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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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저자께서 자신의 작품을 읽고 쓴 나의 서평을 읽으시면 불같이 화를 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또 독자의 한 사람으로 문학을 위한다면 할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에 나의 의견을 싣는다.

아무튼 작품을 덮으며 든 생각은 뭐랄까 꼭 집어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2% 부족한 작품이었다

 

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라면 '이래서 그렇습니다'라고 할 이야기는 없으나 분명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내용이나 줄거리가 빈약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크게 든 그런

작품이었다작품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 맴돈 것은 생뚱맞게도 내 초등학교 시절

'도자기'얽힌 에피소드였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는 부모님이 애지 중지하던 '유리 꽃병 도자기'가 있었다.

몇 학년 때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학급 미화 당번이었던 나는 선생님께 얼마 있으면 있을

'학급 미화 점검'에 대비해 학급 간부들과 함께 학급을 꾸며 놓을 것을 지시 받았는데, 과거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학급 미화는 학급 학생들이 참여해 자신의 집에 있는 물품을

들고 오거나 선생님의 호주머니 혹은 간부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갹출해 꾸미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준비 형태였는데,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현금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 중 교실

미화에 쓸만한 물건을 들고 가기로 결심을 하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애지 중지

하시던 '유리 꽃병 도자기'였던 것이다.

 

우리 집 '도자기 유리 꽃병'엔 꽃이 항상 꽂혀 있었다.

거칠디 거친 아들만 넷을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정서를 순화시키면서 화사하게

웃으시거나 콧노래를 부르시던 순간이 바로 그 꽃병 앞에서 꽃을 장식하실 때였기 때문에 나는

그 꽃병이 꽃병 이상의 마력을 우리 모친에게 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또 꽃병

앞에 서신 모친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도 항상 느꼈기

때문에 그 꽃병이 우리 집에서 또 모친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꽃병을 학급 미화 소품으로 가져 가기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그냥 들고 나올 수가 없어서 집 식구들이 전부 외출한 틈을 이용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꽃병을 들고 학교로 그 꽃병 도자기를 들고 가서 당당하게 담임 선생님 교탁을 장식해

선생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도자기 꽃병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신 모친께서 강력한 용의자인 나를 취조하자 나는

미화 점검이 끝나면 바로 가져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부모님의 성화를 벗어 날 수 있었다.

 

환경 미화점검이 끝난 어느 일요일 오후 학교에 몰래 들어가 내가 갖다 놓은 꽃 병을 훔쳐오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유일하게 받았던 칭찬이 그 꽃병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선생님께 알리고 그냥 가져 오면 그 칭찬이 무효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방법을

택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교실에서 나는 도자기 꽃병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토요일 학교가 끝날 때 선생님 자리 위에 있던 꽃병을 확인하고 집으로 왔는데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꽃 병이 예뻐 보여서 아마 누군가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도자기를 찾아오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해 버렸다.

"꽃병을 들고 나오다 학교 담장에서 떨어트려서 깨져 버렸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내 답을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실망의 빛은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또 그

꽃병이 나의 모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고 있었던 어린 나는 순간 온 몸이 굳었고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장난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었을 경우는 상당히 화를 내시던 모친께서는 꽃병을 다시는 찾아

올 수 없다는 소리에도 담담히 웃으시기만 하셨고 더 이상 내게 어떤 화도 내지 않으셨으나 다만

그 날 이후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잔잔하게 퍼지던 그 웃음기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꽃병을 다시 집으로 들고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져 버렸으며 꽃병에 대한 관심은 나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학급의 친구 모두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품을 다 읽고 덮은지 상당히 시간이 흘렀으나 기억 속에서 반추될 수 있을 만한 임팩트로 다가

온 소 작품은 미안하지만 하나도 없었다. 한 편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구심

마저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작품을 뒤적이다 해당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일부 문장인

 

"사람이란 존재는 적든 크든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 차츰 멀어지게 된다. 내 고통이

 보다 커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당장 나를 압박하며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27)

 

라는 문구만을 여기에 올리게 되는데 이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이 작품을 읽었을 것이라는 증거로

자리 매김할 뿐이다.

 

'도자기'란 무엇인가 거칠게 다루면 쉽게 상처 받기 쉬운 물건 아니겠는가.

