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박공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2
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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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몰은 유령같이 창백한 얼굴로, 태연한 적의 면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이 그에게 피를 마시도록 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상쾌하고 맛좋은 천연 샘물이 나오는 매슈 몰의 오두막을 빼앗으려고 핀천 대령은 그를 마법사로 몰아 처형한다. 

목에 밧줄이 걸린 처형의 순간 몰이 남긴 저주다. 

이런 일화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배경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기대하게 만드는 첫장면이다. 

영혼이 편히 잠들지 않은 무덤 위에 핀천 대령은 몇세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 수 있도록 떡갈나무 재목으로 집을 짓는다. 

후손들을 위해 무덤위에 튼튼한 집을 짓다니. 

흥미진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무덤 위의 집과 후손들의 운명을 말이다. 


불위에 올린 생선을 어찌나 애정을 쏟아 꼼꼼하게 살피는지, 달리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마치 자신의 심장이 석쇠위에 올라 있어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때맞춰 뒤집는 일에 영원한 행복이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돈 없는 귀족은 귀족이 아니지. 

근대에 적응하지 못하여 쇠퇴한 할머니 헵지바와 귀족의 핏줄은 전혀 아닌듯한 가난하고  생기발랄한 소녀 피비 

전반적으로 좀 너무 장황하지만 고풍스러운 문체 

장식이 많아 읽기 거추장스럽지만 재밌는 문장이 많아서 나름 맛이 있다. 

구시대의 가치기준이 몸에 붙어 있는 완고한 노부인과 재기발랄한 아가씨, 익숙한 드라마의 설정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정신을 빼앗기 전에 특이한 자신의 냄새로 대기를 가득 채운다는 뱀과 아주 흡사했다. 

이런 문장도 재밌고.

자주 문장이 너무 장황한 점을 빼면 재밌게 볼 수 있다. 

겨울밤 따듯한 아랫목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의 느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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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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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과 먼지로 더러워진 낡아빠진 옷을 입고, 책과 수첩 따위를 보자기로 싸서 옆구리에 끼고, 발에는 나막신을 신고 도시락을 들고 있다. 많은 노동자가 사람 무리에서 느낄 만한 부끄러움 - 그런 생각을 가슴에 안고서 다카조카치에 있는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계보 맨 위에 있는 작품이다. 

도손 뿐 아니라 일본문학 잘 모르지만, 좋다. 

문장이 단정하고 조단조단 차분차분 안정감있는 문장으로 격한 감정이 요동치는 성찰을 보여준다. 

노동자가 사람 무리에서 느낄 만한 부끄러움, 이란 뭘까. 

노동자도 사람인데. 왜 부끄러워야 하는 걸까.  

일을 하느라 더러워진 낡아빠진 옷을 입고 나막신을 신고 도시락을 옆에끼고 퇴근하는 스물네살 

백정집안 출신을 숨기고 선생님이 된 청년 우시마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끄럽다. 


이런 예민함이 도손의 특징인지 일본 문학의 특징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프랑스문학의 감성은 권태이고 러시아문학의 감성은 광기이고 최근 보고 있는 미국문학의 감성은 우울과 두려움이던데. 

뭐가 이렇게 부끄러운 걸까. 굳이 도손의 백정이 아니라도 말이다. 

지식은 일종이 기갈이다. 

맞다. 다행히 독서는 일종의 쾌락이라.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길때가 있다. ^^


렌타로는 빈민, 노동자 혹은 신평민의 생활 상태를 연구하고, 사회의 밑바닥에 흐르는 맑은 물을 퍼낼 때까지 끝없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을 독자 앞에 내밀어 자세히 설명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싶으면 몇번이나 되풀이해서라도 독자의 가슴속에 심어놓으려 했다. 

백정출신 작가 렌타로를 우시마쓰는 선배라고 생각한다. 

도손은 렌타로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보다는 존경하는것 같아. 


나는 백정이다. 

그러나 그것을 떳떳이 말할 수 없는 이시마쓰는 부끄럽고 아프다. 

너무 예민하게 아플 뿐 아니라, 교활한 자들의 함정은 뻔히 보이고 

천천히 응원하며, 천천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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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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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며 가까운 나라 중국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더니만 

라쇼몬을 읽으며 일본 문학을 너무 몰랐구나!

게공선을 읽은 몇년전에도 일본을 더 읽어볼 생각은 못했는데 

라쇼몬을 읽으며 일본 근대문학들을 더 찾아 보기로 한다. 


야쿠타가와는 매력적이다. 이야기에 걸림이 없다. 

괴담과 현실, 환상과 논리가 절묘하게 어울리며 독특한 맛을 낸다. 

나쓰메 소세키를 읽으며 일본의 현대 추리소설들에서 보이는 말랑말랑한 담백함에도 전통이 있구나 했는데 

류노스케를 보니 일본 기담문학, 등골이 오싹한 호러들은 고대, 중세에서 훌쩍 현대로 넘어 온 것이 아니라 

근대의 작가들에 의해 튼튼하게 전통을 계승하며 현대에 도착하였음을 알겠다. 


무엇보다 소재의 쓰임에 경계없이 자유롭고 유연한 것이 좋다. 

마무리에 대한 강박없이 결말을 툭 내던지는 자신감도 좋고 

짧지만 잘써진 단편들의 강한 인상과 여운이 길게 남는 잔향도 좋다. 

좋으네. 류노스케, 더 읽어보고 싶어. 

라쇼몬, 코 이런 이야기 재미있는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생각을 했을까. 

로쟈쌤 강의를 놓친 것이 아깝다. 또 기회가 있으려나. 있길 바래. 


