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대 -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권보드래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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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는 곧 연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혁명만 보고 연애에는 눈 감아 버린다. 그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연애는 모든 것에 적대적인 것이다. 혁명과 이념을 따르는 데도 방해가 되고, 학문을 하고 사업을 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 생각이 낡고 편향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애를 하찮은 것의 범주에서 구출하기에 주저한다.


역사상 격동기는 혁명과 함께 연애가 함께 했다. 혁명이든 연애든 그 본질은 똑같다. 기존의 관계를 새롭게 꾸며 보고픈 것.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연애에의 열망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새로운 힘과 열정을 느낀다. 암울한 문화정치의 시기, 정치와 문화와 연애가 가장 왕성하게 상호작용을 하던 시기, 1920년대는 그런 시대였던 듯하다.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생각이 가로놓여 있다. 정치사적 감각만으로 역사를 보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역사를 다른 감각으로 보도록 한다. 물론 이 책만 보면 1920년대는 연애의 시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또 다른 일반화는 기존의 정치사적 감각을 교정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면 좋을 듯하다.


낯선 그림과 기사들을 중심으로 꿰어가는 1920년대의 시대상에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낯설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재미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연애의 사도들이 펼치는 사랑의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이 시대가 과연 그때만큼 살아 움직이는 시대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각종 정치사적 파란과 역풍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정치 올인’의 시대인 듯하다.


이 책을 읽기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문체가 낯설어 한 번에 문장 하나를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는 건데, 이 책의 문장이 신문 기사 속의 문장과는 다른 호흡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깔끔하게 읽히지 않는 문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저자의 개성이라고 보는 게 합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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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체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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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이라는 이름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띤다.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의 저자인 탁석산은 이미 책의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한국'을 문제삼고 있다. 언뜻 보면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자가 애호하는 토픽을 화두 삼아 민족주의, 국가주의 언설을 펼치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는 보수주의자는 아님이 확실하지만 민족주의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의 주체성>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 흔히 '우리'라는 대명사로 대변되는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견지해야할 입장, 그 입장에 따른 실천 방안을 전개하고 있다. 탁석산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가 아무리 개인의 주체성을 주장하더라도 이때 말하는 개인은 국가 속의 개인에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한 개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모색하고 구현하고 실천할 수 있겠지만 이때 그 개인은 엄연히 국가라는 정체성 안의 개인이고, 탁석산의 논의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의 주장이 대중의 주목을 끌게 된 데는 가중되는 세계화의 압력에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연관된다. 물론 이런 현상은 개인적인 수준이 아니라 국가적인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국가적 수준의 혼란은 세계화의 혼란을 한층 가중시킨다.

그는 지금까지의 한국사가 주체성 상실의 역사임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핵무장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상식있는 보통 사람이 들으면 놀랄 얘기이겠지만, 그의 주장이 호전론자나 냉전론자의 그것이 아닌, 주체성을 지닌 평화론자의 그것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물론 충분히 검증되고 규명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얻어야 할 억견(?)이지만, 현실을 감안할 때 그 가능성은 미약하지만 한번쯤 비틀어 생각해볼 문제일지도 모른다. 강대국의 핵은 평화요 약소국의 핵은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는 주장은 강대국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좀 더 실천적인 과제로 영어 공용어론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서의 한글 전용, 자유무역주의의 위험성을 논한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점, 환경 오염 문제에 있어서의 선진국의 무책임을 주장하는 환경오염론에서의 인식 전환 등을 주장하고 있다.

실천 과제로 제기한 이런 문제들은 최근 몇 년간 대중들 사이에서 초미의 문제로 부각된 것이거나 무반성적으로 수용된 논점들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세계화가 결코 공정한 게임룰을 지키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라 강대국, 선진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된 보호주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자의 현실 개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주장들은 논리성이나 현실 정합성의 측면에서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곰곰이 생각해야 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제기하는 주장이 기존의 논의에서 진척된 수준을 충분히 감싸 안지는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과 그에 따라 대화적인 패턴을 보이지 못하고 독백적 주장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독백적 주장은 센세이셔널한 효과를 노릴 수는 있겠지만, 철학자의 글이라면 치밀한 논증과 검토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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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왕의 저주
아가사 크리스티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프뢰벨(베틀북)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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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왕의 저주>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단편 3개를 묶어낸 작품집이다. 이 책은 성인용이 아닌 어린이용의 책으로, 글자체도 크고 간간이 삽화를 곁들여 어린이들이 읽기 편하게 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성인이라면 1시간이면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문득 어린 시절 읽던 추리 소설들이 생각난다.

지금부터 20여년 전 그 시절에는 추리소설이 대체로 어린이용 소설 전집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 지금처럼 예쁜 장정을 가진 것은 드물었고, 간혹 있었다 하더라도 흔하지는 않은 시절이었다. 흔히 말하는 똥종이에 글자체도 어린이가 보기에는 좀 작은 듯했고 삽화도 간혹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조잡한 삽화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 종류나 장정 등 여러 면에서 많이 좋아진 게 사실이다.