비록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세상을 살면서

쉽게 상처 받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그런 인간들 모두는 결국 형태만 달리하고

있는 또 다른 [도자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온갖 개별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또 다른 형태의

박물관이 아니겠는가.

결국 작품집 [도자기 박물관]은 아주 아주 서민적인 어느 이름 모를 소시민의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였고, 상처받기 쉬운 이름 모를 인간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 선상에서 작품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아도 좀 더 임팩트 있는 소재, 이야기 전개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느낌을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오히려 '현길언'님의 '나의 집을 떠나며'가 더 작품 제목에

부합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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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 개정판
마이클 린버그 지음, 유혜경 옮김 / 한언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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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아마 보편적인 사람들이라면 '자신만의 명작'을 그리려 무진 애를 쓰는 삶이 통상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애써 왔고 지금도 알게 모르게 또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살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게 인간사이고 그럴수록 도전해야 하는 것 역시 우리 인간의

몫이요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뛰고 또 뛰어 보자. 뛰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안 되면 뛴

만큼 이익이 아니겠는가 누가 손가락질 한다 해도 누가 비웃어도 나만의 길을 혼신의 힘을 다해

뛰다 보면 나만의 명작이 만들어 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 중 가슴에 와 닿는 글을 요약해 보았다.

- 삶의 순간순간들은 나만의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 얼마나 많은 달란트를 이윤으로 남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용하고 발전시켰느냐가 중요.

  

- 하느님께서 당신을 어느 곳에 데려다 놓든, 그 곳이 바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느냐다. (머더 테레사)

 

-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가장 훌륭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은 능력이 개발된다.

 

-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것.(헬렌 켈러)

 

- 나는 공부할 것이며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기회가 올 것이다. (링컨)

 

- 다른 사람의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 일은 당신을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면서 당신은 다른 종류의 부()를 얻게 될 것이다.

  조금이되 얻는 것은 많아 질 것이다.

 

-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할 필요는 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소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필요는 있다.

 

- 성공과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손에 넣으려고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소질을 꾸준히

  그리고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속하여 계발시킬 때 부수적으로 따라 오는 것이다.

 

- 각 사람의 가장 주된 임무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며,

  더 위대한 일은 다른 사람이 이미 이룬 무언가를 반복하지 않은 일이다.

 

-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일을 통해서다.

 

- 손은 부러져도 일을 할 수 있지만 마음은 부러지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 만약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문제나 좌절에만 매달려 있다면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 욕망을 채우는데 필요한 영양분만을 섭취한 사람들은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을 얻지

  못해 근심과 우울, 무기력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 인생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먼저 편안함과 안락함이라는 침대에 누워 움직이기

  싫어하는 우리의 본성을 극복해야 한다.

  계획과 실천 사이를 한참이나 떨어뜨려 놓는 게으름을 몰아내야 한다.

 

- 하나의 오늘은 두 개의 내일보다 더 가치가 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라.

 

- 앞에 있는 길이 어떤지 알려면 돌아오는 사람에게 물어 보라.

 

- 위대한 일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 황금같은 기회는 우리가 잡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서서 우리가 그들을 잡을 수 있도록

  항상 기회를 주고 있다.

- 하나님의 연필, 그게 바로 나이다. 하나님은 작은 몽당 연필로 좋아하는 것을 그리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그것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신다

                                                                                                          (테레사 수녀)

 

- 자유와 만족은 욕구를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를 절제하는 데에 있다.

 

- 사랑과 기술이 한데 어울리면 걸작품이 탄생한다. (러스킨)

 

- ‘기도를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을 스스로 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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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 - 주석판 - 역사와 소설의 포옹
김탁환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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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권유도 8

 

독후감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야담에 나온대로 황진이를 형상화 하는 것이었다

 황진이가 남긴 '시화'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생김이나 생활을 소개한 자료는 거의 없기

 때문에 단편적으로나마 황진이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어우야담>, <송도기이>, <성옹지소록>,

 <수천만록> 등을 참고로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성사시켰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상기 내용은 저자가 작품을 쓰고 난 소회(小回)를 그대로 옮겨 본 것으로, 작가와 같이 나 역시

본 작품을 통해 작가와도 같은 고충을 느꼈다.

