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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ㅣ 발터 벤야민 선집 5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6월
평점 :
애초부터 정독한다고 해서 이 책의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없겠다 여겨서 훓어 읽었다.
여기에 속한 저작들은 20세기 초 쓰여졌지만 20세기는 19세기 근대의 산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안다면 내용의 바탕이 왜 19세기의 구성물로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방송을 통해서 종종 접했던 19세기 파리의 모습은 낯선 용어들을 제외하면 사례들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계의 확산, 유리 천장과 철골 구조의 건축물, 파노라마, 사진의 출현(순수 미술의 공포), 박람회와 백화점, 거리의 산책자들 등. <19세기의 수도 파리>는 독일어판과 프랑스어판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나중에 쓰여진 프랑스어판이 정리된 성격이 강했다.
사적 개인에게 처음으로 거주 공간이 작업장과 대립된 위치에 서게 된다. 거주 공간은 실내(Interior)에서 형성된다. 사무실은 그 실내의 보충물이 된다. 사무실에서 현실의 일들을 처리하는 사적 개인은 실내에서 자신의 환상들을 즐길 수 있기를 요구한다. - P199
신상품들을 파는 상점들에 발맞추어 신문들이 등장한다. 언론은 정신적 가치들의 시장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이 시장은 우선 호황을 누린다. 비타협주의자들은 예술을 시장에 내다 파는 데 저항한다. 그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art pour l‘art)의 기치 아래 모여든다. 이 구호에서 종합예술작품(das Gesamtkunstwerk)이라는 구상이 생겨난다. 종합예술작품은 기술의 발전에 맞서 예술을 밀폐시키고자한다. 종합예술작품을 기념하는 예식은 상품을 미화하는 기분 전환과 짝을 이룬다. 둘 다 인간의 사회적 현존을 사상(象)해버린다. - P206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했던 이유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18가지 항목을 정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전부 읽어보니 어려운 글들 중 하나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였다. 도대체 그 글만 몇 번을 읽었는지... 그런데도 완전한 이해에 이른 것 같지는 않아서 찝찝하지만 더 읽는다고 뭐가 나오나 싶어 접었다. 사전 지식이 그만큼 부족했다 여길 수밖에 없었다.
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의 서사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그에게 어떤 구성의 대상이 되는데, 그 구성의 장소를 이루는 것은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삶 그리고 특정한 작품이다. 그는 그 시대를 사물화된 ‘역사적 연속성을 폭파하여 거기에서 끄집어낸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그는 한 시대에서 한 특정한 삶을, 필생의 업적에서 한 특정한 작품을 캐낸다. 이러한 구성에서 얻어지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어있다는 점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에 대한 영원한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때그때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시한다. - P261
3.살았던 순간들 하나하나가 최후의 심판일이 될 날의 의사 일정에 인용 대상이 될 것이다. - P332
5.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붙잡을 수 있다. - P333
7.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승리를 거둔 사람은 오늘날 바닥에 누워 있는 자들을 짓밟고 가는 지배자들의 개선 행렬에 함께 동참하는 셈이다. - P336
13.역사에서의 인류의 진보라는 생각은 역사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관통하여 진행해나간다는 생각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진행에 대한 비판이 진보에 대한 생각 일반에 대한 비판의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 - P344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앞선 글인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벤야민은 역사적 연속성을 비판하였고 순간을 포착하는, 정지하는 이미지로서의 개념을 대체재로 꺼내 들었다. 역사는 과거로 구성된 것이 아니며 진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님만 잡고 간다.
벤야민의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앞 뒤 문맥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 'A->B->C' 인과적 흐름에 의한 글들에 익숙해서 그의 글이 낯설 수 있겠다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소설을 읽을 때도 시점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 잘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꿈 키치>와 <초현실주의>는 어떻게 보면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해당 내용은 '초현실주의'라는 내용을 사전에 검색을 해보고 읽었다. 그랬더니 훨씬 나았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진 문예 예술사조 중 하나로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꿈을 해석한 프로이트와 연관이 있다 볼 수 있는데 당시를 생각해보면 국가라는 개념이 중요해지고 제국주의를 넘어선 군국주의, 전쟁이 엄습하던 시기다. 각종 신유물이 쏟아져 나올 때 민중은 어디로 갈 지 몰라 헤매고 혼란 속에 붕 뜨는 존재가 되었던 게 아닐까.
"초현실주의는 그 본질적인 진실의 측면에서 대화를 재건한다는 사명을 갖고 나왔다. 파트너들은 예의범절의 강박에서 해방되었다. 말하는 자는 어떤 명제도 연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원칙상 말한 사람의자기애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과 이미지들은 듣는 자의 정신에게는 디딤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 P137
폭력에 대한 비판은 폭력의 역사에 대한 철학이다. 역사의 ‘철학’인 이유는 그 역사의 종결이라는 이념만이 그 역사의 시대적 자료들을 비판하고 구분하며 결정하는 입장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