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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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그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니그로> (미국초판, 1798)

니그로. 호모펠리니그라. 인간 종 가운데 한 변종을 일컫는 이름, 몸 전체가 검은색을 띠며, 열대 기후에서도 아프리카의 남북 회귀선 내의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된다. 흑인의 피부색은 저마다 색조가 다양하다. 그러나 니그로는 피부색은 말할것도 없고얼굴의 모든 특징에서 나머지 인간들과 크게 다르다...... 가장 악명높은 악덕들은 이 불행한 인종의 몫으로 보인다. 게으름, 배신, 복수심, 잔인한, 뻔뻔스러움, 도둑질, 거짓말, 불경스러움, 방탕함, 추잡함, 무절제 등등 이른바 자연법칙의 원리를 소멸시켰고, 양심의 꾸지람을 침묵시켰다고 일컬어지는 악덕들을 지니고 있다. 

추의 역사는 편견의 역사이고, 인간 어리석음의 역사이며 욕망의 역사이기도 하다. 

어리석음은 가끔 반전의 해학도 있고, 욕망은 가끔 아름답기도 하지만 편견이야말로 진정 추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백인 인텔리들을 위한 사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니그로의 악덕에 대한 저 저주스런 나열은 사실 모두 성서를 손에든 백인들에게 어울린다. 

백인들이 실은 자신들이 추하다는 걸 아는것 같아. 


사탄의 모습이 서서히 중화되는 동안, 적을 악마화하는 경향은 커져서 적이 사탄의 특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고대 이후로 적은 항상 타자, 외국인이었다. 적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규범에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의 식습관이 다르면 사람들은 그의 냄새를 싫어했다.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왔다가 온갖 혐오와 모욕을 경험해야 했던 난민들 생각이 나네. 


만약 흡혈귀가 송곳니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박쥐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하는 일이라고는 겁주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이경우는 그다지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가 흡혈귀하는 이심 -확신이 아니라- 이 들때에 불안감은  훨씬 커진다. 

추는 방대하다. 아름답지 않는것은 모두 추인 가봐. 

추의 역사는 무엇이 아름다운것인가에 대한 관념의 역사이기도 하다. 

공포도 추다. 그래서 죽음도 추함의 한 주제다. 

그러고보니 죽은자들의 세상, 혹은지옥에 대한 상상이 많기도 하다. 


사르트르의 시대에 오면 드디어 영원히 고문당하는 것이 아니라, 문이 닫혀 있고 항상 전등이 켜진 호텔방에서, 전에 한번도 서로 만난적 없는 세사람이 영원히 같이 지내야 하는것이 지옥이다. 

교도소의 조건과 비슷하다. 

"붉게 달군 포락은 전혀 필요 없군.  지옥이란 다름아닌 타인들이야."

현대의 지옥, 사르트르에게 동의한다. 



2.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이후부터 추의 역사를 서술하며 각각 페이지마다 그 특성에 대한 예의 작품들, 

문학과 그림, 조각 등등을 인용해 놓았다. 

시원한 도판, 두꺼운 책장, 원작의 작품들을 보여주기에 적합하게 편집되어 화려하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책을 읽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에코, 자신이다. 

근대, 계몽주의, 백과사전파의 후예 인가봐. 

고전부터 자본주의 현대까지 망라하는 방대한 독서력에 놀란다. 


박학다식한 에코는 평생을 자기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다산선생처럼 지식의 편력을 분류하고 총화하여 계보를 만드는것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흥미로웠던 작업이 나에게도 흥미로우니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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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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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과 글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화된 그림들이 따듯하다. 

모지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자서전이고, 그녀는 세상을 아름답게 회상한다. 

세려된 기교로 욕심내지 않고, 그러나 정성껏 자신의 지나온 삶을 예찬한다. 

그 긍정의 힘이 단정하다.

