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슬로 강력반 군나르 하겐 반장은 회전의자에 기대 앉아 리넨 슈트를 입은 남자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얼굴 깊이 팬 꿰맨 자국이 피처럼 시뻘겋고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던 때로부터 3년이 흘렀다. 옛 부하인 그는 이제 건강해 보였다. 절실하던 몇 킬로그램이 몸에 붙었고 어깨도 슈트에 꼭 맞았다. 슈트. 하겐은 살인사건 수사관이던 남자가 청바지의 부츠말고 다른 차림을 한 걸 본 이억이 없었다. 

해리 홀레가 돌아왔다. 오래 기다렸다. 

이번에는 자학하듯이 몸을 망치는 것을 극단으로 밀고가지 않길 바래. 

요는 자신의 히어로를 너무 괴롭힌다. 


"구스토 한센. 19세. 경찰 정보로는 마약 밀매자이자 상습 복용자. 7얼 12일 하우스민스 가의 한 아파트에서 시신으로 발견. 가슴에 총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사망."

3년만에 상관을 찾아와 대뜸 다시 형사가 되어 일하겠다고, 마치 어제 퇴근하고 오늘 출근한 사람 처럼,

이미 해결된 구스토 한센 사건을 담당하겠다고 말한다. 참으로 해리답다. 이번엔 뭐에 꽂힌거니. 

비에른 홀름, 베아테 뢴 반가워. 

저런, 올레그구나. 라켈의 아들, 그리고 해리의 아들. 

아. 해리 홀레 시리즈의 마지막은 아들, 이구나. 

사람들에게 아들은 아버지 보다 어려운 숙제 같아. 


스노우맨에서는 손가락을 잘랐고, 레오파드에서는 얼굴을 찢어 버리더니, 

이번에는 칼을 맞아 베인 목을 테이프로 감고 돌아다니며 

몸이 아프고 욱신거렸다. 박테리아로 된 염증의 짐승이 그 속에 갇혀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마이클 코넬리가 해리 보슈를 괴롭히더니 요 네스뵈는 더 해. 

하드보일드 작가들이 자기 히어로를 괴롭히는 것이 점점 더해지고 있다. 가학취미가 있나봐. 


마지막 해리 홀레. 

아쉽기도 하고, 너무 피곤하고 지쳐보여서 이제 그만하는게 맞다 싶기도 하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모양인데, 나는 좋다. 

성공한 시리즈 히어로의 작가들은 차마 시리즈를 끝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히어로를 죽이지도 못하는데, 아들이라니. 

나는 이 정도가 좋으네. 


해리 홀레 전작을 쌓아놓고 순서대로 읽어보고 싶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었으면 좋겠고, 방바닥에 누워 뒹굴며 즐겨보리라. 

안녕, 해리 홀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 9.10 


1989년 열여덟살 캐리가 기차를 타고 시카고로 간다. 

아메리카의 꿈, 산업화,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는 욕망의 기관차로 달려가는 시대. 


"그러니까 병이 나서 일자리를 잃었단 말이지요?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요?" 그가 물었다.

"찾아봐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 이 멋진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면 굶주린 개처럼 자기 뒤를 바싹 따라붙을 궁핍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필경 드라이저는 가난을 경험해 본 것이다. 

굶주린 개처럼 따라붙는 가난의 두려움을 아는 것을 보면.

훌륭한 작가들은 자기가 사는 시대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드라이저도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의 드라마. 오래된 환상, 솔깃한 욕망. 


시스터 캐리. 근대 보급형 욕망의 주인이다.   

그녀가 주급 4달러 50센트의 제화공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드루에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 같이 살다가, 더 좋은 옷을 입은 허스트우드로 갈아타고 

여배우가 되어 몰락한 허스트우드를 떠나며 남은 것은 다 가지라고 메모한장 남긴다. 

쿨하게 떠나는 그녀를 보며 시원했다. 

스탕달과 발자크가 발명한 사실주의 소설 속 욕망의 주인이 '그녀'라 좋더라. 

여자의 일생과 테스를 지나 목로주점까지. 답답한 자연주의 소설의 여주인공들에게 질리거든. 

이소설에서는 허스트우드가 그런 역할이라 다행이다. 


허스트우드는 뻔뻔하고 바보 같아. 뭐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다 있담.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보며 이런 생각 하니까 좋으네. 