딱 보기에는 그저 키가 작고 뼈와 가죽만 남은, 심술궂어 보이는 노인네였습니다. 대신님의 저택에 올때는 곧잘 은은한 황색 가리기누와 모미에보시까지 갖춰 쓰고 있었지만 성품은 더 없이 천박하고, 왠지 노인답지 않게 입술만이 눈에 띄게 붉어서 더욱 기분 나쁘고, 꼭 짐승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이 그림붓을 빨다 보니 붉은 물이 든 것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글쎄 어떨지. 

기담은 요물과 영혼과 사람을 같은 시공간에 배치한다. 

괴상하고 이상한 이야기들인데, 그런 괴담을 저렇게 리얼하게 풀어서 보여준다.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다. 

야쿠타가와의 글을 읽으면 눈에 보이는 듯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쫓아가다가 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리얼한 서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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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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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본 일본산 추리소설 

1968년생 작가의 2006년작 

2006년이면 그리 오래된 작품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성혐고가 많아 불편하다. 

여섯명의 진술이 이어지고 각각의 진술끝에 여성화자가 오빠에게 어린시절 얘길 한다. 아동학대, 성폭력. 

범인의 독백으로 짐작이 되는데 논리적 인과없이 불쑥 너무 과해 불편하다. 토할것 같고. 

그냥 후루룩 읽었다. 미리 알았으면 안 읽었을 거야. 

사전 지식없이 도서관에서 들고 왔더니. 재미없다. 

여섯명의 증언을 읽으면 퍼즐처럼 큰 그림과 범인이 윤곽이 드러나는지 궁금해서 읽었는데 

그렇지 않다. 증언들이 지루하지는 않지만 

마지막에 범인의 고백으로 알게되는 방식. 그렇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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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잠든 숲 1 스토리콜렉터 5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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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 기다렸다. 티아누스 시리즈는 드물게 재밌는 독일작품.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근황이 궁금했어. 

이제는 엄청 유명해져서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온 후에도 갈때마다 없어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 


그새 넬레는 이혼도 하고 새로운 파트너도 만나고 심장판막 수술도 했구나. 

부디 여러 어려움을 견뎌낸 그녀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더 많은 작품을 내 주기를 욕심많게 바란다. 



2. 

이번 시리즈는 티아누스 시리즈에서 중요한 맥락이 있다. 

귀족출신의 반듯한 형사반장 보덴슈타인의 상처가 치유돼는 이야기 

살인사건의 흐름과 해결보다 보덴슈타인과 피아를 중심으로 주요인물들의 스토리가 더욱 재미있기도 한 티아누스 시리즈에서 

보덴슈타인은 착하고, 용감하고, 똑똑하고, 친절하고, 잘생긴 그럼에도 위화감은 없는 캐릭터인데 

이상하게 여성과 사랑은 잘 안돼고 자꾸 꼬여 왔었거든. 

그랬는데 여우가 잠든 숲에서 들추어진 과거의 상처를 카롤리네와 나누며 치유받는다. 

다행이야. 보덴슈타인도 좀 쉬어야지. 


그는 별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저기만의 작은 방을 열어주었다. 그 뒤에 찾아온 건 재앙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는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랫동안 억눌러온 비밀은 그가 밖으로 내놓는 순간 신비화의 껍질을 벗었고, 그 약점은 섬뜩한 위력을 잃었다. 

별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가슴속 가장 깊은곳 자기만의 방을 여는데 40년이 걸렸다. 

40년 묻어둔 상처가 한번의 개방으로 다 치유되지는 않지. 물론. 

그래도 이제 그 악령의 위력이 섬뜩하지는 않을 거야. 

처음 한번이 어렵더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보덴슈타인의 치유를 응원하며 읽었네. 


여우가 잠든 숲은 보덴슈타인의 유년이다. 

러시아에서 이민 온 친구와 어릴때 젖병물려 키운 여우를 잃어버린 숲 

보통 추리소설 시리즈에서 주인공 형사(탐정)의 개인사가 사건과 역이면 스토리의 리얼함이 떨어지고 재미없어지는데 

특히 스카페타 시리즈가 그랬지. 너무 자주 스카페타가 범인의 주목을 끌어 타겟이 되니까. 

보덴슈타인과 피아의 경우 워낙 여러 시리즈로 주인공들의 개인사가 차곡차곡 쌓여와서 

유년시절의 슬픈 사건이 현재까지 쫓아와 마을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도 리얼함이 떨어지지 않는다. 



3. 

"어이. 거기 나 좀 봐요! 거기가 수사반장이오?" 경찰관과 소방대장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듣지 못한 뚱뚱한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가와 두 사람 앞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양손을 허리에 척 올린 채 노골적인 불신의 시선으로 셈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외국인 아니오?"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선 외국인이죠." 셈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우리 가족은 터키 출신입니다." 

여우가 숲에서 잠들당시 유년이었던 아이들이 모두 커서 

경찰이되고 소방대장이 되고, 정욕점을 하고, 의사가되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주민에 대한 노골적인 경계와 혐오는 여전하고 터키출신 셈은 교양있고 세련되게 대답한다. 

그러다가 심지어 여자인 피아가 수사반장인걸 알고 

"여자가 수사반장이라고?" 그가 낚시꾼 회원들에게로 몸을 돌리더니 두 팔을 올렸다. "형사라고 외국인하고 여자가 왔어. 이게 말이 돼? 어째 요런 요상한 일이! 불쌍한 독일 같으니. 쯧쯧." 

요런 반응이다. 

넬레는 누가 독일이고,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인간다운지 질문한다. 


러시아에서 온 아르투어와 새끼여우 막시 살해사건을 대하는 40년전 독일 마을 사람들을 보여주며 

이주민을 대하는 독일 사람들에 대해 성찰한다. 

재밌다. 

우리도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성찰할 때가 되었다. 

한국말을 모국어로 쓰는 작가의 성찰을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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