그녀의 그림이 재미있는건 과거의 어느때 풍경이든, 사람이든 넒은 공간을 조만하여 본다는 거다. 

모지스의 생가는 하늘과 숲과 길이 연결되어 푸른 나무와 꽃이 어울려있고 

소풍이나 퀼트모임처엄 사람이 나오는 장면 또한 전체를 조망하여 통으로 그린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행복하고 유쾌한 장면들이다. 

한사람을 그리는 법이 없고, 꽃이든 정물이든 한 대상을 그리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우리는 그때 행복했다고 그림이 말한다. 

밝고 화사하게 이런 그림을 그리고, 이런 자서전을 쓴 사람은 행복했겠다. 

그 행복이 독자에게도 전염될듯한 책이라, 좋다. 


어는 겨울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폐렴이었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마가렛, 내가 벽에 그림을 좀 그려보면 어떻까?"라고 물었어요. 어머니는 깔끔하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방 한구석에 지난봄 조지 호수에서 본 풍경을 그렸어요. 그 그림이 얼마나 예뻤는지 어머니는 좀 더 그려보라고 권했고, 아버지는 집안 벽 곳곳에 다양한 풍경을 그렸어요. 그 벽지를 오래도록 썼지요.

어릴적의 이런 경험은 평생을 풍요롭게 하지. 이집안이 원래 그림을 잘그리나봐.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할머니가 92세의 나이 1952년에 쓴 책이다.  

그녀는 평생 일을 한다. 

내나이 열둘에 밥벌이를 하려고, 소위 식모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열두살에 식모살이를 시작하여 15년 정도 가정부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버지니아에서 농장을 운영한다. 

열명의 아이를 낳고 끊임없이 일을 한다. 

손재주가 좋아 찜이나 버터를 만들면 상을 받았고, 내다 팔면 잘팔린다. 다 일이다. 

소박하고 밝고 환한 이야기



2. 

아직 산업화되기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편안한 그림들을 읽다가 문득 이상도 하지. 

그녀의 그림과 글에는 두차례의 세계대전도 남부 흑인에 대한 차별도 없다. 

일찍 죽은 아이들에 대한 애통함도, 사람은 언젠가는 죽으니까, 남편의 죽음도 고통이나 원망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살지? 

92세의 할머니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회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욕심내지 않고 물흐르듯이 운명을 받아들이며 작은 행복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았던 할머니구나, 싶지만 석연치않다. 


모지스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는 두번의 세계대전이 사람을 죽였고, 남부흑인들의 고통이 비참했으며

여성들은 선거권을 위해 투쟁했고, 그 유명한 헤이마킷의 총성으로 메이데이가 유래된 

끓고 있는 솥단지처럼 부글부글, 야만적인 자본의 탐욕에 고통이 증가하던 시대

미국 남부 모퉁이에 이 모든 일과 무관한듯이 행복하게 살았던 할머니가 실제로 있었다 한들 

마치 저시대 모든 미국인들이 저렇게 행복했던 것처럼 선전하면 곤란하다. 

저시대 행복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모지스할머니처럼 운명을 받아들일줄 몰라서 불행했던것으로 정리해도 곤란하다. 

부지런하고, 손재주있고, 영리하고, 낙관적인 그녀에게 감탄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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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누아르 2 : 창백한 범죄자 베를린 누아르 3부작 2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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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새벽 네시. 단잠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 게슈타포가 방문했다. 

나는 주의 깊게 옷을 골랐다. 내가 가진 옷중에 가장 싸구려인 저면 포레스트 정장을 입고 낡은 구두를 신었다. 주머니에는 담배를 쑤셔 넣었다. <베를린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 한부도 챙겼다. 하이드리히의 아침 식사 초대란 것은 불유쾌한 방문이라는 것과 경우에 따라서는 장시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오후 네시, 옛친구의 방문을 쓰듯이, 마치 일상을 쓰듯이 담담한 필체다. 

