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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ㅣ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4월
평점 :
1.
오래간만에 러시아 소설을 읽으며 발음하기 어려운대다 애칭까지 훅 들어오는 이름들에 헷갈렸다.
표트르 안드레예비치
300명의 농노가 있는 영지를 소유한 귀족의 아들
이제 막 열일곱살이 되어 군대에 복무하러 간다.
뭐, 나라에서 부른게 아니라, 아버지가 친한 장교한테 편지써서 보내면, 그냥 장교가 된다.
하필이면 꿈에 부풀었던 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변방의 국경수비대
말이 요새지 통나무집이 몇 채 서있는 황야다.
사령관사에 도착할 즈음, 우리는 훈련장에서 기다란 변발에 세모꼴의 모자를 쓴 스무명 정도의 나이 든 상이군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정렬 자세로 서 있었다. 맨 앞에는 큰 키에 활력이 넘쳐 보이는 사령관이 중국식 실내복을 입고 취침용 모자를 쓰고 서 있었다.
중국식 실내복을 입은 저 활력넘치는 사령관 이반 쿠즈미치가 대위고 그의딸 마리아 이바노브나가 대위의 딸이다.
"......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마샤 일인데. 시집갈 나이가 됐어도 어디 지참금이 있어야 말이죠. 쓸만한 빗 하나에 목용용 솔, 달랑 3코페이카 뿐이니, (하느님 용소하소서!) 이걸로는 목용탕 밖에 더 다니겠수. 착한 사람을 찾게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샤는 노처녀로 늙어갈 수 밖에 없다우."
주인공은 안드레예비치인대, 왜 제목은 대위의 딸일까.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음, 빼어난 미인도 아님, 어리숙하고 순박하고 부지런하고 착하고 충성스럽고
이것이 러시아 지식인들이 러시아 인민들을 생각할때 바라는 이미지이다.
그래서 대위의 딸, 마샤다.
2.
푸르른 어머니 떡갈나무 숲이여. 술렁이지 마오.
상념에 젖은 이 사내대장부를 방해 마오.
내일이면 이 사내대장부 문초를 받으러 간다오.
무시무시한 판관이신 황제 폐하의 면전에
황제 폐하께서 이 몸에게 물으실 테지.
농부의 아들아, 고하라, 고하라.
누구와 함께 도적질을 하고 약탈을 일삼았느냐.
네 일당은 몇이더냐?
황제 폐하, 이 몸이 아뢰는 말씀은
전부다 사실이고 진실이옵니다.
첫번째 동지는 칠흑같은 밤이요,
두번째 동지는 강철 검이요,
세번째 동지를 들라면 나의 준마요,
네번째 동지는 팽팽한 활이요,
이 몸의 첩자는 날 선 화살이었사옵니다.
그러면 황제 폐하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농부의 아들아, 잘했도다.
도둑질도 잘 하였고 대답도 잘하였다!
짐은 보답으로 상을 내리겠노라.
들판 한가운데 높이 세운 나무집,
두 기둥 사이에 가로지른 대들보를.
교수형에 처해질 사람들이 다 같이 부른 이 교수대에 관한 민요가 내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켰던가를 말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의 흉악무도한 얼굴과 화음이 잘 맞아 듣기 좋은 목소리. 그렇지 않아도 애잔한 노랫말에 감정이 가득 실려 더 한층 구슬퍼진 노랫가락까지. 이 모두가 시와 같은 공포감을 일으키며 심신을 뒤흔들었다.
들어보고 싶다. 뱃사공의 노래라네.
러시아의 전제정치는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잔인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크고작은 농민들의 반란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러시아 민요들은 독특하게 아름답다.
반란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마련이고, 서사의 힘이 강한 러시아의 특성이 된다.
가혹한 학정에 시달린 인민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서사외 노래, 그리고 미술까지.
추운 나라 러시아의 아름다운 전통이 된다.
근대장편 소설의 효시이자 톨스토이의 역사소설 <전쟁과 평화>를 예고하는 소설이며, 이후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으로 이어지는 유장한 역사소설의 지류를 형성하는 근원지로 평가된다.
책 뒤에 옮긴이가 쓴 작품해설의 설명이다.
표도르 안드레이치의 성장소설이면서 그의 개인사와 푸가쵸프의 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얽히며 만난다.
역사의 흐름에 압도되지 않고 그리뇨프의 충직한 하인 사벨리치, 반란군 대장 푸가쵸프, 교활한 시바브린, 대위의 아내 바실리사 예고로브나 등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생동감있어 재밌다.
서사의 힘이 있는 이런 소설을 보면
카자크 병사를 그린 레핀의 호탕한 그림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저 애잔한 뱃사공의 노래, 노랫말도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대위의 딸은 낭만적인 소설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풍미한 당시 자본주의 선진국의 리얼리즘에 비하면 아직도 러시아는 전제정치 아래 낭만적이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후진국 러시아에서 가장 잔인한 학정에 못이겨 어쩔수 없이 혁명이 성공하는 것이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이현우선생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듣기로 했기 때문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러시아를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