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콜롬비아 몬테 블랑코 퍼플 카투라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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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을 열자마자 후르츠(?) 향이 너무 강해서 깜짝 놀랐지만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훌륭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조 날짜도 최신이라 그런지 좀 더 신선해서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도 진하게 먹는 편이라 레시피대로 내려 마셨는데 괜찮았다. 앞으로 드립백도 이 정도로 농도감 있게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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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혼돈 -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
티모시 브룩 지음, 이정.강인황 옮김 / 이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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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역사를 지나 명나라 역사를 읽으려고 자료를 찾는데 과거에 나온 책들 중 읽을 만한 책은 모두 품절되고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었다. 명나라와의 외교적 사례는 오히려 조선에서 더 사례를 구하기 쉬울 정도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 책도 과거에 보관함에 담아두기는 했지만 이미 품절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이라 방도를 찾아야 했다. 지역 도서관에도 없어서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해 무려 열흘 만에 어렵게 책을 받았다. 이 때문에 책바다라는 서비스도 처음 이용해봤다. 


이 책은 정치사가 아니라 경제사와 문화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명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활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과거의 자료에서 끌고 온 몇 명의 길잡이들을 이용하여 사례를 살펴보고 저자가 의견을 종합하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읽기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중심 인물은 장타오다. 그는 (상인들의 활동이 많은) 현의 지현을 지내면서 현지를 편찬했는데 점차 상업이 유행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전기->중기->후기->말기 갈수록 상업이 자리를 잡는 후반부로 갈수록 암울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만족했다.

살 집이 있고, 경작할 땅이 있었으며, 땔감을 마련할 수 있는 산이 있었고,

김을 맬 채소밭도 있었다. 과세에는 혼란이 없었고 도적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적당한 때에 혼인을 하고 여염집은 편안했다.

여자는 실을 잣거나 베를 짜고 남자는 곡식을 재배했다.

노복은 기꺼이 열심히 일하고 이웃은 서로 친하고 화목했다.


장사꾼이 이미 많아지고 전토는 중시되지 않아서

자산을 가지고 다투거늘 흥망은 예측할 수 없다.

유능한 자는 바야흐로 성공하고 머리가 둔한 자는 곧 파멸한다.

동쪽 집은 이미 부유한데 서쪽 집은 저절로 가난해졌다.

힘 있는 자와 하층민 사이의 균형이 깨져버렸으니

사소한 것을 두고도 서로 다툰다.

모두들 서로에게 빼앗으며 저마다 자기만 키운다.


상업으로 부를 이룬 사람이 많아지고

농사를 지어서 부를 얻는 사람은 드물어졌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졌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졌다.

흥한 자는 홀로 위세를 부리고 몰락한 자는 두려워 물러선다.

재물이 나는 곳엔 따르는 무리가 있지만

생업과 살림살이는 일정치 못하다.

교역은 부산하고 티끌만한 이익도 그러모았다.

간악한 세력가가 변란을 일으키고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자가 사람들을 침탈한다.

순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부자는 백에 하나, 빈자는 열에 아홉이다.

빈자들이 부자에게 맞서지 못하니 소수가 도리어 다수를 제압한다.

금령은 하늘을 맡고 전신은 땅에 우뚝 섰다.

탐욕은 한이 없어 골육이 상잔하나 저 혼자 쓰고 누려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과의 거래에서는 터럭 한올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귀역이 도사리고 있다.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고 땅은 황폐해져 있었다. 홍무제는 황폐해진 땅을 원상 복구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며 제국을 통합하는데 치중했다. 명은 가구와 인구를 등록하도록 (이갑제) 하여 효과적인 세금 징수와 요역, 군역 등에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황제의 이상은 안정된 농경사회였다. 국가는 최소한의 세금을 받아 기본적인 역할만 했다. 농민들은 촌락에 묶여 있고 공장(工匠)들은 국가에 소속되어 일했고, 상인들은 부족한 필수품만을 거래해야 했으며 군인들은 변경에서국가를 방어했다. 행정은 아주 소수의 교육받은 계급에 맡겨졌고 이들은 스스로를 엄격하게 성찰하는 도덕군자들이었다. 홍무제의 목표는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백성은 일단한 곳에 정착하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또한 왕조의 핵심법률을 모아 편찬한 『대명률』(大明律)에서는 신체적 이동뿐 아니라 사회적 이동도 제한하고 있다. 공장(工匠)의 아들은 공장이 되어야 했고, 군인의 아들은 군인이 되어야 했다. 직업을 바꾼 자에 대한 벌은 물리적 장벽을 넘어선 자에 대한 벌만큼이나 가혹했다. - P39~40