공포스런 게슈타포의 방문을 공포의 경악없이 쓰는 것이 뭘 의미하는 걸까. 거짓말 처럼 느껴진다. 


파트너 브루너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바로 죽여 버리네. 

맞다. 느와르의 탐정에게 외로움은 정체성인데, 한쌍이면 안어울린 다는 거지. 



2. 

그렇다고 해도 일번적으로 지포라고 불리는 보안 방첩부와 게슈타포의 차이는, 이두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차이를 보크부르스트 소시지와 프랑크푸르터 소시지의 차이 정도로 이해한다. 두 소시지는 각자 특정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모양도 맛도 정확히 똑같다. 

이런 유머를 첫시리즈 부터 줄곧 유지한다. 장점이다. 


공포의 황태자 하이드리히가 말한다. 

"어떤 미치광이가 베를린 거리를 배회하고 있소. 귄터씨."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걸 아시다니 놀랍군요." 내가 말핶다. 하이드리히가 성급하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돌격대원이 어떤 늙은 유대인을 두들겨 패는걸 말하는게 아니오. 살인자를 말하는 거지. 그놈은 몇달동안 네 명의 젊은 독일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소."

하이드리히와 이런식으로 말장난 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새벽네시 게슈타포의 방문을 담담하게 쓴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듯이 


게슈타포, SS보안방첩부의 지휘자 하이드리히, 홀로코스트 계획의 입안자. 

악명높은 다하우의 강제수용소가 그의 관할구역이었고, 히틀러의 후계자로 불리던 인물.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젖은 사형집행인'으로 불리던 사내 

1942년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땅스의 공격을 받고 입은 부상으로 사망 

인간의 상상으로 소설에서 만들 수 있는 어떤 가공의 인물보다 악마에 가까운 사람이 현실에 있다는 거다. 

소설과 별개로 하이드리히 이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걸까, 공금해 진다. 



3. 

귄터는 하이드리히의 제안으로 다시 경찰이 되었고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팀이 구성된다. 

그는 동료들에게 냉소적이고 혐오한다. 

그는 이시기 독일국민들에게도 냉소적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교활하고, 소녀들은 창녀같다. 

팀원중 유일한 여성인 정신의학박사는 브라우스가 터질듯이 가슴이 빵빵하고, 동료들은 뱀같이 사악하다.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하기 어려워 읽기 매우 불편한 소설이다. 


가슴이 패인 가운 위로는 풍만한 젖가슴이 분홍색 바다 괴물의 쌍둥이 혹처럼 드러나 보였다. 낡은 깃털 목도리처럼 랑게 부인의 몸을 휘감은 라벤더 향에 코를 찡그린 채 굳은살이 박힌 그녀의 뒤꿈치께에 묵묵히 서 있었다. 

인간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문장은 불편하다. 

필립커는 가학적인 경찰과 게슈타포, 동성애를  혐오하더니 여성혐오도 빠트리지 않는다. 

느와르에서 여성혐오는 필수항목인듯이 서술되는 이런 문장은 맘에 안들고 

근본적으로 독일인들을 혐오하는 소설을 영국사람이 쓴거다.

독일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좋아할 수가 없겠다. 

왜 이시기의 독일을 배경으로 쓴걸까. 굳이, 영국사람이. 


그런 내 번뇌와 상관없이 길고 뜨거운 1938년의 여름, 아리안 르네상스라는 이름 하에 짐승같은 일이 태연히 자행되었다.

체계적으로 가스실에서 사람을 죽여 태워버렸던 수용소를 운영하여 인종청소를 했던 

나찌들의 세상에 동조하고 침묵하며 살았던 독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씌어진 작품이 있기는 있다. 

그 유명한 책읽어주는 남자는 나찌의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침묵과 동조를 합리화해서 불쾌했었지. 

승전국 영국의 작가가 나찌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혐오하면서 쓰니, 이것도 불쾌하네. 

