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발돋움 두란노 시그니처 리커버 시리즈 4
헨리 나우웬 지음, 이상미 옮김 / 두란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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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영적인 삶이란 우리의 가장 깊숙한 자아로’ ‘다른 사람에게로그리고 

하나님께로향하는 발돋움

 

작품의 내용과 연관이 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마음에 와서 닿는 구절을 해당 작품을 읽는 과정에

우연히 마주해 여기에 옮겨 봅니다.

 

늘 부족하고 갈급한 존재로서 항상 무엇인가로 채워보려 합니다. 돈으로, 쾌락으로, 권력으로 채워보지만 절대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프랑스 신학자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이 말 한대로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야 하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하나님과 멀어진 후 영적 갈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만족시킬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더는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해결의 길,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근원적 갈망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박흥범 서울은천교회 목사)


나는 오늘도 영적 발돋움을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한다는 의미는 비전이라는 미명 아래에 거짓 확신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지만 

하나님의 영원성에 자신의 전 존재를 의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영적 깊이와 무게감도 없는 내가 타이틀과 같은 내용에 대해 느낌이나 소회를 적기에는 나의 일천한 신앙심에 반하는 행동이라 여겨 여기에 작품의 주요 문구를 정리해 보았다.

 

 

PART 1. 자아를 향한 발돋움


<01. 가슴을 후비는 외로움>

- 외로움으로부터 도망가고 그것을 잊거나 부인하려고 하는 대신 그 외로움을 지켜서

  생산성 있는 고독으로 바꾸어라

- 외로움은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반드시 겪게 되는 경험(P21)으로 오늘날 인간 고통의 가장 

  보편적인 원인 중 하나이다.(P23)

- 번잡한 모임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서글픔의 원인은 아마도 내면 깊숙이 뿌리박혀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경쟁심 탓에 서로를 드러내지 않아서 일 것이다.(P24)

- 외로움은 조건 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사랑을 베풀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용당할 염려 없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의심을 먹고 자란다.(P25)

- 하나님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기대들을 다른 이들에게 짐 지우기 때문에 값없이 주는 우정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느낀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면 

  우정과 사랑은 발전할 수 없다. 사랑과 우정에는, 서로를 향해 다가서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할 수 있는 다정하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P31)

- 서로에 대해 진정으로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닫아 놓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왜냐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자신의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P32)

- 서로 간에 아무런 경계선을 두지 않음으로써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가깝기는

  하지만 무미건조한 관계가 되어 버릴 것이다. 내면의 성소를 위험스레 내비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다그것은 우리가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교제를

  갖기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이기도 하다.(P33)

- 영적인 삶을 살려면, 먼저 외로움의 광야로 들어가서 조용하고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그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강한 믿음도 있어야 한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가는 움직임은 모든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P37)

- 진정한 영적 안내자는 무엇을 하고 누구를 찾아갈지를 말해 주는 대신,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권하는 사람이다.(P39)

- 우리의 불안한 마음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슬픔 가운데 기쁨이 있으며, 두려움

  가운데 평안이 있고, 탐욕 가운데 긍휼한 마음이 있으며 또한 참으로 진저리나는 

  외로움 가운데서 고요한 고독의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P40)

 

<02. 열려 있는 고독>

- 외로움은 고독을 향해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이 고독을 맛보게 되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과 또 서로를 향해 묶일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P41)

- 정말로 중요한 고독은 마음의 고독이다.(p42)

- 마음의 고독을 가지고 살 때 다른 사람들과의 세계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일 수 있지만,

  외로움에 쫓겨 살 때는 자신의 갈급한 필요에 즉각적으로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나 사건만을 고르려한다.(P43)

- 내면의 민감성을 계발하는 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P44)

- 고독은 우리가 동료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P48)

- 내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는 온유함을 발견하게 하는 것은 바로 

  깊은 고독 가운데서이다.(P49)

- 마음의 고독이 없으면 우정과 결혼과 공동체 생활의 친밀감은 창조될 수 없다.(P51)