영락제는 홍무제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고 상업 부흥지로 떠오른 쑤저우가 대운하 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물류의 중심지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물품 거래도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은납제로 바뀌고 있었지만 정부도 과세를 은납으로 대체하면서 은의 수요가 점차 늘어났다. 

끊임없는 세수 확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명조는 몇 가지 과세를 은납으로 대체했다. 그 일부가 베이징으로 보내졌고 그 비율은 점점 커졌다. 은납의 시작은 금화은이 부과된 1436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명 중기의 요역 개혁도 다른 대체제도를 필요로 했다. ‘지방별 조달‘(坐辦)이 ‘연례 징수‘(歲辦)로 대체되었다. 이는 수도에 물품을 제공하는 지현은 그 비용을 자체 예산으로 부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은을 중앙정부에 보내는 것이었다. 지방의 역전(驛傳)에서 필요로 하는 의무적인 복무는 점차 사라지고 대신 ‘역은‘(驛銀)을 납부하는 일이 많아졌다. 1490년에 시작된 이런 현상은 1507년에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개혁과 그 밖의 개혁들이 국가 세수를 점차 현금위주로 바꿔나갔다. 16세기 말에는 실제로 이갑제를 통해 징발되던 모든 요역이 일조편법에 따라 토지에 대한 부가세로 과세되어 은납으로 대체되었다. - P125


콜럼버스의 항해 후 경쟁이 붙은 서양의 제국들은 저마다 앞다투듯 개척을 위해 길을 떠났다. 16세기 초 중국에 포르투갈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중국은 정화를 보내 해외 원정을 떠나게 한다. 

1513년 포르투갈인들은 라파엘 페레스트렐로가 지휘하는 한 척의 선박을 타고 말라카를 떠나 중국 남부에 처음 당도했다. 두 번째 대규모 원정은 1517년 광저우(廣州)에서 무역을 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포르투갈 왕이 통상관계를 맺기 위해 중국 황제에게 파견한 사절단이 동행했다. 이 외교적 접근은 실패했고, 임무를 맡은 포르투갈인들은 고초를 겪다가 결국 옥사했다. 하지만 은밀한 거래는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주었고 유럽의 배들이 중국 연안에 더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 중국과 포르투갈의 계절무역이 1549년에 이르러 정기적으로 이루어졌고 무역상들은 마카오 반도의 남서쪽 상촨(上川, 포르투갈인은 상주앙이라 불렀음) 섬에서 접촉했다. 포르투갈인은 그곳에서 마카오로 진출하여 1557년에 합법적인 조약항을 설치했다. 이 조약항은 아주 작았지만, 유럽과 중국 사이의 무역이 장기간 이어지게 한 최초의 발판이 되었다. - P168


자본주의는 특정한 사회 구조와 시장 경제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유럽 자본주의의 진화는 유럽 역사에서만 보이는 유일한 것이다. 사회구조가 다를 경우에는 경제의 발전과정 역시 다르게 이루어진다. 이 부분에서 근세 유럽과 명대 중국사에 대한 해석은 갈라져야 한다. 엘리트 형성의 맥락이 서로 다르고 국가 권력의 영향도 다르다. 명대 후기의 중국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말이 중국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다른 어떤 경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경제는 국가의 통신망을 이용하여 지역간 경제를 연결시킨 확대된 시장경제로서, 일부 지역에서는 농촌과 도시의 노동을 연속적인 생산과정으로 조직했다. 하지만 농촌가구가 그대로 기본 생산단위로 유지되었으며 생산과 소비의 완전한 분리는 일어나지 않은 채 소비패턴을 재편했다. 경제의 변화는 더뎠지만 확실하게 신사층 내부에 침투하여 상업에 대한 유교적 경멸을 불식시켰다. 이런 신사층의 변화는 엘리트의 이익이 청대에도 온존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유럽적 의미에서의 자본주의는 아니다. - P263


