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과 젠더 - 비판총서 3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에노 치즈코의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근래에 읽은 가장 훌륭한 책이다. 이런 최상급의 찬사를 보내는 것 자체는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서 다른 독자들에게도 본인의 판단이 유효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 가치 판단의 척도를 보여줌으로써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가능할 뿐이니 말이다.

근래 들어 가장 문제시되는 논점은 '내셔널리즘'이 아닐까.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드물게는 '국민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온 '국가'라는 자연적인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이 사안은 80년대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건, 즉 그 자체로 영속될 것같은 존재가 사실은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문제시되어 온 것이다.

'내셔널리즘'의 문제와 더불어 '젠더'의 문제 역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가치중립성의 존재로 굳어져 온 국가, 시장, 가족이 기실은 특정 가치 편중적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젠더는 열쇠말 역할을 해왔다.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자연화된 국가를 젠더라는 관점에서 탈자연화하여 바라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젠더의 동시 소멸을 희구하는 열망의 산물이다.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한일 양국 최대의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성적 여성사의 입장에서 지난 역사의 문제들, 넓게는 역사의 의미를 재심문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페미니즘이 제기한 문제들이 심도 있게 다뤄진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심도있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치즈코는 개인은 곧바로 국가에 귀속되지 않으며, 그 사이에 매개를 발견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과거 일본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가에 자신을 곧바로 귀속시킬 때, 국가는 괴물처럼 돌변해 파괴력을 발휘하게 되고, 그에 따라 국민으로 동화된 개인은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를 젠더화함으로써 국가의 의미를 마이너리티의 관점에서 재심문하고 궁극적으로 근대를 넘어서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우리 말로 번역된 일본 지식인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가장 진지한 사람 중 하나다. 그녀의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매개로 삼고 있으나 그 논의는 훨씬 더 궁극적인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다. 내셔널리즘이나 젠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읽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수정하고 확장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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