한국프뢰벨주식회사의 <이집트 왕의 저주>에는 이집트왕의 저주, 여자 요리사를 찾아라, 초콜릿 상자 3편이 실려있는데, 이집트왕의 저주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미신이 현실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를 초래한다는 교훈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여자 요리사를 찾아라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현상에도 의외로 엄청난 사실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처세술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초콜릿 상자는 자칫 자만이 오류와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책에 묶인 3편은 어린이 교육용으로는 훌륭한 제재를 담고 있는 교육서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현상을 이해하는 논리적 추론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이고 현대 사회는 이런 부류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어린이들에게 무작정 논리 교과서같은 책을 들이밀기보다는 이런 추리소설을 읽히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어린 시절은 그 어느 때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시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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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5
제프리 아처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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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라는 장르로 묶여 있는 소설들 중에서 의외로 추리소설에서 기대함직한 것들이 사라져 있지만 그 만큼의 허전함을 보상해주는 소설들이 있기 마련이다. 범죄와 탐정이라는 심각한 장치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가벼운 범죄와 유사 탐정이라는 가벼운 장치를 사용하는 작품들이 의외의 재미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제프리 아처의 <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라는 작품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아처의 자전적인 경험을 소재로 하여 경제 사기꾼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네 명의 남자가 계획하는 치밀한 범죄와 그 실연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하베이 메트카프가 어떻게 사기꾼이 되었고, 예의 그 네명의 남자가 어떻게 하베이 메트카프의 손아귀안에서 농락당했는지를 빠른 템포로 서술한 이후 다양한 직업과 이력을 가진 네 명의 남자가 하베이의 여름 휴가 동안 그에게 사기당한 돈을 되찾기위해 꾸미는 치밀한 계획과 그 실연에 대한 서술로 이어진다.

갖가지 헤프닝과 우연 속에서 좌충우돌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 결국 독자들의 예상대로 그 돈은 모조리 회수되지만 그것으로 네 명의 목적이 완전히 달성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들을 덮치면서 과연 그들의 계획 성공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미련과 여운을 남기며 작품은 결말을 맺는다.

이 작품이 갖는 매력이라면 그것은 복수의 플롯이 주는 보편적인 매력이다. 간악한 인간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은 정의라는 인간의 강한 도덕관념을 충족시켜준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도덕적 플롯을 바탕으로 기상천외한 복수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시켜 나감으로써 독자는 마치 그 과정에 참여한 한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작품을 읽어 가는 과정은 곧바로 간접적인 적 하베이의 복수에 동참하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매력은 자전적 경험에 기반한 작품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겠지만, 보통 독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제범죄의 진상을 이 작품이 자세히 묘사하고, 그 당시의 경제적 정황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심리적 플롯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비틀어 새로운 방향, 즉 심리적 측면이 거세된 경제적 플롯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품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반전의 묘미를 더한다.

이 작품을 쓴 제프리 아처의 작품은 지금까지 꽤 번역되었지만 대부분 절판된 상태이고 몇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의 작품을 요즘 구미에 맞는 장정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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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코담배케이스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9
존 딕슨 카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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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형식면에서 영화 <이창>을 생각나게 한다. 창문을 통해서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하는 주인공이 모종의 위기에 처한다는 발생이 바로 그 유사성인데, 다만 다른 점은 영화 <이창>의 주인공이 관음증과 비슷한 상태에 빠져 있는 반면,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의 주인공은 우연히 맞은 편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찰자가 모종의 위험에 빠진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저질러진 범인의 치밀한 계산을 정신분석학자인 의사의 추리를 통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추리는 단순히 탐정만의 몫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탐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는 장이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의사는 '암시의 힘'이 자신의 경험을 왜곡되게 추상하는 용의자 이브를 통해 현대인들의 경험과 지각 구조가 가지고 있는 오류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의 사건은 프랑스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영국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당연히 무대도 프랑스이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도 고롱서장이라는 프랑스 경찰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처럼 이 소설의 작가 딕슨 카는 프랑스인 고롱서장을 은근히 낮추어 서술하고 있음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건 영국의 자존심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추리소설이 그렇듯 처음 사건이 발생할 때 우리는 여러 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추리를 하게 마련인데, 그때 우리는 작가가 묘사한 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추리하게 마련이다. 그건 일종의 습관인데, 그 습관은 오류일 수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추리를 시작해보면 좋을 것같다. 이 소설은 사건을 해결한 박사와 혐의를 벗은 이브의 키스로 끝난다. 이 소설의 박사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그리 잘난 편이 못되는데, 그런 탓인지 상당히 소심한 인물이다. 그러나 결국 이브의 혐의를 풀어줌으로써 이브와 결합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소심한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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