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청소를 안 하고 컴퓨터 앞에 섰다. (포스용 컴퓨터라 앉아서 하면 목과 어깨가 아프고 서서 하면 시선이 적당한데 다리와 허리가 아프다.
젠장, 뭐 하나 쉽고 간단한 게 없다.) 일요일 장사를 위하여 정직원 외에 파출부를 불렀더니 청소를 도와주지 않아도 되어 메일도
검사하고 겸사겸사(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인터넷 시작한 김에 알라딘 들어오는, ㅋㅋ) 서재에도 들어왔다. 반가운 댓글도 달려 있고 아침 일찍 보내준 남편의 문자도 받고 해서 그런가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데도 기분이 좋구나.
오늘 아침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빗속을 터벅터벅 걸어왔다. 내가 들으며 온 노래는 비틀즈의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곡인데 내
얘기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어 그런가 완전히 몰입되더라는…. ( ") 더구나 오늘 같은 날씨에 딱 맞더라는. 첫 번째 들었던
노래는 "The Fool On The Hill"
그 다음에 기억나는 곡은 "Misery"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제목에서 장발쟝이 생각나면서 역시 공감 팍팍!! 비틀즈의 곡들을 들으면 가사가 가끔 절묘하게 나의 상태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놀랍다.
어젯밤 [레미제라블]2권
을 여전히!!! 읽고 있다가 <쁘띠-삑쀠스 수녀원>편에서 마르띤 베르가의 에스빠냐식의 혹독한 계율 이야기 편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지금의 내 생활과 예전 사춘기 소녀 시절 수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강제적으로(ㅋ,,이 사연은 비밀) 하게 되었을 때의 내 유치했던 사유가 함께 떠오르면서,,
지금도 혹독한 계율을 지키고 있는 수도원이나 수녀원이 있겠지만, 그 계율이라는 것의 대략적인 설명을 읽기만 해도 끔찍한 느낌에 전율하게 된다. 물론 그런 계율을 지키는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런 생활을 선택할까???아님 불가피한 결정이었을까? 어쨌든 책에서 1825년에서 1830년 사이에 3명이나 미쳤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상상이 된다. 그곳에 있던 수녀들의 모습이 '창백하고 엄숙할 뿐'(p. 269)이라고 하는 표현이 서늘하면서도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교단의 수녀들처럼 일주일 아니, 단 하루만 살아도 미쳐버릴지 모른다. 위고가 표현한 그녀들의 계율을 잠깐 살펴보면,
그 교단의 베르나르-베네딕투스 수녀들은 일 년 내내 고기없는 식사를 하고, 사순절 기간 및 기타 자기들이 정한 날에 금식을 한다. 첫잠이 든 직후에, 즉 세벽 한 시와 세 시 사이에 다시 일어나, 성무일과 서를 읽고 새벽 기도를 드린다.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나 지푸라기 위에 거친 모직물을 깔고 자며, 목욕을 하지 않고, 난방용 불을 피우지 않는다. 매주 금요일마다 스스로에게 고행의 째찍을 가한다. 침묵의 규율을 엄수하여, 휴식 시간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거너네지 않는데, 휴식 시간은 매우 짧다. 또한 성십자가 찬양 축일인 9월 14일부터 부활절까지 육 개월 동안, 거친 갈색 모직으로 지은 속옷을 입는다. 원래 규정은 일년 내내 입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을 육개월로 완화한 것이다. 그 모직물 내의는, 특히 하절기의 열기 속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으로, 피부에 신열과 경련을 일으키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의 사용 기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규율을 완화하여 9월 14일부터 입도록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들은 사나흘씩 신열에 시달린다. 순종과 가난과 순결과 칩거 의무의 이행, 그것들이 규율에 의해 깊숙이 각인된 그녀들의 서원이다. p.263
빨간색으로 표시한 글들은 특히나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잠을 늦게까지 안 잘 수는 있지만, 자다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인간인지라,,,,,또한 추위도 엄청나게 타는데 난방까지 안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을까???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라고들 하는데
서원을 위해 더 강력한 수행을 해야 할까? 독신으로 살면서 면벽 수행과 같은 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가족과 함께 맞춰 살아가는 것도 스님이나 다른 종교인들 못지않은 수행이라는 생각을 힘들 때마다 가끔 했었다. 참
수행이 뭔지 모르지만 나 같은 일반사람의 생활도 수행이라는….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아침부터 장사 할 생각은 안 하고 멜랑꼴리 해져서 상념에 잠겨본다. 지난주부터 우리 식당 근처의 직원들을
위해서 (오늘의 메뉴)라는 것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있다. 오늘의 메뉴는 우리 식당의 고정 메뉴 이외에 찬모님과 함께 결정해서 매일
다른 메뉴를 선보이는데 어제는 부대찌개를 했고 오늘은 매운 돼지갈비찜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반응이 좋다는 의미는 우리
식당 형편에 비추어 좋다는;;;) 나는 주인 입장으로 오늘의 메뉴를 해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에서 기쁜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데 매일 메뉴를 짜야 하는 찬모님 입장에서는 하나의 수행처럼 느껴지시냐보다. 하긴 살림을 하기 싫은 이유 중
하나가 매일 가족들 뭘 먹일까 하는 것도 큰 골칫거리라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늘 오신 단골 중 한 커플은(그분들은 연세가
많으시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한 분이라는 것도 살짝 밝혀둔다.) 오늘도 오늘의 메뉴를 드시러 오시면서 "앞으로 우리 집에
쌀을 안 살 테니 사장님이 책임져야 해."라시며 귀엽게 말씀하셨다. 딴 얘기지만 어떤 관계에서든 친근감은 정말 중요하다. 음식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가 어느 정도 깊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음식장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음식으로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요일 밤 장사도 무섭지만, 수행이라 생각하니 그까이것은 마르띤 베르가의 에스빠냐식의 혹독한 계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아니다. 어떤 고행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 해야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그나마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