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체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탁석산이라는 이름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띤다.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의 저자인 탁석산은 이미 책의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한국'을 문제삼고 있다. 언뜻 보면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자가 애호하는 토픽을 화두 삼아 민족주의, 국가주의 언설을 펼치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는 보수주의자는 아님이 확실하지만 민족주의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의 주체성>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 흔히 '우리'라는 대명사로 대변되는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견지해야할 입장, 그 입장에 따른 실천 방안을 전개하고 있다. 탁석산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가 아무리 개인의 주체성을 주장하더라도 이때 말하는 개인은 국가 속의 개인에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한 개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모색하고 구현하고 실천할 수 있겠지만 이때 그 개인은 엄연히 국가라는 정체성 안의 개인이고, 탁석산의 논의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의 주장이 대중의 주목을 끌게 된 데는 가중되는 세계화의 압력에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연관된다. 물론 이런 현상은 개인적인 수준이 아니라 국가적인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국가적 수준의 혼란은 세계화의 혼란을 한층 가중시킨다.

그는 지금까지의 한국사가 주체성 상실의 역사임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핵무장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상식있는 보통 사람이 들으면 놀랄 얘기이겠지만, 그의 주장이 호전론자나 냉전론자의 그것이 아닌, 주체성을 지닌 평화론자의 그것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물론 충분히 검증되고 규명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얻어야 할 억견(?)이지만, 현실을 감안할 때 그 가능성은 미약하지만 한번쯤 비틀어 생각해볼 문제일지도 모른다. 강대국의 핵은 평화요 약소국의 핵은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는 주장은 강대국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좀 더 실천적인 과제로 영어 공용어론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서의 한글 전용, 자유무역주의의 위험성을 논한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점, 환경 오염 문제에 있어서의 선진국의 무책임을 주장하는 환경오염론에서의 인식 전환 등을 주장하고 있다.

실천 과제로 제기한 이런 문제들은 최근 몇 년간 대중들 사이에서 초미의 문제로 부각된 것이거나 무반성적으로 수용된 논점들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세계화가 결코 공정한 게임룰을 지키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라 강대국, 선진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된 보호주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자의 현실 개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주장들은 논리성이나 현실 정합성의 측면에서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곰곰이 생각해야 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제기하는 주장이 기존의 논의에서 진척된 수준을 충분히 감싸 안지는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과 그에 따라 대화적인 패턴을 보이지 못하고 독백적 주장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독백적 주장은 센세이셔널한 효과를 노릴 수는 있겠지만, 철학자의 글이라면 치밀한 논증과 검토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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