, 작품의 횡간에 숨어 있는 그녀를 묘사한 내용을 통해 '황진이'라는 여인의 '자태'그려보려

노력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본질적인 실체에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어울렸던 지인들은 그녀를 '송도 삼절'이니 '절세 가인'이니 하는

극존칭의 단어를 통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으나 그녀에 관한 문헌이나 자료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나로서는 작품을 통해서 지인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으나

역시 직,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어 이 역시 실패하였다고 밖에는 달리

이야기 할 것이 없다. 이래 저래 크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 그런 순간이었다.

 

작품은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없는 '인간 황진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리고 있는데,

결론은 황진이 역시 기생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이었고, 사랑과 잔정이 너무도 그리웠던

인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두 가지 점에서 답답함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본 작품의 흥미를 절대적으로 반감시키는 '독백식' 전개 방식의 전개였고

둘째는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없는 수 많은 주해와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작품을 읽는 이들의

짜증을 유발한 점은 앞으로 작가가 참고해야 할 사항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두 가지 요소로 인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였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러 내용은 우리가 학교에서나 일반적인 구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어 작품을 통해 황진이로부터 받는 특별한 감동이나 인상적인 장면 혹은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치적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작품에 대한 감동이 내게는 그리 오래 가질 않게 만들고 있다.

황진이의 삶은 굉장히 고단한 삶이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소경)에 대한 외로움, 자신을 돌보아 준 새끼 할머니에 대한

두려움과 외숙부의 비겁한 인상은 아마도 어린 황진이에게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받지 못한 사랑에 좌절하지 않고 받지 못한 자신의 사랑만큼 남을 향해

나누어 주려고 하였으나 시기를 잘못 만나 시련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갖고 있던 그녀에 대한 일반적인 의문 사항이었던 '기생'으로 나서게 된 연유에 대해선

이 작품에서도 그리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으로 남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사내의 바지 저고리를 평생 옥 죈다고 아궁이에 던져 넣는 대목(112)이생과

두류에 올라 느끼는 회포(212)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연유한 것인지 의구심을 들게 하고 있다

중언부언이 되겠으나 추가적인 아쉬웠던 점은, 한정된 사료를 근거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야기가 너무 시기적으로 띄엄띄엄 쓰여져 있었다는 점이다.

지은이의 안목과 상황 판단에 의한 재 구성이었다 하더라도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살을 붙여서 작품을 전개하는 방식을 취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따라서 군데군데 끊기는 이야기는 문체에 의해 미화 될 수는 있어도,

황진이의 삶에 대한 탐구가 부실하게 보여진 것은 감추지 못하였다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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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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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늦게 접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기가 싫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수 년 전부터 심각하게 이 작품을 읽을까 말까를 심각히 고민하였는데

그 이유는 혹시 고리타분하고 쓸데없는 한문체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난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현실감이 떨어지는 구성으로 나의 문학적 소양이 낮아지지나 않을까

하는 선입견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작품을 외면해 왔는데 나의 그런 노파심이 잘못되도 크게

잘못되었음을 작품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확인하게 되었다.

오히려 아주 재미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으며 어떻게 이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다 읽고난 지금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결론적으로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고전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한번은 꼭 읽어 보아야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작품을 책 빌려주는 곳에서 빌려서 읽지 말고 꼭 구매해서 두고두고 읽기를 강력히 권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렸을 적 나와 내 주변의 독서 환경을 생각해 보니 친구 집에 놀러가면

꼭 책장에 꽂혀 있던 외국의 명저인 소공녀, 장발잔과 로빈스크로스의 모험 등은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이런 우리의 고전은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은 고사하고

학창시절 시험 대비해서 저자와 내용만 공부한 일천한 기억 밖에 없는 점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고전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굳히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작품의 주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고전에 대한 일천한 지식도

없는 내가 작품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전체 고전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논하지 않는 대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고,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해당 작품을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기에 작품과 관련 있는 별다른 이야기를 축약하거나 별도의 개인적인 의견을

기록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는 독자들과 저자인 김만중 그리고 출판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며

대신에 이런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꼭 작품을 구매해서 읽어 봅시다라고 말입니다.