- 많은 경우 외로움이라는 체험이 고독의 체험보다 더 강하다는 것과 고독에 대한 말은 외로움의

  고통스러운 침묵에서 나온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P53)

 

<03. 창조적인 반응>

- 외로움에서 고독으로의 움직임이 진전되면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대응하던 것들은 서서히 

  사랑에서 우러난 반응으로 바뀌어 갈 수 있다.(P60)

- 진실한 반응은 고독에서 나온다.(P72)

- 머리와 손만 가지고 일할 때 우리는 행동의 결과에 쉽사리 의존하게 되며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눈 앞에 드러나지 않을 때 포기하기 쉬워진다. 마음의 고독 속에서만 이 세상의 고통에 진실로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독 속에서는 그 고통이 생소하고 낯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고통임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P74)

- 자기 의를 버리고 동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내면의 연대감이다.(P75)

- 고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긍휼한 마음(copmpassion)으로 그 고통을 만지는 사람은

  치유와 새로운 힘을 얻는다.(P78)

 

PART 2. 타인을 향한 발돋움


<04. 적대감에서 환대로 바뀌는 삶>

- 성경의 신약과 구약의 여러 이야기들은 낯선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무라 말한다.(P85)

   --->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P86)

- 우리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적대감과 두려움을 보고 인정할 때 반대편 내면으로부터 

  치유의 능력을 보게 된다.(P91)

- '환대란 무엇보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하나님과 우리의 길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의 방법을 찾도록 기회를 열어 주는 것(P92)

- 구원과 구속과 치유와 새로운 삶을 기대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열려 있는 

  수용의 자리이다. 즉 우리에게 무언가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리이다.(P98)

- 적대감을 환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애가 넘치는 빈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P99)


<05. 환대의 다양한 모습>

- 우리는 모두 자녀이면서 부모이고, 학생이면서 선생이고, 치유자이면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다자녀는 우리가 알아가야 하는 낯선 사람이다.(P103)

   ---> 자녀들은 나름대로의 행로가 있는 손님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들의 행로를 알 수도

       없고 지시할 수도 없다는 점을 계속 되새기면 평안한 마음과 축복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보내기가 쉬원진다.

- '유아 세례는 부모가 아이를 교회에 데리고 올 때 그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혈연의 가정보다 훨씬 큰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절차.(P106)

- 가르침에는 무엇보다도 학생과 교사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으며, 그들 각자의 

  인생 체험이 성장과 성숙에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고 가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P110)

- 좋은 주인이란 손님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음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 재능을 계발하고 향상하도록 도와주어서 새로운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이다.(P113)

- 교회는 우리의 주림과 목마름을 채워 주기 위해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부르는 사람들의 

  공동체다(P114)

- '치료'를 하는 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올바른 진단을 하는 일로서, 진단이란 현재 그들의 삶을

  모양짓고 형성하며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이끌었던 그들의 즐거움과 아픔,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을 알려는 노력이다.(P123)

- 치유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낯선 이가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에 민감해지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데 있다.(P125)

- ‘수용대립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에서 뗄 수 없는 두 가지 요소로 이 둘은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대립이 없는 수용은 어느 누구도 섬기지 못하는 상냥한 중립성이 되고, ‘수용이 없는 

  대립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무서운 공격성이 된다.(P130)

 

<06. 따뜻한 환대와 주인>

- 따뜻한 환대에는 생각과 마음의 가난이 있어야 한다. 섬김을 위한 훈련은 부유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가난해지려는 것이며, 자신을 비우려는 어렵고도 고통스런 과정이 따라야 

  한다.(P132)

- 진정한 주인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리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간이

  되는 자기 나음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주는 사람이다.(P134)

- 사상과 개념과 견해와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은 좋은 주인이 될 수 없다.(P136)

- 교육을 잘 받은 성직자란 자신이 분명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P138)

-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사상이나 개념, 견해, 신념 속에 두거나그 속에 담을 수없듯이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느낌이나 감정으로 한정할 수도 없다.(P141)

