화된 개인은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를 젠더화함으로써 국가의 의미를 마이너리티의 관점에서 재심문하고 궁극적으로 근대를 넘어서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우리 말로 번역된 일본 지식인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가장 진지한 사람 중 하나다. 그녀의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매개로 삼고 있으나 그 논의는 훨씬 더 궁극적인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이나 젠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읽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수정하고 확장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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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와의 대화 - Conversations with Kayageum Master Byung-ki Hwang (한ㆍ영문판)
나효신 지음 / 풀빛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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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와의 대화>는 황병기 그의 음악적 가치에 걸맞게 한영대역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책이 나오는 일은 드문 일인데, 이는 아마도 해외 독자를 아우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같다.

우리는 예술가의 작품을 접할 때 궁금한 게 많다. 예술가와의 사적인 만남이란 쉽지 않은 일이라,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공개되는 인터뷰를 통해서 그간의 궁금증을 풀게 된다. 그러나 규격화된 방송쪽보다는 아무래도 형식상의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책을 통해 한층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황병기 선생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계기를 통해 접해왔지만 정작 그의 가장 속깊은 얘기를 들을 계기는 없었던 것같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의 생애도 중요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그의 예술혼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이야기이다. 작품의 창작 배경이나 의도가 해당 작품에 대한 해석의 결정권을 갖는 것은 아닐 테지만 참고 자료로 중요하다.

재미 작곡가 나효신 씨의 개인적 프로젝트에 의해 수행된 수 차례의 인터뷰를 묶은 이 책은 황병기 선생의 작품 세계를 세세하게 추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그간의 인터뷰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인터넷을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는 것보다는 황 선생의 에세이집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와 이 인터뷰 집, 그리고 그의 작품집 4개면 충분할 것같다.

국악 초심자로서 이 책을 가장 재미나게 읽는 방법은 인터뷰를 따라가다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책의 말미 용어집을 참고하고, 관련된 음악을 함께 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책만 보거나 음악만 들을 때보다 한층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한국 독자에게 영역 부분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에 따라 책 값도 싼 편은 아니지만 서재에 꽂아두기에도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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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표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2
로스 맥도날드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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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맥도날드의 <움직이는 표적>은 흔히 '하드보일드'라고 일컫는 사회의 비정을 파헤치는 추리물이다. 실종된 백만장자를 추적하는 탐정 루 아처의 얘기를 그리고 있는데, 하드보일드가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 루 아처는 사건에 대해 극도의 건조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라진 백만장자의 행적을 쫓아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인다.

정통추리물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한 명의 특출난 영웅적 탐정의 천재적 추리 능력을 과시하는 고전적 스타일은 아니다. 루 아처는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는 현대의 영웅이 더 이상 전지전능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닌 오류의 인간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표적>은 정의와 청렴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법의 세계가 인간적 욕망에 의해 굴절되는 세계를 다루고 있고, 이와 더불어 이주민 노동자 문제, 탐욕스런 자본가 문제 등을 다루고 있어 때때로 사건과 추리 위주의 추리 소설이 놓치기 쉬운 추리문학의 사회적 성격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이다.

로스 맥도날드의 이 작품은 마치 한 편의 하드보일드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이 소설이 캘리포니아 주변을 무대로 삼고 있다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길게 뻗은 캘리포니아의 해안 풍광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그 자체가 충분히 영화적 감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더운 여름날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기나긴 악몽을 헤쳐 나온 듯한 상쾌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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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5
조한욱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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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우리 독서계에 역사 읽기 열풍이 불었을 때, 그 열풍이 혹시 가벼운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한 적이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모토로 해서 이런저런 식의 가벼운 역사 읽기가 붐처럼 일어난 그 당시 특이하게 생각됐던 것은 그 전과는 다른 역사책의 모습이었는데, 그 책들은 제도적 변천이나 혁명같은 큰 틀에서의 얘기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통한 역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 흐름들이 요즘에는 역사읽기와 쓰기의 중심권으로 진입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이는 실로 역사의 개념 자체를 수정하는 흐름이 아닌가 싶다. 그런 흐름이 '신문화사'라는 틀로 뭉뚱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조한욱의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를 통해서 확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치사, 경제사에 편중된 역사, 과거의 기정 사실에 대한 재확인과 교훈 획득으로만 이해한 역사를 문화를 통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담론으로 이해하는 신문화사적 방법이 우리에게 완전히 친숙해진 것은 아니며, 최근의 흐름은 고작해야 새로운 방향으로 가는 이정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 발간된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독서층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이 서서히 변해 가는 역사 연구 방법을 우리 역사 조명에 시의적절하게 적용하였기 때문인 것같다.

우리의 역사는 그동안 민족주의, 계급주의같은 거대담론에 휘둘려왔다. 그것의 장점이 분명한 만큼 그 단점도 명확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 관계 맺음을 통하여 이뤄지는 사건들의 세계가 지나치게 도식화되고 그 생생한 현장감을 상실하고 비대화적인 목소리로 일색되었다는 느낌을 가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역사'하면 대부분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한욱의 이 책은 최근 역사 연구 방법 상의 변화를 이미 번역된 책들을 중심으로 소개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관심을 혁신, 제고하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비단 '역사'라는 담론이 역사학자만의 소유물이 아닌 이상 신문화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연구를 추동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개론서적인 관심에 치중하여 좀 더 높일 수 있는 논의의 수준을 애써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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