아직까지는 나찌에 저항했던 사람들, 피해자의 기록으로 만족해야 할 모양.


인간에 대한 신뢰를 찾기 어려운 문학은 읽기 어렵다. 

챈들러의 탈을 쓴 커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도 시리즈 마지막이라는 독일장속곡은 읽어볼 생각이다. 

낭만적인 느와르로 회귀하는지 끝까지 독일인 혐오를 밀고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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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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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미시 맥베스 순경 네번째 이야기 

M.C. 비턴은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다. 

이번 이야기는 여성에 대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선들이 불펀하네. 

이 정도로 거슬리지는 않았었는데. 


현모양처 트릭시는 독재자다. 

사람들에게 뭐가 좋은지, 뭘 먹어야 하고, 뭘 먹으면 안돼는지를 자기가 결정하고 강제한다. 

내가 뭘 먹을지 그녀가 판단하고 강요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게다가 그녀는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이기도 하다. 

공짜로 얻은 골동품들을 경매에 내다 팔아 큰 돈을 벌기도 한다. 

어느날 로흐두 마을에 나타나 아줌마들의 선봉에서 바른생활 마을의 리더처럼 구는 사기꾼이다. 


트릭시가 죽자, 그녀와 함께 마을에 감돌던 사악한 기운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악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로흐두 여자들도 때가 되면 그녀의 본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을 터였다. 

거참. 그녀가 죽자 갑자기 그녀가 악한이 아니라고, 시간이 더 지나면 그녀의 본모습을 알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왜 로흐두 여자들만 그녀의 본모습을 알아보지 못한것 처럼 말하는 걸까. 

트릭시에게 속은건 로흐두 남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면에서는 더 한걸. 

당황스럽다. 


해미시의 러브스토리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엄청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독하지 않아서 그냥 편안하게 중독성있는 시리즈다. 

조앤 플루크의 과자 살인사건 시리즈랑 많이 닮았다. 중독성의 면에서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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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박공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2
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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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몰은 유령같이 창백한 얼굴로, 태연한 적의 면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이 그에게 피를 마시도록 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상쾌하고 맛좋은 천연 샘물이 나오는 매슈 몰의 오두막을 빼앗으려고 핀천 대령은 그를 마법사로 몰아 처형한다. 

목에 밧줄이 걸린 처형의 순간 몰이 남긴 저주다. 

이런 일화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배경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기대하게 만드는 첫장면이다. 

영혼이 편히 잠들지 않은 무덤 위에 핀천 대령은 몇세대에 걸쳐 후손들이 살 수 있도록 떡갈나무 재목으로 집을 짓는다. 

후손들을 위해 무덤위에 튼튼한 집을 짓다니. 

흥미진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무덤 위의 집과 후손들의 운명을 말이다. 


불위에 올린 생선을 어찌나 애정을 쏟아 꼼꼼하게 살피는지, 달리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마치 자신의 심장이 석쇠위에 올라 있어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때맞춰 뒤집는 일에 영원한 행복이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돈 없는 귀족은 귀족이 아니지. 

근대에 적응하지 못하여 쇠퇴한 할머니 헵지바와 귀족의 핏줄은 전혀 아닌듯한 가난하고  생기발랄한 소녀 피비 

전반적으로 좀 너무 장황하지만 고풍스러운 문체 

장식이 많아 읽기 거추장스럽지만 재밌는 문장이 많아서 나름 맛이 있다. 

구시대의 가치기준이 몸에 붙어 있는 완고한 노부인과 재기발랄한 아가씨, 익숙한 드라마의 설정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정신을 빼앗기 전에 특이한 자신의 냄새로 대기를 가득 채운다는 뱀과 아주 흡사했다. 

이런 문장도 재밌고.

자주 문장이 너무 장황한 점을 빼면 재밌게 볼 수 있다. 

겨울밤 따듯한 아랫목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의 느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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