16세기 후반이 되면 물건을 팔아 돈을 번 부유한 상인과 기존의 지식인층 간에 거리가 무척 가까워진다. 그러나 상인은 지식인들의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했다. 반대로 지식인은 사-농-공-상 중 가장 낮은 대우를 받는 상인을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시대는 변했고 신사층은 시대와 함께 변하는 것을 배웠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위축감을 느끼지 않고 이익을 도모할 줄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질서의 주인임을 확신했고 심지어 만주에서 온 새 주인에 저항하면서조차 하나의 사회계급으로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 P330


하지만 유교적 질서에 기반한 계급 사회는 명이 무너질 때까지도 존재했다. 상업은 명을 역동적인 사회로 만들어냈지만 구조적 위계는 단단했다. 1642년 만주족이 산둥성에 들어오고 1644년 만주족이 청나라를 건국하게 되지만 명 말의 상업에 기반한 사회 구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명대는 가뭄, 메뚜기 공격 등 기후 위기와 재난이 특히 많았다. 1538년부터 10년 간 가혹한 기근이 발생하는 등 수 차례의 가뭄이 발생했다. 이런 재난도 농업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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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the World Vol. 2: History for the Classical Child: The Middle Ages: From the Fall of Rome to the Rise of the Renaissance (Paperback, Revised Edition) The Story of the World 18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 Peace Hill Pr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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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를 타고 나르며 로마의 끝에서 시작한 여행은 16세기 영국과 스페인의 해전으로 끝이 났다. 거의 10년 만에 재독한 책은 역시 초독처럼 느껴졌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을 만나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 중 엘리자베스 여왕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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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25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 화가 님의 성실한 독서에 깊은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4-02-26 08: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미미 2024-02-25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2-26 08:50   좋아요 1 | URL
미미님 덕분입니다. 함께 읽으니 그나마도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ㅎ

독서괭 2024-02-26 0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거리의화가 2024-02-26 08:51   좋아요 2 | URL
괭님 감사합니다. 남은 분량 읽기 화이팅이에요!^^
 
[eBook]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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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까지 읽는 게 괴로워서 그만둘까 하다가 참아내고 끝내 읽었다. 욕망을 드러내는 인간들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면을 쓴 위선자는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었다. 자본과 탐욕에 노예가 되는 일은 너무나 쉽고 편견에 맞서는 일은 어려운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연민과 희망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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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2-25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너무 궁금해서 샀는데 거리의화가 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중반까지 읽는 게 괴롭다 하시니, 아 저도 읽기가 망설여지네요. 저도 괴로워할 것 같아서요 ㅠ

거리의화가 2024-02-26 08:43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책에 취약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어요. 그래도 뒷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발터 벤야민 선집 5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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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정독한다고 해서 이 책의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없겠다 여겨서 훓어 읽었다.


여기에 속한 저작들은 20세기 초 쓰여졌지만 20세기는 19세기 근대의 산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안다면 내용의 바탕이 왜 19세기의 구성물로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방송을 통해서 종종 접했던 19세기 파리의 모습은 낯선 용어들을 제외하면 사례들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계의 확산, 유리 천장과 철골 구조의 건축물, 파노라마, 사진의 출현(순수 미술의 공포), 박람회와 백화점, 거리의 산책자들 등. <19세기의 수도 파리>는 독일어판과 프랑스어판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나중에 쓰여진 프랑스어판이 정리된 성격이 강했다. 


