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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ㅣ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평점 :
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욥’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욥’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욥’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 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욥’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욥’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 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욥’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즉,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다.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욥’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욥’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욥’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년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욥’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암'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욥’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욥’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욥’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욥’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욥’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욥’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욥’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즉(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욥’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욥’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욥’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신’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욥’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엘(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욥’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욥’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욥’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욥’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은 ’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