- 상대방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잊어야 한다. 그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P142)

- 섬김을 위한 훈련은 부유해지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자원해서 가난해지려는 훈련으로 자신을

  비우려는 훈련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이다.(P143)

 

PART 3.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


<07. 기도와 인간의 유한성>

- 기도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내적인

  생명으로 친교를 나누게 된다. 또 이를 통해 우리는 거듭 날 수 있다.(P148)

- 환상에서 기도로 향하는 움직임은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향하는 움직임과 또 적대감에서 따뜻한

  환대로 향하는 움직임을 뒷받침하고 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며 또 우리를 영적인 삶의 

  핵심으로 인도한다.(P150)

- 우리 삶이 기도의 심오한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내면 깊이 스며

  있는 영원성에 대한 환상이다.(P153)

- 친밀성이 영원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의기소침과 절망이 될 수 있고, 영원성에 대한 

  숨겨진 환상이 친밀한 관계를 지배하게 되면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욕정에 찬 폭력으로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P157)

- 기도가 없는 영적인 삶은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과 같다.(P163)

- 기도란 오로지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법은 익혀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역설적인 면이다.(P163)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가장 본질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오셨고 이로써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생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그 분의 은밀한 생명 가운데 동참한다는 의미이다.(P166)

- 기대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영적인 삶의 기초이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삶은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삶이다.(P171)

 

<08. 마음의 기도감에서 환대로 바뀌는 삶>

- 내 마음의 기도의 3원칙(P180~185)

 1)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읽는 것 --> 어떤 말씀이 직접 나에게 하시는 것이고 자신의 삶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 생각하라

    -->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조용한 시간을 가져라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침묵으로 이끌고 침묵은 하나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것

 3) 신뢰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인도자에게 순종하는 것

- 성경과 침묵과 영적인 인도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장 개인적인 길을 찾는 데 

  중요한 세 가지 길잡이이다.(P185)

- 생각과 마음이 하나가 된 채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서 있는 것, 그것은 마음의 기도의 가장

  본질적인 면이다.(P196)

- 심오한 의미의 마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친밀함 속에서 지성과 가슴을 하나로

  묶어 준다.(P197)


<09. 공동체와 기도>

-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팔을 뻗을 수 있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발돋움하면 아픔과 고생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다른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P204)

- 기도란 결코 달콤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가장 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서 고통을 없애주지 않고 오히려 기도는 더 고난을 준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만큼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고난을 받고 더 많은 빛과 더 많은 어둠을 볼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은혜와 더 많은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향해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고독은 고독을 향해 말할 수 있고 깊음은 

  깊음을 향해마음은 마음을 향해 말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사랑과 고통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P204)

- 기도가 개인적이며 우리 삶의 중심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P206)

- 기도는 언제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삶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한다.(P207)

- 신앙 공동체는 우리에게 어떤 범위 내에서 자신의 깊은 갈망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보호영역을

  제공한다. 우리의 귀 기울임은 병적인 자기 성찰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갈망들이 향하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P207)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에클레시아(ekklesia)(헬라어 칼레오 [kaleo, 부름]와 

  에크[ek, 밖으로]에서 래된 단어), 즉 옛 세상에서 새 세상으로 부름받은 공동체이다(P210)

-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하나님이 만유 안의 만유가 되실 때를 기대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P213)

- 공동체의 기도는 공동체가 아직 온전함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집에 

  이르고자 하는 바람의 표현이기도 하다.(P215)



작품의 에필로그를 읽다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에게 다양한 성질과 서로 다른 힘을 주신 우리 조물주께서는 우리가 모두 

 행복하도록 우리를 만드셨으며, 각자 다른 수단으로 행복을 얻도록 의도하셨다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봅시다.

 

* 작품으로부터 얻은 잡지식

- 고독(solitude)이라는 말과 은둔자(solitary)라는 말은 혼자 있다라는 라틴어 솔루스(solus)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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