사적 개인에게 처음으로 거주 공간이 작업장과 대립된 위치에 서게 된다. 거주 공간은 실내(Interior)에서 형성된다. 사무실은 그 실내의 보충물이 된다. 사무실에서 현실의 일들을 처리하는 사적 개인은 실내에서 자신의 환상들을 즐길 수 있기를 요구한다. - P199


신상품들을 파는 상점들에 발맞추어 신문들이 등장한다. 언론은 정신적 가치들의 시장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이 시장은 우선 호황을 누린다. 비타협주의자들은 예술을 시장에 내다 파는 데 저항한다. 그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art pour l‘art)의 기치 아래 모여든다. 이 구호에서 종합예술작품(das Gesamtkunstwerk)이라는 구상이 생겨난다. 종합예술작품은 기술의 발전에 맞서 예술을 밀폐시키고자한다. 종합예술작품을 기념하는 예식은 상품을 미화하는 기분 전환과 짝을 이룬다. 둘 다 인간의 사회적 현존을 사상(象)해버린다. - P206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했던 이유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18가지 항목을 정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전부 읽어보니 어려운 글들 중 하나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였다. 도대체 그 글만 몇 번을 읽었는지... 그런데도 완전한 이해에 이른 것 같지는 않아서 찝찝하지만 더 읽는다고 뭐가 나오나 싶어 접었다. 사전 지식이 그만큼 부족했다 여길 수밖에 없었다. 


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의 서사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그에게 어떤 구성의 대상이 되는데, 그 구성의 장소를 이루는 것은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삶 그리고 특정한 작품이다. 그는 그 시대를 사물화된 ‘역사적 연속성을 폭파하여 거기에서 끄집어낸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그는 한 시대에서 한 특정한 삶을, 필생의 업적에서 한 특정한 작품을 캐낸다. 이러한 구성에서 얻어지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어있다는 점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에 대한 영원한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때그때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시한다. - P261


3.살았던 순간들 하나하나가 최후의 심판일이 될 날의 의사 일정에 인용 대상이 될 것이다. - P332

5.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붙잡을 수 있다. - P333

7.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승리를 거둔 사람은 오늘날 바닥에 누워 있는 자들을 짓밟고 가는 지배자들의 개선 행렬에 함께 동참하는 셈이다. - P336

13.역사에서의 인류의 진보라는 생각은 역사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관통하여 진행해나간다는 생각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진행에 대한 비판이 진보에 대한 생각 일반에 대한 비판의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 - P344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앞선 글인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벤야민은 역사적 연속성을 비판하였고 순간을 포착하는, 정지하는 이미지로서의 개념을 대체재로 꺼내 들었다. 역사는 과거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진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님만 잡고 간다.


벤야민의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앞 뒤 문맥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 'A->B->C' 인과적 흐름에 의한 글들에 익숙해서 그의 글이 낯설 수 있겠다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소설을 읽을 때도 시점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 잘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꿈 키치>와 <초현실주의>는 어떻게 보면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해당 내용은 '초현실주의'라는 내용을 사전에 검색을 해보고 읽었다. 그랬더니 훨씬 나았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진 문예 예술사조 중 하나로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꿈을 해석한 프로이트와 연관이 있다 볼 수 있는데 당시를 생각해보면 국가라는 개념이 중요해지고 제국주의를 넘어선 군국주의, 전쟁이 엄습하던 시기다. 각종 신유물이 쏟아져 나올 때 민중은 어디로 갈 지 몰라 헤매고 혼란 속에 붕 뜨는 존재가 되었던 게 아닐까. 


"초현실주의는 그 본질적인 진실의 측면에서 대화를 재건한다는 사명을 갖고 나왔다. 파트너들은 예의범절의 강박에서 해방되었다. 말하는 자는 어떤 명제도 연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원칙상 말한 사람의자기애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과 이미지들은 듣는 자의 정신에게는 디딤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 P137


폭력에 대한 비판은 폭력의 역사에 대한 철학이다. 역사의 ‘철학’인 이유는 그 역사의 종결이라는 이념만이 그 역사의 시대적 자료들을 비판하고 구분하며 결정하는 입장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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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1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름만 아는 발터 벤야민이네요 거리의화가 님은 이 책을 다 보셨군요 한번 봤으니,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보면 다를 것 같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2-21 17:12   좋아요 1 | URL
첫 줄에도 적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물론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서 자괴감이 들기는 했는데 아직 무지한 탓이려니 하면서ㅎㅎ 배경 지식을 충분히 쌓고 나서 나중에 도전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