막연히 이렇게 강조를 하는 것보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 몇 몇의 이름을 올려 여러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자 합니다.

주인공 양처사, 그의 두 부인인 난양공주, 영양공주와 여섯 첩인 계섬월, 가춘운 등과 이야기의

중심에서 일을 꾸미는 태후와 왕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아들 월왕, 주변인들인 정거사, 심지연,

백충거 등 이들이 작품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단순한 고전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부부의 도,

군신의 예, 청춘 남녀의 기본, 부모에 대한 공경심 등 이 모두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읽으십시오. 커피 두 잔 값이면 아주 훌륭한 작품을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에서 가끔씩 예화로 들고 있는 고사 속 주인공들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정말로 고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50% 정도는 알겠더라구요...

잘난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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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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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나의 필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작가의 근처에도 못갈 것같아 우울하다

특히, 저자께서 작품 초반에 언급하고 계신

나는 성인의 글을 아무리 읽어도 글 따로 마음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라는 표현에 생각까지 따로가 되다보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백 만 번 스스로 만든 졸렬한

문장력에 대해 안위를 하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이다 보니 오늘

나는 아주 우울하다.

그래도 한 구석 굳이 위로할 명분을 찾는다면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는 여러 현상을 간단명료한

표현과 상징으로 쉽게 접근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작가께서는 심오한 철학적 해석과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하는듯한 묘사로 인해 치열한 삶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

에게 작품이 약간은 버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작가는 참으로 생각이 많으신 것 같다 그래선 그런지 유전적이기도 하겠지만 흰머리가 다른

작가에 비해 유독 많으신 분으로 알고 있다. - 그런 반면에 나는 생각이 짧아서인지 머리 숱이

거의 없다 -

내가 단적으로 작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를 작품 속 문장에서 일부 발췌해 보면

 

“(서해) 이 섬을 드나드는 빛은 비스듬하다. 아침의 빛은 멀리서 오고 저녁의 빛은 느리게 물러

가서 하루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이 섬의 빛은 어둠과 대척을 이루지 않는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않고 어둠이 빛을 걷어가지 않는다. 빛과 어둠은 지속되는 시간의 가루들을 서로

삼투시켜가면서 교차되는데, 그 흐름 속에 시간과 공간은 풀어져서 섞여 있다. 어둠에 포개지는

빛이 비스듬히 기울 때 풍경은 멀고 깊은 안쪽을 드러낸다. 빛은 공간에 가득 차지만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빈 것을 빈 것으로 채워가면서 명멸한다. 만조의 바다 위에 내리는 빛은 먼 수평선

쪽이 더 찬란한다. 그 먼 빛들의 나라로 들어가면 그 나라의 빛은 더 먼 나라에서 빛나고 있을

터이다”(63, ‘서해’)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의 글에 대한 내공(?)과 나의 문학적 자질의 기본이랄 수 있는 글쓰기 능력,

사고력의 졸렬함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저급함으로 인해 자칭 글쟁이로서의 위상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냥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라면을 끓이며]는 뭐랄까 우리 서민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일용할 양식인 라면

얽힌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막연히 문학을 동경해 뭔가를 써보려 노력하는 어수룩한

작가로서의 관점과 필력을 어찌 갈고 닦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 교과서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

한다.

작가께서 표현한 가슴에 와 닿는 일부 문구를 살펴보면

- ‘무짠지는 새벽의 맛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시원적인 맛이다.

-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시장기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환기시키나

- ‘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 라면 시장의 앞날은 소외된 군중 속에서 번창할 것이다.

 

그 밖에 [1,2] [] [목수] [] [목숨1,2] [] [서민] [여인]들의 이야기 역시 짧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내용을 주제화하여 그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작품을 접하기 전 스스로의 삶을 단순 무채색으로

바라만 보던 관점에 덧칠을 시켜 준 작품으로 많은 생각을 던져 준 작품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작품 [][시민]이라는 작품에서 찾아 보았다.