재산이 모두 아내의 명의로 되어 있는데 (오호, 똑똑한 그의 아내다!) 결혼한 사실을 감추고 캐리와 연애를 한다. 

심지어 공금횡령이라니. 

그것이 우연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횡령하는 장면이 구구절절 지리멸렬하다. 

우연히 횡령한게 뭐 자랑인가. 우유부단한 바보일뿐. 


금박을 입힌 의자 위에서라면 누군들 슬픔을 마다하겠는가? 향수뿌린 태피스트리, 쿠션을 댄 가구들, 제복 입은 하인들에 둘러싸여 고통받기를 싫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러한 환경에서라면 슬픔조차도 매혹적인 법이다. 캐리는 그런 것을 원했다. 

나두, 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캐리의 욕망은 미국의 욕망이고 자본주의의 욕망이다. 2018년 한국의 욕망이다. 

욕망이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그래서 늘 허기지다. 

욕망이 없는 춘향전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새로운 욕망의 시스터를 보고 싶다. 

아직은 흔들의자에 앉아 고리오 영감을 본다. 시스터 캐리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브리 민중사
문익환 지음 / 정한책방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익환 목사의 구약성서 해설, 히브리 민중 해방의 역사 

애굽을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이 가나안 농민해방군과 힘을 모아 해방을 이루는 이야기 

해방군들이 건설한 국가의 왕도 농민들의 고통위에 부정과 부패를 쌓고 타락하니

다시한번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해방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이야기, 를 읽다보니 


문익환은 스스로 선지자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의 땅이 해방되지만 남과북으로 나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죽이고 

분단된지 40년이 되는 1990년 5월 그는 노예들의 신, 분노와 전쟁의 신 야훼를 부르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달라고 탄원한다. 


'히브리'가 천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은 고대 근동의 많은 기록에서 증명됩니다. 

천민의 역사란 해방의 역사, 투쟁의 역사일 수 밖에 없다. 

노예로 만족하여 계속 그렇게 살길 바라는 자라면 어떤 비천을 기록하여 남기려 하겠는가. 

천민의 탄원을 듣는 신이 정의롭다면 계속 노예로 살라고 말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등껍질을 벗기고 호의호식하는 압제자들에게 분노하고, 

싸워 이기는 정의를 약속하니 노예들의 신이고 정의의 신이다. 야훼는 그런 신이다. 


문익환은 스스로 선지자가 되어 야훼에게 통일조국을 탄원한다. 

21세기 한반도에서 압제에 시달리는 노동자농민이 주체가 된 해방전쟁을 위해

스스로 선지자가 되는 삶이란 엄중하다. 

실천하는 선지자의 모습을 삶으로 확인시켜준 목사의 성찰이라, 그 영혼의 소리에 울림이 깊다. 


어쩌면 스스로 히브리인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몇년전 교육부장관이 개돼지와 같다고 알려주었고, 한진일가를 비롯해 재벌들의 갑질 쇼를 보면

아, 저들은 우리를 존중해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분명 아는것 같다. 

우리가 히브리라는 것을. 


선지자 문익환의 히브리 해방노래를 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살인자의 선택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7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8년 09월 05일에 저장
절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8년 09월 05일에 저장

죽음의 수용소에서 (보급판, 반양장)-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17년 12월
8,800원 → 7,92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18년 09월 05일에 저장
품절

여우가 잠든 숲 1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8년 09월 05일에 저장



1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참혹한 한국 현대사의 횡포 속에 서승, 서준식 두형을 감옥에 두고 일본에서 고통받았던 서경식이 스스로

1990년대 이후로는 점점 불만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하니 다행이다.

젊은날 겪어야 했던 야만적인 독제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정직한 성찰로 남아 그에게 힘이 된다.

부디 그가,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2.

어렸을때 페스트로 가족을 모두 잃은 21살의 카라바조가 도착한 로마 1592년

가장 빈번하게 펼처진 오락은 공개처형이었다. 부모들은 그 광경을 보여주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다. 때로는 이단자가 남색에 빠진자와 마찬가지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카라바조는 산탄젤로 다리와 도시의 성문 위에서 참수당해 썩어가는 머리를 수도 없이 보았음이 틀림없다.

데즈먼드 수어드의 당시 로마에 대한 설명이다.