- 모든 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 바늘을 함께 삼킨다.([])

- 지도자가 귀족의 명예심을 잃을 때 서민의 지옥은 시작된다.([시민])

이 두 문구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 보다 더 멋지며 핵심을 찌르는 듯한 문구를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 등을 통해 접한 기억이 최근에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민]이라는 작품에서 언급하신 문구는 현실의 관점에 대한 문학적 표현의 신천지를 열어

주시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 왔는데, 그보다 이런 문구는 나보다는 선거를 앞 둔 우리의 선량

대표들이 더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작품에서는 직업군인으로 한 평생을 사셨던 나의 부친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안전 불감증을 통렬히 질타하고 있는 [세월호]관련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하고 질타를 해도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언급하고 싶지 않아 나만이 느끼고 있는 작품에 대한 느낌은 꺼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만, 그 작품을 통해 작가께서 통렬하게 비판한 한 대목을 이야기하란다면

-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밤 형님들께서 출출하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 라면을 끓여 올 것을 지시하여 라면

5개를 큰 냄비에 끓인 적이 있었다. - 3형제가 먹을 양이었다 -

당시 석유 곤로가 아닌 연탄 불에 라면을 끓였는데, 다년간 연탄불을 갈아 보았기 때문에 연탄불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 나는 라면이 끓기를 기다렸음에도 기대만큼 라면이 끓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처음에는 라면을 3개만 넣었는데 잠에서 깬 막내 녀석이 - 도합 4명이 먹게 되었다 - 자기도 먹겠다고 큰 형에게 아양을 떠는 바람에 2개의 라면을 추가하는 바람에 라면 양이

5개로 늘었는데, 라면의 양이 늘었으니 당연히 물의 양도 늘려야 한다는 미친 생각에 이제 막

끓기 시작한 냄비에 물을 더 붓고 한 참을 기다린 후 냄비 두껑을 열어 보니 라면과 라면 국물은

온데 간데 없고 라면 대신 라면 떡냄비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날 라면을 잘못 끓인 벌칙으로 형들 앞에서 라면 5개를 혼자 다 먹어야 하는 기합을 받은 적이

있으며 그 날 이후 라면을 잘 끓일 때까지 겨울밤 내내 라면을 엄청 끓여서 형님들께 바친적이

있다.

 

또 하나는 나의 청소년 시절의 일정 부분은 라면을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던 적이 있다.

특히, 공부하다 새벽에 끓여 먹던 라면의 맛은 지금도 머리 속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각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님처럼 그 맛은 내 혓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라면 한 개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노란 양은냄비에 계란과 파 그리고

김치 국물을 약간 넣고 끓인 후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서 먹는 겨울밤의 라면 맛은 거의 환상에

가까운 맛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은 라면의 폐해도 컸었다.

추운 겨울날 야심한 시각에 부엌에 쭈그려 앉아 라면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야속한 졸음 귀신이

꼭 따라 붙는다. 라면을 먹고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잠자리에 그대로 들어가면 아침에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입 맛을 잃게 되어 그냥 학교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나를 격려하는 모친의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온다

셋째야 네가 밤새 공부를 열심히 해 입 맛이 없는가 보구나

라는 이야기에 가슴 뜨끔함을 느끼며 학교로 발길을 돌리면서 오늘은 라면 먹지말고 공부만하다

자야지 하지만 새벽 라면의 유혹은 그리 쉽사리 포기가 안 되는 그런 유혹이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작품을 읽으며 라면과 얽힌 두 가지 이야기는 언제나 내 머리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라면만 바라보면 그 생각에 절로 나의 미소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라면 비싼 라면이 나타나도 과거 부엌에 쪼그리고, 형들 앞에서 벌 받으며

먹던 라면만큼 맛있는 라면을 아직 발견하지 못해 아쉽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작품을 읽으며 나는 이런 추억이 생각났는데, 이 작품을 읽으신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이 났을까?

아무튼 라면하면 누구나 즐겨찾는 간식이라는 생각보다는 웬지모를 정겨움과 함께 아스라한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마법을 지닌 일용할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면을 끓이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배가 고파 라면을 끓였으며 나는 오로지 먹는 생각만 했으며 간혹 라면에 넣을 계란이 집에 없을

 때는 신경질을 낸 기억 밖에는 없다

라는 이야기 외에는 달리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없다.

그러니 문장력이나 사고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도 라면을 끓일 때는 그 어느 시간보다도 즐거웠으며 행복했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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