기근이 없을 때조차 길 위에는 수많은 걸인과 고아들이 굶주린 배를 안고 앉아 뒹굴었다. 수많은 매춘부들이 퍼트린 성병도 유행했으며 도로에는 사람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프레모 레비와 함께 카라바조를 보러 로마에 왔다고 서경식은 말한다.

원래 전설 속 메두사는 여성이지만 여기에 그려진 대상은 소년이다.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목을 내려친 순간 자기의 표정을 어떻게 자신의 눈을 통해 보고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물며 눈을 맞추면 돌이 되어버린다는 그런 대상을 무엇보다 이렇게 무섭고도 처참한 자화상을 그리고자 했던 자는 대체 어떤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카라바조의 메두사

목이잘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경악하는 표정의 메두사 얼굴이 자화상이라니.

 

카라바조는 전 생애에 걸쳐 약 열두점에 이르는 목이 잘린 사람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그렸다. 참수에 매혹된 화가라고 해도 좋겠다. 나폴리에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에 등장하는 골리앗은 자화상이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을 철저히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화상을 그릴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자아'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이점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얼마나 혹독하며 무참한가......

고통스런 영혼이 보이는것 같은 그림들, 에 서경식은 공명한다.

 

두형을 파렴치한 조국의 감옥에 두고 서양미술순례를 했던 서경식

짓눌린 현실에 틈을 내 숨을 쉬려고 떠난 여행이지만 고통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 고행의 순례처럼 보였다.

그를통해 처음 오토 딕스의 그림을 보았어. 그 선명한 정직함에 놀랐지.

 

 

2.

카라바조로 시작한 이탈리아 인문기행이 반파시스트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흔척을 쫒어 막바지에 이른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히눈.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반파시스트 활동가

나는 이런 이력이 부럽다. 반파시스트 활동을 하는 사업가라니.

반파시스트는 고사하고 반인권적인 대한항공 조씨 일가가 떠오를뿐. 천박한 것들.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사형수의 편지를 소개해준다.

스무살의 기계공이었던 아르마도 암프리노는 "산악지대에서 길고도 고생스러운 생활 끝에 이렇게 죽어야 하다니......이제 곧 성체를 나누어 줄 형무소의 담당 신부님의 입회 아래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나중에 신부님 계신 곳에 가면 내가 묻힌 장소를 가르쳐주실 겁니다."라고 남겼다.

예순한 살의 재봉사 주세페 안셀미는 세상에 남게 될 가족에게 이렇게 썼다. "오늘밤, 처형된다고 들었다...... 잘 들어라. 나는 죄가 없어. 단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 꾸민 덫에 희생된 것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너희들은 지금보다 더욱 가슴을 펴고 떳떳이 살아야만 하는거야."

가구를 만드는 마흔한 살의 장인 피에트로 베니데티는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공부와 노동을 사랑하거라. 정직한 삶이야말로 그 어떠 것보다 훌륭하며 인생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란다......인간에 대한 사랑을 삶의 신조로 삼고서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의 소망과 고통에 항상 마음을 쓰거라. 자유를 사랑하고 이 보물을 위해서는 부단한 희생을, 때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만 한다는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예의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어머니 조국을 사랑하거라. 하지만 진정한 조국은 세계라는 점, 세상 어디에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바로 너희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정치범의 사형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해주고 그것을 남겨 나중에 책으로 묶을 수 있다니.

박정희의 사형수들은 그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노예들 까지.

나는 변함없이 비관적이지만 그 비관의 성질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나 자신이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있고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느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거치고 이토록 수많은 잔혹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관한다.

환갑을 넘은나이, 이제 불만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서경식은 여전히 고통과 상처에 예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것에 게으르지 않다.

그에게 성찰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천천히 걸어가는 나이든 현자의 지혜를 보는 느낌이다.

 

서양미술순례와 고통의 원근법을 다시한번 보고 싶어졌다.

나도 이제 마흔일곱이고 불만없는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

 

밝고 친절하지만 신랄한 사회비평가였고 누이나 선생님처럼 나를 대해줬던 리타, 귀족 공산주의자 베를링구에르가 체현했던 유로코뮤니즘을 향한 기대,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을 바보같은 농담으로 숨시고자 했던 젊은 시절의 나...... 모두 멀리 사라져버렸다. 인생은 이다지도 속절없이 지나가버린다.

부디 그의 노년이 편안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